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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https://cafe.daum.net/dotax/Elgq/3663850
당초 예정대로 아리마 기념에는 출마하지 않은 채 그대로 가을 시즌을 종료한 엘콘도르파사
거기에는 이미 세계를 준비하고 있는 말에게 구태여 아리마 기념에까지 나가게 해 무리시킬 필요는 없다는 와타나베 오너의 판단이 있었다
그리고 엘콘도르파사는 사츠키상과 킷카상, 클래식 2관을 딴 세이운 스카이를 제치고 올해의 최우수 3살마로 선정된다
연도 대표마는 프랑스 G1에서 우승을 거둔 타이키 셔틀. 208표 중 174표 득표라는 말도 안 되는 지지율이였다
그리고 1월 말에 열린 JRA상 수상식
와타나베는 유럽 장기 원정을 정식으로 발표하게 된다
「개선문상은 하루아침에 뚝딱 이길 수 있는 레이스가 아닙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유럽에 적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개선문상을 반년 앞둔 4월 14일
엘콘도르파사는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유럽에 맞는 마체를 만든다」라는 니노미야 조교사의 방침에 따라
일본마로서 전례가 없는 유럽 장기 원정을 결행하기 위해 반년 일찍 프랑스에 도착한 엘콘도르파사
그는 작년 타이키 셔틀이 유럽 원정을 나설 당시 이용했던 토니 클라우드 마구간에 들어가게 된다
당초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컨디션을 무너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물에서부터 건초까지 모두 일본에서 가져와 서서히 현지의 것들로 바꾸어 나가며 적응을 시작했다
이 모든 안배는 타이키 셔틀이 프랑스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준비되어 왔던 것이었다
91년도 일본에 방문했던 토니는 지인의 소개로 와타나베를 알게 되었고
1998년 2월
일본에 다시 방문한 토니와 재회한 와타나베는 그에게 이렇게 부탁했던 것이다
「엘콘도르파사가 강해져서 원정을 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잘 부탁드립니다」
당시 엘콘도르파사의 성적은 아직 2전 2승
엘콘도르파사의 강함이 검증되기도 전부터 와타나베는 세계의 무대에 서는 것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또한 훈련 역시 철저했다
처음에는 일본의 잔디보다 훨씬 길게 자란 유럽의 잔디 마장에 적응하지 못해 가벼운 훈련에도 금새 지치고
비가 와서 땅이 물러지기라도 한다면 엉망진창의 폼으로 달리던 엘콘도르파사였지만
니노미야 조교사의 하드 트레이닝 아래에서 금새 주법을 변화시키고는 근육의 형태도 바뀌어 동체가 더욱 늘씬하게 만들어졌다
「훈련에서는 철저하게 괴롭혔습니다. 그만큼 힘들게 했으니 종래의 상식으로는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는 과도한 훈련을 견뎌내주었습니다. 그런만큼, 프랑스에서 나간 4번의 레이스는 그 몇배나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훗날 니노미야 조교사가 그렇게 회상할 정도의 하드 트레이닝이었다
또한 엘콘도르파사의 유럽 원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바로 타다 노부타카
타이키팜에서 근무하던 그는 쿠로후네 미스터리나 타이키 블리자드의 미국, 캐나다 원정에 함께 하고
타이키 셔틀이 프랑스 원정을 할때도 함께 했던 인물이었다
이후 타이키 팜에서 독립한 그는 이번 엘콘도르파사의 원정에 참여하게 되면서 팀 엘콘도르파사에 합류하게 되는데
뛰어난 언어능력과 정보수집력, 교섭력을 이용해서 팀을 서포트 하던 인물이었다
니노미야 조교사와 에비나 기수가 현장에서 활약하는 장량과 번쾌라 한다면
그는 실로 소하에 비견되는 인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철저한 준비 덕분에 실로 만전이라 할 수 있는 태세로 유럽 원정에 나선 엘콘도르파사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레이스는 바로 5월 23일에 열린 G1 이스파한상이었다
일본과는 달리 게이트인의 진행이 느린 현지의 레이스
여기서도 타다의 교섭력은 빛을 발했다
그의 교섭으로 후순위로 게이트에 들어가게 된 엘콘도르파사
다만 아무리 준비를 했어도 역시 환경의 차이는 컸던 탓일까
일본에서는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흥분된 모습을 보이며 유럽의 무거운 마장에 당황한 엘콘도르파사는
