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2 가을 운동회
가을 운동회 1달 전부터 1학년과 2학년이 모여서
훌라후프 돌리는 연습을 체육 시간마다 했다.
그리고 운동회 때 1학년과 2학년이 단체 마스 게임도 함께 준비했다.
1학년 20여 명, 2학년 24명..
합쳐도 50명이 안되는 인원이라 함께 했다.
훌라후프는 먼저 돌리는 연습만 하다가 돌리면서 걷기 연습을 했다.
운동회 때 훌라후프를 돌리면서 걸어가서
꼬깔을 세워 둔 곳까지 돌아오는 게임을 준비하는 거 였다.
학교에서 집에서 짬나는대로 연습했더니 걷다 못해 뛰기까지 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마스게임 춤 연습을 하는데 1,2학년 담임 선생님 두 분이
나와 혜영이란 친구를 가리키며 잘 춘다며 앞에서
대표로 춰보라고 뽑으셨다.
앞에서 추는게 부끄러웠지만 재미있게 준비했었다.
2. 중2
한 해 동안 선생님들과 친했던 나는.....
수학 여행도 다녀오고,
담임 선생님 추천으로 "영일 문화원"에서 주최한
예절 교실 겸 수련회에 다녀왔다.
여름 방학 때 포항시 중2가 대표로 모이는 행사였다.(각 반 2명씩)
가을엔....
우리 학년과 타 중학교와 연합으로 2박 3일 수련회도 다녀왔다.
친구들과 함께 뭔가 할 수 있다는게 재미있고 좋았다.
3. 2002년 대학 입학.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어느 정도 해서 나는 대학을 바로 갈 줄 알았는데
집안 여건 상 고등학교를 실업계를 갔다.
인문과 공부는 어느 정도 했는데 실업 교과에선 성적이 낮았다.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라는 생각에 실망이 커서 공부를 놔 버렸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학교에 갔다면 정말 열심히 했을 건데....'라는
철없는 생각에... ..
그래서 열심히 출석만 잘했다.
고등학교는 졸업하자는 생각으로......
그러다보니 육촌 동생과 같이 진학했던 친구들보다 성적이 낮았다.
반에서 성적이 앞 쪽에 있던 친구들이 갔고,
역대적으로 선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ㄷㅈ여상에서 우리 중학교가 시골에 있지만
알짜들만 오는 명문 중학교로 소문 나있었는데......
나는 중학교 땐 앞쪽에 있었지만,
고등학교에선 중간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사촌언니가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사립이여서 선생님들이 오래 근무하셨다 보니.....
사촌 언니가 담임 선생님께
"사촌 동생도 우리 학교로 와요~"라며 자랑했단다.
(사촌 언니 고1 담임 선생님이 나의 고3 담임이었다.)
막상 까보니 애가 사촌 언니나 선배들
못 따라가는 애여서 실망했다는 후문이...
연년생이던 남동생은 졸업하자마자 대학에 진학했고,
입학 전 겨울 방학 때 아버지의 권유로 운전 면허도 취득했다.
나는 IMF 덕에 금융권으로 취업나간
선배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모습을 봐서 건설 회사로 개인 취업을 했다.
당시 대기업이었던 ㄷㅇ건설이었고,
1년 후에 ㅎㄷ건설로 이직했다.
회사 사정상 퇴사를 했고,
옆 사무실 감리원 추천으로 공사에서 일을 했다.)
공무원이라 칼퇴근.
99년 취업 나가서 부터 벌었던 돈 천만원으로
수시 지원해서 대학에 입학했다.
낮엔 일하고, 밤엔 대학에서 공부했다.
밤에 학교갔다 오면 11시~12시였고,
시골이라 교통이 불편해서 당시에 '비스토'를 사서 타고 다녔다.
500만원 선불로 주고, 나머진 할부.
내 월급에서 30만원씩 갚기로 했다.
사촌 언니들은 모닝을 타고 다녔지만
카매니저는 리오와 비스토 추천해줬는데
시골 동네라 골목이 좁아서 큰 차이는 없었지만
작은 차로 하겠다고 했다.
