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다 한 표를 던질 지 고민하던 20대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최성재씨의 글을 읽게 되었고, 마음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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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목표 지향적인 국민이다. 목표가 뚜렷하면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다. 개인이든 단체든 가정이든 회사든 사회든 국가든 한국인은 그 목표가 뚜렷하면 가시밭길도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헤쳐가지만, 한 가닥 숨만 붙어 있으면 그 어떤 굴욕도 고통도 참고 헤쳐 가지만, 그 목표가 흐릿하면 비단길도 흙 묻은 구둣발로 짓밟고 옆으로 새거나 뒤로 돌아가거나 아무나 붙잡고 시비를 건다.
잘 살아 보세! 이 한 마디에, 이 뚜렷한 목표에,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이 목표에, 한국인은 마른침을 삼키며 한밤중의 고양이 눈보다 더 파랗게 두 눈을 아니, 세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이마 아래 두 눈과 마음속의 한 눈을 섬광처럼 빛내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전혀 딴 민족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일해도 탐관오리에게 뜯기고 죽으라고 일해도 왜놈에게 빼앗기고 손톱발톱이 다 빠지도록 일해도 손바닥만한 땅으로는 올망졸망 대가족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잘 살고 못 살고는 오로지 조상의 묘 자리에 달렸다며 노름과 주정과 계집 패기로 영일이 없던 민초들이 도시로 나가 공장에 다니거나 장사를 하면, 또는 썰물처럼 사람이 빠져나간 농촌에서 제법 커진 논밭에서 밤을 낮 삼아 일을 하면, 살림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는 누구나 노력한 것만큼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자, 마침내 500년 잠자던 야성이 형형한 눈을 번쩍 뜨면서, "잘 살아 보세!" 이 찬란한 별을 향해,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너도나도 수없이 반짝이는 하늘의 별을 따기 위해,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아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별을 따기 위해, 하늘의 다이아몬드를 따기 위해, 꿈만 같은 부자가 되기 위해, 세상에서 제일 게으르고 세상에서 제일 공짜를 많이 바라고 세상에서 제일 남 탓을 잘하던 한국인이 갑자기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하고 세상에서 제일 노력을 중시하고 세상에서 제일 자신을 굳게 믿는 국민이 되었다. '나도 할 수 있다!' 남들이 100년 200년에 할 일을 10년 20년에 해치워 버렸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게임! 이 한 마디에, 이 뚜렷한 목표에, 열심히 운동하면 금메달을 주렁주렁 딸 수 있고, 신나게 응원하면 우리 선수들이 신들린 듯 메달을 주렁주렁 따고 덤으로 입장 수입을 팍팍 올려 주어서 유례없는 흑자 아시안 게임 흑자 올림픽 게임을 만들 수 있고, 질서를 잘 지키면 외국인한테 칭찬들을 수 있고, 거리를 잘 단장하면 외국인한테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고, 친절하면 외국인한테 문화민족이라는 부러움 섞인 눈길을 받을 수 있다는 이 뚜렷한 목표에, 한국인들은 너나 없이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준비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나라가 확 때깔을 벗고 국민성이 싹 바뀌었다.
거리에는 휴지 한 장 날리지 않고 차량 10부제를 안 지키는 사람이 없고 단숨에 완공한! 놀라지 말라, 부실 공사 하나 없는 최첨단 경기장에는 광란의 응원을 펼치고도 먼지 하나 날리지 않았고 새치기하는 사람 한 명 없었다. 질서! 질서! 반칙을 하는 자가 눈에 띄면 너나 없이 삿대질을 하고 인상을 쓰고 욕을 퍼붓는 바람에 그 옆의 '특별 차량'을 타고 가던 사람도 간이 콩알만해졌다. 그 많던 파업도 뚝 그쳤고 그 많던 데모도 거짓말같이 싹 사라졌다. 간첩도 몰래 응원하느라 얼씬 못했고 깡패도 텔레비전 보느라 넋을 잃었다. 일을 못해(?) 라면만 먹고 살아도 마냥 행복했다.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목포파도 서방파도 태촌파도 절로 콧날이 시큰해졌다.
세계 4위! 올림픽 금메달 세계 4위! 해방 31년, 1976년에야 양정모가 몽골의 오이도프를 물리치고 레슬링 자유형에서 겨우 금메달 한 개 땄는데! 1988년에 금메달 12개로 세계 4위라!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세계 4위라! 중국은 5개로 11위, 일본은 4개로 14위! 대한민국은 12개로 4위!
2002 월드컵! 정부는 뒷짐지고 있었지만, 천방지축 좌충우돌 한심스럽기만 하던 10대 20대가 붉은 셔츠를 걸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금방 온 나라가 환희의 물결로 넘실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태극기! 4강!
