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땅 전남, 희망을 바라보다
- 전남 해남.영암일원 시티투어 -
- 전남 시티투어 버스 -
전 날의 피로함도 잊은 채 터미널에 도착하니
광주 광천터미널은 휴일을 맞아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여행객들 편의를 위해 잘 조성된 터미널은 깨끗하였으며
각종 안내 표지판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터미널 내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해결 후
오늘 여정인 해남권 시티투어 버스를 찾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휴일이라 그런지 각 지역으로 출발하는 투어버스가
말끔히 단장한 채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남권 시티투어 버스는 순천,목포지역에서 출발하는 2개 노선외
나머지 10개노선은 이 곳 광주 광천 터미널에서 출발한다는 안내 팜플렛을 보니
여가를 즐기는 여행객들의 편의 증진을 위해
관광공사와 각 지자체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녹색의 땅 전남' 여행코스 안내 표지판아래
연녹색의 나뭇잎과 함께 표시한 관광 로고는 새롭게 도약하려는
전남의 의지를 엿보는 듯 하여 정감있게 다가왔고
언제부터인지 나 역시도 전라도 땅의 매력에 빠져,
수 없이 여행을 다니지만 매 번 찾아다녀도 식상하지않고
늘 새롭게 다가옴에 전라도 땅이 친숙하게 느껴지곤 한다.
- 대흥사 십리 숲 길 -
다른 여행객없이 우리 일행만 태운 단촐함에 약간은 의아해 하기도 전
정확히 9시에 출발한 버스는 영산강 줄기를 따라
배의 고장 나주를 거쳐 해남 두륜산 대흥사로 향하고 있었다.
넓직한 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 풍경이 예전에 비해 요즘은 많이 변했음에도
여행을 자주 다니는 나로서는 전라도 땅에 대한 이미지는
예전 옛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많아 무척 정감있게 다가왔다.
앞 좌석에 앉아 눈 앞에 펼쳐지는 차 창밖 풍경을 마음에 다 담기전.
어느덧 버스는 대륜산 대흥사 입구에 다다르고 있었다.
봉우리 8개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는 두륜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대흥사는
규모는 어느 절보다 큼에도 사찰을 감싼 산세처럼
포근함과 따스함이 느껴지는 곳이다라고 알고 있음에도
너무나 먼 곳에 자리하고 있기에 와 보고 싶음에도 오지 못한 곳이었기에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내 마음은 쿵쾅거리며 요동을 치고 있었다.
매표소를 지난 버스는 두 개의 일주문중 단청이 되지않은
다소 투박한 느낌을 주는 첫 번째 일주문을 거치니 대흥사가 아닌
'두륜산 대둔사'란 편액이 걸려있다.
약간은 의아해 한 채 스치 듯 그냥 지나치니 청하한 숲 길이 눈 앞에 펼쳐진다.
참으로 장관이다.
한 여름으로 치닫는 녹음이 우거진 숲 길은
마치 터널처럼 앞쪽으로만 길이 트여 있어 약간의 빛이 들어올뿐
울창한 숲 터널을 이룬 하늘과 빼곡한 나무들이 서있는 숲 속은
어둠에 묻혀있다.
장맛철 촉촉한 습기가 배어있는 나뭇 잎파리하며
그리고 넉넉히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편안하게 우리 일행을 맞이한다.
-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과 숲 속길 -
잠시 숲 길을 비켜 샛 길로 들어서니
부도인듯한 커다란 석탑이 연보랏빛 수국에 둘러쌓인 채 자리잡고
그 위를 조금 걸어 들어가니 백화암이란 작은 부속암자가 나온다.
비구니 스님이 수행을 하는 공간답게 잔디가 곱게 깔려있고
키 낮은 꽃들이 수줍은 듯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정적을 깨는 사람들 웅성거림에 이끌려 다시 숲길로 나오니
휴일을 맞아 두륜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룬 채
숲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 새벽 이슬을 맞으며
고요한 산사를 찾아 옴 좋으련만 아무렴 어떠랴.....
처음 찾은만큼 숲이 있어 좋고 편안함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자연 공간이 있음을
감사할뿐 다음 기회에 한적한 시간을 마련하여 여유롭게 사색하며
걷고싶단 생각을 갖어본다.
빼곡한 숲 속을 바라보며 구불구불한 숲 속 길을 유유자적하게 걷는 중,
저만치 앞서 한 노인께서 힘에 붙인 듯 걷다,쉬었다를 반복하면서
힘겹게 홀로 걷고있다.
