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글씨를 막 휘갈려 쓰는 나를 근래에 발견한다. 펜을 들고 무엇을 쓴다는 것이 그저 마냥 귀찮다. 요즘 은 누구를 위해서, 또는 누구에게 보여주고 보고하기 위해서 서류나 문서를 작성할 일이 거의 없다. 자연히 글씨도 흐트러진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노트에 옮겨 적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보기위함이 아니라, 뭐라도 써볼려는 욕심에서다. 아주 천천히 정성스럽게...... 난생 처음 '독서노트'란 것을 작성해 본다. 그리고 다시 글씨쓰기 연습을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선물로 만년필을 두 자루를 받았다. 사촌형이 파카만년필을, 매형이 독일제 Super Rotex만년필을 졸업선물로 주셨다. 대학에 진학하여 한참은 잘 사용했다. 그러던 와중에 어느날 화장실에 다녀오니 누군가가 파카만년필을 슬쩍했다. 아마도 파카가 더 마음에 들었는가 보다. 어쩌랴, 아쉽지만 나머지 펜으로 꽤나 오랜기간을 요긴하게 잘 썼는데, 그 펜도 금이가고 망가졌다. 그 독일제 만년필은 주사기처럼 피스톤식으로 잉크를 빨아당겨 보충하게 되어 있고, 밖에서도 잉크의 잔량을 알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파카펜 보다는 펜촉이 가늘어 경필勁筆연습하듯 잘 썼다. 사실 만년필로 글씨를 쓰면, 볼펜처럼 휘갈려서 쓰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첫 직장에서 글씨를 아주아주 잘 쓰는 후배직원을 만났다. 원래 미대지망생이었는데 학업은 계속하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평생을 살면서 그 친구처럼 대단한 名筆은 본적이 없다. 그냥 붓펜을 쥐어주면 명조체로 인쇄를 해 놓은 것 같다. 한석봉이 따로 없다. 관공서에 들어가는 모든 인허가와 관련한 사업계획서는 그 친구의 몫이었다. 당시만해도 사무기기가 딱히 없어 손으로 대부분의 작업을 할 때다. 먹지를 사용할 때였으니. 그 직원 역시 군대시절에도 차트병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했다.
그 직원한테 '글씨 잘 쓰는 법'을 2가지 배웠다. 첫째, 정자체로 정성스럽게 보일려면 동그라미, 즉 'ㅇ'을 최대한 동그랗게 쓸 것. 두번째, 예쁘게 여성스러운 형태로 쓸려면 가분수처럼 위는 크게, 받침은 작게 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년필을 놓은지 오래되었다.
그러다 직장을 옮겼다. 그런데 새 직장에서 만년필 매니아 후배를 만났다. 그 직원도 글씨를 한 글자씩 입을 뾰족히 내밀면서 정성스럽게 쓰는 친구다. 나도 덩달아 저렴한 파카만년필을 하나 샀다. 그 검정색 파카만년필도 꽤나 요긴하게 잘 썼다. 비록 망가졌지만 아직도 내 필통에 꽂혀 있다.
