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24,3-8; 히브 9,11-15; 마르 14,12-16.22-26
+ 찬미 예수님
지난 한 주간 안녕하셨어요? 지난주 제 영명 축일을 맞아 기도해 주시고 축하해 주신 덕에 행복한 한 주 보냈습니다. 감사와 봉헌의 삶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비자들께서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계신데요, 한 사람의 인생관이 바뀐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고 온 우주의 질서가 달라지는 일입니다. 예비자 여러분들께서는 여러 가지 계기로 우리 성당을 찾아주셨겠지만, 그러한 계기들을 통해 여러분을 이곳으로 불러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똑같은 계기가 주어지더라도 모든 사람이 응답하지는 않습니다. ‘나도 한번 나가 볼까?’ 하는 마음의 움직임은 하느님의 부르심이기에, 그 부르심을 알아들으시고 응답하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제가 신학과 1학년 때 학교에서 단편 영화를 본 일이 있습니다. 한 남자아이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고 주위에는 아이의 부모와 의사 선생님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윽고 의사 선생님이 아이의 여동생에게 말합니다.
“오빠가 지금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의 위험하단다. 그런데 수술을 하려면 오빠와 꼭 맞는 피가 필요한데, 네 피가 오빠와 맞아. 네 피를 오빠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겠니?” 아이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잠시 후, 장면은 바뀌어서 여동생은 침대에 누워 있고, 의사 선생님이 다가가서 얘기합니다. “네 덕에 수술이 잘되었어. 오빠는 이제 살 수 있단다.” 그러자 그 아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언제 죽게 되나요?”
이 대사를 듣고 나서야, 피를 나누어 줄 수 있느냐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동생이 왜 한참을 생각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동생은 피를 나누어 주면 죽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빠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려 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정점인 성체성사의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몸과 피를, 당신의 생명을 실제로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생명이 피에 들어 있다고 생각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명의 주인이 하느님이시기에, 피는 신성하다고 믿었습니다. 고대 시대에는 피로 서약을 하는 관습이 있었는데요, 주먹이나 팔에 상처를 내고 서로 그 상처를 맞닿게 하여 서로의 피가 상대에게 흐른다는 상징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생명을 나눈 사이가 됨으로써 서로 평화롭게 지내고, 서로의 약속을 지키자고 맹세한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모세는 피의 절반을 하느님을 상징하는 제단에 뿌린 후 나머지 절반은 백성에게 뿌리면서 말합니다. “이는 야훼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요, 하나는 하느님과 우리가 피를 나눈 가족처럼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계약을 어길 경우, 어긴 당사자의 피가, 이 동물의 피처럼 쏟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계약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의 계명을 지키겠다(탈출 24,7)는 것이고, 야훼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주시고 그들을 당신 백성으로 삼아주신다(레위 26,12)는 것입니다. 이 계약이 옛 계약 즉 구약입니다. 하지만 이 계약은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파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계약에 충실하셨지만, 이스라엘이 계약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셔서 새로운 계약을 맺으십니다. 이것이 신약입니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이는 야훼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라고 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은 동물의 피로 맺은 계약이지만, 신약은 예수님의 피로 맺은 계약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그 몸을 깨끗하게 한다면, 하물며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새로운 계약은 피는 제단과 우리에게 뿌려지지 않습니다. 대신 예수님의 몸을 우리 안에 영함으로써, 예수님의 생명의 영이 우리 안에서 호흡하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며, 우리를 당신 소유로 삼아주십니다.
중세의 신심서적인 ‘준주성범’은 성체성사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데요, “이 거룩한 성사를 세상의 어느 한 곳에서만 지낸다 하고, 또 세상의 한 사제만이 성체를 축성하게 된다면, 신성한 신비를 거행하는 것을 보려고 그곳으로 가서 참례할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겠으며 이러한 사제를 얼마나 사모하겠나이까! 그런데 사제도 많고 사방에서 그리스도를 제헌하는 것은 세상에 영성체가 아무쪼록 많아지고 그럴수록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의 위대함이 더욱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옵니다.”
천주교가 이 땅에서 박해받던 시절, 교우들은 수십 리 밤길을 걸어 미사에 참례하고는, 동이 트기 전에 다시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제가 몇 명 안 되다 보니, 다음 영성체 때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하기에 혹은, 사제가 순교하거나 자신이 순교하게 되면 그것이 마지막 영성체가 될지도 모르기에, 모든 정성을 다해 성체를 영했습니다.
그 때에 비해 지금은 여러 곳에서 성체성사가 거행되니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런데 영성체가 편리해진만큼 간절함은 줄어들지는 않았는지 성찰하여 봅니다.
혹은 반대로, 준비가 부족하다고 하여 미사 참례만 하고 영성체는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요, 역시 준주성범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성체를 영하며 미사를 드리는 데도 이렇게 자주 경솔하고 내 마음이 차갑거든, 만일 이 약을 쓰지 아니하고 이 큰 도움을 찾지 아니한다면 어찌 되겠나이까?”
옛 계약인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에 충실하지 않았기에 파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은 어떠할까요? 새로운 계약은 파기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께만 의무가 있는, 불리한 계약을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신 아드님의 피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당신의 아들딸로 삼아주시겠다는 계약입니다.
이 계약은 우리의 불성실함 때문에 파기되지 않습니다. 오빠에게 피를 나누어준 여동생이 오빠에게 아무런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조건을 걸고 계약을 맺지 않으셨습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실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신 다음 날 십자가에서 당신의 말씀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제단과 회중이 아니라 이 땅을 당신의 피로 적시며 보여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이, 하느님과 인류가 그분의 피 안에서 새로운 계약으로 묶인 것입니다.
안쏘니 드 멜로 신부님의 글을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여보시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하며 끝내 부인하였다.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닭이 울었다. 그때에 주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똑바로 바라보셨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루가 22, 60-62)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는 나쁠 것이 없었다.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라면 청할 수도 있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나눌 수도 있고, 찬미도 드리고, 감사도 드렸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완전히 편하지 않았던 것이, 내가 눈을 들어 당신을 바라보기를 바라고 계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려 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시선이 느껴질 때면 그만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두려웠던 것이다. 하느님과 눈길이 마주쳤다가 내가 미처 뉘우치지 않은 죄라도 들춰지면 어쩌나, 어떤 명령이라고 받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어느 날 나는 있는 용기를 다하여 눈을 들었다. 나는 어떤 꾸지람도 듣지 못했다. 어떤 요구도 듣지 못했다. 하느님의 눈은 그저 이렇게 말하고 계실 뿐이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밖으로 나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프라 안젤리코, 사도들의 영성체, 1437-1446년
출처: Comunione degli apostoli, cella 35 - File:Fra Angelico 015.jpg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