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 의성김씨첨사공파 시조 김용비 묘(설화가 많은 곳)
1. 의성김씨
* 시조는 김석(金錫)으로 신라 경순왕과 고려 태조의 장녀 낙랑공주 사이의 아들이고 고려에서 의성군으로 책봉되었다. 8세손 김공우가 아들 셋을 낳아 크게 번성하였으니 장남 김용비는 태자첨사(첨사공파 시조), 차남 김용필은 수사공(수사공파 시조), 3남 용주는 평장사(충의공파 시조)를 지냈다. 김용비의 생몰시기는 불명이나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하여 1년간(1361년) 안동으로 피난하였을 때 주변의 도적들을 소탕하여 안정을 확보한 공헌이 있었다. 인구는 29만명, 문과급제 96명이고 첨사공파가 김성일을 비롯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 그런데 김석 이하 김공우까지의 계대(繼代 또는 系代)가 불명한 탓으로 김공우의 장남 김용비를 의성김씨의 시조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오토재의 안내판에는 “의성 사곡면 토현동 五土山은 의성김씨 聖祖인 태사첨사 義城君 龍庇公의 塋域이다”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김용비는 김공우의 3남 중 장남인 것은 사실이므로 의성김씨 첨사공파의 파시조로 체계를 잡는 것이 정확하겠다.
* 의성김씨 집성촌인 안동 내앞마을(천전리), 안동김씨 집성촌인 의성 사촌마을(두 마을은 14키로 거리) 일원에서 일제 때 항일 독립투사를 제일 많이 배출하였다.
2. 김용비 묘에 관한 설화
* 공의 묘소는 의성 토현리 산122-1에 있는데 200여년간 실종되었다가 김용비의 10대손 김전(김성일의 부)이 1570년경 찾았다.
* 이곳 묘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설화가 있다.
① 의성에 3대 명당이 있으니 첫째는 향촌, 둘째는 목촌, 셋재는 오토이다. 향촌은 선(先)안동김씨 의성 사촌마을 입향조인 함길도 목민관 김자첨 묘이고 목촌은 만취당 김사원 묘로 추정되며 오토에는 김용비 묘가 있다. 풍수설화는 신빙성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바 이곳의 명당순위도 오토가 수(首)혈이다.
② 김용비의 묘를 쓸 때 오색 흙이 출토되었으므로 오토(五土)라고 한다.
③ 성지대사가 연을 날려서 떨어지는 곳에 묘터를 잡게하였다. 그러나 성지는 광해군때 명사이므로 240년의 시차가 있는 거짓 말이다.
④ 오토산의 다섯 지맥에 각기 명당이 있으니 정상에 연소, 동쪽에 괘등, 서쪽에 곡척, 남쪽에 벌허리 형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괘등외에는 소지소혈(小地小穴)일 것이다.
3. 묘에 관한 풍수
* 주왕산_ 보현산 _비봉산_ 오토산의 행룡이다.
* 괘등형이다. 옥녀직금형이다라는 설이 있는데 아예 두 개의 물형을 조합하여, 안산(案山) 쪽에 배틀바위를 놓고 옥녀가 배를 짜고 있으며 오토산 김용비 묘가 옥등으로 걸려 있는 형국이다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김씨들은 옥등설을 믿고 산 입구에 장명등 두 개를 밝혀둔다고 한다.
* 답사해 보니 사신사가 굵고 바람이 다소 불더라(괘등이라면 바람이 약점이다). 아마도 약골(弱骨)은 견디기 힘들겠다.(김용비는 장군이다) 조안산이 삐닥한 것이 최대 약점이다. 필자의 눈에는 옥녀가 뚜렷하지 아니하므로 장군대좌형으로 보인다. 혈은 중등중급이나 발복은 시조 묘에 버금가는 상등초급이다.(2024.5)
4. 관련 사진
* 김용비 묘--- 위 묘2기가 명당이다.
* 조안산---
* 김용비 중국---
* 배틀바위---
첫댓글 감사합니다.
소생의 견해입니다.
1. 형상으로는 괘등혈로 봅니다.
2. 온 세상을 밝히는 인물이 출 할 貴 대혈자리인데 점혈과 입향이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3. 2번 째 사진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사격이 기름통인데 향을 이쪽으로 맞추어 놓아야 정안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辛좌 乙향에 甲파,
'천지정위격'으로 辛은 燈의 모습, 乙은 심지의 모습이라... 모든 이치가 딱 들어 맞습니다.
귀한 자리 잘 봅니다. 못가본 자리여서 촌장님 덕분에 꼭 가보렵니다.
위성사진으론 토현리 산 123 일원도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