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대명률이라는 명나라 법을 그냥 가져다 사용했습니다. 죄인 귀양 보낼 때 만리를 보내는데 한반도에는 만리가 없으니까 한양에서 가장 먼 함경도나 전라도 끝자락으로 보냅니다. 그곳이 해남이고 강진입니다. 별로 크지도 않은 도시 순천에서 귀양의 고을 오지 해남까지 오후 버스를 타고 갈 사람이 있을까요? 정답은 한 명도 엄따 입니다. 그래서 버스 시간표가 듬성하지요. 그럴 줄 몰랐습니다. 오밤중에 도착하겠네 어쩌지? 흠, 강진은 버스가 금새 있구만.
강진으로 바꾸고 돌산도님도 그 쪽으로 마중 나오기로 했습니다. 돌산도님은 강진 어느 버스 주차장으로 도착하냐고 확인을 해달라고 해서 버스 기사님에게 물으니 강진은 버스 주차장 하나 밖에 없다는 것. 그럴 줄 알았습니다. 괜히 물어서 전라도 방면 생초짜 티냈잖어. 기사 아저씨가 뼉다구 물고 있는 개처럼 좀 괄괄하니 영~말 걸기 싫은데…쓸데없는 것을 물으라 그래…
애초 해남으로 버스표 끊었을 때도 해남 어느 버스 주차장으로 들어오냐고 물어보라 그래서 물었더니 수화물 담당하는 아저씨가 아주 웃긴다는 표정으로, 무슨 하루살이가 감히 영생을 물어보냐는 식으로, 해남에는 버스 주차장 하나 밖에 없다고 대답했는데…어! 내비에는 버스 주차장이 두개 나오는데?...이런식으로 중간에 나를 두고 가면무도회에 택배 배달가서 누구에게 떨구나 망연자실 시추에이션을 만들구 말이야…그럼 내가 수화물 아저씨에 따지란 말이야...버스 주차장 두개 있는데 왜 하나 있다고 얘기하냐고?
역사는 반복하지만 버스 주차장도 반복하네.
세상은 늘 선량한 사람이 이해해야되.
버스를 탈 때는 몰랐는데 그 버스는 완행버스로서 면단위는 다 스탑하고 그런 만큼 국도로 다니니 전라도 남부 지방을 탐험하는 돌이켜보면 최고의 버스 여행이었습니다. 순천-벌교-보성-장흥-강진이 주요 읍이고 그 사이 사이에 모든 면에 다 정지합니다. 그리고 그곳들은 모두 처음 가본 곳이었으니 정차하는 곳마다 항구마다 정을 주는 마도로스의 마음이 되어서 마구 설레는데…
벌교…벌교하면 생각나는 것…”목포에서 돈 자랑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 안그래도 읍내의 벽에 커다랗게 인쇄 해서 붙여나서 여행객을 쫄게하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벌교 부동산 중개소 선전이었던 것. 아니, 복덕방 선전을 왜 호전적으로 하는거야.
벌교했을 때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여러분은 책 좀 읽은 분입니다. 400만부가 팔렸고 6년의 집필 기간을 통해서 원고지를 쌓으면 우리 키를 훌쩍 넘어가는 태백산맥 10권의 시작이 벌교로부터 시작합니다. <태백산맥> 지금와서 다 읽기는 좀 뭐시기 거시기 하니까 영화를 봐도 되고...저는 두번이나 봤습니다... 역시 첫 장면이 여순 반란군 룰루랄라 벌교 접수로 시작합니다.
<태백산맥> 그래서 등산하는 책 인줄 알았다. 그런데 읽어보니 재미있으니까 그냥 넘어가겠는데 벌교에서 사건이 벌어지니 제목을 <조계산>으로 했어야 했다는 제목에 대한 시비는 애교스런 것이고 경찰과 검사실에 수시로 들락대면서 고초를 겪습니다.
