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은 사실상 일반적이고 보편적 이론이다.
하지만 보편적 이론 마져도 이해를 안 한채 목사노릇,
혹은 신앙 생활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서론격으로 취급 했다.
다소 지루한 느낌이 있다 할 찌라도 읽고 다음 장으로 넘어 가 주기를 바란다.
교회와 교회당에 대한 분명한 인식
교회를 개혁 하려면 교회가 무엇인가부터 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의 교회 현실은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 없이
무조건 적인 교회라는 명칭에 매달려 열심을 갖고 살아 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분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목회를 하는 목사들이나 일반 신자들이 거의 같은 수준일 것이다.
이것은 지식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전통적 명칭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한채,
기본적인 교회본질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지 못한 탓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교회라는 고유명칭에는 성역으로의 절대의미를 부여 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교회의 본질을 교회당을 중심 해서 인정 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살아 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지만 교회와 교회당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 했을 때는
누구도 그 것을 부정 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당에 교회 본질을 두려는 무식한 자들 외에는)
그렇다면 이야기는 훨씬 쉬워진다. 교회와 교회당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 한다면,
먼저 교회 본질부터 생각 하자.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라는 명칭은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께서 처음 언급하신 말씀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에서 처음 언급이 된다.
본문의 해석의 차이가 카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라 한다.
교회는 신앙 고백위에 세우신다는 것이 개신교의 입장 이라고 한다.
"신앙 고백" 신앙고백이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 하고,
그분을 영접(믿는다) 한다는 의미 일 것이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 하는 자에게
"내 교회를 세운다" 는 그 의미가 무엇일까?
그것을 단순 하게 신앙 고백위에 라고만 인식을 하면 안 된다.
"네 위에"란 말씀에는 그리스도를 영접 하는 자에게 "내주(內住)의 약속"을
의미 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곳에서
"나는 네안에 너는 내 안에"란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며 (요6:56, 15:4, 요일3:24,
4:13)"너희 몸은 성령이 거 하는 전"(고전6:19) 이라고 말씀 하고 있는 것아닌가?
그렇다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각 사람이란 말이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동의 할 것이다.
여기에 어떤 것도 가감이되거나 다른 해석을 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교회의 본질은 그리스도를 영접 한 각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다음은 공동체로서의 의미인데 그 기초역시 예수께서 언급을 하셨다
"너희 중에 죄지은자가 있거든.....하고 마지막엔 교회에 가서 말 하라"
(마18:15-17) 고 하시고 이어서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고 하신 말씀에서
공동체의 기초 의미를 두는 것이며, 우주적 공동체, 혹은 하나로의 공동체 의미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것은 요한 복음 17장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하나로서의
보존을 위한 기도 속에서 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울에게 건너 와서는 연합으로서의 공동체 의미를
"지체론"에서(롬12장과 고전12장 에서)언급 하고 있으며,
에베소서에서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언급, 연합으로서의 공동체 의미를
보다 실감 있게 표현 하고 있다.(엡2:20-22)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본질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두고 있다는 것을 확실 하게 인식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것도 가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예배 처소로서의 교회는?
다음은 예배 처소 문제 인데, 이 처소문제를 갖고 오늘의 교회당이란 형태를
만들고, 그것을 정당화 하는 변론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것은 결국 예배 처소로 등장된 교회당이 교회 본질을 삼키는
(교회 자리를 찾이 한)결과를 초래 하게 되었고,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 하면, 먼저 어떤 특정 건물을 먼저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는 당연히 건물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 되었으며,
그 건물을 교회라고 이름부쳐 교회당을 중심 한 신앙 생활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교회 본질을 말할때는 사람을 말하면서도 우리의 신앙생활은
교회당에서 이루어지고, 교회의 가치를 교회당에서 찾으려는 모순에 빠져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더욱 부채질 한 것이 목사들이라 할 수 있다.
능력있는 목사들은 교회당을 하나님의 성전 운운 하면서
교회당에 교회의 본질 이상의 가치를 신자들에게 인식 시켜,
교회당을 통해서 유명인사 (목사)들이 되었고,
유명 level은 그들의 말은 성경이상의 권위를 갖게 되어,
성경이 아닌 것을 가르쳐도 신자는 그것을 신뢰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교회 본질을 왜곡했을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통한 위대한 복음마져 위기를 만나게 만든 결과가 되었다.
주께서 피흘려 사신 교회라 했을 때, 주께서 교회당을 피 홀려 사셨다는 뜻인가?
이 얼마나 황당한 결과들을 만들어 왔단 말인가?
