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고 넘어질 때
창 14:13-16
여러분! 여러분은 몇 요일에 태어난지 아십니까? 제가 연구한 결과 요일과 날짜가 같은 날은 11년 6년 5년 6년 11년 주기로 돌아갑니다.
찾아보니 저는 화요일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사모는 토요일에 태어났더라고요.{3월 28일(화) 음력으로 2월 18일, 6월 22일(토) 음력 5월 27일}
오늘이 6월 25일 주일입니다. 여러분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에 어떤일이 일어난지 아시죠? 북한이 소련제 탱크 500대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서 남한을 침공해 왔습니다.
625 사변이후 6월 25일이 주일일 때가 1961년 67년 72년 78년 89년 95년 2000년 2006년 밖에 없습니다. 그렇니까? 오늘은 1950년 6.25가 일어난 후 67주년을 맞이한 날로 9번째로 맞이하는 주일날 맞이하는 6월 25일날이 됩니다.
625 사변으로 인해 전체 사상자가 실종자 포함해서 510만명이나 됩니다. 이는 당시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5 수준이나 됩니다. 그렇니까 625 지낸 세대이지만 신체발부 건강하게 지낸다면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또한 625 사변을 통해 3000군데의 교회가 사라졌고, 535명의 교역자가 학살당했습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었습니다. 고향을 떠난 피난 행렬은 모든 길을 메웠고, 남편 잃은 30만 미망인의 한숨과 부모 잃은 20만 고아들의 울음소리는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그리고 아사자와 병사자 그리고 폭격으로 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들과 거리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나긴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더듬어 보더라도 이같이 처절한 사연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전국적으로 호국선열들을 기리는 장소가 얼마나 있을 것 같습니까? 제가 궁금해서 독립기념관에다 전화하니까 국가보훈처에다 문의하라고 해서 국가보훈처에다 전화하니 세종시에 있는 국가보훈처에다 전화하라고 해서 담당자와 통화하게 되었는데 물어보니까? 놀랍게도 전국적으로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곳이 2037개나 됩니다.
정확히 알고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6.25로 인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왔으면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것이 이렇게 많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것이 오늘에까지 수많은 순국 선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부와 영광은 없었겠다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6.25를 겪어보지 못했지만 그때의 죽음의 공포, 파괴되어진 가정, 재떰이가 된 나라, 그로 인한 비참함과 고통을 어느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가 보훈처에서 관리하고 있는 곳만 2037곳이지 아직 정식으로 지정받지 못한 곳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니까?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곳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여러분, 전국적으로 수많은 곳에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흘린 생명이 얼마나 많을까요? 6.25사변 67주년을 맞이하여 호국선열들의 생명이 산화되고 그분들의 죽음이 거름이 되어서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안전하고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나라가 외세의 침략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일은 900여회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 작은 한반도 땅에 우리 민족이 생존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 중에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큰 기적은 지금이 전쟁을 하다가 쉬고 있는 휴전상태인데 우리 나라가 인류국가가 되었습니다. 휴전하는 사이에 세계역사에 유래가 없을만한 급성장을 이룬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런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아프리카에 있는 우간다나 중동에 있는 이라크나 가까이 필리핀에는 아직도 반군의 세력이 남아 있어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도 수 많은 인명피해와 수많은 사람들이 난민 수용소에서 지내고 있다는 뉴스 보도를 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전쟁의 와중에서,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이면서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정답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와 민족을 지키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특히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3대 세습정치와 가장 호전적인 공산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그리고 전쟁 물자 계발과 미사일 계발을 통해 언제든지 무력으로 남한을 도발하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과 철조망 하나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 나라가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있는지 모릅니다. 요즘은 유럽을 넘어 아프리카 중동에까지 전 세계인들이 한국을 외치면서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문화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노래에 케이 팝이 생겨났고 음식, 미술, 드라마, 영화까지 도대체 이 작은 나라의 문화가 전세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극도의 위험한 상황에 있는 이 나라를 하나님이 높이시고 복을 주시는 이유가 뭘까요?
성도 여러분!