1850m라는 충분히 수비범위 내의 거리의 레이스에서
결국 2착이라는 아쉬운 성적표를 받고 만다
다만 재팬컵 이후 반년만의 레이스인데다 해외원정 초전인데도 불구하고
엘콘도르파사의 분발은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골 300m 앞에서는 한번 선두에 서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쉬운 패배를 했던 것인데다
1번 인기였던 말은 전년도 뤼팽상 (G1) 우승마인데다 프랑스 더비에서 2착을 한 강호인 수준 높은 레이스였다
「아깝군! 이기고 싶었는데…」
분함과 아쉬움에 입술을 깨무는 에비나 기수의 옆에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니노미야 조교사의 모습이 있었다
프랑스에 막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마구간의 스탭들 사이에서는
「과연 언제까지 프랑스에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초전에서 참패를 한다면 금방 돌아가겠지」
라는 걱정 어린 목소리가 많았지만 그런 걱정을 모두 불식시켜주는 좋은 레이스였다
실제로 레이스 직후 현지 경마팬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에는 프랑스의 말이 이겼지만 개선문상에서는 우리 말이 질 것이다」
갑작스러운 G1 2착으로 엘콘도르파사에 대한 기대가 높아짐과 동시에 그와 그의 주변 환경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본래 엘콘도르파사를 돌보는 구무원은 나이가 많은 베테랑이었지만
나이 탓인지 프랑스에 온 이후 매일 기력이 쇠해지던 그는 결국 이스파한상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식사나 환경에도 적응하지 못했던 늙은 베테랑에게 머나먼 서역의 땅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탓할 수는 없지만 그의 대역을 맡을 사람이 누구냐는 문제가 생겨났고
결국 니노미야 조교사는 대신할 인물을 찾는 것 대신 훈련 보조였던 사사키 코우지라는 인물에게 엘콘도르파사를 맡겼다
「솔직히 저로서는 상당히 부담이 컸습니다」
그는 그런 거대한 중압감과 싸우며 엘콘도르파사를 돌보게 되었다
또한 엘콘도르파사 역시 레이스 전에는 무거워 보이는 달리기를 보였었지만
이스파한상 이후의 훈련에서는 경쾌한 움직임을 보여주게 되었다
지금까지 더트에서 잔디로, 마일에서 클래식으로
수많은 벽을 뛰어넘고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었던 엘콘도르파사
그가 점차 본래의 자신의 힘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맞이한 것은 5주 후에 열린 G1 경기
생 클루 대상이었다
긴 잔디의 2400m 코스의 레이스
타다의 교섭으로 레이스 전날 생 클루 경마장에 들어와 사전 답사를 한 에비나 기수
천천히 레이스장을 돌며 주변을 관찰하는 그의 등에는 뜨거운 햇볕 탓인지 땀이 강처럼 흐르고 있었고
레이스장의 곳곳에는 골프공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거 괜찮은건가?」
그런 마장을 에비나 기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는 없었다
하여튼 그렇게 맞이한 생 클루 대상에는 총 10두의 말이 출마하였다
일본의 G1은 거의 풀게이트가 일상이기에 10두 라는 숫자는 적어보일 수도 있지만
레이스 등록 요금이 비싼 유럽에서는 이길 확률이 희박한 경주에는 말을 출마 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출마하는 말이 적은 레이스 일수록 강한 말이 모인다는 뜻이고
이번 생 클루 대상에 출마한 말들도 누구 하나 쉬워 보이는 말이 없었다
전년도 바덴 대상 1번 인기, 개선문상 3착의 타이거 힐
전년도 프랑스 더비, 아일랜드 더비를 제패한 패자, 드림 웰
전년도 개선문상에서 우승을 쟁취한 사가믹스
전년도 독일 더비와 바덴 대상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최강의 암말이라 불리던 보르지아
실로 세계 무대에 걸맞는 강자들이 즐비한 무대
심지어 안 그래도 일본의 마장보다 더 무거운 유럽의 생 클루 마장은 전날에 내린 비로 더욱 무거워진 상태에
엘콘도르파사에게 부과된 근량은 일본에서는 겪어본 적 없는 61Kg이라는 엄청난 무게
생 클루 대상에서 엘콘도르파사와 에비나 기수는 고전을 강요받아야만 했다
