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동기들과 함께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 선교여행을 잘 다녀왔습니다. 36-38도 더운 열대아 나라입니다. 여행중 다행이 4일 동안 비가오지 않고 맑은 날씨이기에 여행하는데 더운 것 빼고는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베트남사람들도 참 부지런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나라는 우리나라를 원수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우호적이고 박항서감독 인기로 엄청난 파급효과가 나타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로써는 다행이지요 여행 중 우리나라사람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일정대로 수요일 다낭지역 내 거의 건축이 마무리 된 다낭교회를 40여명의 목사님 사모님들이 방문했습니다.
다낭교회는 아직 정부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지를 못했습니다. 한 목사님은 말하기를 전에 이곳 베트남 선교지에서 찬양을 크게 하다 경찰서로 가서 조서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예배가 그만큼 자유스럽지는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찬양을 못하는 것이 아쉬었는데 선교사님을 통해 다낭교회가 세워진 배경을 위주로 주성권선교사님 통해 선교보고를 듣고 축도로 기도회가 마쳤습니다. 다낭교회 퐁 목사님은 유치원을 통해 학원 선교를 하고자하는 꿈을 가지고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동기 중 신만호목사님이 시무하신 이루리 교회가 건축비를 지원하여 세운 교회 헌당식이 선교여행 중에 있었습니다.
베트남은 인구가 1억으로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하여 동남아 다른 지역보다 복음이 순조롭게 들어가 정착 할 수 있는 좋은 선교지역입니다. 공산화가 되면서 지금은 베트남 전국에 300여교회만 남아있지만 선교사님들의 끊임없는 청원과 기도로 정부로 통해 교회 세우는 일이 허락되어 한국교회와 성도들과 연결되어 교회를 건축하고 있는 선교지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60-70년대와 같습니다. 척박한 복음의 불모지 땅에 이런 일 들이 진행 될 수 있도록 동기인 주성권목사님께서 베트남 총회 전도부와 연결하여 다리 역활을 하고 있음을 알고 동기목사들이 서로 격려하고 마음을 모아 즉석에서 십시일반으로 은혜 헌금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번 선교여행에 34년 만에 만난 동기도 있었고 제가 처음 경남 기리교회에 전도사도 시무하도록 고향교회를 소개했던 이진국목사님도 함께 참여하여 서로 교회이야기 가정이야기 나눔의 시간이 부족하기만 했던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날 탑승 대기실에서 한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핸드폰을 놓고 화장실이 가는 도중에 잃어 버렸습니다. 지금은 통화 정지된 상태이기에 당분간 찾기 전까지는 통화가 안되니까 그냥 교회나 사모폰에 전화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김승권 이름으로 문자나 통화가 온다면 당분간 받거나 보지마 마시기 바랍니다. 5년째 쓴 핸드폰 오늘 바꿀까 내일 바꿀까 망설이다가 이런 실수도 있었지만 받은 은혜에 비하면 그져 감사뿐입니다.
이번여행도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내가 살고 있는 땅 대한민국 우리광주 교회다시 와서 주일예배를 드리며 우리 성도님을 뵐 수 있다는 것 주님은혜 이기에 감사입니다.