운전을 하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남들은 밤에 운전하는게 무섭다고 하는데,
나는 야간에 운전을 배워서 그런지 밤운전도 익숙했고,
재미도 있었고, 집중도 잘 되었다.
밤에 경차지만 차에만 있으면 겁을 상실할 정도였다.
(자주 운전하는 건 아니지만.....
시댁에 갈 때 한 번씩 운전하면 남편이
나에게 운전을 양ㅇㅊ처럼 한다고 했다.
대학 다닐 때 운전하고 20년 만에 운전대 잡아서 장롱 면허됐음.
초보치고 너무 밟는다고.....
끼어들기하는 거 보면 경차 몰던 습관 나온다며....
남동생은 대놓고 양ㅇㅊ 운전한다.
칼치기운전....
남편이 남매가 운전하는 게 똑같다고 놀린다.)
친한 언니 결혼식에서 만났던....
어떤 오빠를 알게 됐다.
우리 사촌 오빠의 친구였고,
신부의 남편은 사촌 오빠의 6학년때 반 친구였다.
포항 시내가 좁다 보니 한 다리 건너면 다 지인이었다.
나는 부과대, 같은 과 야간 조교였던 남친과 헤어지고 너무 힘들어 했을 때,
이 오빠가 자신이 다니는 스포츠댄스 동호회에 대리고 갔다.
오빤 여행사에서 가이드로 근무했고,
저녁에 시간이 많아 운동도 하고, 스포츠 댄스도 배우러 다녔다.
동호회에서 살사, 자이브, 메렝게, 차차차, 왈츠, 라인 댄스, 걸스힙합,.....
여러가지를 가르춰 줬다.
가르쳐 주시는 분이 살사 대회에 나가시는 분이셨는데
직업은 어느 여중 무용 선생님이셨다.
힙합 쪽은 법대 다니면서 MBC 방송국에서 안무를 담당했던 남자애가 가르쳤고,
(대학 1학년 때 사시 1차 패스한 영재였음)
살사 외 댄스는 동호회 운영진들이 가르쳐줬다.
오빠의 손에 이끌려 밤에 학교 마치고 동호회가 운영되는 BAR로 갔고,
매일 모여서 춤 추다보니 늦게 가더라도 항상 연습을 했다.
(오빠도 군생활하면서 여친과 헤어졌었던 기억때문에
내가 힘들어 하는 모습 보고 데리고 갔었다.)
동호회에 남자는 7명뿐.... 나머진 다 여자였고,
어찌나 잘 추는지 여자들이 남자 스텝을 배워서 여자 회원들을 리드했다.
한 번 시작하면 2~3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땀을 좀 흘리고 나면 아무 생각이 안들었다.
그래서....
C.C 남친과 헤어진 후유증이 일주일만에 다 사라졌다.
동호회에서 맘이 맞는 언니, 오빠들과 주말에는 수영장도 다니면서
각종 취미 생활을 했다.
도자기 굽는 공방에가서 내 컵도 만들어보기도 하고,
당시에 막 들어온 인라인도 타봤다.
(호주에서 인라인 배우고, 한국에서 인라인 가르치는 사람이
지인으로 있어서 낙법부터 무료로 배우기도 했고,)
여름엔 강원도 오대산의 오대천에서 레프팅도 했다.
4. 30대 호텔 서비스
서울 올라와 고시원 생활하면서 알바를 했다.
서비스업에 대해서 모를 때...
웨딩홀 알바를 했다.
9시부터 6시까지 서서 기물 세척, 핸들링, 세팅, 서비스까지.....
서서 일하는게 다리가 아파서 너무 힘들었는데 양식쪽이라 재미도 있었다.
대학을 관광과를 다녔는데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도 많아서 재미 있었다.
서비스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실전에서 배웠다.
항상 웃고 다녔던 나는 여기서 빛을 발했다.
처음 핸드 서버(손가락에 접시를 여러 개 끼우고 서비스하는 거)할 땐 3개,
좀 익숙해지니 내 손에 접시가 9개까지 들려 있었다.
(잘 하고, 더 오래된 친구들은 13개도 들었다.)