문제되는 부분은 임시정부의 건국 이념과 남로당의 건국 이념이 같고, 미군정의 후원으로 들어선 친일세력 정권의 정당성은 없고 그런 만큼 반정부 세력의 봉기로서 내전은 필연적이다 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인간 사회가 그리 간단하게 정리가 되나? 원리원칙보다 권력과 야합, 탐욕과 집착, 의리와 동정, 기득권과 안면깜, 죄와벌, 적과흑, 뭐 이런 복잡 미묘한 감정들과 구조적인 기득권과 부조리에다가 목마와 숙녀, 사립문에 기대어 보는 달까지 합쳐져서 사회 현상이 흘러갈텐데 그렇게 간단히 역사를 정리하는 확신성...
우익 단체에 협박도 많이 받고, 검사는 조사하면서 “왜 그런 책을 써요?”라고 물었다는데, 검사도 먹고 살기 힘듭니다. 검사는 현장직이 아니고 사무직입니다. 경찰에서 올라온 수사기록을 가지고서 기소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서류속에서 파뭍혀 사는 일반 사무직입니다. 권력에 비해서 박봉에 시달리고 퇴근할 때 집 앞에서 귤 한봉지 사들고 들어가는 것은 일반 사무직과 하등 다름없습니다. 단지 일반 사람의 우러름에 그냥 그 맛으로 과로를 버티어갑니다. 그러니, 수사권 앗아간다면 일거리 줄어드니까 좋아해야지...왜 그리 방방 떠...뭔가 딴 생각 있는거 아녀?
조정래 작가는 잡지사 주간을 하면서 그에 걸맞게 친일문학가들 정립에 들어가면서 사죄해야한다는 특집을 마련합니다. 살아있는 가장 큰 친일의 거물은 서정주…그런데 서정주는 자기의 스승…찾아가서 그냥 잘못했다 한마디만 해달라고 부탁하나 “너 옛날부터 문제 많았어 고얀놈”하면서 서정주 거절. 죽기전에 인터뷰하는데 “거 참 잘 봐주쇼.”라고 거절하고 사망. 그래서 비중이 낮은 친일문학가들은 모두 덩달아 사죄 거절. 사과는 개나 줘라.
그들이 참회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 역사가 바로 안선다고 하는데 꼭 그리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끝까지 사죄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고 계속 사회 이슈가 되었기에 사죄 한마디하고 잊혀지는 것보다 오히려 역사 교훈은 더 끈질기게 남지 않았을까. 오히려 교훈면으로 더 좋은 역할을 했지 않을까? 저러면 안되겠다는 교훈. 부정의 교훈. 저렇게 닮아야겠다는 것은 긍정의 교훈.
‘이태’라는 지리산 빨치산 출신 기자는 <남부군>이라는 자기 수기를 쓰고 빨치산 측의 조직, 전투방법등 생생한 증명이 됩니다. 시절이 수상해서 80년대 그냥 원고로만 가지고 있는데 이병주라는 작가가 소문 듣고 찾아와서 빌려가 자기의 대하소설 <지리산>에 2권을 모두 집어넣어서 7권으로 완성 출판하고 성공합니다. 거기에 <태백산맥>까지 성공하니 뒤늦게 이태는 <남부군>을 출판하고 표절 문제가 발생합니다.
현재, <남부군> <태백산맥>은 모두 유투브에 올라있어 영화로 볼 수가 있고 둘 다 안성기 주연이고 한국 명화로 남아있습니다. 최민식, 최진실, 임창정등이 초짜 배우였을 때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지리산>도 미니 씨리즈로 만들어졌습니다. 역시 전 모두 봤습니다.
여순 반란 사건을 일으킨 14연대, 그 이후에 일어난 4연대 38선 월북 사건으로서 군은 4자를 없앱니다. 현재 4자가 들어가는 연대, 사단은 없습니다. 6.25가 일어나기 전에 38선에는 부단한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서 국군 사상자가 2만명을 넘을 정도로 1950년에 이르기 까지 준 전시 상태였습니다. 그때 도발에 맞서 싸워 죽어간 2만명 국군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북한이 친일파를 숙청하고 토지를 국유화해서 지주계급을 없앤 것만으로 남로당의 노선이 정통성을 가졌다고 한다면 왜 피란민들은 북에서 남으로만 향했는지 왜 반대 방향은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만, 사회의 다양성을 위해서 그런 주장도 가능한 것이고 또한 그런 주장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니 우린 그만큼 성숙한 민주국가가 되었습니다.
