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 탄원서 백승자 망초의 입장에서 보면 마땅히 개망초지 개복숭아 개살구…… 본부인이라면 그리 부르고 싶은 첩 같은 신세 묵정밭이든 불모지든 억척에 뺏긴 땅이 삼천리 구석구석 닿지 않은 곳 없으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낸 꼴 아니겠나 더구나 왜倭에서 경술국치 해에 들어온 망국초고 보면 왜풀이라는 불청객 소리를 들어도 무릎 꿇어 읍소할 처지지만 천하가 굶주리는 보릿고개에는 나물이 되어 살을 주고 약이 되어 피를 주고 꽃이 되어 풍년을 주고 아궁이 다비까지 해 주는데 엄연히 국화꽃과에 이름까지 있는 족보를 풀인 듯 꽃인 듯 자기들 심사꼴리는 대로 이랬다저랬다 개취급이니 홍실망종화* 옆에서는 무참하게 뽑히는 잡초였다가 메마른 찻길 옆에서는 아쉬운 대로 꽃무리라네 한들한들 앙증맞은 국화들이 떼창을 부르며 흔들어주니 군악대 사열이라도 받는 듯한가 통 크게 자연사自然死를 허락하네 강산은 십 년이면 변하고 세상은 십 일이면 바뀌는데 이 땅에 뼈 묻은 지 백 년도 넘은 이름에 분명한 명패 하나 걸어주지 않는 야박함이라니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 대로라면 만 번은 용서받고 사랑받았을 터 얄궂은 세월은 묻어버리고 화끈하게 화해**해 보자구요 우리 끝내는 한 땅에 묻히고 말 것인데 *꽃말 : 변치않는 사랑, 당신을 버리지 않겠어요 **개망초 꽃말 ----박용숙 외, 애지문학회 사화집 {멸치, 고래를 꿈꾸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