레이스 내용도 실로 혈투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달리던 드림 웰이 엘콘도르파사의 뒷다리에 접촉하는 바람에 엘콘도르파사는 외상을 입은 상태로 레이스를 진행해야 했고
다른 말의 다리에서 튕겨 나온 편자가 에비나 기수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그러나 에비나 기수와 엘콘도르파사는 멈추지 않았다
여러 사고로 인해 호흡이 흐트러져 고전을 면치 못하던 엘콘도르파사였지만 3,4번째 위치를 놓치지 않았고
직선에 들어가면서 가속
직선 중간에서는 앞서가던 타이거 힐을 가볍게 제치고는 세계의 명마들을 제치고 홀로 뛰쳐 나아갔다
결과는 2.5 마신 차이의 우승
스피드 심볼리의 킹 조지 도전으로부터 딱 30년
일본말에 의한 최초의 유럽 클래식 거리 (중거리) G1 제패
엘콘도르파사는 드디어 일본 최초로 해외 G1 중거리 우승을 쟁취하는데 성공했다
생 클루 마장이 떠나가라 울려퍼지는 관객의 함성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에비나 기수
그 속에서 니노미야 조교사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냉정하게 바라만 보다 한 마디 툭 던질 뿐이었다
「이걸로 개선문상의 전망이 보였다」
힘든 조건속에서 세계의 강호들을 상대로 압승을 거둔 엘콘도르파사
그는 생 클루 대상 이후로 128 파운드를 받으며 프랑스 더비, 아일리쉬 더비를 압승한 몬쥬와 함께
유럽 4살 이상 말 중에서는 올해 최고 평가의 수치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레이스 중에 입은 오른쪽 뒷다리의 부상
그곳에 세균이 들어가며 봉와직염이 발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금방 붓기가 빠지는 부상이었기에 매스컴에서도 「경상」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토니 마구간의 베테랑, D・미셸이 밤낮으로 환부를 보살펴도 좀처럼 붓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이에 잠시 일본에 귀국해 있던 니노미야 조교사는 수의사인 나가타 히로시를 급히 프랑스로 파견
심볼리 루돌프도 담당했던 베테랑 나가타 수의사는 엘콘도르파사의 환부에 붕대를 감으며 침음성을 흘릴 수 밖에는 없었다
엘콘도르파사의 부상은 생각보다 심한 중상이었던 것이다
결국 부상이 심해져 굴건염과 비슷한 증상까지 갔던 엘콘도르파사는 부상을 치료하는데 한달을 소모해야만 했다
그의 붕대가 풀린 것은 8월 2일
7월부터 시작하려 했던 훈련은 8월로 미뤄져야만 했다
자잘한 사고는 이후로도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은 방목지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던 엘콘도르파사와 가까운 길에 주차되어 있던 트럭이 마치 폭발하는 듯한 굉음을 내며 급발진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소리에 놀란 엘콘도르파사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다리에 담쟁이 덩굴이 끼여버렸다
놀라움과 고통에 패닉에 빠져버린 엘콘도르파사는 그 자리에서 몇 번이나 두다리로 일어서며 발광을 했고
고삐를 잡고 있던 사사키는 목숨을 걸고 엘콘도르파사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몸의 위험을 느껴 고삐를 놓아버릴까 하고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놓아버려 (엘콘도르파사가) 큰일이 난다면 개선문상은 날아가 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저히 고삐를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니노미야 조교사에게도 사고가 있었다
니노미야 조교사가 머물던 숙소의 위치는 샹티이의 도심속
라몰레 지구에 위치한 토니의 마구간까지는 도보로 40분 정도가 걸리는 위치에 있었다
시골마을인 샹티이에서 아침 일찍 택시를 잡는 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따라서 니노미야는 자전거를 구입해 마구간까지 매일 자전거로 통근을 했었는데
언제나처럼 자전거로 통근을 하던 어느날, 니노미야 조교사는 코너를 앞에 둔 내리막길을 달리다
연석을 타고 넘어가 미끄러져 버리는 바람에 늑골 골절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성적만 본다면 일견 순조롭기만해 보이는 엘콘도르파사의 유럽 원정에는
사실 수많은 위기가 존재했던 것이다
부상에서 회복한 엘콘도르파사가 가을의 초전으로 선택한 것은 포와상 (G2, 2400m)였다