세계 역사에 유래가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나라와 함께하심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나라 우리 민족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길 바랍니다. 사실 세계 어딜 가도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나라가 세워졌다가 쓰러졌는 지 모릅니다. 성경만 봐도 세계를 주름잡던 앗시리아나 애굽나라 바벨론 페르시아 이런 나라들이 더 강한 신흥 강대국으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도 수천년간을 이 나라 이 강산을 견고히 지키며 굳건히 서 있습니다. 이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고 높여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우리 나라 우리 겨레를 보호해 주시지 않았다면 세계 열방가운데 이렇게 위대한 민족으로 어떻게 자리매김을 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6.25 전쟁이라 하지 않고 6.25 사변이라고 합니다. 과거 역사 가운데 있었던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라고 명하지 않고 6.25 사변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전쟁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대도 하나님이 이렇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지난날 6.25 사변때도 보면 하나님께서 세운 대한민국을 하나님께서 친히 지켜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이 수많은 연합국이 반도땅 우리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이 반도 땅 절반을 지키기 위해서, 저 먼 남아메리카에 있는 콜롬비아에서, 저 먼 아프리카에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저 회교권에 있는 터키에서까지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군인들을 파견해서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이런 일은 세계 전쟁역사 상 그 유래가 없던 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섭리하고 역사하지 않았으면 이 나라는 벌써 없어졌습니다. 이 땅이 교회 없는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6.25때 인민군들이 예수믿는 사람들과 교회당을 다 불태우고 성도들을 우물에 젓 담듯이 담아서 죽였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지난번 수련회때 가 보았잖아요? 예수 믿는 다는 이유로 머리에 돌을 달아서 바다에 빠뜨려 죽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현재 전세계적으로 전쟁의 위험이 가장 극심하고 가장 위태로운 나라중 하나인 이 나라에는 전쟁이 안일어납니다. 멀정한 다른 곳에서만 전쟁이 터지고 있습니다.
그것 뿐입니까? 다른 나라에서는 엄청난 테러로 인해서 수만명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여러분! 미국이 안전합니까? 대한민국이 안전합니까? 여러분! 영국이 안전합니까? 대한민국이 안전합니까? 독일이 안전합니까? 대한민국이 안전합니까?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나라가 안전한 것입니다. 국력이 있다고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핵 폭탄이 있다고 안전한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나라가 안전합니다.
저는 어떤 때는 산에 가서 기도하다가 11시가 넘어서 자전거 타고 집으로 들어올 때도 있는데 그 시간이 되면 천변에 남자보다 여자분들이 더 많아요. 그 만큼 우리나라가 남녀 할 것 없이 안전한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이렇게 안전한 것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시고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하나님이 높여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번 연세대에 사제 폭탄이 터져서 사람이 죽거나 한 것도 아닌데 연세대가 난리가 났습니다. 경찰 대테러 진압대 폭발물, 제거반 할 것 없이 수많은 인력들이 와서 조사해서 순식간에 테러 범인을 붙잡았습니다.
사실 중동이나 다른 나라에선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남감 터진것과 비슷해요. 민간인 비행기 4대가 대낮에 미국의 심장부인 수백미터 되는 마천루 건물에 추락하고 펜타곤 하우스에 떨어졌습니다. 그것도 동시 다발적으로 말입니다.
수만명이 밀집되어 있는 공연장에서 폭발물이 터지고 총기가 난사되고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나라를 은혜로 잘 지켜 주셔서 우리가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매일매일 은혜가운데 살고 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안에 살고 있다 고백하면서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큰 화재나 대형사고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들이 119 소방관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위험한 지역에서 도망나올 때 목숨을 걸고 뛰어 들어가 안타까운 생명을 보존하고 살려 내는 사람들입니다.
지난번에 어떤 자매가 아파트 창틀에 걸텨앉아 자살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1시간 설득을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니까? 119 구조대원이 위에서 줄을 타고 내려가서 밖으로 점프를 해서 베란다에 그 자매를 떨어뜨려버렸습니다. 그것이 동영상에 나왔습니다.
분명 그 자매는 베란다에 몸이 부딪혀 크게 다쳤을 것입니다. 잘못하면 머리도 다칠 수 있어요. 그러면 모든 잘못이 누구한테 가요? 요즘 세상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19 대원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 일을 한 것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런 분들의 희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되고 살아가고 있구나!
