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연둣빛 생명이여
윤종희 altyun57@daum.net
홍매화 사진이다. 화엄사 홍매화를 보고 오셨다고 문단 선배님이 카톡에 붉디붉은 사진을 올리셨다. 말 떨어지면 그곳에 가 계시는 바람처럼 움직이는 분이다.
마음이 급해졌다. 봄마중도 못하고 이 계절이 갈까 봐서다. 언제나 남보다 먼저 움직여 계절을 몸으로 맞는 선배님을 그저 부러움 반 존경심 반으로 바라보며 있는데, 기다리던 곳에서 소식이 왔다. 하동 섬진강변 걷기와 평사리 트레킹코스다.
설렘으로 서울을 벗어나 한참을 달려 남도로 접어들자, 산들은 경상도 지역보다 낮고 완만하며 넓게 퍼져있어 부드럽고 아늑했다. 구례 톨게이트를 통과하자 벚나무가 한두 그루씩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보이던 벚꽃이 갈수록 촘촘하게 하얀 꽃길로 맞는다. 벙근 나무들 대부분이 아름드리 고목으로 한쪽 날개를 잃은 것도, 아예 쓰러져 고사가 된 나무도 더러더러 있어 안타깝게 한다. 작년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상처다.
구례에서 승객 일부가 내리고 하동 화개장터를 향해 고속도로가 아닌 옛길로 들어섰다. 길은 상하행선 2차선이다. 어릴 적 버스가 지나가고 나면 뿌연 먼지가 일어 그 뒤를 아이들과 달음박질하던 그 신작로다. 그때는 흙길이요 지금은 아스팔트다. 버스가 더디 가도 정겹기만 하다. 동네 좁은 길에서는 한쪽 차가 지나는 동안 기다렸다 가는 길도 있어 아슴아슴한 그리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차가 쉬고 있는 동안 고샅길, 그 어디 즈음에서 동무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골목에서 뛰어나올 것만 같은 행복도 누렸다.
소설 ‘토지’의 무대인지라 초등학교 이름도 토지 파출소 이름도 토지다. 펜의 위력을 새삼 느끼며 사람은 갔으나 그의 작품은 영원히 남아 우리를 그때로 되돌린다. 섬진강을 오른쪽으로 끼고, 화개장터를 향해 달리며 수 없이 이 길을 오갔을 길상과 서희 아씨와 그 주인공들이 지나간다. 한참 들녘을 지나 화개터미널에 도착하니 상상보다 작고 한적한 시골 마을로 버스 두어 대 정도 정차하면 꽉 찰 정도로 협소했다.
섬진강을 왼쪽에 두고 오른쪽으로 가면 우리나라 ‘10대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쌍계사요, 다리를 건너면 화개장터다. 그 옛날 장터에 가려면 배로 강을 건너야 갈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다리가 있어 건너면 바로 화개장터다. 화개터미널 자리는 모든 문물이 드나들던 시끌벅적했을 자리며, 이별과 만남의 숱한 애환이 서린 나루터가 아닌가.
배꼽시계가 아우성을 친지는 한참이다. 밥상은 재첩국과 지리산에서 나는 나물로 차린 산채비빔밥이다. 짭짤한 간과 담백한 산나물 묻힘, 강에서 갓 잡아 올린 재첩으로 끓인 국은 부추를 잘게 썰어 위에 조금 뿌렸을 뿐인데 깔끔하고 시원하기가 그만이다. 바로 이곳 사람들의 성정이지 싶다.
주린 배를 가득 채우고 코앞에 있는 쌍계사를 가지 못해 미적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화개교를 건너 화개장터로 향했다. 평일임에도 와작 그르르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시골 장터는 어릴 적 어머니 치마꼬리 잡고 따라갔던 분위기는 아니나 애쓴 흔적은 여기저기 보였다. 시골장은 뻥튀기 장수의 ‘뻥이요’와 품바타령의 걸쭉하고 찰진 입담이 있어야 흥이 나는데 그런 볼거리는 없어 조금은 서운했다.