말 동무라도 할 양 말을 붙이니 이른 아침부터 전주에서 공양차 오셨다 한다.
천천히 행보를 맞추어 걸으니 피안교가 나오고
그 아래 계곡에 하얀 포말을 토해내며 흐르는 물소리가
숲 터널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함께 내 귀를 즐겁게 해주고
하얗게 부서지며 흐르는 물살을 계속해서 바라보자니
찌든 속세의 근심을 씻어주는 듯 하다.
- 호국의병 구국의 혼이 잠든 대흥사 부도전 -
13분의 대종사를 배출한 절임을 알리는 돌기둥이 서있는
산 모퉁이를 굽이도니 첫 번째 일주문과는 달리 건축형태도 다르고
곱게 단청을 한 두 번째 일주문이 나오고
그 사이 수 십 기의 부도가 운집한 부도군이 나온다.
참으로 경악에 가까운 감탄이 이어지고 가슴속에 파문이 인다.
고요와 정적속에 자리한 부도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니 숙연한 마음에 침묵이 이어진다.
아!!
호국의병 대사인 서산대사를 비롯하여 많은 그의 문도들과
그 외 선각 고승들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고 하니
그 규모면에서 어찌 놀라지 않을까나.....
전각에 자물쇠가 걸려있고 낮은 돌담으로 이어져 있어
서산대사와 선각 고승들의 부도가 어느것인지는 일일히 확인할 기회는 없었으나
수 백년을 이어온 구국의 혼이 잠든 고요를 깨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조용히 발 걸음을 떼어 본당으로 향하니 해탈문이 나온다.
- 해탈문에서 합장 삼배하는 불자의 모습 -
부도군에서 잠시 주춤하는 사이 잰 걸음으로 앞선 노인께서
합장을 한 채 삼배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속세의 모든 업으로부터 벗어나 안락함과 평온함이 전제되는
불보살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이라고 생각하니
지금의 나는 과연 그러한 모든 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혼자 생각에
해탈문을 지나기가 망설여진다.
일반적으로 해탈문은 눈을 부릅 뜬 사천왕상이 지키고 서있으나
이 곳 대흥사의 해탈문은 문수보살이 인자한 모습으로 나를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 점심 공양을 알리는지 범종소리가 두륜산 계곡에 울려 퍼지고
눈을 돌리니 대흥사 가람이 한 눈에 들어온다.
주차장을 낀 채 돌아서니 초의선사가 조성하였다는 무염지엔
이제 마악 피기 시작한 연꽃들과 한창인 노란 어리연들이 얼굴울 내밀고
한쪽 곁에는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 촬영을 하면서 휴식들을 취하고 있다.
길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있어 조금은 산만하다는 느낌도 들었으나
바삐 오른 산길에 숨을 고르며 천천히 무염지를 바라보자니 바라보면 바라 볼 수록
오묘한 맛이 남을 알수있었고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절묘한 굴곡에 눈이 시원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염지....
어제 영광에서 숲쟁이란 이름도 참 예뻤는데
이 곳 무염지란 이름도 그러하다.
참선문구인 처염상정에서 나온 것으로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한 곳'
이라는 뜻을 되새기며 순간 좌우로 갈라지는 길을 두고
어느 가람부터 돌아보나 순간 망설임끝에 커다란 느티나무를 끼고
북쪽 가람부터 천천히 둘러볼 양 정면의 천불전을 먼저 들리니
둥글게 휘어져 건너지른 가허루 문턱이 멋들어지게 눈에 들어오고
고개를 드니 당시 전주에서 활약하던
호남의 명필 창암 이삼만이 쓴 커다란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
- 대흥사 천불전 -
용두에서 흐르는 약수 한 모금 들이키고 돌 계단을 오르니
오랜 세월만큼 퇴색되어 바랜 문살이 마침 불어온 바람에 바르르 떨고
푸른 꽃잎에 꽃술을 노란색으로 색칠한 꽃살무늬 문살이
소박하면서도 탐스럽기만하다.
천불전을 향해 합장 삼배하는 불자의 마음을 따라 함께 불심에 기대니
나의 마음도 함께 편안해 짐이 전해지고
수 많은 불상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들이
언뜻 비슷비슷해 보여 모양과 표정이 꼭 같은 것을 찾을려니
눈이 아른거려 포기한 채,
그 정교하고 신비스러움에 부처님 일천분을 모신 곳이라 하여 천불전이라 함에
이 세상에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만 아니라
계속 출현하시는 부처님이 천 분이란 것이라 알고
혼미스러운 지금의 세상에 나타 날 부처님께서는 어떤 분인지 사뭇 궁금하기만하였다.