“내 그대의 주장에는 동의 하지 않으나, 그대가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그대와 힘을 합쳐 싸우겠다. 볼테르가 루소에게”
그런 역사의 무게에 비해서는 벌교는 아직도 쿨럭 시골이어서 중앙 도로가 이차선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길가의 인도와 차도의 구별도 명확하지 않고 혼잡하며 좋게 얘기하면 추억적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전근대적. 개발의 바람에 한참 비켜난 시간이 정지한 곳. 옛날 한국의 모습. 크기도 작아서 <주먹자랑 부동산> 벽보 선전 보고 웃다보니 그냥 벌교를 벗어나서 남도의 벌판.
운전사 아저씨 바로 뒤에 앉았고 아저씨에게 물 한 병 사드린 것이 어떤 계기가 되어서 갑자기 말을 거는데…
“어디서 왔소?”
말도 상당히 짧았고 벌교, 주먹, 여순사건, 학살의 이미지로 증폭되는 웬지 쏴~해…
-미국요. 김해라고 하고 싶었는데 찰라적으로 그렇게 결정했다. 미국도 맞는 말이긴 하다. 김해 콕 집어서 어딘지 모른 사람들 쌔고 쌨드라. 말 길어진다.
“강진 왜 가요?” 그런 거 아저씨가 왜 물어요?라고 할 수는 없었다. 우린 벌교 근처임을 기억해야한다.
-친구가 해남에 살아요.
“그 친구는 왜 해남에 살아요? 우린 또 다시 가을 속으로 떠나간 숙녀의 옷자락을 기억해야한다. 상심한 별이 가슴에 부서진다.
그거 좋은 질문이다. 아저씨가 직접 물어봐라. 나도 궁금하다. 왜 종로 토박이가 해남 탁구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부시럭 대고 있는지.
-미국에서 친군데 역이민 했어요. 역이민이 먼지 알아요?라고 하면서 해남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아양을 보탰다. 그것이 일종의 처세술이라고 할 수 있지. 벌교에 가면 갑자기 없던 처세술이 샘 솟지.
아저씨는 남도의 인구가 줄고 있다. 그래서 버스 탈 사람이 없다. 노선은 적자이고 국비로 메꿔준다. 라고 국가 예산까지도 걱정하는 애국심을 발휘할 때, 나 또한 우리 역이민 모임을 보길도에서 할 정도로 이곳은 긍정적 고장이니 미국에서 왕창 역이민와서 인구 증가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위로했다. 지나고 보니 상대방의 걱정을 함께 할 정도로 나는 공감력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사람일수도 있겠다.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시원한 그늘이 생기면 주변에 나눠줄 생각을 해야한다. 정도전"
"천하의 즐거움을 보살피고 난 후에 나의 편안함을 추구하리라...누군지 기억안나. 모르면 일단 공자라고 해야 확율 높아."
“해남에서 뭐 할꺼요.”
-보길도 놀러갈거예요. 그랬더니 자기가 관광버스 운전을 했다. 보길도는 너무 잘 안다. 보길도 관광 안내가 시작되었는데…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1>에 나오는 남도 답사 이야기의 아름다운 황토빛 서정을 눈에 담으려고 했는데 운전수 아저씨가 너무 친절하게 관광 가이드를 하면서 저 다리는 일제시대때 지은 거다. 그 옆은 현대에 만든거다. 그런데 일본넘들이 건설한 것은 생생한데 우리가 만든 것은 수리 수리 마수리다. 그래 우짜자고. 일제 시대로 돌아갈까? 겨우 일본말되니까 해방되고 말이야.
그러다 보니 아! 강진. 드디어 강진에 도착했습니다. 쩌기 똘산도 님이 보이네. 순천에서 강진행 아니면 해남행 완행버스를 타면 그리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장착하고 탄다면, 그리고 그 운전수 아저씨만 피한다면, 남도 시골의 서정의 정수를 관통하는 미학적 버스 여행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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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술 한잔 하고 써서 그렇습니다.
비록 그 운전수 아저씨가 걸리더라도
순천에서 강진 , 해남까지 완행버스를 한번 타보고 싶게 만드는 글입니다.
언젠가는(불끈!)
안단테...바흐의 느린 피아노 음악을 좋아합니다.