우리가 어떤 큰 문제를 가지면 119에 전화하잖아요. 그런데 더 웃긴 것은 우리가 실수해서 우리가 미련해서 저들을 불로 뛰어들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이 세상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사는 사람들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살면서 시대적 흐름속에서 최대 위기를 겪었던 전쟁의 사건이 나옵니다. 우리 나라도 지금으로부터 67년전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도대체 왜 이런 전쟁이 일어나야 하는가? 의하해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고대 근동에서도 전쟁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큰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옵게도 아브라함을 통해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이 험난한 세상을 살 때 아브라함과 같은 수 많은 위협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그런 수 많은 위협의 수렁속에서 쓰러지고 넘어지고 허우적 거릴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오히려 그런 위협을 극복하고 승리의 바다에서 수풍의 돛을 달고 항해하며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수많은 위협의 수렁속에서 일어나 승리의 바다위에 순풍에 돗을 달고 항해 할 수 있을까요? 말씀을 살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항상 깨어 바른 길 갈려고 힘써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모든 자료와 데이터를 종합하여 머리를 쓰고 최고로 지혜롭게 꾀를 내서 잘 선택을 했어도 세월이 흘러가면 그 선택의 자리가 함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항상 깨어 있지 않으면 세월의 흐름속에 젖어 들어 잘못된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배경이 되는 바로 앞장인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하인들이 서로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싸우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축복이 너무 많아서 목축업을 같이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속에서 사는 우리는 서로 감사하며 지내야하지 싸워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가축들이 많아졌으면 더욱더 감사하며 양보하며 지내야지 서로 싸워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혈육간에 싸우며 지내는 것은 옳지 않다 해서 니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니가 우하면 좌 하리라 하면서 “네가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롯이 조카임에도 큰아버지 먼저 알아서 하세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볼 때 가장 좋은 곳을 선택해서 갑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이 소알땅을 선택할 때 그 곳은 경치가 좋은 곳입니다. 또한 가장 풍요로운 곳입니다. 물이 넉넉하고 도시가 잘 발달된 곳입니다. 그래서 롯은 선택을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세기 13장 1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
롯이 머리를 괭장히 써서 선택한 곳은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도시쪽 이었습니다. 그곳까지는 물이 넉넉했습니다. 또한 에덴동산처럼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그 좋은 곳을 자기가 선택했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불과 얼마 안되어서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물이 전부다 핏빛으로 변하고 에덴동산 같았던 그곳이 전쟁터로 황무지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선택했다고 하지만 그 일이 시간의 흐름속에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일년후 오년후 십년후 이십년후 그 선택이 어떻게 변화될지 모릅니다.
여러분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정말 무섭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 꾀로 선택한 것이 내가 파 놓은 함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 바른 갈려고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창세기에 나와 있는 롯의 행적을 찾아 보면 롯은 잘못된 선택으로 나중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구출을 받았는데도 예전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회개하고 돌이켜 돌아서지 못합니다. 오히려 소돔과 고모라성에 들어갑니다.
여전히 소돔과 고모라가 좋다고 소돔성과 고모라성에 들어갑니다. 글새 소돔과 고모라 근처에 살다가 어려움을 당했으면 그 이유가 뭔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끝까지 고집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 결과 이번엔 전쟁이 아닌 하늘에서 유황비와 유황불이 내려서 소돔과 고모라가 완전히 불타 멸망하게 됨으로 자신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아내마져 소금기둥이 됩니다. 그리고 유일한 피붙이인 그의 딸들마져 심히 타락한 모습을 지니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없었다면 롯의 존재는 유황불과 함께 사라졌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기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큰 재난을 경험하고도 어떻게 해서 같은 일을 또 할까요?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여 실패를 맞보고도 자기 확신에 차 있는 가운데 계속 그 길을 고집하며 나가면 결국 낭패를 보고 망하게 됩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바른 선택을 하고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믿음의 항해를 계속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지혜나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안에서 계속적으로 자신을 점검하며 바른 선택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래의 일은 한치 앞도 모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인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는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며 나아갈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한 사람에게 미래의 축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한 사람과 관계된 어떤 일에 대해서는 어떤 흐름들을 바꾸어서라도 축복된 길로 가아갈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하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믿고 현실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멘’ 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반드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지나치게 자신의 지혜와 자신의 선택을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뜻대로 되면 마음이 편안하고 잘될걸로 확신하는데 어떻습니까? 자기가 뜻하는 대로 되었는 데 결과는 형편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불안해 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공허질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원칙이 되어 살면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6절이하에 보면 한 부자가 나오는데 그해 농사하여 소출이 많아 곡식 쌓아둘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있는 곡간을 허물고 곡간을 아주 크게 지었습니다. 한 해 한 해 농사를 지어 소출을 얻으면 되는 곡간을 엄청나게 크게 짓고 많은 곡식을 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9절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누가복음 12장 20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1)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앞길을 예측하며 완벽한 선택을 하여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삶이 평안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매일매일 매순간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탁 붙들고 그 말씀이 명하는대로 순종하며 살 때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과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우리 모두가 부디 하나님의 말씀에 인생을 걸고 이 시대의 위기들을 잘 극복해 나가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삶의 방식과 하나님의 삶의 방식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점점더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세상의 방식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 요즘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엘람왕 그돌라오멜이 자기를 12년동안 섬겼던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엘람와 그돌라오멜이 볼 때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반역을 하고 3년째 조공을 안받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합군을 형성해서 여러왕과 그들을 섬기는 백성들을 치러 들어갑니다. 