잠시 후원쪽으로 돌아가니 고운 꽃 담장이 곱게 다가서고
담장너머 커다란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 와 다가서니
두 그루의 느티나무 뿌리가 얽키고 설키어 마치 두 나무가 사랑을 나누고 있는 듯 하여
언제부터인지 사랑나무라 불리운단 말을 듣고 혼자 설 웃음을 지으며
커다란 사랑나무를 이고 내려서니
맑은 시내가 흐르는 금당천이 흐르고 함께 한 길동무들이
그 맑은 물에 마음을 비추고 서 있는 모습이 투명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 대흥사 대웅보전 -
천일기도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있는 침계루를 고개숙여 들어서니
대가람 대흥사 대웅보전 현판이 크게 눈에 들어온다.
현판 글씨는 당시 인근 신지도에서 귀양살이 하던 원교 이광사의 글씨로
화강암의 골기가 느껴지는 획에 구불구불한 원교 특유의 필법이
잘 드리워져 있었고
남쪽 지방에 자리잡은 절집답게 정원수도 아열대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이
심어져 있어 운치를 더해주고
오르는 돌계단의 소맷돌엔 눈을 부릅 뜬 돌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대웅전 안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니
석가여래좌상을 비롯한 좌로 약사여래좌상,우로 미타여래좌상 등
목조 삼계불께서 온유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옆 응진전 앞에는 통일 신라때 만들어진
그리 크지않은 보물 320호인 삼층석탑이 홀로 서 있었다.
탑 상부 기단에 두륜산 자락을 지나는 하얀 조각구름이 걸려있고
규모는 작았지만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이 세련되고 단아하여
통일 신라시대에 건립되었다고 추정하는데
대흥사에 남아있는 유물중 가장 오래된 유물로서 여행객들의 번잡함에도
아랑곳하지않고 꿋꿋한 모습으로 홀로 서 있어 한참동안이나 쳐다보았다.
언제인가 홀로 여행을 하던 중. 고속도 휴게소에서
여행을 왜 하느냐 묻는 여행객을 만났었다.
나의 여행관은 단순한 길 떠남이 아니기에 늘 혼자 여행함을
주저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로부터 밖으로 나가는것이 아니고
이 땅에 존재하는 무수한 삶을 찾아 헤매는 절실함으로
내 안에 들어가 사색을 하는 행위'일터이다란 안치운 선생의 그의저서에서의
말씀처럼 그러하기를 수 없이 원하였으나
서울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여 전라도 땅을 찾는 경우는 대부분 시간에 쫓겨
여행지를 스치 듯 눈으로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
늘 안타갑게만 느껴졌었다.
오늘 역시도 혼자만의 넉넉한 여행이 아닌 나름데로의 소명을 갖고 찾음에
대흥사 남원 일원을 다 둘러보지 못해
서산대사의 구국혼과 초의선사의 다도가 담긴 차 한잔.
산사의 고요함과 맑은 분위기를 다 담을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지만
그 많은것을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지 못함이
속세에 찌든 내 자신의 욕심이려니 생각하고
절집 한 켠 울타리에 두륜산 자락 파란하늘을 향해 한창 가지를 펴고있는
능소화의 배웅을 받는다.
이제 능소화는 두륜산 자락에서 묻어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진홍색 꽃빛의 윤기는 더욱 짙어 갈 것이고,
천불전 문살의 꽃은 세월에 더욱 낡아 갈 것이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다가 올 내일 새벽에도 능소화와 문살의 꽃은
스님의 도량석 목탁소리에 잠에서 깨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모습을 담아간 어제 한 길손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리라.....
- 땅끝마을에서 만난 젊은 여행객들 -
대흥사에서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
씨티 투어버스는 해남 땅끝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땅끝마을.
남쪽 끝.....
그러나 나는 끝이란 말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인가 찾았을 때도 땅끝 표지판을 보고 땅끝이란 말을 나는 이해를 못 했다.
땅끝이 아닌 땅의 시작이란 말을 쓰고 싶었다.
아직도 되찾지 못한 우리의 땅.
저 발해가 있지 않은가?
고구려의 장수 대조영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허허로운 저 만주벌판 끝자락이 진정 우리의 땅끝이라 믿고싶었다.
전라도 땅. 해남.
