環滁皆山也(환저개산야)라 : 저주(滁州) 지방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모두 산이다.
其西南諸峰(기서남제봉)에 : 그 중에서도 서남쪽에 있는 여러 봉우리들은
林壑尤美(임학우미)하여 : 숲과 골짜기가 더욱 아름다워,
望之蔚然而深秀者(망지울연이심수자)는 : 멀리서 바라보아 울창하고 그윽하고 빼어난 것이
瑯耶也(낭야야)라 : 낭야산(琅琊山)이니라
山行六七里(산행육칠리)에 : 산길을 육 칠리쯤 걸어 가면
漸聞水聲潺潺(점문수성잔잔)하여 :점차 물소리가 졸졸 들려오니,
而瀉出于兩峰之間者(이사출우량봉지간자)는 : 두 봉우리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
釀泉也(양천야)라 : 양천(釀泉)이니라
峰回路轉(봉회로전)에 : 봉우리를 돌고 산길 돌으니
有亭翼然(유정익연)하여 : 날개를 활짝 펼친듯한 정자가 있어
臨于泉上者(임우천상자)는 : 샘 위에 임해있는 것이
醉翁亭也(취옹정야)라 : 취옹정(醉翁亭)이다.
作亭者誰(작정자수)으로 : 이 정자를 지은 자는 누구인가
山之僧智仙也(산지승지선야)할새 : 산에 사는 승려 지선(智僊)이었다.
名之者誰(명지자수)오 : 정자에 이름을 붙인 사람은 누구인가
太守自謂也(태수자위야)라 : 태수가 스스로 이름 지었다
太守與客(태수여객)으로 : 태수는 손님들과 함께
來飮于此(래음우차)할새 : 여기에 와서 술 마시곤 하였는데
飮少輒醉(음소첩취) : 조금만 마셔도 곧 취하고
而年又最高(이년우최고)라 : 나이도 또한 가장 많은지라
故自號曰醉翁也(고자호왈취옹야)라 : 스스로 취옹(醉翁)이라 불렀다.
醉翁之意(취옹지의)는 : 취옹의 뜻은
不在酒(부재주)하고 : 술에 있지 아니하고
在乎山水之間也(재호산수지간야)라 : 산수지간에 있었으니,
山水之樂(산수지락)을 : 산수간에 노니는 즐거움을
得之心而寓之酒也(득지심이우지주야)라 : 마음에 얻어 술에 부친 것이었다
若夫日出而林霏開(약부일출이림비개)하고 : 해 떠오르면 숲속의 안개비가 걷히고
雲歸而巖穴暝(운귀이암혈명)하여 : 구름이 돌아오면 바위구멍이 어두워진다
晦明變化者(회명변화자)는 : 어둡고 밝아지는 변화는
山間之朝暮也(산간지조모야)라 : 산속의 아침 저녁이다.
野芳發而幽香(야방발이유향)하고 : 들에 꽃이 피니 그윽한 향기나고
佳木秀而繁陰(가목수이번음)하며 : 아름다운 초목은 빼어나 무성하게 녹음지고,
風霜高潔(풍상고결)하고 : 바람과 서리는 높고 깨끗하고
水落而石出者(수락이석출자)는 : 물이 떨어지고 돌이 나온 것이
山間之四時也(산간지사시야)라 : 산간의 사시의 풍광이다
朝而往(조이왕)하고 : 아침이면 이 산속을 찾아가고
暮而歸(모이귀)에 : 저녁이면 돌아오곤 하였으나,
四時之景(사시지경)이 : 사시 사철의 풍광이
不同而樂亦無窮也(부동이락역무궁야)라 : 같지 않은지라 즐거움은 또한 끝이 없었다.
至於負者歌于途(가우도지어부자)하며 : 짐 지고 가는 자는 길에서 노래부르고
行者休于樹(행자휴우수)하고 : 지나는 사람들은 나무 밑에서 쉬는데 이르러서도
前者呼(전자호)하면 : 앞서가는 자가 소리쳐 부르면
後者應(후자응)하여 : 뒤에 가는 자는 응한다
傴僂提携(구루제휴)하여 : 구부정 노인네는 손을 잡고
往來而不絶者(왕래이부절자)는 : 오고 가며 끊임 없이 이어지는 사람들은
滁人遊也(저인유야)라 : 저주(滁州) 백성들이 유람하는 것이었다
臨溪而漁(임계이어)하니 : 계곡에 임해서 물고기를 잡으니
溪深而魚肥(계심이어비)하고 : 물이 깊어서 물고기는 살찌고
釀泉爲酒(양천위주)하니 : 양천(釀泉)으로 술을 빚으니
泉香而酒洌(천향이주렬)이라 : 샘물이 향기로와 술이 맑고 차가웠다.
