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예> 2023년 3. 4월호
새로운 시 양식을 찾아서
동씨는 ‘동시+씨앗’의 합성어다. 수식으로 말하면 ‘동시+씨앗=동씨’다. 별칭으로는 ‘씨앗 동시’라고 불러주기를 희망한다. 혹시 오해할 지도 몰라서 하는 말인데 씨앗 동시와 동시의 씨앗을 구분해 주기를 바란다. 씨앗 동시와 동시의 씨앗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동시의 씨앗은 시상을 가리키는 말이고, 시상이란 시의 싹을 틔우기 위한 시의 씨앗이란 뜻이겠다. 시의 씨앗을 발아시켜 싹이 트면 물 주고 거름 주고 잘 보살펴서 한 그루의 나무처럼 키운 것이 시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동씨는 시인데 씨앗같이 단단히 여문 시라는 뜻이다. 동씨는 함축과 절제를 최고의 미학으로 한다. 그래서 최대한 짧게 쓴 동시라는 뜻으로 시의 결정체를 지향한다. 간혹 동씨를 ‘단시’라거나 ‘손가락 동시’ 등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는 분이 있으나 이는 정중히 사양한다. 동씨는 동씨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를 희망한다. 동씨는 동씨다.
동씨는 동시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하여 새롭게 시도하는 시 양식이다.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른다. 일부러 정한 것도 없다. 마치 목적지 없이 떠난 여행과 같다. 다만 한 가지, 방향성은 공유하고 있다. 동시가 갈수록 산문화되는 시대, 문학성보다는 요설이 난무하는 시대, 무감동의 동시들이 판을 치는 시대 그래서 어린이들이 동시를 읽지 않는 시대, 어린이들이 동시보다는 트로트에 열광하는 시대, 동시를 쓰는 시인들이 그걸 보고 남탓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는 시대, 그런가 하면 상상 또는 환상이라는 이름으로 동시에서도 유희적 언어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시대, 수준 높은 동시를 지향한다고 하면서 어른도 모르는 난해성을 자랑처럼 내세우고 있는 시대, 새로움을 찾는다면서 동시의 경계를 넘어가는 시대 이것이 이 시대의 유행이 아닌가. 동씨는 오늘날 우리 동시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런 여러 문제점들을 타파하고 새로운 동시를 찾아가기 위한 외로운 발걸음이다.
동씨는 최소의 언어를 사용하고자 하지만 이는 암묵적 합의였을 뿐이다. 젊은 시인들에 의하여 이런 암묵적 합의가 깨어지고 있음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 길도 우리의 길이다. 새로운 동시를 찾아가는 길에 탐색과 도전은 기본 자세가 아닌가. 실험없는 변화와 발전이 어디 있는가. 시원찮은 모색으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일부의 우려 섞인 시선도 느낀다. 그래도 괜찮다. 실패하더라도 실험은 아름답다.
지나간 시대의 서정은 완벽하거나 미흡하거나 이미 그 자체로 완료되었다. 지금에 와서 지나간 농경문화 중심의 감성을 노래한다면 그것은 지나간 시대의 낡은 유산임을 재확인하게 될 뿐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서정과 새로운 형식을 요구한다. 디지털 문명으로 접어들었다고 한지도 벌써 몇 년인가. 그동안 우리는 변화와 모색을 위한 제대로 된 노력을 기울여 보았는가. 언제나 변화의 맨 끄트머리에서 힘겹게 따라가는 모습만 보여주지 않았는가. 변화하지 않는 것은 정체가 아니라 퇴보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디지털 영상의 시대라는 말은 이미 철 지난 유행어처럼 들린다. 지구 반대쪽에 있어도 언제든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접속의 시대라는 말도 더 새롭지 않다. 며칠 전에는 ‘챗GPT’가 시를 쓴다고 해서 놀란 마음으로 기사를 뚫어져라고 읽었다. 창작자의 영역은 AI가 들어올 수 없는 신성한 영역처럼 말하고 있지만 글쎄다, 그걸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AI로 쓴 작품이 문학상 최종심에 올라가기도 하는 시대다. 지금은 최첨단 AI를 탑재한 로봇의 시대로 급속히 편입되고 있는 예측 불가의 시대다. 이때 우리는 어떤 동시를 써야 하는가. 짧으면서도 임팩트있는 동시, 이것이 새 시대의 서정이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동시, SNS에도 올려 언제나 상호작용할 수 있는 동시, 광고 문구처럼 스쳐지나갔는데 시구가 자꾸 떠올라 다시 찾아읽게 하는 동시, 위로와 위안이 되는 동시, 더 바란다면 잠자리에서 음미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게 하는 동시 그런 동시를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시대정신을 반영하되 짧고 유려한 리듬과 아름다운 이미지와 감동적인 메시지를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 10년쯤 하자고 했다. 그렇게 되면 무엇인가 어렴풋이나마 보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벌써 몇 년인가. 그러나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각자의 실험 성과들이 응축되어 고이다가 어느날 한꺼번에 새로운 양식의 시들을 뜨겁게 분출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무소의 뿔처럼 가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꽃이다, 단단한 싹, 안녕 나비 3권의 동인지를 펴냈다. (전병호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