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아름다운 5060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중국어 회화방 朴正熙与邓小平
비온뒤 추천 0 조회 132 24.06.18 10:18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24.06.18 11:04

    첫댓글 80년대 초, 鄧小平이 특정한
    경제특구 4개도시중 深圳은 香港에 인접한 도시여서 홍콩자본, 珠海는 마카오 인접도시이어서 마카오 자본, 福建省 廈門은 台灣 자본, 汕頭는 동남아 화교의 자본유치를 목표로 하였습니다.

    처음은 화교자본 유치 그 다음은 한국 일본의 자본, 西歐자본유치가 마지막 목표이었습니다. 또한 鄧小平의 고향은 四川省인데 낙후된 서부 내륙지방입니다. 하지만 중국전제의 발전전략에 따라서 동남부 발전을 우선과제로 삼았습니다. 고향을 희생시켰습니다.

    저는 鄧小平의 말년에 상해에 있었습니다. 그는 고향을 거의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국가발전 대전략에 차질이 생길까봐 행한 처신으로 이해합니다. 鄧小平이 미국과의 수교도 주도했고, 개혁개방 정책으로 G2로 나가는 초석을 놓았습니다.

    후임자들에게 미국과의 충돌을 100년간은 피하라고 유훈도 남겼습니다. 계산해 보면, 2079년까지 피하라는 말이지요.
    저는 현대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孫文과 鄧小平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24.06.18 15:09

    공감합니다.
    중국은 개혁개방과정에서 이웃한 홍콩의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또한 말씀대로 해외화교자본이 많이 들여와 돈 걱정없이 산업화를 해나갈 수 있엇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울산, 포항등 해외로 물건을 실어나르기 좋은 해안지대를 먼저 개발하는
    전략을 채택했는데 중국도 같은 전략을 취한 것 같습니다.

  • 24.06.18 12:58

    참~~~~~
    잘 설명 하시었어요

    일목요연~~~

    한때.남미의 미국이라 일컷는
    칠례의 대통령
    아구스트 피노쳍 이란 지도자가
    제일 존경하고
    본받을만한 지도자를

    새마을운동 창시로
    국민게으름과 국가부흥의
    발판인 새마을운동의
    박정희 대통령 을 본받고싶다고
    했읍니다.

    그도
    부에나 프레지덴떼 지만
    국민들에게 회초리를
    많이들어 독재자로
    기록됩니다.

    칠례산 와인
    Santa catalina
    Santa rita 를
    즐겨 마셔 주세요.

    맛도좋고.
    분위기도 쥑입니다.

    Chile 는..
    참 좋은 나라입니다.

  • 작성자 24.06.18 15:20

    피노체트가 가장 존경한 사람이
    우리나라의 박통이었군요...
    칠레는 기후도 좋아 살기 괜찬은 곳 같습니다.
    88년에 칠레 산티아고에 잠깐 머문적이 있습니다.
    독일계 미녀와 저녁에 한잔한 기억이 납니다.
    감사합니다.동반님.

  • 24.06.18 16:08

    @비온뒤 와!!!!
    비온뒤님
    금발하고
    역사적(?) 인 사명을
    띨 기회가 생겼었군요.

    그담엔?

  • 작성자 24.06.18 16:42

    @동반(강원) 그당시 에이즈가 창궐한다고 해서
    아쉽지만 그냥 안아보는 것으로 끝냈습니다.

  • 24.06.18 14:18

    민간 주도의 경제 개혁의 우리나라
    국가 주도의 경제 개혁의 중국.

    국가 운영 체계가 다르니 그랬던 것인데..
    개개인의 다양한 능력을 이끌기에는 사회주의의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해서 전 중국의 경제적 급 부상의 한계가 곧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우리 생전에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지도 모르겠네요.