장터 따라 화개삼거리를 지나자 보성강과 합쳐져 섬진강 530530리 길 남도대교가 보이는 초입에 이르렀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다리 저쪽은 전라도 구례, 이쪽은 경상도 하동이다. 우리 일행은 남도대교를 건너지 않고 강 둑길로 내려갔다. 위의 시끌벅적함은 간곳없고 아래로 넓은 모래사장과 잔잔한 강물 위, 반짝이며 흐르는 윤슬이 평화롭기만 하다.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있는 갈대와 작년 홍수에 흙으로 뒤덮였던 상흔들이 여기저기 있다. 그러함에도 부드러운 흙의 촉감은 내 영혼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넓은 강, 물은 많지 않으나 맑기가 거울 같다. 일렁이는 물결 따라가다 보면 물까마귀 떼가 물을 찾아 목을 축이고, 강 건너 어부가 투망 던지는 광경이 평화롭기만 한데, 금방이라도 물고기가 튀어나올 듯, 어부의 팔뚝에서 물고기의 번뜩이는 생명력이 3월 봄 햇살과 어우러져 그림처럼 있다.
둑을 오르자 모래와 진흙을 뒤집어쓴 채 파릇파릇 들풀이 융단처럼 펼쳐져 자연의 생명력에 숙연해진다. 그때 풀숲에 숨어 있던 보라와 하얀 들꽃이 바람 한 점 없는 강가에서 우릴 맞는다. 강변 오솔길에서 만나는 여린 연둣빛 생명은 오히려 내 심령을 말갛게 씻기며 어루만졌다. 자연의 생명력에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으리.
척박한 환경에도 얼굴 내민 어린것들로 해서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모래와 흙이 반반 섞인 강변의 넓은 차밭은 누런 떡잎이 덮고 있어 물난리 때문인지, 겨울잠에서 덜 깨어난 것인지, 아직은 드물게 새잎이 빼 주룩 이 얼굴을 내밀고 있어 작년 큰 난리에도 살아 생명을 싹 틔우고 있으니 그저 고맙기만 하다.
방풍을 목적으로 대나무를 둑에 심은 곳은 그나마 피해가 덜했고, 그러하지 않은 곳은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길이 끊어지고, 무너진 곳도 여러 군데가 있어 보수공사 중이다. 강물이 더 넓은 백사장을 가득 채우고 높은 도로 위까지 올라왔으니 말해 무엇하랴. 살아남은 우듬지 끄트머리엔 흰 깃발 검은 깃발을 달고 있다. 문명의 이기인 비닐봉지다. 청정지역인 섬진강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와중의 험한 물난리에서도 쓰러지거나 죽지 않은 나무가 있으니 소나무다. 강 둑에 거의 눕다시피 땅에 몸을 댄 것도 기우뚱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것도 있으나 청청한 그대로다. 옛 선인들이 왜 소나무를 칭송했는지 눈으로 보고서야 그 진가를 알겠다. 섬진강은 유장한 물길로 구불구불 흐르며 말을 할 줄 안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겠는가. 오늘도 강은 말없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 그 옛날 뱃사공의 구슬픈 노래도, 왜구의 침입도, 같은 민족이 둘로 갈라져 서로 적이 되어 피비린내가 날 때도, 지금 조차도 가는 이 보내고 오는 이 맞는 일을 여적 하고 있다.
시간상 오늘은 평사리까지 둘러보기는 촉박하다. 섬진강을 제대로 보려면 달밤에 보아야 한다는 현지인의 말을 듣고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아쉬운 마음 다잡으며 다음을 기약하고 막차가 끊어지기 전에 화개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불어오는 강바람에 화개골을 뒤덮은 연분홍 벚꽃이 하롱하롱 이울어 차마 돌아서지 못하는 마음을 아는지 손을 흔든다.
꽃잎은 섬진강 물결 따라 꽃비 되어 흐르고, 수마가 할퀴고 간 자국들엔 상처를 보듬으며, 다시 새 생명이 돋아나 강변을 채우고, 일 년 전의 아픔을 잊은 듯 강물 따라 반짝이는 윤슬은 봄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