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효 아키텍트-91] 시선(視線) 비틀기 건축가 이승택·임미정
매일경제 2021.07.16
[효효 아키텍트-91] 서울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에서 불과 500여 m, 행정구역은 광진구 구의동, 신주소는 천호대로 지번이 찍힌다. 서울에서 5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아차산' '구의동' '천호대로'가 하나로 조합되지 않는다. 서울은 이질적인 요소들의 구성체다. 야쿠르트 아주머니에게 구의동 주소로 물어 건축사사무소 에스티피엠제이(stpmj), '구의살롱'(2019)을 찾을 수 있었다.
▲ 구의살롱 / 사진제공 = 건축사사무소 stpmj
도로보다 조금 낮은 반지하층, 도로보다 살짝 높은 1층, 그 위에 2층이 올라간 양식은 1980년대 다가구 주택의 전형이다. 구의살롱은 옛 반지하의 추억을 간직한 주택을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주거·업무시설로 리모델링했다.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구별할 수 있는 장식은 계단 등 난간 부분에 두른 스테인리스 마감재 정도다.
구의살롱은 반지하와 1층을 업무시설(근린생활)로, 2층을 업무시설 및 주택으로 사용한다. 1층은 1980년 첫 준공 당시의 흔적과 전 집주인의 확장 공사 흔적, 이번 리모델링의 흔적이 공존한다. 1층 곳곳을 막고 있던 드러낸 벽면, 내력벽을 철거하면서 구조를 받치기 위한 철제 빔도 드러낸 채다. 1층 공간은 방문객이 오면 차를 마시거나 회의를 하는 등 평소에는 비워두는 곳이다. 각종 프로젝트의 모형들도 모아놨다.
애초 1층과 반지하는 분리된 공간이었지만 연결되는 계단 통로를 만들었다. 가벽은 헐고 널찍한 업무 공간으로 만들었다. 벽면에는 한때 문이었던 곳이 창문으로 바뀌거나 아예 막아놓은 흔적이 있다. 모든 걸 남기거나 일부러 과거를 재현하지 않았다.
이승택·임미정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건축학 석사를 취득한 부부 건축가다. 교수들은 한국과는 역할이 달랐다. 파트너처럼 고민한다. 자신의 주장을 타인에게 설득하는 준비 과정을 훈련받았다. 한 건물(Gund Hall)에서 도시, 조경, 건축, 디자인 교과 과정이 경계 없이 진행됐다. 6년여 동안 뉴욕에서 디자인 빌드, 임시구조물(파빌리온), 공공 미술 부문 중심으로 실무를 경험하다 서울로 이주했다. 지난해 임미정은 홍익대 전임이 됐다. 에스티피엠제이는 과정이 오래 걸리는 공동 설계 체제를 지향한다.
경북 예천의 시어하우스(shear house, 2016)는 국내 첫 프로젝트다. 은퇴한 70대 부부는 서울과 고향인 예천을 오가며 머물 별장, 궁극적으로는 말년의 살 집을 고려하며 건축가를 찾았다. 임미정·이승택이 한국에 온 지 막 1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외관은 직사각형 몸체에 박공지붕을 얹은 뒤 지붕 한쪽 끝을 손가락으로 슬쩍 민 모습이다. 외부에서 보면 시어하우스 남쪽 밀려난 쪽의 지붕은 깊은 처마이고, 전면창이 난 곳이 거실이다. 밀어낸 쪽 지붕엔 테라스가 만들어졌다. 지붕마루가 사선으로 틀어지면서 만나야 할 선들이 못 만나 빚어진 비정형의 도형들은 내부를 하얗게 도장한 백색의 선과 면이 만드는 기하학적 풍경을 만든다.
▲ 쉬어하우스 남서측 전경 / 사진제공 = 건축사사무소 stpmj
외장에 쓰인 나무는 원목을 특수 고열 처리해 가공한 소나무 탄화목이다. 뒤틀림이나 온도 변화에 강하다. 건축가는 이 탄화목을 지붕뿐 아니라 집 전체에 썼다. 건축가는 집이 한 덩어리의 미니멀 오브제처럼 보였으면 했다. 집이 밋밋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지붕이 살짝 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묵직한 나무조각(Solid Wood Chunk) 같은 형상이다. 나무 구조와 내부 마감 사이 공기층을 품은 이중 외피(Double Skin)는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다. 프로그램적으로는 방, 화장실, 주방, 서재 등 각기 다른 기능의 공간을 배치하지만, 그것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커다란 거실이 자연스럽게 통로가 되며 계단을 통해 2층에 수직적으로 연결된다.
첫 프로젝트로 목조 건축을 택한 이유는 건축가들의 미국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콘크리트 방식은 고비용이며, 길을 막고 레미콘을 타설하는 작업 공정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민원을 야기한다. 북미 지역은 시공의 안전성, 공기(工期), 환경 문제로 목조를 선호한다. 국내 목조 건축도 시공 방식 등 북미의 영향을 받는다. 한옥은 부재를 쓰는 방식이 상이한 목조다. 설계사무소는 종종 어쩔 수 없이 또는 콘크리트 등 타 공정의 비율이 많지 않은 목조는 직접 시공을 하기도 한다.
▲ 스트레이텀 하우스 북동측 전경 / 사진제공 = 건축사사무소 stpmj
'스트레이텀 하우스(Stratum House, 2017)'는 콘크리트를 재료로 사용했다. 비용이 비싼 노출 콘크리트의 미학을 대신하는 방안을 찾았다. 콘크리트는 시멘트, 물 및 골재의 배합으로 구성된다. 시멘트는 물과 혼합되면서 페이스트를 형성하고, 석재 및 골재와 함께 그 성질이 강화된다. 물의 비율을 높이면 슬럼프 치가 높아져 콘크리트가 스스로 수평에 가까운 형상을 만들고 반대가 되면 슬럼프 치가 낮아져 작업성이 어려울 정도의 덩어리로 마운드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슬럼프 치에 따른 모양의 변화가 나온다.