개선문상 본방과 동일한 마장에 같은 거리
개선문상을 노리는 말로서는 당연히 거쳐가야 하는 레이스였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관성에 의해 아무 생각없이 결정된 경주가 아니었다
「포와상이 열리는 것은 9월 12일, 지난 생 클루 대상으로부터 2달 반이라는 간격이 미묘했다」
완전히 휴식을 취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고
그렇다고 어중간한 레이스를 나간다면 피로가 남을 것이다
마지막 레이스로부터 2달 반
니노미야 조교사에게는 신중한 판단을 강요하는 미묘한 시간이었다
이에 니노미야 조교사는 타다를 유럽 각국에 파견, 다른 레이스의 사전조사를 시키게 된다
예를 들면 영국의 챔피언 스테이크스
간격은 어떤가? 경마장의 잔디는 어떤가? 운송 경로는 어떻게 되는가? 등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조사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니노미야 조교사는 포와상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방은 어디까지나 개선문상입니다. 오해를 각오하고 한마디 하자면 전초전은 져도 괜찮은 레이스. 그 정도로 가벼운 마음으로 포와상에 출마했습니다」
그렇게 출마하게 된 포와상
당초에는 출마하는 말이 4두에 불과해 그것만으로도 일본의 보도진과 경마팬들은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이후 1마리가 더 회피
출마하는 말은 엘콘도르파사를 포함해 이전에 만났던 보르지아와 크로코 루쥬
단 3두에 불과했다
개선문상은 고액의 상금이 걸린 G1 레이스이기 때문에 말이 모인다
하지만 그 3주전에 열리는 전초전에는 포와상 이외에도 베르메이유상, 니엘상이 존재한다
각각 코바, 암말, 3살마라는 조건만 다를 뿐 모두 같은 2400m의 레이스
이것만으로도 출주마가 나뉘는데다가 프랑스 이외의 유럽 각지에서도 비슷한 레이스가 존재하기에 무리하게 롱샹까지 올 필요가 없다
또한 전술했다시피 유럽의 레이스 등록 요금은 비싸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포와상에 말이 모이지 않은 것도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모인 3두의 말을 보고 에비나 기수는 이렇게 말했다
「뭐, 훈련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딱 적당하려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혼잣말이었지만
게이트가 열리고 나자 그곳에는 훈련 같은 미적지근한 레이스가 아닌
진정한 엘리트가 되기 위한 스트레스 테스트의 시험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엘콘도르파사는 스타트와 동시에 선두에 섰다
그리고 선두를 유지한채 언덕을 오르고 내려 순조롭게 직선을 향했다
이 시점에서 이전 이스파한상에서 엘콘도르파사에게 이미 패배를 맛봤던 크로코 루쥬가 탈락한다
하지만 보르지아는 쫓아붙었다
그리고 안쪽을 찔러들어오며 눈 깜짝할 사이에 엘콘도르파사를 제치고 선두에 섰다
여기서 에비나 기수의 승부사 기질에 불이 붙었다
순식간에 이를 악 문채 필사적인 형상으로 보르지아에게 인파이트를 신청했다
호각을 보이며 보르지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린 엘콘도르파사
잠시 보르지아와 함께 달린 엘콘도르파사는 재차 보르지아를 제치고는 다시 선두를 탈환
세계 최강의 암말을 침몰시키고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이기는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였어서 솔직히 마지막에는 질 수 없다는 기분으로 달렸습니다. 힘든 레이스였습니다」
에비나 기수는 웃음을 보이지도 않은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패독으로 돌아온 엘콘도르파사와 에비나 기수를 바라보는 엘콘도르파사 진영도 그다지 유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휴식 이후, 좋은 시금석이 될거라 생각했던 레이스 치고는 힘든 내용이었다… 다음이 본방인데 과연 피로나 반동이 남지 않을런지…」
누구도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모두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렇다고 이길 수 있는 레이스를 2착으로 들어올 수도 없는 일