땅끝마을은 우리 땅의 끝이 아닌 시작의 땅.
희망의 땅으로 부르고 싶다.
- 다채로운 행사를 통한 땅끝마을 여행 -
늘 혼자만의 여행을 통해 사색하고
사람들 냄새를 맡곤 하였던 지난 어느 날.
문뜩 땅끝이란 상징적 의미에 이끌려 이 곳 땅끝마을을 혼자 찾은 기억이 있었다.
땅끝마을 까지 가면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고
말 그대로 땅끝이라는 무한한 상상을 갖고 왔으나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망망한 대해도 아니고
섬을 오가는 유람선과 빽빽한 양식장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보고
실망을 안고 되 돌아 선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별반 차이는 없었으나
여행객들의 증가로 민박집이나 음식점등 편의시설이 많이 확충되었고
주변 정리가 잘되어 많이 변모하였단 생각이 들었다.
변모하지 않은것이 있다면
그때나 현재나 무한한 도전정신에 이끌려 국토 순례를 하는 여행객들이 있다는 것.
오는 도중에도 자전거 투어를 하는 대학생 인듯 한 젊은 친구들과
나 홀로 도보 여행을 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목격하였는데
그런 진취적인 생각을 실천하는 젊은이들을 통해
밝은 희망을 엿보는 듯 하여 우리나라 미래는 참 밝다란 생각을 하였다.
늦은 점심을 하고 선착장쪽으로 나오니
마침 한 이동 통신회사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어
구경을 할 기회가 있었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가장 짧은 시간에 이 곳 땅끝마을에
도착하는 팀을 유럽 여행을 할 수있는 기회를 준다는 행사였다.
이러한 국토 순례의 시발점으로 혹은 종착지로서의
땅끝마을의 장점을 잘 살려 젊은이들에게 어필 할 수 있는 관광상품이
많이 나왔음 하는 바램을 갖고
젊음!!
참으로 가치있는 것으로 느껴지고
그들 무한 도전정신과 용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고 전망대로 향하였다.
- 땅끝마을 전망대와 땅끝 상징표지석 -
이곳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도 17분 21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만국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全圖) 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
오래 전 대륙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우리민족이 이곳에서 발을 멈추고
한겨레를 이루니, 역사이래 이곳은 동아시아 3국 문화의 이동로이자
해양문화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 전남 해남군 문화관광 땅끝유래 中 -
지난 2001년 12월 31일에 건립된 땅끝 전망대는
송지면 송호리 사자봉에 우뚝 솟아 있었고
지하 1층,지상 9층으로 총 높이 39.5m 인 건물 내부에는
전망대와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전망대를 오르기 위해서는 여행객을 위해 잘 정비된 숲 길을 따라
약 30분 정도 걸어 올라 갈 수도 있으나 장애인, 노약자 등이
땅끝 전망대까지 갈 수 없었던 많은 불편함을 해소 하고자
땅끝을 찾는 관광객에게 국토순례 시발지인 땅끝의 아름다움을 더욱 생동감 있게
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져
2005년 12월19일 부터 모노 레일카 운행을 시작하였다 한다.
- 전망대에서 바라 본 땅끝마을 -
날씨가 흐려 먼 발치까지 볼 수는 없었으나
아기자기한 섬의 전경들을 보고 카페리호를 타고
보길도를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다음 여정이 우리의 발목을 잡아
할수없이 잠간 동안의 땅끝마을에서의 시간을 추억하고 뒤 돌아선다.
- 또 다른 땅끝마을 명소인 맴섬 일출모습 -
땅끝탑비
손광은
이 곳은 우리나라 맨 끝의 땅
갈두리 사자봉 땅 끝에 서서
길손이여
땅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먼 선 자락 아스란 백령도, 흑일도, 당인도
장구도, 보길도, 노화도, 한라산까지
수묵처럼 스며가는 정
한 가슴 벅찬 마음 먼 발치로
백두에서 땅끝까지 손을 흔들게
수천년 지켜온 땅 끝에 서서
수만년 지켜갈 땅 끝에 서서
꽃밭에 바람일 듯 손을 흔들게
마음에 묻힌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게
1987. 7. 18
일정상 늦은 점심을 해결할려니 조금은 막막하였다.
씨티투어 버스 기사 아저씨께 땅끝 마을에서 비교적 음식값이 저렴하면서
맛있는 맛집 추천을 부탁 드렸다.