山肴野蔌(산효야속)이 : 산나물 안주와 들나물을
雜然而前陳者(잡연이전진자)는 : 잡다하게 앞에 벌여 놓은 것은
太守宴也(태수연야)라 : 태수가 베푼 연회이다
宴酣之樂(연감지락)은 : 연회에서 술마시는 즐거움은
非絲非竹(비사비죽)이라 : 현악기도 필요없고 관악기도 필요 없었다
射者中(사자중)하며 : 활쏘는 자들은 과녁을 맞추고
奕者勝(혁자승)하고 : 바둑 두는 자는 이기려 하고
觥籌交錯(굉주교착)하여 : 큰 쇠뿔 잔과 세는 셈가지가 어지럽게 뒤섞이고
起坐而諠譁者(기좌이훤화자)는 : 일어났다 앉았다가 시끌벅쩍한 것은
衆賓歡也(중빈환야)라 : 많은 손님들이 즐거워 하기 때문이다.
蒼顔白髮(창안백발)이 : 푸른 얼굴에 백발한 늙은이가
頹乎其間者(퇴호기간자)는 : 그 사이에 쓰러져 있는 것은
太守醉也(태수취야)라 : 태수가 취해 쓰려져 있는 것이다.
已而夕陽在山(이이석양재산)하고 : 어느 사이에 석양이 서산에 있고
人影散亂(인영산란)은 : 사람들의 그림자는 흩어지고 어지러우니
太守歸而賓客從也(태수귀이빈객종야)요 : 태수가 돌아가니 손님들이 따랐다
樹林陰翳(수림음예)하여 : 숲속이 어둑어둑 해지고,
鳴聲上下(명성상하)는 : 아래 위로 지저귀는 소리는
遊人去而禽鳥樂也(유인거이금조락야)라 : 유람나온 사람들이 떠나가고 새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다.
然而禽鳥知山林之樂(지산림지락연이금조)이오 : 그러나 뭇새들은 숲속에서 노니는 즐거움은 알지언정
而不知人之樂(이부지인지락)하고 : 사람들의 즐거움은 알지 못하고,
人知從太守遊而樂(인지종태수유이락)이오 : 사람들은 태수를 따라 유람하고 즐거워함은 알지언정
而不知太守之樂其樂也(이부지태수지락기락야)라 : 태수가 그들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
醉能同其樂(취능동기락)하고 : 술이 취해서는 그 즐거음을 능히 함께 하고
醒能述以文者(성능술이문자)는 : 술에서 깨어나서는 글로써 기술할 수 있는 이는
太守也(태수야)라 : 곧 태수이라
太守謂誰(태수위수)오 : 태수는 누구를 이름인가
廬陵歐陽修也(여릉구양수야)라 : 여릉 땅의 구양수이다.
■취옹정기(醉翁亭記)는 구양수가 1045년(39세?)에 조정의 참소로 저주(滁州)의 좌천되어 있을 때 지은 글.
낭야 계곡에 취옹(醉翁), 성심(醒心) 두 정자를 지었다 한다.
글에서 태수를 내세우고 이름은 나중에 밝히고 있는 게 특징.
구양수 글의 특색은 미사여구는 별로 쓰지않고 간결하게 객관적 묘사로 담백미를 준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과 자신이 술취해 쓰러진 모습도 가감없이 그대로 그리고 있다.
주변의 초대한 사람과 어울려 술을 즐김에 與民同樂을 생각해본다.
*현판 '취옹정(醉翁亭) : 소동파의 친필
*중국 4대 정자 중 하나
*虛心求敎의 유래
環滁皆山也
其西南諸峰 林壑尤美
望之蔚然而深秀者 瑯耶也
저주(滁州)를 빙 돌아 온통 산이다.
그 서남쪽 여러 봉우리는 숲과 골짝이 매우 아름답다.
바라볼 때 초목이 무성해 깊고 빼어난 것이 낭야산이다.
*滁 : 滁州, 안휘성에 있음
*蔚然울연 : 초목이 우거진 모양
蔚 : 고을이름 울, 번민할 울 / 무성할 위, 아름다울 위, 숲 위, 제비쑥 위
山行六七里 漸聞水聲
潺潺而瀉出于兩峰之閒者 釀泉也
峰廻路轉有亭
翼然臨于泉上者 醉翁亭也
作亭者誰 山之僧智遷也
名之者誰 太守自謂也
太守與客來飮于此
飮少輒醉 而年又最高
故自號曰醉翁也
醉翁之意不在酒
在乎山水之閒也
山水之樂 得之心而寓之酒也
산을 6,7리 걸어 들어가면 차츰 물소리가 들리는데
졸졸 양쪽 봉우리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양천이란 샘물이다.