그래서 ♬ 이 모든 것이 주님 은혜입니다. ♪ 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딱따구리가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 큰 고목나무에 올라가 벌레를 쪼아먹고 있었습니다. 톡! 톡! 나무를 찍는 순간 와지끈하고 나뭇가지가 부러졌습니다. 딱따구리가 깜짝 놀라 날아가며 하는 말 [내 힘이 정말로 세구나]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착각은 자유라고 벼락이 떨어져 나뭇가지가 부러진 것을 딱따구리 자기 힘으로 된 줄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딱따구리 같은 어리석게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내가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 내가 뭘! 잘했기 때문에 살아온 것으로 착각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019년 반년을 보내고 다음 주일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통해서든지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흔히 감사를 인격의 척도, 나아가서 우리 신앙인에게는 신앙의 척도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감사를 많이 하지만 감사란 은혜의식에서 나옵니다.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온통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붓고, 집중하고, 몰두하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 같은 사람은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다윗의 노래를 보세요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은혜를 기억하라고 자신에게 촉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2절....“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니라”..... 은택(恩澤)이란 단어는 ‘은혜 은(恩)’ 자에 ‘못 택(澤)’ 자를 씁니다. 직역하면 은혜의 연못인데, 그동안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 연못으로 가득 채워졌다는 뜻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은택’을 은혜와 덕택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택’ 자에는 윤이 난다는 뜻이 하나 더 있어요!! 은혜의 덕택에 내 인생이 반짝반짝 윤이 난다는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의 일생은 성난 파도와 잔잔한 호수가 겹치는 참으로 굴곡진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삶 가운데서도 오직 다윗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소중한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았습니다. 마치 은혜의 연못 속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넘쳤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은혜의 연못 위로 비추는 햇살이 너무나 찬란하여 자기도 모르게 감사 찬양이 터져 나왔습니다.
103:1-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런데 은혜의 연못속에 채워진 “은택” 목록을 본문에서 보십시요 3-5절을 보면 절절 마디마디가 다 은혜입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①사죄의 은혜...... ②치료의 은혜........ ③파멸에서 속량(구속)의 은혜....... ④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는 은혜...... ⑤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는 은혜.....⑥네 청춘을 새롭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여기 열거하고 있는 은혜의 사건들을 둘로 요약할 수 있어요 하나는....... ‘구원’(죄, 질병, 파멸)의 은혜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생활’ 삶에서 받은 (관을 씌우심, 만족케 하심, 새롭게 하심) 은혜입니다.
여기에 나온 6가지 모두 동사의 시제가 ‘현재형’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을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금 느끼고 보여 만져지는 은혜가 계속적으로 이어져야 함을 말합니다.
고린도후서6:1-2....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렇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지금부터 매일 매일 은혜의식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그날 이후」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은혜를 받았던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주님이 그들을 다시 만나셨습니다. 주님이 한 알코올 중독자를 만나셨는데 그는 앉은뱅이로 살다가 주님을 통해 고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물으셨어요 그가 한 숨을 쉬면서 말하기를 “ 앉은뱅이로 살아갈 때는 구걸하며 살아도 부끄럽지 않고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두 발로 걸으면서부터는 얻어 먹을 수도 없고 마음에 맞는 직장을 얻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방황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 라고 주님께 말했다고 합니다. 은혜를 받았지만 그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다보니 계속이어 지지 못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받은 은혜가 계속해서 지속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나에게 주신 은 은혜를 깨닫고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며 살까?’(시116:12) 오늘 고백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한가지는.... 은혜를 기억하면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적으로 잘나고 못남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앞에서는 얼마든지 역전시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1:2-28......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미련한자를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은혜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느냐 입니다.
눅17장에 보면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 고침 받은 사건이 나옵니다. 열명이 다 주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고 했습니다. 여기 한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마리아사람입니다. 다른 9명은 유대인입니다. 환자로 본다면 10명 모두가 버림받고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사람은 더 버림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사람을 상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사람을 대접을 하지 않아요 이런 불편한 관계에서도 1명 사마리아인이 돌아와 예수님 앞에 나와 하나님께 영광 돌렸어요 그것뿐 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병 고침을 받도 돌아와 예수님 발아래 엎드리어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감사도 그냥 감사가 있고 엎드린 감사가 다릅니다.......... 은혜를 똑같이 받았지만 그 반응은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부모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녀는 효자가 됩니다........ 선생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좋은 제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그리스도인은 좋은 성도가 되고....... 좋은 예배자가 되고....... 좋은 헌신자가 됩니다.
찬송가(304장) 자주 부릅니다.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 제물 삼으시고 죄 용사 하셨네....... ♪♪하늘은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 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우리 다 같이 이 찬송을 드리면서 기록할 수도 측량할 수도 없는 그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맥추감사주일을 준비해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