그러나! "잘 살아 보세!"란 목표가 사라지자 일을 내팽개치고 너도나도 싸우기 시작했다. 86 아시안 게임, 88 올림픽 게임이 끝나자 아무도 질서를 지키지 않았다. 길거리에는 휴지가 난무하고 지하철역에는 담배꽁초가 뒹굴고 공원에는 술주정뱅이가 널브러졌다. 출근길에도 도로 한가운데 차를 세워 두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멱살을 잡고 경적 소리보다 더 크게 욕설을 퍼부었다. 붉은 띠와 돌멩이와 화염병과 최루탄이 거리와 캠퍼스와 공장을 가득 메웠다. 월드컵이 끝나자 편을 짝 갈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싸우기 시작했다. 딴나라당, 천민당! 수구골통, 빨갱이! 조중동, 한걸레! 노사모, 창사랑!
한국인을 알려면 그 목표를 알아야 한다. 겉으로는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그 마음속의 목표를 모르면 그를 전혀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다. 부모 자식간에도 모른다. 골수 주사파 대학생도 부모는 낌새도 못 챈다. 부모가 경찰에 불려가서 푸른 옷을 입고 구멍이 숭숭 뚫린 플라스틱 창 저쪽에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충혈된 눈으로 세상을 향해 파란 레이저 빛을 쏘아대는 아들을 보기 전까지는 절대 제 속으로 난 아들이지만 그 속을 짐작도 못한다. 기저귀 찰 때부터 사각모를 쓸 때까지 속속들이 모르는 게 없는 부모도 그 속은 모른다. 어제만 해도 집에 들어오면 초등학생보다 순했기 때문이다. 똥강아지처럼 어리광을 피웠기 때문이다. 엄마 엉덩이를 툭 치고 아빠와 목욕 가서 정성껏 아빠 등을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아빠 등을 밀어 주며 자기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아빠 등에 한 방울 뚝 떨어뜨렸던 것이다. '나의 우상이 어느새 이렇게 늙어 버렸네!'
300만 명이나 굶어 죽었다는데, 60년 가난으로 전국민이 난쟁이 족속이 되어 같은 민족인 남쪽 사람보다 평균 10cm가 작다는데, 어떻게 김정일은 저렇게 당당할까. 내일이라도 쫓겨나지 않을까. 제2의 차우세스쿠가 되지 않을까. 내일이라도 북한 공산당이 무너지지 않을까.
천만에! 1000만 명이 굶어 죽어도 600만 명이 수용소에서 맞아 죽어도 북한은 끄떡하지 않는다. 왜? 목표가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 목표를 이룰 수단이 완벽히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그 목표는 바로 남조선 해방! 적화통일! 단 한 번도, 단 하루도, 농담으로도, 꿈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거룩한 목표이다. 그 수단은 바로 군사력! 700만 명을 순식간에 동원할 수 있다. 전국토는 요새화되어 있고 전군은 간부화되어 있다. 1000만 명이 굶어 죽어도 600만 명이 학살되어도 이 '거룩한'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는 총알은 물론 그 껍데기 하나 버릴 수 없다. 그 수단은 선전선동! 민족공조, 일제청산, 군사독재, 미제 앞잡이, 수구보수세력! 지옥 끝까지라도 물고 늘어진다. 진돗개처럼 한 번 물었다, 하면 몸과 입이 둘로 나눠져도 놓지 않는다. 물에 빠져 죽어도 그냥 죽지 않고 하다 못해 원수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끌어 그 옷을 찢거나 홀랑 벗겨 창피를 당하게 한다.
열린우리당! 그 목표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북한과 연방제 통일하는 것이다. 이것은 1980년 광주사태 이후, 386 운동권의 지상 목표가 되었다. 그 목표를 위해서 먼저 민주화를 외치고 나중에 통일을 외쳤다. 김영삼과 김대중을 나누어 지지하고 노무현과 권영길을 나누어 지지했다. 마지막 지도자는 '천출명장' 김정일!
SOFA 개정, 노근리 성토, 매향리 절규! 4·3 진상규명, 여수순천 명예회복, 거창 양민학살 들추기! 친일파 척결, 수구보수 말살! 두 여중생을 위한 촛불 시위, 탄핵 무효 촛불 시위! 방송 장악, 인터넷 선점! 이것들은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저 높은 푯대를 향하여 일본인보다 더 치밀하게 중국인보다 더 통크게 유태인보다 더 끈질기게 10년, 20년, 다시 1년 2년 3년 4년! 어떤 어려움이 닥쳐오고 어떤 유혹이 밀려와도 한 순간도 정신을 잃지 않고 주도권을 쥐고서 치고 빠진 유격전이다.
이제 386 운동권이 집게손가락으로 부리고 북녘 후원회가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얻으면 바로 3분의 2를 얻기 위해 전국을 다시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다. 3분의 2를 얻으면 바로 개헌으로 들어간다. 노무현 대통령을 헌재에서 탄핵하느냐 않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느 쪽이든 개헌에 유리하게 끌고 가기만 하면 된다.
개헌은 임기 4년에 중임 가능한 대통령제다. 현 헌법 중에서 연방제통일을 가로막는 '독소조항'을 제거한다. 6·15 공동선언을 헌법 전문에 반드시 집어넣는다. 새 대통령 후보는 연방제 통일에 초석을 놓은 김대중 전대통령이다.
이 헌법도 잠정적인 것이다. 마지막은 통일 헌법이다. 이미 2000년 이후 임시 헌법과 통일 헌법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거의 완성해 놓은 상태다. 머잖아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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