봉우리 돌아 산길 구불구불 오르면 정자 하나가 있다.
날개 편 새모양을 하고 샘 위로 있는 것이 바로 취옹정이다.
이 정자를 만든 자가 누구인가?
산중 승려 지천(智遷)이다.
정자에 취옹정이라 이름지은 이는 누구인가?
이 곳 태수가 스스로 정자이름을 지었다.
태수는 손님들과 함께 와서 술을 마시곤 했는데
조금만 마셔도 금방 취하고 나이도 제일 많아
그래서 자칭 술취한 늙은이로 불렀다.
취옹의 참뜻은 술 마시는데 있지 않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데 있다.
山水之間에 노니는 즐거움
마음으로 이것을 얻기위해 술로 구실 삼는 것이다.
*瀉 : 一瀉千里, 吐瀉癨亂
*閒간 = 間
*釀泉 : 술 빚는데 좋다는 샘
*翼然 : 날개 핀 새모양을 하고 샘 위로 있는 것이 바로 취옹정이다.
*智遷 : 他 자료에 智仙 표기
若夫日出而林霏開 雲歸而巖穴瞑
晦明變化者山閒之朝暮也.
野芳發而幽香 佳木秀而繁陰 風霜高潔
水落而石出者 山閒之四時也.
朝而往 暮而歸.
四時之景不同 而樂亦無窮也.
해 돋으면 숲속의 자욱한 안개 흩어지고
저녁에 구름이 바위 굴로 모여들면 산에 어둠이 내린다.
이렇게 명암이 변화함은 산중의 아침 저녁 풍경이지.
들판의 이름 모른 방초의 그윽한 향기, 곧게 뻗은 나무가 푸르러 녹음 짙어진다.
가을 바람 높고 서리가 맑고 깨끗하구나
겨울에 냇물이 줄어 하얗게 돌이 드러나는데 이것이 산골의 사계절 풍경이다.
아침에 산에 올랐다가 저녁 때 돌아오는데
사계절 따라 풍경이 다르니 즐기는 것 역시 무궁무진하다.
*林霏 : 숲속의 안개 같은 물방울, 안개비
至於負者歌于途 行者休于樹
前者呼 後者應
傴僂提携 往來而不絶者 滁人遊也
짐 지고 가며 길에서 노래 부르는 자,
지나가다 나무 그늘에서 쉬는 사람.
앞 사람이 부르면 뒷 사람이 답한다.
오르막에서는 몸을 굽혀 손으로 끌어당겨 준다.
오가며 끊이지 않는 자는 유람 나온 저주 사람이다.
*傴 : 구부릴 구 傴背 곱사등이
*僂 : 구부릴 루 佝僂病
臨溪而漁 溪深而魚肥
釀泉爲酒 泉香而酒洌
山肴野蔌 雜然而前陳者 太守宴也
宴酣之樂 非絲非竹
射者中 奕者勝
觥籌交錯
起坐而諠譁者 衆賓歡也
蒼顔白髮 頹乎其間者 太守醉也
계곡에 내려가 물고기를 잡는데
물이 깊어 고기마다 살찌고
양천 샘물로 술을 빚으니 샘물 향이 좋아 술이 맑고 차다.
산나물 안주에 들의 채소들을
손님 앞에 벌려놓으니 태수가 베푸는 연회라.
잔치에서 술 마시는 즐거움엔
현악기와 관악기가 필요 없었다.
활쏘는 자들은 과녁을 맞추고
바둑 두는 자는 이기려 하고
벌주 잔과 산가지가 어지럽게 뒤섞이고
일어났다 앉았다 시끌벅쩍한 것은
모인 손님들이 즐겁기 때문이다.
푸른 얼굴에 백발 늙은이가
그 사이에 쓰러져 있는 것은
술 취해 쓰러진 태수이다.
*蔌 : 푸성귀 속, 채소 속
*觥 : 뿔잔 굉 /
觥籌交錯 : 술잔과 산가지가 뒤섞인다는 뜻으로 성대한 술잔치를 이르는 말
已而夕陽在山 人影散亂
太守歸而賓客從也
樹林陰翳 鳴聲上下
遊人去而禽鳥樂也
然而禽鳥知山林之樂 而不知人之樂
人知從太守遊而樂 而不知太守之樂其樂也
醉能同其樂 醒能述以文者 太守也
太守謂誰 廬陵歐陽修也.