외국에 출장을 나가게 되면 늘 시계매장과 만년필매장은 들어가 본다. OMEGA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공식스폰서이고, 스와치는 스노보드선수권대회의 타이틀스폰서였다. 따라서 국제대회장에서는 늘 이들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값비싼 오메가매장에서 먼저 주인장에게 그냥 둘러만 볼 예정이며, 구매는 하지 않는다고 양해를 구한다. 그래도 빙긋이 웃으며 친절한 설명을 이어간다. 비교적 저렴한 몇 백만원정도의 1층 매장을 다 돌고, 진짜 명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2층 매장으로 이동한다. 그곳엔 王돋보기까지 시계 위에 설치되어 있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그 매장의 최고의 제품이다. 그 王돋보기는 제품을 더 가치있어 보이게 할려는 상술임에 틀림없다. 흰목장갑을 끼고 이리저리 구경한다. 그리고 주인장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매장을 나온다.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그 옆의 몽블랑 매장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도 매장 앞에 멈추어서면 주인장이 문을 열어준다. 대회관계자 ID카드를 소지하고 있으면 여러가지 측면에서 대우를 받는다. 역시 사전에 양해를 구한다. 난ㅡ 안사요, 안사 ㅡ 구경만 합니다ㅡㅡ. 햐ㅡ 그곳은 볼 것이 더 많다. 시계며 만년필이며, 남자가 갖고 싶은 물건들.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高價인 것들. 하지만 내가 갖고 있어도 나와는 어울리지 않음을 잘 안다. 쭉ㅡ 둘러본 것 중 보라색 빛이 영롱한 만년필 외부장식이 눈길을 끌었다. 질문이 들어간다. 이것은 무엇으로 만든겁니까? 주인장 대답, 도마뱀가죽입니다. 도마뱀을 희생시켜 만년필을 만드는구나 하고 놀랐다. 너무나 멋지긴한데 사람의 욕심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건 악어가죽 Bag과 같았다. 하긴 통일신라시대에도 반짝이는 녹색 풍뎅이 등날개 수천마리로 말안장을 장식한 적이 있었지! 다시 설명에 감사인사를 마치고 매장을 나오는데, 카달로그를 한 권 챙겨준다. 비록 구입하고 싶은데 못 저지르는 나의 마음을 아는가 보다. 동양인들은 특히 손재주가 좋아 카달로그를 주면 복사본을 금새 만들어 대부분 카달로그조차 보여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나는 손재주가 없어 보였는가보다!
그러다 일본 문방구에 들른 적이 있었다. 필기구는 일본이지ㅡ.그곳에서 1회용 만년필을 만났다. 와우ㅡ. 그 비싼 만년필을 1회용으로 만들다니, 감탄이 절로 났다. 얼른 구입했다. 다 쓰면 버려야하는 카트리지에 잉크를 리필하면서 오랫동안 사용했다. 비록 뚜껑에 금이가서 버렸지만. 또 그렇게 한동안은 만년필없이 지냈다.
그러다 언젠가 모든 물건이 다 있다는 국민가게 다이소에 갔다. 앗, 만년필이다. 거기서 1회용 만년필을 발견하고 2천원에 구입했다. 외관은 LAMY를 닮았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뚜껑에 실금이 가지 못하도록 스카치테잎을 미리 2바퀴나 감았다.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때 뚜껑이 문제였다. 너무 약하거나 내가 남자의 힘으로 너무 세게 닫아 깨지는 것이었다. 나도 참 대단한 녀석이다. 그 가격의 만년필을 얼마나 오래 쓸려고 하는지 혼자서 피식ㅡ 웃었다.
그래도 그 펜으로 다시 글씨를 잘 쓰고 싶다. 나이들어서 PC자판세대가 아닌 우리들이, 젊은이들 보다는 글씨를 더 잘쓰고 예쁘게 써야 하지 않나 하는 쓸데없는 마음에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즘 펜으로 쓰는 경우가, 보통 주소와 이름뿐인것이 대부분이다. 이름과 주소는 그래도 잘 쓰기 때문이다. 멋지게ㅡ.
할인점에서 3만원대에 구입한 허름한 스마트와치와, 2천원짜리 만년필이 내가 운동하고 책을 읽는데 큰 기쁨을 주고 있는 요즘이다. 나를 만족시킨다.
한편, 유명한 만년필 브랜드들도 대부분 선진국들에서 생산되며, 만년필로 무언가를 쓰고 기록하는 것도 하나의 큰 문화인데, 국내에서도 몇몇 업체가 만년필을 제조하려고 노력하였지만 빛을 못보고 사그러진게 많이 아쉽다.
첫댓글 간만에 동기 카페에 들어와 본다.
허전하고 썰렁하기는 여전하다.
그래도 여전히 애정어린 정성과 노력으로 빈사 직전인 카페의 생명의 보전자
구실을 묵묵히 수행하는 상수의 최근(어제^) 글부터 훑듯이, 게걸스럽게, 하지만
맛난 것을 아껴 먹듯이,아껴가며 읽었다.
첫구절,첫문장을 읽자마자 글 잘 쓰는 작가 김훈의 '연필로 쓰기'란 산문집이 떠올랐다.