그렇기 때문에 에비나 기수에게 있어서 「힘든 레이스」였던 포와상이 아니었을까
포와상을 우승한 엘콘도르파사는 높은 지지를 받는 유력마로 점찍혔다
같은날 열린 또 하나의 전초전, 네일상에서 우승한 3살마 몬쥬와 2강 구도를 형성하게 된 엘콘도르파사
본방이 다가오며 일본의 보도진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유럽에 건너오기 전에는 「어디까지 통할 것인가」라던 기사들이
「이길 수 있는게 아닌지?」,「이길 수 있다!」로 바뀌어 있었다
세간이 그렇게 엘콘도르파사에게 열광하던 도중, 머리를 감싸쥐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프랑스 원정 이후 반년간 홀로 단 한번도 귀국하지 않고 엘콘도르파사의 곁을 쭉 지켜온 남자
사사키였다
본방까지 남은 시간이 점점 촉박해져가는 가운데, 엘콘도르파사의 달리는 모습이 그의 표정을 일그러트린 것이다
「사실 (엘콘도르파사의) 기운이 없어져서 달리는 폼이 무너지는 날이 계속됐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앞으로 조금 남은 여기까지 와서 회피할 수는 없다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정말 고민을 했었습니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모두가 지금까지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질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사키는 좀처럼 니노미야 조교사에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런 사사키를 구원한 것은 니노미야 조교사의 한마디였다
「1년 내내 팔팔하게 유지되는건 불가능하다. 당일이 돼서도 상태가 안 좋다면 회피하면 그만이다」
엘콘도르파사의 폼이 무너진걸 전하진 않았지만 니노미야도 최근 엘콘도르파사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다가온 최종 훈련일
에이글의 마장에서 달린 엘콘도르파사는 사사키를 놀라게 했다
에비나 기수를 태우고 달린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무너진 폼 대신 경쾌한 움직임만이 보일 뿐이었다
「에비나씨가 타서 달리자 마자 지금까지의 무너졌던 폼이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이번주 초만 하더라도 출마 회피를 고민하고 있던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
이것이 진정한 기수의 힘인가 하고 사사키를 감복시킨 에비나 기수의 솜씨 덕분에
엘콘도르파사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컨디션을 되찾고 좋은 상태로 개선문상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레이스 3일 전 발표된 엘콘도르파사의 게이트는
14두 중 가장 안쪽인 1번 자리
14두라는 많은 말이 출마하는 가운데 마크 당하는 인기말로서 불리한 자리인 가장 안쪽 자리
하지만 에비나 기수의 생각은 달랐다
「다른 말들에게 둘러 쌓일 바에야 자신만의 레이스를 하자」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그날이 도래했다
1999년 10월 3일 일요일
전날부터 쏟아져 내린 폭우는 레이스 당일에는 다행히도 그쳤지만 마장의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당시에는 페네트로메터라는 수치로 마장의 상태를 발표하곤 했는데
이 때의 수치는 개선문상 역사상 최악의 수치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최악의 마장이었다
유력마 중 하나인 데이라미의 오너인 셰이크 무하마드가 마장을 직접 밟아보며 출마 여부를 고민하는 가운데
니노미야 조교사는 이미 결단을 내린 상태였다
「자연은 거스를 수 없다. 마지막 시련이라 생각할 뿐」
출마 진영에게 배포된 점퍼를 입지 않고 새로 지은 양복을 입은 채 엘콘도르파사와 함께 패독에 오른 사사키는 고삐를 에비나에게 건네주었다
길고 긴 원정도 오늘 이날만을 위해서
와타나베, 니노미야, 사사키, 토니, 타다… 엘콘도르파사와 함께 달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마음을 품고 지켜보는 가운데
제78회 개선문상
그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가 「엇?!」하고 놀랄수 밖에는 없었다
몬쥬 진영이 준비한 래빗 (페이스 메이커) 징기스칸 대신
엘콘도르파사가 도주를 한 것이다