어느새 석양이 서산에 있고
사람들 그림자는 어지럽게 흩어진다.
태수가 돌아가니 따라서 손님들도 집으로 돌아간다.
숲속이 어둑어둑 해지고
위 아래로 지저귀는 새 소리.
바로 유람나온 사람들이 사라져
새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들은 숲속에서의 즐거움은 아나
사람들의 즐거움은 알지 못하고,
사람들은 태수를 따라나온 유람의 즐거움은 알지언정
태수가 그들의 즐거움을 보고 즐거워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술이 취해서는 그들의 즐거움을 같이 즐거워할 줄 알고,
술에서 깨어서는 글로 써서 표현하는 이가 태수이다.
태수는 대체 누구냐? 바로 여릉 사람 구양수(歐陽修)이다.
*陰翳음예 : 그늘져 어두워짐
翳 : 그늘 예
*廬陵여릉 : 구양수의 고향, 강서성 길주에 있음
醉翁亭記(취옹정기) 주석
1. 環滁(환저) : 環은 둘러 싸다. 滁는 滁州. 隋부터 縣을 두었으며 宋以後까지 이어갔다.
淸에서는 隸州였고 安徽省에 속했다. 全椒에서 管轄했고 그 안에 2개의 縣을 두었다.
民國에 州를 縣으로 개칭함.
2. 林壑(임학) : 수풀과 골짜기.
《禮․郊特性》에 『水歸其壑』(물은 골짜기로 흘러가고)라는 기록이 있음.
3. 蔚然(울연) : 草木이 茂盛하고 푸른 모양.
4. 深秀(심수) : 깊고 그윽하고 秀麗함.
5. 琅邪(낭사) : 산이름으로 琅邪라고도 함.
安徽省 滁縣 西南쪽에 있음.
東晉 때 元帝를 琅邪王이라했는데 일찍이 이 산에 머물렀다.
이에 琅邪山이라 함.
6. 潺潺(잔잔) : 흘러가는 물소리.
7. 瀉(사) : 물이 傾斜진 곳으로 흐름.
8. 讓泉(양천) : 원래는 釀泉.
물이 지극히 맑아서 이 물로 술을 빚을 수 있기에 이름지어 졌음.
9. 翼然(익연) : 새가 날개를 편 것과 같은 형상.
10. 臨(임) : 가까이 기대고.
11. 太守(태수) : 官名.
秦나라 때 郡을 다스리기 위해 설치한 郡을 守라 함.
한 때에 太守라 고치고 대대로 이어져 오다가 宋以後 廢止. 흔히 우리가 말하는 太守는 知府의 太守를 말함.
12. 輒(첩) : 每番, 늘, 항상.
13. 之(지) : 於, 《禮․大學》』에 『人之其所親愛而辟焉』(사람이 친하고 사랑하는 것에 偏僻되며)하는 기록이 보임.
14. 寓(우) : 寄, 依賴하다. 依託하다.
15. 霏(비) : 구름이 흩어져 날아가는 모양.
《文選》에 謝靈運의 詩 〈石壁精舍還湖中〉이란 詩에 『雲霞收夕霏』(구름 속의 놀이 저녁에 흩어지는 구름을 잡고)라는 기록이 나옴.
16. 巖穴(암혈) : 산 속에 있는 굴.
17. 暝(명) : 본래는 冥. 그윽하면서 어둡다.
18. 晦(회) : 저녁의 어두움.
19. 野芳發而幽香(야방발이유향) : 봄경치를 이르는 말.
芳은 香氣가 있는 들꽃.
屈原이 지은 離騷에 「雜杜衡與芳芷」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杜衡과 芳芷는 다 香氣를 풍기는 들꽃 이름이다.
發은 花草가 開花한다는 뜻.
《詩經․大雅․生民篇》‥『실발실수』(싹이 저점 자라 싹이 다 나와 알이 배고 이삭이 핀다).
전체의 뜻은 들꽃이 피고 그윽한 향기를 풍김.
20. 佳木秀而繁陰(가목수이번음) : 여름 경치를 이르는 말.
秀는 초목이 개화하다.
21. 風霜高潔(풍상고결) : 가을경치를 이르는 말.
22. 水落而石出者(수락이석출자) : 겨울 경치를 이르는 말.
落은 떨어져 내리는 것.
즉 水位가 낮아지는 것.
23. 四時(사시) : 一年 四季節.
《禮․孔子閑居》에 『天有四時 春夏秋冬』(天下萬物에 四時가 있는데 바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라는 기록이 나옴.
24. 負者(부자) : 負는 지다. 뒤로 물건을 지다.