낯선 도시에서도 길을 모르거나 맛있는 맛 집을 찾을때는
택시를 타고 기사 아저씨께 여쭤 봄 열이면 열 틀림없는 만큼
운전을 주업으로 밖에서 생활하는 그들은 입 맛이 좀 까탈스러운 편이기에
왠만한 맛집들을 다 꾀차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찾은곳이 음식점이 즐비한 곳에 위치한 "땅끝 해물탕 횟집 (☏ 061-533-6389)
마음씨 좋고 수더분한 주인 아저씨와는 달리
주방을 맡고있는 아주머니의 정갈한 음식 솜씨는 안 먹어 본 사람은
모를 정도로 맛있게 하신다.
주 메뉴는 해물탕으로 낙지,조개류 와 각종 해물울 넣고
은은한 불에 오래 끊여 먹음 국물이 시원하다.
메뉴는 해물탕이 大 4만원, 中 3.5만, 小 3만원이며
매운탕은 大 3.5만, 中 3만, 小2.5 만원이고
별미로는 석화 비빔밥이 8천원,전복죽이 만원으로 비교적 싼 편이었다.
- 왕인박사 유물 전시관인 영월관 외부모습-
땅끝 마을에서 얼마만큼 갔을까?
많이 걷다보니 조금은 피곤들 하였는지 길동무들이 얕은 잠에 취해있다.
잠시 눈 좀 붙일까 하였는데
그 사이 넓직한 주차장에 우리 일행을 떨구어 놓으니
바로 앞에 왕인박사 유물 전시관이 눈에 들어온다.
왕인박사 유적지는 전라남도 지방 기념물 제 20호 지정되어 있었으며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월출산 주지봉아래
낮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 3만 5천 평에 조성되어 있었다.
- 왕인박사 동상 -
왕인박사께서는 일찌기 서기 405년
일본 응신천왕의 초빙으로 논어, 천자문을 일본으로 갖고 들어가시어 전해 주었으며,
기술 공예와 일본 가요의 창시등 백제 문화를 전수하고
일본을 계몽하여 후에 일본 문화의 성인으로 추앙받았던 인물로
특히, 일본 태자 토도치랑 왕자의 스승이 되고,
일본황실의 정치고문으로서 논어, 천자문 등을 전수하여
일본 아스카 문화의 원조가 되었다고 한다.
- 왕인박사 유물 전시관 내부 모습-
한때 찬란했던 백제의 영광스러웠던 역사도
백제가 패망한 이래 여직 묻히고 방치되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동안 왕인박사에 관한 사료 빈곤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당시 미개했던 일본에게 찬란한 등불이었으며,
영광스러운 문화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
뒤 늦게 우리의 위대한 문화 역사를 계승. 왕인 박사 유적지를 조성하고
그 유물전시관을 운영한다는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유물 전시관인 영월관은 이 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왕인 박사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안내 데스크와 문화유산 해설사가 상주 운영하고 있었으며
전시관 1층에는 1,2 전시실이 있고
제 1전시관은 디지털 강국답게 Digital 왕인박사 Museum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어린 학생들이나 노인들에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모하고 있었으며,
제 2 전시실은 그 당시 백제시대의 유물들과 밀랍인형을 이용한
복식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2층은 왕인박사 상설 전시관과 영상관이 자리잡고 있어
비단, 유물 전시관으로 국한되어 운영함이아니라 가족들과 부담없이 찾아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과 놀이 시설도 갖추고 있어
공원으로서의 역활도 톡톡히 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 왕인박사 유적지에서 -
백제가 낳은 대학자로서 지덕을 겸비한 대현인으로서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에
잠시 왕인박사를 기리는 시간을 그의 동상앞에서 갖고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목 좌우편에 그의 일대기를 담은 석부조 조각을
천천히 걸으며 감상하고 잘 정비된 너른 유적지를 둘러보니
탁 트인 전경에 마음이 아늑하게 다가선다.
- 왕인박사 위패와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사당 왕인묘모습-
외삼문인 백제문, 내삼문인 학이문을 거쳐 사당으로 가는 길목은
꽃나무와 잔디로 잘 조성되어 있었고,
왕인박사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왕인묘에 도착하니
천 오백년을 뛰어넘은 후손으로서 숙연한 마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국내답사 최강 동호회 '모놀과 정수' 제 3조 시티투어팀 다녀가다"라고
방명록을 적은 후, 숙연한 마음으로 향을 피우고 영정을 향해
잠시 묵념을 하고 돌아서니 월출산 주지봉아래에서
영암만을 바라보는 도포 차림에 왕인박사 석상의 후덕이 전하여져 오는 듯 하여
마음이 가벼워 진다.
