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삼조입니다..(--) 삼국지 인물사전 순수타자에 이어서 삼국지 정사(김원중) 정보를 타자로 또 쳐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많이 읽어주시길..(__)
감언이설에 빠져 제위를 넘보다 - 유언전
유언은 자가 군랑이고 강하군 경릉현 사람이며 한대 노나라 공왕의 후손이다. 선조가 장제의 원화연간에 경릉에서 봉해졌으므로 분가하여 이곳에 정착했다. 유언은 어려서 주와 군의 관리를 지냈고 종실의 자제로서 중랑으로 임명되었지만 뒤에 스승 축공이 세상을 떠나자 복상을 이유로 관직을 떠났다. 그는 양성산에 살면서 학문을 닦고 사람들을 가르쳤으며 현량방정으로 추천되고 사도부에 초빙되었으며 낙양령과 기주자사와 남양태수와 종정 및 태상을 역임했다. 유언은 후한 영제의 정치가 부패하여 혼란스러워지고 왕실에 여러 차례 변고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조정에 건의하여 이렇게 말했다.
"자사나 태수가 뇌물로 관직에 올라 백성을 가혹하게 착취하므로 조정에서 마음이 떠나 반란을 일ㅇ킌 것입니다. 청렴하고 명망 있는 중신을 선발하여 지방장관으로 삼아 나라를 진정시켜 안정되게 해야 합니다."
유언은 내심 교지목이 되기를 바라며 세상의 혼란을 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논의를 거친 그의 의견은 곧바로 시행되지 않았다. 시중 광한 사람 동부가 사사로이 유언에게 말했다.
"앞으로 수도는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익주의 분야에 천자의 기운이 있습니다."
유언은 동부의 말을 듣고 더욱 익주에 마음을 두게 되었다. 마침 익주 자사 극검이 세금을 많이 거둬들여 백성의 원망이 먼 곳까지 들려오고 병주에서는 자사 장일이 살해되고 양주에서는 자사 경비가 살해되어 유언의 계획이 이루어졌다. 유언은 지바으로 나와 감군사자가 되고 익주목을 겸하였으며 양성후에 봉해져 극검을 잡아들여 그 죄를 문초하는 일을 맡았다. 동부도 촉군 서부의 속국도위가 되기를 바랐고 태창령 파서 사람 조위도 관직을 버리고 함께 유언을 따랐다.
이때 익주의 역적 마상과 조지 등은 면죽현에서 스스로 황건이라고 부르면서 역무에 지친 백성을 불러 모아 하루 이틀 사이에 무리 수천 명을 얻었다. 먼저 면죽현 현령 이승을 죽이고 관리와 백성을 규합하여 총 1만여 명이 되었다. 그들은 계속 진격해 낙현을 파괴하고 익주를 쳐서 극검을 죽였으며 또 촉군과 건위에 이르러 한 달 만에 세군(촉군,광한,건위)을 파괴했다. 마상은 스스로 천자라고 불렀고 이끄는 병력이 수만 명이나 되었다. 익주의 종사 가룡은 사병 수백 명을 이끌고 건위 동쪽 경계지역에서 관리와 백성 1000여 명을 수하에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마상 등을 쳐 며칠 만에 패주시켜 익주 안은 평온을 되찾았다.
가룡은 관리와 병사를 선발하여 유언을 맞아들였다. 유언은 관청을 면죽현으로 옮기고 반란을 일으켰던 자들을 다시 받아들여 관용과 은혜를 베푸는 정치에 힘쓰며 은밀히 독자적인 계획을 추진하였다. 장로의 어머니는 처음에 무술을 써서 늘 젊은 모습을 하고 유언의 집을 왕래했다. 그러므로 유언은 장로를 독의사마로 임명하여 한중으로 파견해 골짜기의 다리(장안으로 통하는 길목)를 끊고 한나라 사자를 죽이도록 했다. 유언은 조정에 편지를 올려 말했다.
"미적(오두미도의 신봉자)이 길을 끊어 놓아 수도와 연락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 다른 일을 빌려 익주의 호족 왕함과 이권 등 십여 명을 죽이고 자기의 권력욕을 드러냈다. 건위 태수 임기와 가룡은 이 사건으로 인해 유언을 공격하였지만 유언은 임기와 가룡을 격파시키고는 죽여 버렸다.
유언의 마음은 점점 강렬해져 천자가 타는 수레 용구 1000여 대를 만들었다. 형주목 유표는 유언에게 자하가 공자가 죽은 뒤 서하에서 성인처럼 논의할 방법이 없음을 회의한 것과 같은 점이 있다고 상주했다. 그 무렵 유언의 아들 유범이 좌중랑장으로 유탄이 치서어사로 유장이 봉거도위로 있었는데 모두 헌제를 모시며 장안에 있었다. 단지 작은아들 별부사마 유모만이 줄곧 유언을 모셨다. 헌제는 유장을 보내 유언을 일깨우도록 했는데 유언은 유장을 머물게 하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때 정서장군 마등은 미현에 주둔하고 있다가 모반했는데 유언과 유범은 그와 내통하여 일을 도모해 병사를 이끌고 장안을 습격했다. 그러나 계획한 일이 누설되자 유범은 괴리로 도망치고 마등은 패하여 물러나 양주로 돌아갔다. 유범은 끝내 살해되고 유탄도 붙잡혀 사형에 처해졌다.
의랑 하남 사람 방희는 유언과 대대로 교분이 있었으므로 유언의 잣논들을 불러 촉으로 들어오게 했다. 이때 유언은 낙뢰를 맞아 성을 불태우고 수레 용구를 모두 탕진하였으며 민가에까지 피해를 끼쳤다. 유언은 관서를 성도로 옮겼지만 죽은 아들에 대한 비통함과 하늘에서 내린 재난으로 상심하다가 흥평 원년에 등에 악성종양이 나서 죽었다.
익주의 고위 관리 조위 등은 유장의 성품이 온후하고 인자함을 탐내어 함께 유장을 익주 자사로 임명하라는 편지를 올렸다. 이에 조서를 내려 유장을 감군사자로 임명하고 익주목을 겸하도록 했다. 조위를 정동 중랑장으로 임명하고 병력을 통솔하여 유표를 공격하게 했다.
출처 - 정사 삼국지[촉서] (김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