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탁구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운동에는 소질이 없어 어떤 운동도, 특히 구기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축구를 하면 이상하게도 공은 내 발을 피하는 듯 했고 농구를 해도 공이 내 손에 들어오는 적이 없었다. 야구나 테니스 등은 당시로서는 귀족 스포츠라 아예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탁구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에 이에리사 선수가 사라예보 탁구 대회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구기에서 금메달을 딴 낭보가 있어 우리나라에 탁구붐이 일어났다. 까까머리 중딩인 나도 급우들과 함께 혹은 동네친구와 함께 탁구장에 가서 탁구 많이 쳤다. 하기사 그때는 거리 곳곳에 탁구장이 있어 약간의 돈만 내면 신나게 탁구를 칠 수 있었다.
운동 신경이 둔한 데다 따로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탓에 드라이브니 백핸드니 쇼트 같은 것은 잘 하지도 못했고 비록 성공률은 낮지만 그나마 유일하게 쓸 줄 아는 기술이 포핸드 스매싱이었다. 그렇지만 내 주위의 친구들 또한 나와 실력이 비슷해서 하루는 내가 이기고 하루는 상대방이 이기고 그럭저럭 재미있게 운동을 했다. 그러나 탁구를 쳐도 별로 실력이 늘지 않아 크게 재미를 못 느꼈던지 1년 남짓 치다가 그만두었다. 마침 탁구붐도 사그라져 거리에서 탁구장을 찾기도 쉽지 않게 되어 자연스럽게 탁구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15,6년 전, 내가 다니는 상명대에 교수탁우회가 생겨 잠시 탁구를 친 적이 있었다. 정식으로 탁구를 배운 사람은 없었고 모두 꼼수 위주의 탁구였는데 그래도 대부분 나보다 훨씬 잘 치는 편이어서 나는 게임에서 이긴 적이 거의 없었다. 그 탁우회는 그냥 한 학기도 채 유지가 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무산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탁구를 잊었다. 아니 탁구에 신경을 쓸 겨를이 전혀 없었다고 해야 될 것이다.
그러다 작년 1학기부터 교내에서 어문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다시 탁우회가 만들어졌다. 그 사이 새로 부임한 불문과 교수 가운데 탁구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꽤 잘 치는 사람이 있어 학교에 요청해서 어문대학생 휴게실에다 탁구대를 설치하고 동호회 회원들을 모집한 것이다. 근래 독서와 집필 때문에 운동이 부족하였기에 무언가 운동이 필요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참가하였다. 이번에는 옛날과는 달랐던 것이 고수가 한 명 있어 제대로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왕에 본격적으로 치는 김에 라켓을 구입해야 하는데 옛날에 치던 것이 팬홀더라 그냥 팬홀더로 할지 아니면 요즈음 대세인 쉐이크를 구입해서 새롭게 배울 것인지 망설였다. 싸부는 나이가 있으니까 습관을 고치기 힘들 것이니 그냥 팬홀더로 하는 것이 편하기는 편하지만 만약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다면 쉐이크로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이 좋다고 추천하였다.