다른 13두를 제치고 선두에 섰다
크로코 루쥬, 보르지아, 타이거 힐, 데이라미, 판타스틱 클라이트 그리고 몬쥬
그 모두를 제치고 선두로 달리는 엘콘도르파사
입술을 깨문 채 숨 죽이고 지켜보는 타다
프랑스어로 ‘천천히’를 뜻하는 「두스몬」만을 외며 지켜보는 사사키
조용히 전황을 살피는 니노미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엘콘도르파사는 누구에게도 선두의 자리를 내주지 않은 채 언덕을 오르고 언덕을 내리며
잔디밭을 질주했다
직선에 진입한다
여전히 선두
아니, 오히려 뒤따라 오는 후속들과의 거리가 벌어져만 간다
그 차이는 실로 3마신
이대로 도주를 끝낼 수 있을 것인가
스탠드의 함성이 한층 더 높아지고
모두가 엘콘도르파사를 주목했다
「이기는건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후방의 마군에서 단 한두
홀로 뛰쳐나오며 선두를 향해 질주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프랑스의 3살마 몬쥬
엘콘도르파사보다 3.5kg 가벼운 56kg의 근량이라는 아군과 함께
「엘콘도르파사 강하다! 리드를 3마신 유지하며 200m를 통과!」
몬쥬가 엘콘도르파사를 쫓아온다
「개선문상이 눈앞이다! 개선문상이 눈앞!」
쫓아온다
「하지만 몬쥬가 왔다! 몬쥬가 왔다! 바깥에서 몬쥬!」
그리고
닿았다
「몬쥬가 선두! 몬쥬가 선두!」
일본에서 응원을 위해 달려온 팬들의 함성이 비명으로 바뀐 것은 그 직후였다
완전히 제쳐진다고 생각했던 엘콘도르파사는 이대로 질 수 없다는듯이
다시 한번 쭉 앞으로 나아가며 몬쥬와의 차이를 좁히는 모습을 보였다
엘콘도르파사의 근성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낀 남자, 에비나 기수 역시 질 수 없다는 듯이 몬쥬를 쫓았지만
끝내 힘이 다해버렸다
세계의 정점을 노리고 긴 세월동안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이루어진 세계 제패의 꿈
그 꿈은 젊은 왕자의 맹추격 앞에
불과 반마신 차이의 패배라는 종착점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쉬운 패배였지만 3착인 크로코 루쥬와는 6마신 차이, 4착인 레겔러와는 11마신 차이라는
압도적인 결과였고
그가 역대 최악의 마장에서 남긴 2분 38초라는 기록은
역사속에 새겨지게 되었다
훌륭한 레이스 내용 덕분일까
레이스 후 패독으로 돌아온 엘콘도르파사를 맞이한 것은 가열찬 박수와 함성소리였다
「우승한 몬쥬가 들어오는 줄 알았습니다」
타다가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로 엘콘도르파사는 경기를 지켜본 모두에게 큰 인상을 남긴 것이다
다음날 아침
현지의 경마 전문지 파리튤프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올해 개선문상에서는 2마리의 우승마가 있었다」
「아마 단단한 마장이었다면 졌을거라 생각한다. 그만큼이나 몬쥬에게 유리한 조건속에서도 그 결과라면, 우승마는 2마리나 다름없다」
몬쥬의 조교사였던 존 하몬드는 그런 말을 남겼다
또한 와타나베 오너는 전례 없는 일본말의 장기 유럽 원정과 더불어 오너 브리더로서의 공적이 인정받아
1999년 프랑스에서 가장 활약한 경마인에게 주어지는 란셀 골드상을
외국인으로서 최초로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세계 경마사에 엘콘도르파사라는 이름을 깊게 새긴 1999년의 개선문상 이후
엘콘도르파사는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30여년간 그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세계의 벽
개선문상에서는 중마장의 귀신, 몬쥬에게 아쉽게 패배해 2착에 머물렀지만
일본 경마사상 개선문상에서 2착을 해낸 3두의 말 중 필두로서
그 누구보다도 먼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세계의 무대를 달렸던 그는
넓은 창공을 나는 한 마리의 「괴조」였음이 분명하다
엘콘도르파사 : 11전 8승 2착 3회 그중 국내 7전 6승, 해외 4전 2승
최초로 3살마로서 재팬컵 제패
일본 경마사 최초로 해외 G1 중거리 우승
일본 경마사 최초로 개선문상 2착 달성
일본 경마사 가장 높은 세계 랭킹인 134 파운드 기록
일본 국내 경기를 뛰지 않고도 1999년 연도대표마 수상
2014년 현창마 (명예의 전당)에 선출
출처 : 우마무스메 갤러리 - '말딸 고유 칭호 유래 - 엘콘도르파사 「괴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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