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에 개가 늑대를 걱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진짜로 나오는지 책 읽은지가 너무 오래라 자신은 없다 하여튼..)
"나는 날마다 주인이 먹이를 주고 따뜻한 잠자리도 있지만
늑대는 추운 들판에서 날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먹이를 찾아 헤매야 한다."
뭐 대충 이런 식의 걱정이다.
나는 자주 이 장면이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나는 개일까 늑대일까?
딱히, 구분하기 힘들다면 어디에 가까운 것일까?
아니, 조금 더 근본적인 의문을 가져본다면 개가 행복한 것일까 늑대가 행복한 것일까?
이솝우화에서는 어떤 결론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생각은 안난다.
직장에 매여서 월급에 목매고 있는 나,
그리고 그 쥐꼬리만한 나의 월급으로 한달을 계산해서 살고 있는
우리 가족들......
그들은 또 개에 가까운 것일까 늑대에 가까운 것일까?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영화가 있다.
뭐 그냥 주목 받지 못한 흔한 영화중 하나일 것이다.
TV에서도 몇번인가 반복해서 방영되었다.
케이블 방송의 좋은 점은 계속 재방한다는 것이다.
그 영화중에 보면 사람들이 모두 고무줄에 묶여서
그 고무줄의 탄력과 싸우지만 결국 고무줄 때문에 자꾸 되돌아 오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그것 한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겠지만
직장에 일이 산더미 같이 있어서 밤을 새워가며 해도 다할 수 없는 그런 것도 아니고
술을 좋아한다고 해도 (나는 술은 거의 안마시지만) 날마다 술을 먹지는 못할 것이고
(만약 그렇게 한다면 건강에도 안좋겠지만 지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무언가 분명한 취미나 관심거리가 있어줘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인가 아무곳에도 관심이 가지 않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침에 습관처럼 출근을 한다.
그래도 돈 벌러 가는 거니까 배웅도 받고 조금은 주인공 같은 기분이 잠시 든다.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반갑습니다"라고 제법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상사는 무엇이 불만이었는지 씩 한번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모니터로 가져간다.
(자기보다 늦게 왔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간다.
그렇게 드문일은 아니므로 자리에 와 앉는다.
바로 옆에 직원 보고는 "일찍 오셨네요?"라고 다시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이 분께서도 별로 반응이 뜨겁지는 않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은근히 걱정이 된다.
(오늘 또 나만 약속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
며칠전에도 나만 약속이 없고 다들 약속이 있는 바람에 혼자 구내식당에서 처량하게 점심을 먹은적이 있기 때문에
걱정은 조금은 공포에 가깝다.
그럭저럭 어제 같고 내일 같을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된다.
다들 저녁 약속이 있을까? 다시 걱정이 든다.
누군가 한 사람 정도는 약속이 없어서 나하고 먹어줘야 되는데.....
전부 약속이 있으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어디 약속이라도 있는체 하면서 일찍 집으로 향한다.
집에는 과연 마눌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 '기다리고는' 아닌지 오래고 모처럼 어쩌다 집에 있을까?
집에도 없다면 혼자서 저녁을 차려 먹어야 되는데........
참 처량한 일이다. 더 처량한 것은 마눌이 새벽에 들어와서 "자기 저녁은 어떻게 했어?"라고 묻는 것이다.
언젠가 새벽에 들어왔다고 시비걸다 된통 혼이 나고서는 마눌이 새벽에 들어와도
시비걸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으면 며칠은 밥을 차리지 않는다.
스스로 밥솥에 시간을 맞추고 핸폰에 알람을 맞춰서 일어나야 한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또 슬그머니 밥을 차려주기 시작한다.
아무말도 못하고 속으로 감읍하며 차려놓은 밥상에 앉는다.
여자들은 참 잘 논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렇게나 만난 사람들과도 금방 친구가 된다.
친구가 되면 아무데서나 잘 논다.
공원이나 호프나 어디서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잘 놀고 뭔가 하면서도 잘 논다.
여자들은 혼자 사는 수가 많다.
남자가 공장에서 길거리에서 그리고 병이 걸려서....죽을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직접 통계를 해본 것은 아니다)
혼자 사는 여자들은 남자보다 더 유부녀들을 잘 꼬셔낸다.
그런 일상들은 수시로 찾아온다.
점차 집에 가는 것도 공포에 가까워 진다.
어릴 때 10원짜리 동전을 깨끗이 한다고 땅에다 놓고 발뒷꿈치로 밟은체 빙빙 돌곤하던 생각이 난다.
어딘선가 본 것 같은 쳇바퀴 안의 다람쥐가 머리속에 떠오르기도 한다.
???????????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
...................
적막하다.
도시 곳곳에 시끄럽게 자동차가 달리고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다.
등뒤에 광고문구를 달고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있는 사람들.....
어딘가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어깨에 책가방을 맨 학생들.....
빗자루를 든 환경미화원....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
혼자 가는 사람들 .....손을 잡고 둘이 가는 사람들.....
애를 데리고 가는 사람들....
문을 연 가게마다 사람들이 북적댄다.
문득 사람들은 옷을 얼마나 살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도시 가게의 절반 이상이 옷가게 인 것 같다.
갑자기 삼차원 문이 열리고 내가 어떤 알 수 없는 외계에 온 것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저 수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면 내 말을 알아듣고
관심을 가져줄까?
그러면 누구에게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저 광고지 나눠주고 있는 사람에게
지금 내가 회사에서 막 퇴근했는데....마땅히 할 것도 없고...심심하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결국 혼자서도 놀 수 있는 PC방이나 기웃거려 본다.
그러나 그런 곳도 만만치 않다.