흡사 김훈의 그 책을 다시 보는듯한 느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작가 상수가 있다면, 그 즉시 부담없이 "너 혹시 최근에 김훈의 연필로 쓰기 읽었니?"
라고 물어 봤을거다. 그 물음을 상수가 어떤식으로 받아 들일지는 모르지만,기분 나쁜 인상쓰며
퉁명스런 톤으로 마지못해 답을 하지는 않을거다,아마도~~
김작가의 글이 올라오면서 조금씩 진보되는 면이 뚜렷히 보이고,작가의 노력함과 그 노력하는
열정이 결실로 나타남에 보는 기분도 좋기 그지없다.
우선 김작가의 글에는 솔직함이 있다는 것이다.
김작가의 평소의 일상처럼 그의 글에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솔직함이 있다는 말이다.
있으면 있는대로,알고 있으면 아는만큼 표현함에 독자의 마음은 편해진다.
잘 모르는 것도 잘 아는 척 하는 과장된 표현이 그의 글에는 없다.
그저 일상에서 생활하듯, 있는대로 보이는 대로 듣는대로,별다른 치장과 가식없이
표현함에 어색하고 이질감이 없어, 보는이들로 하여금 부담없는 접근을 유도하는
그런 솔직함에 읽는 재미가 있다.
쓰다보니 주제넘게 평론가 흉내내는듯한 구실을 함에, 애초그런 의도는 없었음을 고한다.
다만 친한 친구의 진보된 글을 봄에, 그느낌을 쓰다보니 그런 표현이 나옴에 불편한
마음을 부디 가지지 말길~~
상수의 읽기 편한 글에 찬사를 보내며 앞으로의 보일 진일보를 이루길 바라니,친구여
노력함이 계속 되기를 기원하겠다.
어디까지나 손가락 가는대로 끄적끄적함. 이 게시판은 우리끼리 情을 나누고 느끼는 곳이니까 부담없이!
댓글에 감사를 표하며.....
우리까페에 들어오면 국문과 빰칠 수준의 글들로 채색 되어있어 한편으론 자랑 스럽고 또 부럽기도 하다.
워낙 악필이라 대학 졸업 즈음 유진이랑 둘이서 용평 리조트에 여행가서
밤새 멋진 유진이의 글씨체를 배웠던 기억이 있다.
동그라미 를 크게 그리고 받침은 작게
유진이가 한말 이였는데 ㅋ
내 글씨는 읽기가 어려워 모조건 외우려 했던 습관도 그래서 생겼던것 같고….
몸은 멀리 있지만 늘 댓글로 자주 만나니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 같다. 여기는 삼복 더위로 무척이나 더운데 거긴 어떤지 모르겠구나!
ㅎㅎ재밌게 읽었다.
이넘도 예전에 서예, 캘리그라피 수강을 한적이 있는디. .길게는 몬가고..ㅠ
대략 10일에 한번꼴로 도서관에 들러서 이런저런 책을 빌려보곤 하는데..
상수의 재미있고 실용적이기까지한 글에 대출 성향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우선 에세이는 쫌 줄인다. 상수글 보는 걸로 대체. 소설류- 역시 줄었다.
쉬운 전문(?)서 혹은 취미 건강서 - 키우기 쉬운 식물, 가구와 디자인 등..대출빈도가 늘었다
아는게 많은 상수..디테일에 강해서..도움이 되는구나
길가의 나무도 그렇고, 글자쓰기와 만년필 에도 알면 재밌고 쓸모있는 이야기가 만쿠나 ㅋ
나도 어릴땐 펜촉에
잉크 찍어서 경필대회도 나가곤 했었는데...
글씨 쓰는걸 좋아해서 지금도
낙서는 많이한다.^^
캘라그라피도 배웠는데 금새 흥미를 잃어서 도구들은 아직도 서랍에 처박혀있다.ㅎ
암튼 호기심만 많고 끈기는 없어서 집에 온갖 장비들만 남는다.🤣🤣
참,나의 필기도구는
제트스트림 볼펜.
열심히 필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