'종로 토박이'
신참이 동병상련 심하게.. 몰입되는 단어입니다.
물론 역이민하면, 바로 종로 제 어릴적 살던 한옥부터 가보려 작정하고 있습니다.
겨우 일본말 되니까 해방되고 말이야~
겨우 미국말 되니까 역이민가고 말이야~~ 무릎을 칩니다 ^^
선배님 화이팅!!
김훈 작가가 종로 토박이 입니다.
"고향이라고 가봐야 아는 사람 하나 남아있지 않고 먼지만 폴폴"
제가 실제로 영어가 되니까 현재 한국에 와있는 형편입니다.
@Spinoza ㅋㅋㅋ
저도 곧 선배님 따라 나갑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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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도에서 막걸리 한 잔 해요!
오늘도 서너대여섯 번 빵빵 터지며 잘 읽었습니다.
저같으면 뼈있는 농담을 해서 분위기 싸하게 할텐데, "착한" 철학자이시기에 가능한 뼈가 있는 듯 없는 듯 적절한 인용과 응용, 풍자.. 글의 전개가 아주 자연스럽네요.
역시 우리 나이엔 boneless chicken이 최고!
* 위에 상처자국님의 "겨우 미국말 되니까 역이민하고 말이야" 라는 훌륭한 응용에 고무되어 저도 농담 한번 해봤는데.. 썰렁하네요 ㅎㅎ
컨트러버셜할 수 있는 구절을 들어가서 지웠습니다.
언제나 댓글로서 응원해주는 그 마음결 감사하고, 시간이 되시면 돌산도 오세요.
이민 올 때
다른 책들은 다 처분하고 태백산맥은 끌고 왔어요.
벌교의 사투리로 등장하는 욕설과 음담패설이
상스럽거나 외설스럽지 않게 느껴진 것은 두 번째 읽을 때였답니다.
오늘은 스피노자님 덕분에 끌고 오기만 하고 이민 후
한 번도 읽지 않은 태백산맥을 다시
읽기 시작해 보려고요.
벌교의 구수하고 걸쭉한 사투리 맛에 빠져볼랍니다.^^
감사합니다.
크리스머스 분위기가 뭉클하면서 동부의 눈이 흔했던 겨울이 생각납니다.
늦게 잠들었는데 너무 일찍 일어나
몽롱한 아침에 웃느라고 눈이 번쩍!
'겨우 일본말 되니까 해방되고...' ㅋㅋ
혹시 친일파 명단에 오르시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글 잘 읽었네유. 존 주일 되셔유.
6월에 돌산도 내려오시지요.
이런 어려운 글에는 답글을 안쓰는게 상책인데... 글이 태백산맥보다 신나여.
그곳에 갈때는
집 근처에서 산불이 났다고 들었는데
별 피해 없나요?
@ps 광화문 wow... 다행으로 우리집은 피해가 없었습니다.
일하는데 보험사에서 대피하라고 위험문자가오고... 라구나 비치 바닷가 언덕에서 들불이나서 집이 20여채 탓데여.
인명피해는 없었다는데, 바람이세서... 요새는 불이나면 헬리콥터가 떠서 뭰 분홍색 액채를 뿌리고가면.
불길이 멈추는데... 저게뭔가 . 저것이 바다로 쓸려가면 고기는 어떻케 숨쉬나 걱정.
저녁에 집에 오는데도 뿌연 연기가 집 근처에 있었어여.
작은 마을을 돌고 돌아 완행으로 가는 탈것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감칠나게 정리해 주신 스피노자님께 감사드립니다! 느림이 행복의 근원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ㅎㅎ
저도 지리 전공이고요, 지리 선상님했습니다.
글을 읽어가며 그동안 만나 나눈 시간들 속에서 제게 어느정도 형상화 되어있는 스피노자님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여전히 그 감정의 끝 자락에 발이 닿지 않는 '목마와 숙녀' 같이 뭔가 아득한 별 하나 내 머리에 부서집니다. ㅎ
함께 여행도 잘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쓰겠습니다.
동족이 정치적 이념으로 갈라치기 되어
아직도 전쟁중인나라에서 대표적 사상의 충돌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소설 태백산맥 조정래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