온통 애들로 가득차 있다.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PC방에 앉아도 할 것이 없다.
온라인 게임에서 바둑이나 장기나 고스톱이나 몇번 끌적그러 본다.
내가 이길 것 같으니까 상대가 챗팅창에 욕설을 퍼붓고 사라져 버린다.
아~!, 아디를 미리 외워두는 건데......불량 아디로 신고라도 하게.......
잠시 억울한 생각이 든다.
그러다 이내 체념한다.......... 뭐 어쩌겠어.......
뭐 그렇게 깊이 원한이 뼈에 사무치지는 않는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길거리로 다시 나온다.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
힐끔 홍등가 골목길로 시선이 간다.
그냥 비몽사몽간에 발걸음을 옮긴다.
이 곳의 모양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거의 날마다 지나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낡고 지저분함은 애써 고개를 외면하며 걸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도시의 불빛에 밀린 나약한 어둠은 이 중 지저분한 곳만 절묘하게 가려준다.
아니, 가게마다 밝힌 불빛에 언뜻 아름답기까지 하다.
빨간 불빛이 새어나오는 레이스처럼 드리워진 문가리개를 저치며
어느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왜 그렇게 살은 쩠는지...
정말 같이 대화하고 싶지 않은 주인이 "어서 오세요" 하면서 반긴다.
이미 되돌아 나오기에는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맥주 몇병에 과일 안주 하나를 시킨다.
맥주는 그나마 병에 담겨 있으니까 괜찮겠지 싶지만
과일은 쓰레기통에 가기 직전인 것 같다.
어쩌면 다른 손님들이 먹다 남긴 것들을 모아두었다가 내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어쨌든 어떻게 한국사람이 이렇게도 생겼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주인 마담과 몇잔을 기울인다.
마담은 술집 경력이 많은듯 내가 술을 잘 못한다는 것을 금방 눈치챈다.
선심이라도 쓰는듯 내 술잔까지 비워주기 시작한다.
할말이 없다.
내가 별로 말이 없자 마담이 대뜸 "내가 너무 못 생겼죠?" 이렇게 묻는다.
"아뇨 있을 거 다 있으면 되죠 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마담이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잠시 후 그래도 조금은 잘 생긴 여자사람이 나타난다.
화장을 정말 찐하게 했다.
이런 지원군 역할을 많이 한듯, 자기가 잘생겼다는 말부터 신나게 한참을 지껄인다.
못하는 술 기운이 조금 오르고 판단력이 흐릿해져 간다.
사람들은 이래서 술을 마신다.
나도 못하는 술이지만 이렇게 해서 술을 먹는다.
뭔가 생각하지 못하는 흐릿하고 흐느적한 느낌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술 기운이 조금은 가시면서 그만 일어나야 겠다는 생각인 어렴풋이 든다.
일어나 카운터로 간다.
술 값은 상상을 초월해서 녹슨 집게가 달린 작은 연습장 같은 것(이런 걸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에
떡하니 놀라운 숫자로 간인영수증 한켠을 채우며 당당히 모습을 나타낸다.
뭐가 이렇게 많으냐고 따져본다.
마담은 못 생기고 사나운 눈길로 뭐라고 쏴붙인다.
이미 싸워봐야 전혀 승산 없는 싸움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내 발로 찾아와서....
그런 결론을 뻔히 알면서 찾아와서
돈만 왕창 쓰고 기분까지 완전 잡친다.
얼결에 몇점 집어먹은 오래된 일에서 나는 특유의 그 역겨운 향이 술냄새와 함께 목으로 넘어온다.
구토가 확 밀려 온다.
억지로 꿀꺽 삼킨다.
돈을 받아 챙긴 마담은 벌써 방으로 들어가고 보이지 않는다.
빨간 불빛이 새어나오는 마담의 방을 힐끗 보면서.....그 지원군 여자는 언제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앞에 드리워진 걸레 같은 문발을 젖히며 거리로 나선다.
사나운 우리 마눌이 생각난다.
우리 마눌이 있었으면 아마 술값의 얼마간은 되 받아 줬을지도 모른다.
문득, 사나운 마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살았거나 내 말만 잘 들어주는 착한 마눌하고 살았다면
내가 뭔가 가지고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온통 주위에는 함정들로 가득하다.
나도 그것을 안다.
그러나 배고픈 늑대는 먹이를 찾아 헤매야 하고
외로운 남자인간은 또 그 지저분한 밤거리를 헤매야 하니까.
결국 나는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외로움의 댓가로 오늘밤 술값은 그래도 다행한 액수라고 혼자 위안하면서
그리고 앞으로 내가 저지를 지도 모를 더 많은 일들을 이 일로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사실은 큰 이익이라고까지 혼자 정당화 시켜 본다.
사람의 머리는 자신을 정당화 시키는데 너무나 익숙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 정신적 고통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조금은 정신이 차려진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며
웃도리를 어깨에 매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눌을 위하여 포기한 것들이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떠올려 본다.
나는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포기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이미 나는 지금의 삶에 묶여있는 개처럼 ..그렇게 익숙해져 가고
이미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게 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집으로 가는 길은 오늘도 너무나 멀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아~~ 이 글 쓴 글쓴이 정말 대단한 분이입니다. 이렇게 디테일 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회사에서 무심코 흘렸는데 집에서 정독을 하니 참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어서.....
잘 읽었습니다
저도 보고 삶에 대한 생각이 부쩍 많아 졌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자유를 모르는 분의 하소연 같기도 하네요.
진정한 자유는 "구속"에 있다는 글귀를 본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사회를 만들어 살아 가는 것도 자유를 위한 방법은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