일주일 정도 망설이다가 평소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좋아하니 이번에도 새롭게 도전하자는 마음으로 결국 쉐이크를 구입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몇 번 치니까 그런대로 적응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게임 중간 중간에 폼도 고쳐주고 훈련도 시켜주는 바람에 실력이 느는 재미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나 1학기는 부친상을 당하는 바람에 탁구를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방학이 되자 학교에 하루 종일 방안에서 집필에 몰두하느라 탁구는 엄두도 못내었다. 배에 살은 더 붙고 몸도 찌부덩했지만 오로지 집필에만 몰두했다. 그러다 2학기 개학을 하면서 다시 탁구를 치게 되니 몸이 기뻐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 남짓 신나게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흘리는 것이 몸에 얼마나 신선한 자극을 주는지 절감하였다. 지난 학기에는 화요일 오후 늦게 쳤는데 행사가 많아 자주 빠지기고 했기에 이번에는 화요일 외에 금요일도 치자고 제안했다. 마침 금요일은 참여하는 교수가 별로 없어 나 혼자서 2시간 가까이 지도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옛날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탁구 치면서 제대로 배우고 싶은 간절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는데 40여년이 지나 이런 황금의 기회를 얻게 되어 너무나 행복했다. 가장 기초가 되는 포핸드 스매싱 연습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백핸드 기초도 조금 배웠다. 포핸드는 나중에 가서 잘 될 때는 50차례 이상 규칙적으로 공을 넘긴 적도 있었고 그때는 싸부도 감격해서 눈에 눈물이 글썽해질 정도였다. 백핸드는 사실 중학교 시절부터 한 번도 쳐 본 적이 없어 백핸드쪽으로 오는 공은 항상 속수무책이었다. 처음 하는 것이라 배우기가 쉽지 않았지만 몇 주간의 연습 끝에 쉬운 공은 넘길 수 있는 단계까지는 왔다. 역시 무엇이든지 혼자서 하게 되면 실력이 늘지 않아 쉽게 포기하지만 나보다 실력이 있는 사람에게서 배우니까 실력도 늘고 재미도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학기말이 되어서 탁우회 교수 대여섯명과 같이 회식을 하면서 탁우회 싸부 교수는 이번 학기 가장 실력이 많이 향상된 사람은 바로 나라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빨리 실력이 늘 줄은 몰랐다고 했다. 나보다 잘 치는 영문과 후배교수도 처음 나랑 탁구를 칠 때 나의 실력을 봐서는 지금의 나의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내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중학교 때의 탁구실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나는 처음에는 몇 부였고 지금은 몇 부 정도의 실력이 되냐고 물었다. 싸부는 웃으면서 처음에는 초보여서 아예 급수가 없었고 지금은 동네 클럽에 가면 대략 6부 정도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는 3부 정도 되고 영문과 선생은 4부에서 5부 사이 쯤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은 우물안 개구리들의 추측이었고 실제로는 싸부는 5부리그 정도 되고 영문과교수나 나는 8부 리그에 들지 못하는 초보자였다.
아무튼 나는 이왕에 이렇게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방학 중에 그만둔다는 것이 너무 아쉬워 방학 중에는 이천 시내의 탁구 클럽에 가서 배우겠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방학 중에 열심히 배워서 3월에 개학한 뒤에는 현재 2인자인 영문과 교수를 꺾고 2인자에 등극하겠노라고 자극적인 선포를 했다. 물론 재미로 하는 이야기다. 이왕에 배우는 것,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연습하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에 말한 것이다. 2인자 영문과 후배교수는 배를 잡고 깔깔 웃으면서 도전을 얼마든지 받아주겠다고 했다. 나는 지금은 웃지만 나중에 울게 될지도 모를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12월중에는 시험과 성적 처리를 위시해서 송년회 및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아 탁구 클럽에 갈 시간이 없었다. 새해가 되고 신정 다음날 나는 바로 이천 시내에 있는 설봉탁구클럽에 갔다. 그 사이 이천시내의 탁구클럽에 대해 인터넷 상에서 알아온 본 결과 설봉탁구클럽이 가장 실력자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 그쪽을 택한 것이다.
관장은 나의 폼을 보더니 "완전 초짜시네요.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한 학기 동안 배운 실력을 무시 받아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강호에는 문파마다 문풍이 달라서 그 문파에 들어가면 초보자 취급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배우기로 했다. 관장님은 그냥 1부가 아니라 젊었을 때부터 전국규모의 대회에서 100회 이상의 우승 경력을 지닌 베테랑이기 때문에 확실히 우리 학교의 싸부보다는 훨씬 내공이 깊다는 것이 느껴졌다.
관장님은 3만원짜리 내 라켓을 보더니 “이런 라켓은 못 씁니다. 그냥 우리 탁구장에 비치된 라켓을 쓰세요.”라고 했다. 정말 그 탁구장에 그냥 비치된 라켓도 대략 10만원이 훨씬 넘는 라켓으로 공에 닿는 감각이 달랐다. 나는 그렇지 않아도 이제는 라켓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라켓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관장님은 나를 위해 라켓을 하나 신청해주었다.
관장님은 나에게 공을 조금 맞추기는 맞추는데 풋워크가 전혀 되지 않고 폼이 너무 엉성하기 때문에 기초적인 폼과 풋워크를 익히는 데 먼저 힘을 쏟으라고 권했다. “탁구는 팔로 치는 것이 아니라 발로 치는 것입니다. 발이 안 따라오고 팔만 뻗어서 치면 초보자끼리는 통하지만 고수를 만나면 무용지물입니다. 기초 폼과 스텝 연습을 꾸준히 해야 나중에 실력이 팍팍 늡니다.”라는 관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공손하게 기초부터 열심히 하겠노라고 답했다.