  • 작성자 24.06.18 15:45

    해외에서는 이미 중국경제의 상승기세가 꺽였다는 얘기들이 벌써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통산경기로 성장의 상당부분을 뒷받침했는데 이마저도 불황으로
    쉽지않다고 합니다. 2018년에 이미 팔리지않은 빈집이 6천만채를 넘었고 지난해에는
    1억채를 넘어셨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합니다. 땅을 팔아서 지방재정을 유지했는데 부동산경기불황으로
    땅도 팔지 못해 재정고갈로 일부 지방에서는 공무원에게 봉급을 주지 못하거나 공공버스운행을 중지하는
    사태도 일어나고 있답니다.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정부가 5%안팎의 성장을 발표하지만 실제는 마이너스성장
    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아무튼 중국경제상황이 미국과의 경제전쟁이후 어려워진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 24.06.18 14:53

    국가 경영이나 인물론은 일반적으로는 글 쓰기의 금기사항이죠?
    워낙 어려우니까...

  • 작성자 24.06.18 15:42

    국민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입니다. 독재국가가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는 금기가 되어서는
    않될 것 같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국가의 주요인물이나 그들의 행적이라면 더 더욱
    자유롭게 용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4.06.18 16:02

    @비온뒤 논리정연한
    말씀에 한표 보탭니다.

  • 24.06.18 14:58

    빼꼼....초등학교적...그 초록색 모자를 쓴
    아부지 모습이 생각나요.
    새마을 노래도..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우리 모두 일어나 새나라를 만드세...
    노래가 흘러나오면 빗자루들고 나갔었지요.
    서울서 시골로 전학을 가니
    동네별로 뭐가 있었는데...향토반?...
    불과 50년여 지났는데...기적이긴 했네요.

    박정희 대통령 만쉐이~

  • 24.06.18 14:57

    만만쉐이!~~~~

  • 작성자 24.06.18 15:44

    새마을 운동하면 새벽잠으 설친 생각이 납니다.
    그래도 그 운동 덕에 농촌에 농한기 놀음도 없어지고
    농로도 만들어지고.....

  • 24.06.19 04:33

    鄧小平의 改革開放政策은 해외자본
    유치와 대내적으로는 민간경제를 용인하는 경제개혁을 이루어 냈습니다. 자영농과 個體戶를 탄생시켰습니다.

    그의 개혁개방은 1979년부터 시작되었으며, 蘇聯 지도자 Gorchov에게도 영향을 끼쳐, 페레스토이카 정책으로 나아가게 하는 정치경제적 사상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소련이 해체되고, 여러 나라로 독립합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동 어러 나라가 소비에트 연방 정부의 일원이었다가 독립하였습니다.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만 15개국, 베트남도 도이모이정책, 캄보디아, 라오스, 쿠바의 Castro도 개방정책을 채댁합니다.

    이렇게 20세기 후반 세계역사 전환을 가져온 출발점이 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24.06.19 04:52

    鄧小平의 改革開放은 한국의 발전모델 뿐 아니라 '東亞四小龍' 즉,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의 발전모델을 배운 것입니다.

  • 작성자 24.06.19 07:04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당연히 등소평이 경제를 발전시킬때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모텔을 참고했을 겁니다. 다만 홍콩, 싱가포르는 이미 영국의 통치로
    그 영향을 받은데다 중개무역과 금융센터 역할을 맡으면서 부유한 국가가 되었습니다.이들은 도시국가 규모로 참고는 몰라도 인구가 많은 중국의 주력 발전모델로 삼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대만은 장개석이 본토에서 밀려올때 엄청난 자산을 갖고 왔고 내심으로는 대만의 발전모델을 참고는 했겠지만 사상적으로 적대국이어서 드러내놓고 대만을 본받자는 얘기는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통지를 받은 세계 최빈국의 농업국가에서 단기간내에 산업화를 이룬 나라입니다. 동아시아의 홍통 싱가포로, 대만과 달리 인구가 적지않은 국가이며 같은 농업국가로서 한국의 발전모텔을 주력으로 배우기에는 안성 맞춤이었다고 보여집니다.
    등소평은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다만 경제발전이란 면에서 박통은 여러 어려운 환경에서, 더구나 참고할 말한 발전모델이 없는 가운데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점이 등소평보다 한수위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국뽕이나 아전인수식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