- 왕인박사 생가 터 -
나서는 길에 왕인박사의 탄생과 수학,도일 그리고 학문전수도등
기록화가 보전되어 있는 전시관을 잠시 둘러보고
왕인박사가 탄생하셨던 생가터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몇 백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이야 집의 흔적을 찾아 볼 길은 없었으나
생가의 기단부분과 초석 그리고 담장등 그 흔적이 남아있어
왕인박사께서 이 곳에서 자라면서 꾸준히 학문을 연마함에
어린 왕인박사가 해 맑은 웃음을 지으며 생가 터 너른 잔디밭에서 뛰어 노는 모습이
실루엣되어 스치어 지나간다.
또한 이 집터는 훗날 최씨와 조씨가 살았던 듯
넓다란 바위에는 '고최씨원 금조가장' 이라 새겨진 명문도 살펴 볼 수 있었다.
- 왕인박사가 마셨던 우물인 성천-
아직 피지않은 백일홍을 바라보며 숲이 있는 길을따라 조금 걸으니
왕인박사께서 마셨다는 성천이 나온다.
음력 삼월 삼짓날 이 우물의 물울 마시고 목욕하면 성인을 낳는다는 구전이 전해
내려오고 지금까지도 이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후덥지근한 더위도 식힐 겸 목을 축이니 그새 더위는 가시고
맑은 계곡의 물을 바라보며 어린 피라미와 함께 물놀이를 즐기는 길동무들의 외침에
시내를 이루고 집터를 돌아 흐르는 성천을 따라
수신정이라는 정자에서 길동무들과 망중한을 즐기는 것도 잠시.
그새 1박2일의 짧은 여정을 뒤로하고
모든 일정을 접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 마음이 착잡해 짐을 느낀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출발지인 광주 광천터미널로 가는 버스 안.
결코 짧지 않았던 이틀 동안의 여정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숨어있는 곳곳의 많은 우리의 문화재를 둘러보며
새삼 '역사는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 란 생각이 들었다.
역사란 살아 있는 과거이며, 오늘날 우리가 숨 쉬고 있는 토양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기에 지난 날의 발자취에서 조상들이 겪었던 삶의 깊이와
간직했던 체험들과 그들 나름데로의 고뇌와 또는 영광스러웠던 흔적들을
찾아내어 그 속에 참된 삶의 자양분을 흡수하는 것이 산 역사이기에
우리가 그러한 역사의 생명이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하여
문화답사를 다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우리문화의 고귀한 숨결이 마음에 와 닿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빠지니
이러한 우리나라 국토를 잘 보전하고 우리 문화를 계승 발전하여
후세에 잘 남겨져야 한다는 책임감도 든다.
저 멀리 월출산 자락 기암괴석들이 나를 묵묵히 배웅하는 가운데
짧은 기간동안 내 발자취가 남겨진 그 곳이 새삼 그리워짐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짧은 일정에 많은곳을 둘러봄에 약간은 무리가 따랐으나
그러한 자리를 마련해 준 한국관광공사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하며
부족한 후기를 마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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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드님 큰 공사 진행하면서 바쁘셨을텐데...너무 수고 많으셨고 고맙습니다^^
이번에 쩐 좀 벌으실래나?...좋은 소식 있다고 들었습니다~~우리 조 깍두기 해 주셨는데 어쩌다 보니 전화도 못 하고 그리 ?네요..답사후기는 뭐라 말 할수도 없이 좋구요...명수기님은 우드님이 계셔서 든든 했겠다...^^
ㅎㅎ 맞아요! 우드님께서 후기에다 사진 작업까지 해주셔서 너무 고마울 따름~~^^
바쁘신데 후기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멋진 후기에 잔잔한 음악까지..... 잘 보고, 읽고 갑니다. 우드님!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
우드님 너무 멋져요...^^*
우드님 멎져요..이라고 글씨 많이써가면서 후기쓸라면 힘드시겼네요..좋은 소식 있다고 하든데 기쁜일만 가득 하길 바람니다..
아~~ 도대체 몇날 몇일을 날밤샘 하신거래요? 푸하하하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삼! 우드님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글인걸요! ^^
즐감하고 갑니다.
어쩌다 제가 특별회원이 되어 우드님의 시티투어 후기 까지 볼 수 있게 됐는지 감계 무량 합니다. 인생은 한번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모놀에 와서 다시 한번 실감 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즐거운 감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