아무튼 올해부터는 탁구를 열심히 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사이 요가를 통해 신체의 유연성은 그런대로 잘 유지해왔지만 이제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하체의 힘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얼마 전 명상모임 길벗님들과 설봉산 등산을 해보니 확실히 옛날에 비해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이 느껴졌다. 이제 나도 몸을 위해서는 요가 외에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하나 해야겠는데 탁구가 나에게는 딱 맞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탁구의 장점은 단순히 체력과 근육을 키우는 것 외에 감각과 민첩성을 키우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탁구는 모든 구기 종목 가운데 가장 작은 공으로 하는 경기다. 지름 40mm에 2.7g의 자그마한 공을 라켓에 맞추어 네트를 넘기려면 체력 못지않게 감각과 민첩성이 중시된다. 그래서 쉬우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어려운 종목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구기 종목은 힘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양인은 기본적으로 축구, 야구, 농구, 테니스 등에서 서양인의 체력을 따라갈 수가 없다. 탁구 또한 체력조건이 중요하지만 감각과 민첩성이라는 또 다른 조건이 있기 때문에 다른 운동에 비해서는 훨씬 평등하다. 중국, 한국, 일본 등의 동양인이 서양인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구기가 바로 탁구다.
얼마 전에는 탁구 신동 신유빈이라는 초등학교 3학년 9살짜리가 전국대회에서 대학생 언니를 4대 0으로 꺾어 파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 여학생도 고등학교 때 여고부에서 전국 3위까지 한 대단한 실력파이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다른 구기 종목에는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아홉살짜리가 스무살짜리를 이길 수는 없다. 체력적인 조건이 워낙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탁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이 나이에 무슨 대단한 선수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원래 운동에 소질이 없는데 그렇게 될 리도 만무하다. 그저 꾸준히 치면 건강에 도움이 되고 감각과 민첩성도 좀 더 오래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그 사이에 한 번도 제대로 다듬어본 적이 없는데다 근래 게으름과 식욕, 집필 등으로 완전히 망가진 몸을 어느 정도라고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좀 더 구체적인 목표로는 열심히 쳐서 전체 8부의 중간인 4부까지 올라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4부 정도만 되어도 초보자들의 공은 웬만하면 다 받아줄 수 있고 같이 재미있게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매주 세 시간 이상은 탁구를 치고 매일 30분 이상 스텝과 기초 폼 연습을 할 생각이다. 탁구를 치는 것이 명상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는, 그리고 명상이 탁구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는 아직 본격적으로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나의 관점으로는 분명 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탁구도 열심히 해보자. ^^
너른돌
첫댓글 열탁!
명동지기님도 탁구 치시줄 아시는가보죠?^^
요새 갑자기 탁구 인구가 증가 하네요.
우리 회사 직원들도 탁구 동호회 활동이 아주 활발 합니다.
유연성,민첩성 탁구만한 운동 없을 겁니다...화이팅 임돠
저같은 사람도 다시 탁구를 치기 시작했으니
탁구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박헌중님도 탁구를 칠 줄 아세요?^^
하이고~암튼 너른돌님의 세계는 어디까지? ㅎㅎ 암튼 대단하시다는. 저도 소싯적엔 한 탁구 했는데 너른돌님 글을 읽고 나니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은데요.
훈장님이 소싯적엔 한 탁구 하셨군요.
다시 시작하셔서 저와 한 판 붙어보시죠.^^
그리운 추억의 구기 종목 이네요
요새는 동네에서 탁구장 찾기 힘든데...
그리운 구기 종목이라...
그럼 윤박님도 어릴 때 탁구를...^^
와우 ~대박 이십니다
무언가 결정하고 실행 하는거 쉽지 않은데
역시 박교수님의 열정에 박수를 드립니다
짝 짝 짝 ~ !!!
청하님 감사합니다.^^
너른돌님은 대화의 소재를 일부러라도 끈임없이 만들어 내시어
사람을 신바람나게 하는 멋진 분인것 같습니다...^^*
네, 저의 목표가 인생을 신나게 살자입니다.^^
@너른돌(박석) 으 저도 인생은 신나게 인데요탁구 시작 열탁하세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