《易․繫詞》에 『負也者小人之事也』(등에 짐을 지는 것은 小人이 하는 일이다)라는 내용이 나옴.
즉 등에 짐을 진 사람.
25. 塗(도) :道路.
《論語․陽貨篇》에 『遇諸塗』(도중에 그를 만났다)라는 내용이 보임.
26. 傴僂(구루) : 등이 휘어 있음.
《淮南子․精神篇》에 『子求行年五十有四而病傴僂』(내가 걷기 시작한 지 쉰네해 째에 傴僂病이 들었다)하는 내용이 보임. 여기서는 老人을 이름.
27. 提携(제휴) : 끌어 잡아당겨 같이 감.
《禮․曲禮》에 『長者與之提携 則兩手奉長者之手』(연장자를 잡아당겨 같이 가는데 이는 양손을 정중히 손에 얹고 감을 뜻하는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음.
여기서는 어린아이를 뜻함.
28. 谿(계) : 溪. 산골물.
29. 漁(어) : 動詞로서 고기를 잡다.
《易․繫詞》에 『以佃以漁』(사냥하고 고기를 잡는다)라는 기록이 있음.
30. 釀(양): 제조하다.
《史記․貨殖傳》에 『通邑大都酤一歲千釀』(통읍이란 큰 고을에서는 한해에 많은 양의 술을 빚어 팔았다)라는 기록이 있음.
31. 洌(렬) : 맑고 깨끗함.
《文選》에 張衡이 지은 〈東京賦〉에 『玄泉洌淸』(현천은 맑고 깨끗하다)이라는 내용이 있음.
32. 肴(효) : 안주. 본래는 餚. 어육류를 뜨겁게 익혀서 먹는 것의 총칭.
《楚辭․招魂》에 『肴羞未通』(좋은 안주를 아직 다 먹어 본적이 없다)라는 기록이 보임.
33. 蔌(속) : 채소의 일종.
《詩․大雅․韓奕》에 『其蔌維何 維筍及蒲』(그 나물은 무엇인가. 갓 나온 죽순에 부들)이라는 기록이 보임.
34. 酣(감) : 장시간 동안 술을 마시며 즐기다.
35. 非絲非竹(비사비죽) : 絲는 거문고, 竹은 퉁소를 指稱.
36. 射者中(사자중) : 歐陽修의 外集에 있는 九射格의 한 글을 말함.
과녁에 적중하면 서로 술잔을 부딪히며 흥을 돋우었음.
37. 弈(혁) : 바둑을 두다.
38. 觥籌交錯(굉주교착) : 觥은 술잔. 籌는 술을 마시고 그 수를 셀 때 쓰는 기구.
《詩․周南․卷耳》‥『我姑酌彼兕觥』(뿔잔에 술을 따라 마시며 괴로움을 잊는다) 交錯은 서로 교차되어 어지러운 상태.
전체 뜻은 술잔이 서로 부딪혀 어지러운 상태를 말함.
39. 起坐(기좌) :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
40. 喧譁(훤화) :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史記․黽錯傳》에 『諸侯喧譁』(여러 제후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라는 내용이 있음.
41. 懽(환) : 歡. 즐겁다. 《孝經》에 『得萬國之懽心』(여러나라 도처에서 기뻐하는 것을 얻었다)이라는 기록이 있음.
42. 頹然(퇴연) : 쓰러져서 넘어져 있는 모양.
《禮․檀弓》에 『泰山其頹乎』(태산이 무너질리 있오?)라는 기록이 있음.
43. 已而(이이) : 오래되지 않아 곧.
《史記․夏本記》에 『召湯而囚之夏臺 已而釋之』(湯을 불러 夏臺에 가두었는데 곧 풀어 주었다)라는 기록이 있음.
44. 翳(예) : 거의 가리워져 어두움.
《楚辭․九暵遠逝》에 『石嵾嵯以翳日』(아주 험한 바위산이 해를 가려 어둡게 보인다)이라는 내용이 있음.
45. 廬陵(여릉) : 옛 縣名. 지금의 江西 吉安縣. 宋 歐陽修가 여기에서 태어나 글 재주를 닦으며 자라났다.
