함평에 작은 포구
글 / 정성헌
아까부터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점점 굵어지고 있다. 바닷가 모래밭을 걷고 있다 갑자기 만난 비이기에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빗방울 세면서 걷고 있다. 몇 개만 더 맞으면 차로 달려가 얼른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차가 저만치 있으니 피하는 것이야 금방인데 왜 자꾸 비를 맞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혼자 간 길도 아닌 곳에서 혼자서 외로워지는 경우를 경험한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더라도 외로워지는 것은 가장 필요한 언어를 사용하여 감정전달을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사람이 많아서 막히는 경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곳은 함평군 손불면 궁산리 라는 참으로 작은 포구였다. 그 포구에 해수찜이 유명하고 뻘낙지가 많이 나는 곳이라 친구들과 찾은 것이다. 밖으로 나가면 이상하게 식욕이 생기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배가 고프다는 친구, 술이 고프다는 친구들의 성화에 서너 군데의 식당 중에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을 하시면서 산낙지를 파시는 아주머니 한 분과 강아지가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고작 20여 채 조금 넘을까 말까하는 작은 마을이라 주민이 손님인 경우는 드물 것 같고 우리처럼 외지에서 해수찜을 하러 온 사람들이나 낙지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들르는 식당이라 하루에 오는 손님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였고 음식도 썩 맛있게 하는 집으로 보이지 않았다. 천정 구석에는 거미가 전세를 들었지 주인이 월세를 내줬는지 모르지만 동거를 허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은 그곳에 들어와 있다. 주변에 돌머리 해수욕장이 있고 작은 산과 간척지로 생긴 넓은 들이 있고 제법 큰 목교라는 저수지가 있는 걸로 보아 어업과 농사로 상당히 부촌일 것이라 여겨진다. 함평읍과 가까워 접근성도 괜찮은 이곳 선착장에는 작은 포구에 다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제법 큰 배 두 척이 썰물로 바닥이 드러난 갯벌에 죽은 듯이 드러누워 있어서 밀물이 되어 넘실거릴 때 이 배가 움직일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단단한 밧줄에 묶여 있어서 요동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이 배는 분명 물이 들어오면 꽤 먼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 올 것이다. 이 배가 잡아온 고기를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어부의 집으로 추측되는 담벼락에 "뻘낙지 팝니다." 라는 광고의 글이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뻘낙지도 잡히는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뻘낙지를 이곳에서 사 먹을 수 있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20대 초반에 뻘낙지를 잡을 줄 아는 친구에게 네댓 번 낙지 잡는 법을 배웠지만 학습능력이 떨어진 탓인지 낙지 잡는 법을 완전히 습득하지는 못했어도 옛 기억을 더듬으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내가 잡은 낙지로 미나리와 양념을 넣어서 초무침을 해 놓으면 정말 너무 맛이 있어서 행복해 지는 것을 한 번 더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포구에는 게를 잡는지 주꾸미를 잡는 것인지 통발과 그물로 된 어구가 어수선하게 놓여 있고 꽃을 좋아하는 식당 아주머니가 다양한꽃들을 심어 놓아 눈요기도 되었다.
한 번 피었다가 시드는 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고 하시면서 자신이 심어 놓은 꽃 이름도 다 모르면서 자랑하시는 눈빛이 얼마나 정겹던가. 그 눈빛과 건강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성격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모습까지 투박한 어촌의 풍경으로 여겨졌으니 어쩌면 그 포구를 무척 맘에 들어 하는 내가 되었나 보다. 그 포구에 정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야 생각일 뿐이고 많은 절차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니 내가 전원생활에 대한 꿈이 더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려 볼 일인 것이다. 더구나 해안도로와 읍내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 커브에 작은 매점이 하나 있다. 사람 사는 곳이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더구나 매점 주인은 우리 또래의 아주머니라니 어쩌면 그것까지 그 포구가 나를 사로잡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는지 모른다. 당시에 마을 앞에 널따란 갯벌이 펼쳐져 있고 북서풍이 심하게 불어서 마을 앞을 자나는 여러 가닥의 전기 줄에서 바람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마저 우리 인생의 음향효과처럼 여겨져서 참 별것까지 다 멋스럽게 생각된다는 것을 느끼고 속으로 웃기까지 했다. 같이 간 친구들이 있어서 혼자서 길게 고독해져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다음에 혼자 와서 좀 오래하고 가야겠다는 계획만 세웠다. 이곳은 사실 초행이 아니었다. 어느 때이던가 낯선 곳을 방문하기 좋아하는 나는 무안 공항을 출발 해안도로를 이용 백수 해안도로까지 무작정 올라가다 이곳을 자나게 되었고 벽에 쓰여 있는 "뻘낙지 팝니다." 라는 글씨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 광고를 보고 살까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망설이다가 그냥 온 것이 나중에 얼마나 후회가 되었는데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오늘도 먹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였으나 다 팔리고 말았다고 한다.
직접 잡은 “뻘낙지 팝니다." 이 말이 왜 잊히지 않는 것일까. 글이 쓰여 있는 그 담벼락과 화초를 좋아하는 아주머니와 강아지 누워 있는 두 척의 배는 마음속에 그대로이다. 언젠가 다시 그곳에 가서 뻘낙지를 먹고 꽃을 좋아하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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