골재의 크기, 잔 골재와 굵은 골재의 비율에 따라 노출 콘크리트의 면에서 드러나는 재질감의 변화가 물성을 좌우한다. 염료의 배합에 따라 콘크리트 층의 색상이 달라진다. 하루에 끊어내는 방식을 택해 시간의 흔적을 담아낸 입면을 구성했다. 건축가는 이러한 방식을 '도발적 리얼리즘(provocative realism)'이라고 표현한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5층집'(2018)은 대지 94.9㎡(약 28평)로, 협소주택이나 고급 단독주택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 오층집 남동측 전경 / 사진제공 = 건축사사무소 stpmj
아파트는 수평적 주거 문화다. 사각형 평면에 거실과 방, 주방과 화장실 등이 배치된다. 분리됐지만 수평적으로 늘어선 공간은 사용자의 동선과 생활을 침범한다. 5층집은 수직적 주거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높이 14.5m인 집은 고급 단독주택보다도 높다. 이 집은 부부와 성장 과정에 있는 자녀 셋이 산다.
건축가는 버리는 면적 없이 최대한 압축적으로 공간을 만들어내야 했다. 우선은 네모 반듯한 집을 떠올렸다. 박스 같은 긴 직육면체에서 사선 제한과 주차 규격 등 법 규제를 감안했다. 집 뒤편은 사선 제한으로 최고 높이(14.5m)에서 9m까지 깎아지르듯 경사를 둬야 했다. 땅에 꽉 채운 직육면체의 아래 부분을 잘라내 주차 공간과 현관을 뒀다.
가족들에게는 개인별 독립적인 공간이 우선시됐다. 5층집은 이 문제를 수직으로 해결한다. 주어진 면적에서 다섯 명의 개인공간을 만들려면 높이를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개인 방은 10㎡(약 3평)로 최소화했다. 1층은 아이들 공용인 놀이방과 목공 작업실을 뒀다. 2층은 가족의 공용인 주방 겸 거실이다. 3층은 아이들 방이 나란히 있다. 4층도 아이 방, 5층은 부부 방이다. 3층과 4층에는 짧은 복도와 작은 서재가 있다. 1층과 5층을 빼고 각 층에 화장실을 두어 불편함을 덜었다.
이승택·임미정 건축가가 중시하는 태도는 '트윅(tweak)' '미묘하게 비트는 행위'다. 5층집은 적벽돌 재료를 여러 방식으로 비틀었다. 디테일에 신경썼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 존재하는 모르타르(mortar) 색상을 벽돌과 비슷한 붉은색으로 선택했다. 발코니도 물이 잘 빠지도록 적벽돌과 비슷한 색의 화산송이로 채워넣었다. 시공비는 평당 900만원(인테리어 포함, 설계비 제외)이다.
이승택은 산업구조 변화에 관심이 많다. 서울시가 진행한 양재 인공지능(AI) 산업 육성 앵커시설 국제 설계공모에서 '메가 플로어'가 최종 선정됐다. 앵커시설은 연면적 1만220㎡, 지하 1층~지상 7층 규모이며, 양재 일대의 AI 연구소, 관련 스타트업과 연구자 400명 이상이 입주할 예정이다.
메가 플로어는 '시너지를 생성하는 공유 오피스'라는 콘셉트로 다양한 유형의 공유 연구 공간을 제시한다. 공간을 쪼개 업체별로 사용하는 구조의 업무 공간 대신 하나의 공유 공간을 제안했다. 그는 "계단과 화장실 등 코어를 한쪽에 몰아두고 넓은 곳에서 각종 융복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며 "공간은 드론을 날리는 실험도 할 수 있도록 넓고 높게 고려했다"고 말했다.
▲ 메가플로어 조감도(남서측) / 사진제공 = 건축사사무소 stpmj
양재천, 우면산 등 주변의 자연환경을 건물 내부로 적극적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층마다 다양한 외부 공간을 만들고, 건물 사방 어디서든 외부를 볼 수 있도록 유리벽 비중을 높였다. 이런 외부 공간은 건물 밖에서도 보일 수 있도록 매스를 계획했다.
이승택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인구 밀도를 낮추려면 땅을 확장해야 되는데, 땅처럼 제한돼 있는 어쩌지 못하는 조건보다는 건축 폐기물 처리와 재활용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다. 1980년대 지은 건축물은 바닥 난방을 위해 동관을 깔고 주변에 두꺼운 자갈을 깐다. 이승택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이 자갈을 잘게 부숴 활용한다.
이들은 모든 프로젝트를 영문 아카이브로 만들어 북미 온라인 건축 플랫폼에 제출하고 디지털 매거진에 게재했다. 많은 건축사무소가 영상물을 만들어 건축에 대한 대중과의 차이를 메운다.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들 건축가는 설치 미술가(installation artist)로서의 면모도 보인다. 1m 지름의 나일론 망사 소재 원판에 아주 얇은 기둥을 박은 뒤 경사진 잔디밭에 부채꼴 모양으로 무수히 심은 작품 '과.천.표.면'(2020), 사라지는 건축물인 '인비저블 반'(Invisible Barn, 미국),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초청받은 '신에스테틱 센스(Synaesthetic Sense)' 등이 있다. 이들은 건축과 미술의 경계는 모호하다고 본다. 미술은 의외로 스펙트럼이 넓다. 정통 회화부터 조각, 설치, 미디어 아트, 대지 미술까지.
[프리랜서 효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