와인잔도 7개 기본이었다가 나중엔 14개도 들고 다니면서 세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예식을 앞 둔 예비 신랑 신부가 웨딩홀에 와서
음식을 미리 먹어보는 '시식' 행사가 매주 예식할 때 한 쪽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시식을 하는 곳에서 서비스도 하기도 했고,
웨딩 행사 때는 혼주 테이블(예식과 식사가 동시에 이루어짐)에서
서비스 하기도 했다.
2년 정도 근무를 하다보니 알바 업체에서 팀장 대우를 해 주기도 했고,
운이 좋아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알려진 여러 호텔에서도 근무를 했다.
일하다가 쉬고 있을 때, 같이 알바하던 동생이
아웃소싱 업체 팀장이 되서 대타 뛰어 달라해서
ㅎㅇㅇㅌ,ㄹㄷ에서도 일을 해 봤다.
남산에 있는ㅎㅇㅇㅌ호텔이 지금까지 일해 본 곳 중에서 가장 힘들었다.
오래 근무했던 호텔에서 청와대 출장, 총리공관 출장부터
리움 미술관까지 출장도 다녔고,
정계, 제계, 연예인, 운동 선수 예식과 각종 세미나,
해외 국빈 행사까지 진행하니 너무 재미있었다.
물론, 오래 일했던 직원들의 텃새도 있었다.
여직원들이 많고, 예쁜 직원들도 많았지만,
일을 잘하니 나를 찿는 사람들이 많아서 였던 것 같았다.
웨딩홀에서 일 할 때 들었던 얘기가....
'여기 웨딩홀에서 일 배우면 어디가든 금방 적응한다'였다.
그만큼 힘들기도 하고, 웨딩홀답지 않게 호텔급 이상으로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몸에 배여있는 게 있다 보니 최고의 호텔에서도 꿀리지 않고
다른 애들보다 일을 배우고, 하고 그러다 보니
시기 질투 아닌 시기 질투도 있었다.
일이 재미있어서 시기 질투는 신경이 안 써졌다.
5. 대비주 10만독
생소한 다라니를 한 자 한 자,한 독 한 독하기가 어러워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출근 준비 다 하고 앉아서 셔틀 타기 전까지
49독하려고 대비주를 하다가 졸려서 잠든 적도 많았고,
화장한 얼굴에 눈물 콧물 범범된 적도 많았다.
금요일 법회에서도 많이 울고,
구미 법회에 가서도 수건 한장 젖을만큼도 울면서 대비주도 했었다.
그렇게 한 독 한 독이 49독이되고,
108독이 되고, 천 독이 되었다.
하루에 몇 독만 하게 될 때도 있었고,
500독 넘게 할 때도 있었다.
항상 옆에는 도반님들이 있었고,
항상 같이 할 수 있도록 독려도 했다.
행주좌와를 하면서 꾸준히 하다 보니 10만독을 했다.
어려워서 포기하려다가 익숙해지니 재미있어졌다.
그럴 땐 정말 언제 이만큼했나 싶을 정도로 집중이 됐다.
공통분모 : 재미있는 일, 관심있는 일
나의 건강 비결은...
재미있고, 집중할 때다.
나는 남들이 인정해줘야 결과가 좋았다고 생각했었다.
학교에선 선생님들이 집안 사정 몰랐어도 챙겨주시고,
관심 가져주면 성적이 올랐다 생각했다.
호텔 근무할 땐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아도
기존에 있던 직원들 마냥 일 잘 따라오고,
후배들은 나랑 테이블 서비스가 같은 조(2인 1조)일 때....
"저 언니랑 같은조야? 완전 부럽다~
저 언니랑 일하면 일도 잘 가르쳐주고, 정말 좋은데...."라는 말들을 들었을 때,
처음 간 호텔에서 일을 익숙하게 하니 그 호텔 직원인 줄 알고
나에게 계속 물어볼 때....
"저도 오늘 여기 똑같이 처음 왔어요."라고 얘기했을 때
놀라는 알바생들 표정봤을 때....
일 잘하니 아끼는 후배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주방장님들.......
들여다 보니....
내가 관심 갖고, 집중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할 때 결과가 좋았다.
성취감에 자신감도 생기니 결과도 더 좋았다.
주변에서 또 관심 가져 주고, 인정해주면
시너지 효과로 더 좋은 결과도 있었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