[출처] 고전명문, 천하절경 구양수의 취옹정기|작성자 AI 크리에이터
环滁皆山也……望之蔚然而深秀者,琅琊也——滁州
作者 翔凤文化漫谈|2020-07-19 20:18:04
滁州市。滁州市为安徽省地级市之一,地处安徽省东部,长江下游北岸。车牌“皖M”,区号“0550”。滁州下辖琅琊、南谯二区,凤阳、全椒、来安、定远四县,天长、明光二市。我们外地人了解滁州,在最开始是因为北宋欧阳修的《醉翁亭记》。
琅琊区。滁州市主城区之一,大名鼎鼎的琅琊山、醉翁亭都在这里。“然而禽鸟知山林之乐,而不知人之乐;人知从太守游而乐,而不知太守之乐其乐也。醉能同其乐,醒能述以文者,太守也。太守谓谁?庐陵欧阳修也。”
南谯区。滁州市政府所在地,滁州市主城区之一。
凤阳县。明太祖朱元璋的故乡,明代时为中度。“说凤阳,道凤阳,凤阳本是好地方。自从出了朱皇帝,十年倒有九年荒。”这话是有失偏颇的,改革开放的号角也是在凤阳吹响的。
全椒县。了解全椒也是因为一位历史人物——文木老人吴敬梓。
来安县。安徽省滁州市下辖县之一,地处安徽省东部,江淮之间。
定远县。滁州市下辖县之一,鲁肃的老家。
天长市。《儒林外史》中第一流的人物“杜仪杜少卿”即是天朝人,我了解天长也是通过《儒林外史》。
明光市。滁州市两个县级市之一,女山湖即在明光。
<강경범의 음주고사>취옹은 무엇에 취하고 싶었을까 |
구양수의 초상화
구양수(1007년~1072년)는 자가 영숙(永叔), 호가 취옹(醉翁) 만년에는 육일거사(六一居士)라 했다.
송 인종(仁宗) 천성(天聖)8년(1030년), 24세에 진사에 합격한 뒤 지제고(知制誥) 한림학사를 지냈고, 영종(英宗)때는 추밀부사(樞密副使).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으며, 신종(神宗) 때는 병부상서가 되었으며, 태자소부로 관직을 그만두었다.
정치상으로 그는 개혁을 추구하여, 범중엄(范仲淹)의 ‘경력신정(慶曆新政)’을 지지하였고, 시에서는 서곤체(西崑體)의 형식적이고 나약한 풍격을 지양하고 송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문에 있어서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써 송대에 있어서 주도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한림학사 시절에 과거시험을 주관하여 소식.소철 등을 선발했으며, 소순(蘇洵).포증(包拯).왕안석.증공(曾鞏) 등을 조정에 천거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경력으로 인해 죽은 뒤 문충(文忠)이란 시호를 받았다.
그의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취옹이라는 호를 쓴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니, 그 이유를 살펴보자.
‘취옹’이란 호를 쓴 이유에 대해서는 그의 <취옹정기(醉翁亭記)>에 잘 나타나 있다.
“……샘 위에 정자가 날개를 펼친 듯 걸려 있는데, 이것이 취옹정(醉翁亭)이다. 정자를 세운 이는 누구인가? 이 산의 스님 지선(智僊)이다. 이 정자의 이름을 지은 이는 누구인가? 태수 자신이 붙인 것이다. 태수는 손님과 함께 이곳에 와서 술을 마시는데, 술을 조금만 마셔도 금방 취했고, 또 나이도 가장 많았기에, 자신의 호를 취옹이라 한 것이다. 취옹의 뜻은 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수간에 있었다. 산수의 즐거움은 마음으로 얻는 것인데 술에 기탁하기 때문이다.……창백해진 얼굴에 백발을 하고서 왁자지껄한 가운데 술에 취해 쓰러진 것은 태수가 취한 모습이다.……”
술에 약한 구양수가 취옹이란 호를 붙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술에 금방 취했고(醉), 나이가 많았기(翁) 때문인데, 취옹이라고 한 의도는 술에 기탁하여 산수를 즐기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이유와 의도를 비약시키면 술에 취하든 산수에 취하든, 그 무엇에 취하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구양수의 외조카딸 장(張)씨가 있었는데 구양수 매형의 전처소생으로써 어려서 부모를 잃었기에 구양수가 그를 양육시켜서 조카 구양성(歐陽晟)에게 시집보냈다. 그런데 구양성이 외관으로 나갔을 때 장씨는 구양성의 하인 진간(陳諫)과 간통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 사건은 개봉부우군순원(開封府右軍巡院)에서 심문하였다.
장씨는 죄를 벗어나기 위해 아무렇게나 진술하다가, 시집가기 전 구양수와 애매한 관계를 언급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우군순원의 판관인 손규(孫揆)는 장씨와 진간의 간통사건만을 보고하여 일을 더 키우지 않았다.