그래서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아가고 재물을 많이 빼앗아 갑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세상은 탈취하고 뺏았고 정복하고 다스리고 그렇게 강압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이 능력이고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본문말씀이 기록된 창세기 14장 바로 앞장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은 전혀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불러 “네가 원하는대로 선택해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 라고 하며 아낌없이 양보하며 베풀어 주며 존중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조카 롯은 세상의 삶에 방식대로 큰아버지인 아브라함을 전혀 생각지 않고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과 같은 소알땅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창13:12)
이것은 롯이 점점 세상 삶의 방식을 따라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놀라웁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살고자 했던 아브라함에게 야훼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높은 산에 오르게 하시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가 바라보는 땅을 주겠노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렇니까? 창세기를 좀더 깊게 묵상해 보면 창세기 13장에 나오는 삶의 방식과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삶의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이 있고 세속적인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차이는 상당히 큽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전쟁에서의 최후의 승자는 하나님의 삶의 방식을 택한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였던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전쟁을 돌이켜서 원래대로 원상복귀시켜 놓았습니다. 다시말해 다시 평화롭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손해보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실제로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움직이십니다.
오늘 창세기 14장 13절 말씀을 보세요!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싸움에서 패한 사람들 가운데 도망한 사람이 와서 아브람에게 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14장 16절입니다.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아브라함이 기습공격을 통해 세상 방식에 따라 소돔과 고모라에 살았던 롯과 그의 재물과 그의 아내와 딸들과 친척들을 다 찾아 왔습니다.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이었지만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나라 보디발 장군의 집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노예는 인격체가 아니고 물건이나 마찬가지인 시대에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동침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방식을 택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겠습니까?” 하면서
“내 주인이 나에게 다 맡겼어도 당신만은 내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주인 마님한테 노예가 할 소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에 세상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요셉은 그 일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결국 그곳에서 술맡은 관원장을 만나 애굽나라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세속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면 오래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충분히 사울왕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힘들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을 포용할 수 있는 위대한 성군이 되었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방법대로 삶을 사는 것이 결국 세상의 모든 세속적인 함정에서 벗어나는 길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고 세워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시고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게 하십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여 사시므로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산 역사를 만들어 가는 귀한 삶을 이루는 위대한 인물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세 번째 자신을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실 롯은 야망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목민이지만 당시 휘황찬란한 도시 소돔까지 이르러 장막을 쳤습니다. 자기의 장막을 계속 넓혀가는 야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창세기 13장 12절 13절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12.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살고, 롯은 평지의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소돔 가까이에 이르러서 자리를 잡았다. 13.소돔 사람들은 악하였으며, 주님을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있었다.”(창 13:12-13/새번역)
롯이 평지의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어디에 자리를 잡았습니까? 소돔성가까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소돔성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악하며 큰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소돔 도시 전체가 하나님앞에 큰 죄를 짓고 있었던 것을 알았지만 야망을 포기하지 않고 도시속으로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에 괜챦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능력있고 소유물이 많기에 소돔 사람들이 악하든지 말든지, 소돔 사람들이 죄 짓든지 말든지 나는 그곳에서도 당당하게 믿음안에서 설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돔성에 이르자 마자 재난이 닥치고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니까 꼼짝없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너무 자신을 과신한 나머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저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착각을 하냐면 내 재능과 내 실력을 나를 위해서 사용하면 미래가 완벽하게 보장되고 잘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볼 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다가 망한 사람들 많습니다. 자국의 힘과 민족의 힘을 과신하다가 세계 대전이 일어나 엄청한 피해를 입기도 하고요 전쟁의 참화에 넉을 잃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자연을 마구 개발하여 자정 능력이 상실되어 큰 재해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소방시설이 잘 되어 아무 문제가 없다던 큰 건물에 엄청난 화재가 일어나 수 많은 사람이 죽기도 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던 곳에 엄청난 테러가 일어나 온 세계가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결국 자신을 너무나 신뢰한 나머지 자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국의 힘과 자기 민족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나라를 잃고 민족이 큰 도탄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 일본이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지진보다 더 두려워 하는 것이 뭡니까? 충분한 내진 설계를 해 놓았다고 자신했던 원전에 이상이 생길까? 더 두려워합니다.