적그리스도 적인 행위를 져질러 온 사람들이 오히려 정당한 자들이 되고
"이것이 아니다"고 말 하는 자들이 도리어
적 그리스도로 몰리는 오늘의 현실이 된 것이다.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서, 성경을 면밀히 살펴 보자,
단 한곳에서도
예배처소를 두고 가치를 부여 하거나 그것을 만들라는 말씀이 있는가?
오히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그렇게 섬겨 왔던 예루살렘 성전을 두고도 헐라 하셨다,
그것은 당신의 육체를 가르친 것이라 해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 하셨을 때
성전 휘장이 갈라 짐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성전 의미마져도 그때 소멸이 된 것인데,
예수님의 몸으로 완성 된 것이 다시 되살아나
성도들에게 성전이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어서라도 자기욕심을 챙기려는
양의 옷을 입고 노략질 하는 이리들의 행위가 아닌가?
교회당에 관해서는 예수님에게서도, 사도들에게서도 단 한번도 언급 된 일이 없다.
신자들의 모임의 장소로 언급 된 것이 있다면, 해변이나, 들이나 산이나,
유대인의 회당이나,(회당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 할것임) 다락방이나, 루각이나,
개인 집들이 있을 뿐이며, 초대교회는 지하동굴이 있었을 뿐이었다.
왜 이래야 되는가? 그것은 당시 상황에도 이유가 있었겠지만
무소 부재 하신 하나님의 속성과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 해야 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가장 용납 하실 수 없었던 것이 산당(山堂)이 였다.
산당은 무엇인가? 산당은 신을 모시는 집을 두고 한 말이다.
지역명칭의 교회는?
고린도 교회, 갈라디아 교회, 빌립보 교회, 안디옥 교회등
지역 명칭을 붙쳐 교회라고 했는데 지역명칭들을 붙여 교회라고 한 것은
지금과 같은 서울중앙교회, 부산제일교회, 혹은 동대문교회등의 이름을 붙인
오늘의 교회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지금우리가 지역명칭을 붙쳤다고 해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교회와는
전혀 그 성격이 다른 것은, 성경에서 지역명칭을 붙쳐 교회라 한 것은
그 지역에 사는(있는) 주의 백성들을 일겉는 말이지만,
오늘의 교회의 경우는 아무리 지역명칭을 붙쳤다 해도
이것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의 백성들을 일컽는 말이 아니고
교회당을 중심한 교회를 일컽는 말이기 때문에 그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여기에서 성경이 말 하고 있는 교회와 오늘의 교회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더욱 명확 한 이해를 하려면 교회 공동체에 관한 의미를 따로 언급을 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에 관한 자세한 내용에 관해서 더 이해가 필요 한 분은
성문밖 편지 3권, 4권을 참고 하기 바란다.
성경에 의한 교회인가 교회를 위한 성경인가?
카톨릭의 교황무오설을 비판 하고 개혁자들은 개혁의 기치를 들었었다.
교황 무오설을 비판 한 것은 성경에 의한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위한 성경이란 점에서 비판하고 나섰던 것이다.
오늘의 교회를 두고 개혁의 불가피성을 말하게 된 것도,
오늘의 교회가 성경에 의한 교회가 아니라, 교회(당)를 위한 성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오늘의 교회당의 존재를 위해서 시녀(侍女)가 되어
교회(목사)가 필요로 하는 일에 그때 그때 마다 재료가 되어주는
도구로 전락(轉落)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가 문제가 된 것은 예수신(神)을 교회당에 모셔놓고,
주일이면 예수신당을 찾아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데에서 출발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교회는 성경과는 관계없이 교회당(신당)에 맞춰 모든 신앙 행위가 만들어져 있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경은
교회의 시녀(侍女) 로서 오로지 교회당을 유지시키는 도구(재료)
혹은 조력자(助力者)역할을 할 뿐 이다, 고 한다면 심한 표현이라고 나무랄까?
*성경은 만인 제사장을 말 하지만- 교회당은 사제(목사)를 필요로 한다.
*성경은 주안에 있는 자들(365일이) 이라 하지만- 교회당은 주일 성수를 요구 한다.
*성경은 우리 전부를 요구 하는데- 교회당은 따로 헌금을(십일조 등) 요구한다.
*성경은 "날을 지키지 말라"(갈4:9-11)-하는데 교회당은 날과 절기들을 지키기를 요구 한다.
*성경은 우리몸을 성전이라 하는데-교회당은 교회당이 성전이라 말 한다.
*성경은 예수께서 율법을 다 이루었다 하는데-교회당은 지금도 율법을 가르치고 요구 한다.