그러나 재상 진집중(陳執中)은 그의 심복에게서 장씨의 ‘자백’을 얻어서, 태상박사 소안세(蘇安世)에게 다시 가서 감찰하여, 장씨의 자백을 마음대로 과장하여 안건으로 기록하도록 하였다. 또한 구양수와 앙금을 가진 환관 왕소명(王昭明)을 감독관으로 보냈다. 그런데 왕소명은 양심적인 관리였기에,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였고, 장씨의 자백이 심한 고문으로 인해 꾸며진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하여 소안세도 손규의 조사기록을 손대지 못했고, 다만 구양수가 장씨의 재산을 꿀꺽 삼키고 자신이 산 것이라는 사건을 첨가했을 뿐이었다. 결국 이 안건은 “증서가 이미 분명하지 않고 판별한 필요가 없다(券旣弗明, 辨無所驗)”고 마무리되었다.
구양수는 결국 정치적인 탄압으로 인해 저주로 폄적을 당한 것인데, 여기서 구양수의 취옹이란 호에 의문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무고하게 폄적을 당했을 경우 대부분은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술에 취하든 산수에 취하여, 조정이나 정사에 대해 관심을 아예 없애버릴 것이다.
그런데 그가 굳이 취옹이란 호를 짓고서 창작한 <취옹정기>는 약간 의도적인 듯한 냄새가 난다. 마지막 부분의 “…사람들은 태수를 좇아 유람하며 즐길 줄을 알지만, 태수가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즐긴다는 사실을 모른다. 술에 취하면 그들의 즐거움을 함께 즐기고, 술에서 깨면 이를 글로써 서술하는 이가 태수다.…”가 그것이다.
필자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그가 취옹이라고 할 때의 나이가 폄적당한 다음해로 본다해도 겨우 40세다. 그런데 옹(翁)이라고 붙인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옛날 봉건사회에서는 관직을 그만두는 일조차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더라도 술에 취하든 산수에 취할 만큼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방법으로써 태수직을 그대로 간직한다는 점은 관직에 미련이 있음에 다름 아니다.
또한 그의 시문을 통해 보면 그는 항상 ‘술병(酒病)’ 혹은 ‘병주(病酒)’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을 볼 때, 술이 약한 것은 사실인 듯 하지만 굳이 술에 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한 것은 누구에겐가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지 않는지 의문이다.
필자가 볼 때 그가 취옹이라고 한 것은 “산수가 되었건 술이 되었건 잠시 동안 취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 시기에 그는 아직까지 혈기가 왕성하여 <붕당론(朋黨論)>을 지어 보수파들을 공격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면은 그가 만년에 호를 ‘육일거사(六一居士)’라고 한 것과는 약간 차이가 난다.
“나에게 ≪집고록(集古錄)≫천권,장서 만권,거문고 하나,바둑판 하나,술주전자 하나, 그리고 그 속에서 늙은 자신, 그리하여 육일이 되었다.”(<三朝言行錄>)고 한 것에서 취옹이란 호를 붙인 시기와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곧 세상을 달관한 늙은이의 정서가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또 그가 저주에 와서 취옹정을 얻기 전에 먼저 풍락정을 얻어서 쓴 <풍락정기(豐樂亭記)>를 보면, “……다행히 그곳의 백성은 그해 곡물을 풍성하게 거둬 나와 함께 유람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곳의 산천을 근거로 하여 그곳 풍속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백성들에게 이 풍년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운좋게 무사태평한 때를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였다. 대저 황제의 은덕을 선양함으로써 백성과 함께 즐기는 것이 자사(刺史)의 직무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정치적인 박해를 받아서 폄적을 당한 사람이 ‘황제의 은덕을 선양……’운운 하는 것은 성인의 마음을 지녔든지, 그것이 아니면 자신의 본심을 속인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필자는 후자라고 보는데, 그 이유가 그의 음주시와 음주사를 보면, 폄적을 당한 억울함을 노래한 시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음주의 내용이 대부분 저주를 떠날 때 이별의 슬픔을 노래할 때(<별저(別滁)>), 친구간의 이별(<송사중사이수(送謝中舍二首)>), 계절의 변화에 대한 감상(<접련화(蝶戀花)>,<학충천(鶴冲天)>,<조중조(朝中措)>,<낭도사(浪淘沙)>,<어가오(漁家傲)>,<소년유(少年游)>,<몽중작(夢中作)>,<춘일서호기사법조가(春日西湖寄謝法曹歌)>,<여사삼학사창화8수(與謝三學士唱和八首)>,<소도(小桃)>,<풍락정소음(豐樂亭小飮)> 등등에 관한 것이었다.