과거 미국에 아셔 벨이라는 아주 유명한 보석털이 전문범이 있었습니다. 아셔 벨이라는 만화가 나올 정도니까? 유명한 도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주로 상류층의 집만을 골라서 보석을 훔치는데 흔적을 남기지 않고 훔쳐갑니다.
그러니까? 미국 경찰이 이 사람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도저히 잡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잡히게 됩니다. 아주 친분이 두터운 집에 침입했다가 총을 세방이나 맞고 높은 창문에서 떨어져서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생활을 자그마치 20년이나 했습니다.
출소할 때의 나이가 예순이 넘었는 데 백발이 성성해서 나올 때 이 사람을 기억한 한 기자가 출소하는 이 사람을 붙들고 물어봅니다. “어떤 사람들의 보석을 그렇게 많이 훔쳤습니까?”
그랬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겨우 입을 여는 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훔친 것은 아서 벨이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습니다. 음악 악기도 연주를 잘 했습니다. 언변이 좋아 친구도 많았습니다. 몸도 민첩하여 운동도 잘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재능을 남의 것을 훔치는 데에만 사용했습니다. 재가 훔친 것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롯도 그런 인생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자기자신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재물과 거처를 펼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간 곳이 소돔성 멸망의 자리로 들어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능력이 있고 실력이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롯이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고 영성이 있다 해도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하나님께 저주받고 심판받을 자리에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롯은 그곳에 가자마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래도 그곳을 안떠나고 있다가 유황불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될 때 정말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저주받는 자리에 서 있으면서 자기의 능력과 실력만을 신뢰하며 나는 괜챦다고 외치며 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겸비해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미국에선 북한 김정은에 대한 거센 여론이 빗발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세요. 휴전상태 잖아요.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개발했고 계속적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세계 열강만을 의지해선 나중에 어찌 될지 정말 모릅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좁은 땅 덩이리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자력 발전소를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무수하게 만들어놨죠?
요즘 땅을 함부로 파면 큰 일납니다. 도시가스가 엄청나게 깔려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초고층 빌딩들과 무수한 주유소가 깔려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과부하로 정기 한번 나가도 엄청난 피해가 날 것입니다. 과거 우리 민족은 폐허 속에 있을 때 얼마나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과거 625사변 이후 폐허가 되어있을 때, 6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얼마나 기도했는 지 모릅니다. 무역에 날을 정해 놓고 불과 반세기만에 3000배 5000배 수출실적을 기록한 나라가 우리 나라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 좀 살만해 졌다고 타락하고 교만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도대체 이 민족이 어떻게 되려고 하는 것입니까?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처럼 이 시대를 구원하는 귀한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함께 창세기 14장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놀라운 것은 갑자기 아브람 이름 앞에 히브리 사람이라는 표현이 들어갑니다.
이 표현은 지금으로부터 4000년전에 한 말입니다.
여기서 히브리 사람 이라는 말은 하피루 라는 말입니다. 하피루 라는 말은 전쟁의 포로들이나 외국의 용병들 즉 거주지가 없고 국가에 소속이 안된 난민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유리 방황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지금이야 이스라엘 이라는 국가가 있어서 다행이지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들이 얼마나 핍박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과거 러시아, 독일, 프랑스 할 것 없이 “유대인 죽여라!” 외치며 같이 살던 이웃 주민들이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을 죽였는 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표현하기 전에 앞에 하비루 아브라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국가도 없이 유리방황하고 있고 얻어먹고 사는 하피루 인생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고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께 큰 복받은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근동에 세계 대전이 일어나서 다 망하게 되고 다 죽게 되고 다 끌려가게 되었을때, 끌려간 연합군들을 구원하는 위대한 일을 하피루인 아브라함이 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시대를 구원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포로로 잡힌 모든 사람을 돌이키는 위대한 일을 행한 이유는 그가 하피루이지만 하나님께 복받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안에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가도 무엇을 해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있여 언제나 승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부자냐? 가난하냐? 내 형편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 세상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항상 깨어 근신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으로 돌이켜야 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불구덩이로 뛰어들어가는 세계를 섬기고 세계를 구원하는데 위대하게 쓰임받는 나라와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디 우리 크리스챤들이 깨어서 기도하고 삶을 바르게 살아 말씀을 선택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원칙대로 살아서 늘 이웃을 도우면서 더 나아가 주변 국들을 돌보면서 이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구원하는데 아브라함처럼 쓰임받는 귀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