교회당은 신당(神堂) 문화의 사생아(私生兒)
이런 거짓이 교회를 지배 하게 된 것은 주후 313년 이후 로마 교회가 되면서
이방신당(神堂/귀신)문화가 교회로 들어오면서부터 이다.
그래서 지금 교회에서 행해 지고 있는 대부분의 의전(儀典)들이나,
신앙행위로 표현 되는 것들은 성경이나 복음적인 것이라기 보다,
이방 신당 문화와 유대교의 율법으로 합성 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이리가 양의 옷(예수 이름 혹은 복음)을 입고 교회를 지배 하고 있는 형극인 샘이다.
여기서 생겨진 것이 교회당이고, 주일성수 개념
(미트라종교의 태양신의 祭日과 율법의 안식일 개념의 합작) 및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 제도, 절기등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벗어나, 냉정 하고, 객관적인 마음을 갖고
전반적으로 검토를 해야 한다. 만약에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오늘의 신학자들도, 또는 실력있는 목사들도 많기 때문에
지금 필자가 어설프게 말하고 있는 그 이상의
온전 한 진리(복음적인)로의 규명이 이뤄질 것이다.
복음으로의 진리규명이 이뤄지는 것은
곧 교회개혁의 근본이 된다는 점에서 시급 하고 매우 중요한 일 이라 할 수 있다.
성문 밖 편지의 글들이 전통적 사고에서 벗어난 엉뚱한 이론이라고,
외면 하고 돌을 던지려는 이들이 많다. 오히려 이런 것이 동기가 되어
오늘의 교회문제들을 재 검토 해서 교회개혁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오늘의 교회개혁은 이방 종교(율법)문화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일부터 시작 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 첫째가 교회당이란 구조에서 부터 벗어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말 하니 황당 하다고 생각 할 것이다.
하지만 교회 개혁이란 5백년, 아니 어쩌면 천 칠백년 전통을 뒤 엎고,
다시 시작 한다는 뜻인데 가히 혁명적 사고(思考)나 황당한 행동 없이
어떻게 교회 개혁을 이뤄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교회 개혁이란 지금의 현상을 유지 하면서 변화를 가져오자고 한건가?
그것을 개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뒤에 가면서 더 설명을 할 것이다. (앞으로 계속 연재됩니다)
글쓴이 :성문밖 편지 목사님
첫댓글 너무 글쓴이의 주관적인 주장이나 신앙이나 신학에 치우친 편향적인 글보다는 많은 기독인들이 공감 할수 있는 글을 오려 주었으면 합니다. 님의 글이나 옮겨온 글들이 교회 개혁을 빙자한 무교회주의 자들이나 혹은 가정교회 주의자들과 이단들이 주장하는 글로 오해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 저는 가정교회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가장교회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냥 지금 시대의 대안은 가정교회라는 데에 조금의 주저함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할때는 몇몇의 사람들 외에는 거의 대부분의 기독인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아는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내용이네요 소위 목사란 직업은 있을수 없답니다 주의 종은 삯을 받는 일꾼이 아니기 때문이죠 목사라는 작자들 보시오 다들 삯을 받고 있지않소이까?
사실 위의 글도 목사님이 쓰신 글입니다. 목사가 되더라고 진실을 말하는 목사가 되어야 겠죠.
목사든 주의 종이든 명칭이야 어찌되도 상관은 없지만 진정 하느님의 백성을 위하기로 한몸이라면 결혼해서 자녀들 두는 것은 누가 봐도 옳지 않죠 자기 자식 공부시키고 유학도 보내는 사악한 무리의 목사들이 얼마나 많소이까
무형교회 유형교회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구약시대 성막, 성전을 주셨다면 신약시대는 무엇보다 교회(유형교회)를 주셨는데, 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셨는데... 위에 글은 글쓴이의 의도와 다르게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오늘날 유형교회는 본질을 잃고 많이 타락한 것이고, 반대로 무형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뉘앙스를 심어줄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무형교회, 유형교회 둘 다 중요합니다.
무형교회는 성령님의 전인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개인의 성전의 순수한 믿음을 지키는 것도 성경적으로나 시대적으로 중요하고, 또 이와마찬가지로 조직이 있고, 행정이 있고, 사람이 모여서 떡을 떼며 교제하고 한 가족 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리고 유형교회 테두리 안에서 영혼들이 커버링 받는 것이 성경적 관점으로, 시대적 관점으로도 중요하리라 생각 됩니다.
결론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극단으로 멀리간 '교회론'은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혼란과 기존교회관을 향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의도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바른 신앙과 바른 균형이 중요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