나아가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서로간의 의도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범중엄(范仲淹) 역시 은주(鄞州: 지금의 하남성 은주현)지주로 폄적을 당하여, 같은 해인 경력6년(1046년)에 악주(岳州)지주 등종량(滕宗諒)의 청을 받아 천고의 명문인 “세상사람이 걱정하기에 앞서 걱정하고, 세상사람이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한다.”는 <악양루기(岳陽樓記)>를 썼다는 점이 예사롭지가 않다.
필자는 항상 구양수에 대한 이미지는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다. 그런데 그 나름대로 정치.학술에서 진취적인 면을 가지고 송대의 정계와 시단을 주도한 그의 능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의 ‘취옹’에 대해서는 필자가 너무 비틀어서 해석했을 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샛님같은 그가 굳이 취옹이라고 한 사실에 대해 동정하는 마음이 앞섰음을 고백한다.
아! 세상은 개혁을 추진하여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진리인 듯 하다. 나아가 또한 술이 사람의 시름을 잊게 해준다는 것 또한 그것 못지않은 진리인 듯 하다.
구양수(1007년~1072년)는 자가 영숙(永叔), 호가 취옹(醉翁) 만년에는 육일거사(六一居士)라 했다.
송 인종(仁宗) 천성(天聖)8년(1030년), 24세에 진사에 합격한 뒤 지제고(知制誥) 한림학사를 지냈고, 영종(英宗)때는 추밀부사(樞密副使).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으며, 신종(神宗) 때는 병부상서가 되었으며, 태자소부로 관직을 그만두었다.
정치상으로 그는 개혁을 추구하여, 범중엄(范仲淹)의 ‘경력신정(慶曆新政)’을 지지하였고, 시에서는 서곤체(西崑體)의 형식적이고 나약한 풍격을 지양하고 송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문에 있어서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써 송대에 있어서 주도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한림학사 시절에 과거시험을 주관하여 소식.소철 등을 선발했으며, 소순(蘇洵).포증(包拯).왕안석.증공(曾鞏) 등을 조정에 천거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경력으로 인해 죽은 뒤 문충(文忠)이란 시호를 받았다.
그의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취옹이라는 호를 쓴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니, 그 이유를 살펴보자.
‘취옹’이란 호를 쓴 이유에 대해서는 그의 <취옹정기(醉翁亭記)>에 잘 나타나 있다.
“……샘 위에 정자가 날개를 펼친 듯 걸려 있는데, 이것이 취옹정(醉翁亭)이다. 정자를 세운 이는 누구인가? 이 산의 스님 지선(智僊)이다. 이 정자의 이름을 지은 이는 누구인가? 태수 자신이 붙인 것이다. 태수는 손님과 함께 이곳에 와서 술을 마시는데, 술을 조금만 마셔도 금방 취했고, 또 나이도 가장 많았기에, 자신의 호를 취옹이라 한 것이다. 취옹의 뜻은 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수간에 있었다. 산수의 즐거움은 마음으로 얻는 것인데 술에 기탁하기 때문이다.……창백해진 얼굴에 백발을 하고서 왁자지껄한 가운데 술에 취해 쓰러진 것은 태수가 취한 모습이다.……”
술에 약한 구양수가 취옹이란 호를 붙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술에 금방 취했고(醉), 나이가 많았기(翁) 때문인데, 취옹이라고 한 의도는 술에 기탁하여 산수를 즐기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이유와 의도를 비약시키면 술에 취하든 산수에 취하든, 그 무엇에 취하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왜 취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의문을 풀려면 그가 ‘취옹정’이 있는 저주(滁州: 지금의 안휘성 저주현)태수로 오게 된 사건을 살펴봐야 한다.
그는 30세(1036년)에 관각교감(館閣校勘)으로 있었는데, 당시 범중엄이 당시의 정치를 비평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요주(饒州)로 폄적당했다. 구양수는 그를 변호하다가 이릉(夷陵: 지금의 호북성 宜昌)의 현령으로 폄적당했다. 이후 다시 복직되었는데, 1045년 그의 나이 39세에 저주로 폄적을 당하는 일이 터진다.
‘경력신정’을 추구한 범중엄.한기(韓琦).부필(富弼) 등은 보수파의 공격으로 폄적을 당하고, 또다시 하북전운안찰사(河北轉運按察使)였던 구양수가 이들을 변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그 역시 저주로 폄적을 당한다.
그런데 그의 죄명은 다름 아닌 ‘남녀간의 문란함(帷薄不修)’이었으니, 그속에 무언가 모함의 낌새가 보인다. 무고함을 당한 구양수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구양수는 물론이거니와 개혁파들 또한 치명적인 타격을 당할 일이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호기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