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하면 가장 먼저 야구가 떠오른다.
충암고 야구부는 70년 봄에 창단됐다. 69년 충암학원을 설립한 충암 이인관
선생의 야구에 대한 집념이 낳은 결과다. 이선생은 50년대 초 인천고 교장으로
있을 때 야구부 전성시대를 뒷받침했고, 55년 경기공고에
부임해 곧바로 야구부를 창설했던 야구광이었다.
이선생은 70년 세상을 떠날 때도 "야구부를 육성하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다.
올해로 서른세살 청년이 된 충암야구는 이렇게 출발했다.
▲2년 만의 결승 진출
충암고는 창단 2년 만인 72년 대통령배에서 결승전에 진출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름조차 생소한 학교가 쟁쟁한 학교를 모두 제치고 결승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5월1일 충암은 대통령배 결승에서 경북고와 맞붙어 0-8로 졌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투·타에서 활약한 정순명은 감투상을 받았고,
대표팀에 뽑히며 충암야구 최초의 스타로 떠올랐다.
▲김성근 감독의 첫 우승
김성근 감독은 지금도 충암야구의 '대부'로 통한다.
충암야구의 토대를 닦았기 때문이다. 김감독이 충암고 감독으로
부임한 것은
76년 3월. 김감독은 이때부터 '투수조련사'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해 기세봉과 장호연 등 초고교급 투수를 키워냈고,
이듬해 봉황기에서 우승하며 창단 8년 만에 전국대회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김감독은 최근까지도 겨울에는 충암고에서 투수들을 가르치고
선수들을 격려하며 충암야구를 가꾸고 있다.
▲우승선수〓우승감독
충암고 야구부에는 전통이 있다. 재학시절 우승했던 선수가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우승시키는 것.
77년 봉황기 우승멤버였던 정병규 감독과 정용락 감독은
88·92년 모교에 차례로 부임해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정병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88년 충암은 공의식이 봉황기 결승에서
이상훈이 버틴 서울고를 맞아 완봉역투와 만루홈런을 쏘아올리며
9-0으로 이겨 11년 만에 봉황기를 탈환했고,
90년에는 심재학과 이원식 등을 앞세워 대통령배와 황금사자기에서
우승하며 2관왕에 올랐다.
정용락 감독도 95년 박명환과 장성호를 필두로 팀을 봉황기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박명환은 최우수선수와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제2의 도약을 꿈꾸며
충암고는 97년 감독선임을 둘러싸고 재단과 학부형이 충돌,
내분사태에 휘말리며 대규모 전학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
야구부 창단 이래 최대의 위기가 온 것.
그러나 2001년 11월 88년 봉황기 우승의 주역인 공의식 감독이 부임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공감독은 내년 우승을 목표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2학년 강윤구 김민우와 1학년 서남석 등 투수진에 여효진과 고건준 등
가공할 타선이 건재하다. 이제 올 겨울 구슬땀을 흘리는 일만 남은 것.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야구를 추구하는 충암은 21세기 제2의 도약을 이미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