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는 자녀로 키우려면 2013. 05, 05.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린이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순종하는 자녀로 키우려면"이란 주제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한달 동안은 아버지 학교에 다녔습니다. 많은 것을 배웠고 느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이 세상에 있을까요? 당연히 모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잘 모르고 사랑하기 때문에 도리어 그 관계가 어려워져 있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자녀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에베소서 6장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은 보통 어른들을 향해 쓰는 말인데, 부모가 자녀들을 향해서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하셨을까요? 그것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녀들과의 관계가 좋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건한 부모들은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자녀들이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여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부모가 자녀들을 노엽게 함으로 관계가 어그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을 잘 하시려면, 먼저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부모가 먼저 보여주어야 할 성품은 경청입니다. 경청이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집중하여 듣는 마음가짐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을 소중하게 인정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관계 형성에 기초가 되는 성품입니다. 그래서 경청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아름답고 풍성한 삶으로 이끄는 귀한 성품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가르치는 역할이 잔소리하는 역할로 바뀐 것처럼 보입니다. 부모들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십시오. 딱 두 가지입니다. "~ 하지 마라"와 "공부하라"는 말입니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별로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게임 좀 그만해라." "TV 좀 그만 보라" "컴퓨터 그만하고 공부하라"고 “~ 하지 마라”는 말이고, 그리고 "공부했니?" "숙제했니?" "책 읽었니?" "손 닦았니?" "학원 갔다 왔니?" 등 “공부하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는 대부분의 말이 "~ 하지 마라"와 "공부하라"는 말이 거의 전부인 것을 봅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부모들이 먼저, 경청의 본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경청은 부모님들이 먼저 우리 자녀들에게 베풀어야 할 최초의 대접인 것입니다.
사실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 있는 임신 5개월부터 엄마 음성과 심장 박동소리를 들으며 엄마의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 느낀다고 합니다. 인간은 참 신기합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엄마가 어떤 말을 했는지 잠재의식 속에 다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아이들은 뱃속에서 경청하다가 이 세상에 나와서는 앙앙 울어 대면서 자신을 봐 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바쁘고 뭔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가 우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아이가 성장해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아이가 나갔다 와서 엄마를 부를 때 엄마는 여전히 바쁩니다. 애기 좀 들어 달라고 하면, "잠깐만, 엄마 뭐 좀 하고 나서"하면서 미뤄버립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더 자라 엄마에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떨어진 뒤에야 "자, 말해 봐라"고 하면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아이는 "몰라"라고 말하고, 엄마는 "모르긴 뭘 몰라. 가서 공부나 해라"고 말합니다. 엄마는 공부하라는 말 말고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부모가 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자신이 바로 그런 대접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이 때, "야, 넌 귀도 없니? 엄마가 몇 번을 불러야 대답할래?"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없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대접받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황금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이렇게 자신을 경청해 주지 않는 엄마에게서 자란 아이는 엄마의 소리에 경청하지 않는 아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로 그 습관이 이어지고, 신앙생활에서도 그 아이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 싶어도 아이들이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 부모들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신음소리 하나도 숨을 죽이고 들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맛보았습니다. 그 사랑을 아이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울 때, "응, 네가 배가 고프구나!"라고 반응해 주고, 아이가 "엄마"하고 부르면 "응,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하고 들어주어야 합니다. 하던 일을 멈춰 서서 들어줄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부모에게 대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존중합니다. 부모가 자신의 소리에 경청해 주었을 때, 아이들은 그것이 아예 습관이 되어 밖에서도 타인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에 경청하는 아이가 되고, 친구들의 이야기에도 경청하면서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는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하나님의 집에서도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그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의 전에 의탁하여 키웠습니다. 어느 날 그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벌떡 일어난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저를 부르셨나요?" 엘리 제사장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다시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자 사무엘은 또 엘리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엘리는 또 그 소리가 들리면 "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습니다!"라고 대답하라고 일어 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사무엘은 하나님의 전에서 주의 음성 듣는 법, 경청하는 법부터 훈련을 받았던 것입니다. 경청을 훈련한 사무엘은 그 후 하나님의 놀라운 선지자가 될 수 있었고, 그 시대 그 민족을 인도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사무엘처럼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옵소서!"라고 경청의 태도를 배운 믿음의 자녀들로 키울 수 있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먼저 부모님들이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눈을 맟고 음성을 들어주고 자녀들의 필요에 반응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좋은 관계속에서 자녀들이 부모의 말에 경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성품 중 하나가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은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일찍 가르쳐야 하는 덕목입니다. 순종이란 "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현명한 지시를 기쁜 마음으로 즉시완벽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순종을 가르칠 때는 순종해야 할 대상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기쁘게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 주어야 합니다. 부모님, 선생님, 목사님, 국가 지도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 아버지 앞에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5-6절을 보면,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그리고 에베소서 6장 1-3절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말씀처럼 좋은 말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이 말씀을 외우게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순종하지 않을 때, '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지?"하면서 이 말씀을 적용케 하면 즉시 순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말씀의 위력입니다. 말씀으로 어렸을 때부터 기준을 정해 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엄마를 무시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현명한 지시를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참 중요합니다. 무조건 순종을 강요하게 하면 자녀들도 노엽게 됩니다. 귀찮은 일은 모두 자식에게 시키려고 순종을 강요하고 다그치면 관계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 입장에 서서 아이들의 유익하게 하는 현명한 지시를 내려야 합니다.
순종은 성품에 해당되는 덕목이지만, 어느 정도는 연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순종하는 태도를 연습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첫째, 내가 누구에게 순종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내가 어디를 가든지 거기서 순종해야 하는 분이 누군지를 알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이고, 학교에서는 선생님, 교회에서는 목사님, 이렇게 누구에게 순종하는지를 분별하게 하면 그가 커서 군대에 가거나, 직장에 가면 누구에게 순종하는지를 잘 알게 됩니다.
둘째로 순종의 대상을 알았으면, 지시한 것들을 즉각 바르게 순종하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여기서 지시사항을 내가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지시한 분에게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게 하면 좋습니다. 많은 경우가 지시한 사람의 의도와 다르게 알아듣고서 엉뚱하게 일을 해 놓게 되면 신뢰를 잃고, 윗사람에게 은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시를 받을 때, "그 말은 이러저러한 일입니까?"라고 되묻는 습관을 가지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로 긍정적인 태도로 기쁘게 순종하는 모습을 훈련해야 합니다. 일을 할 때, 불평하거나 짜증을 내게 되면, 지시하는 자의 마음이 좁아져서, 관계가 험악해 지게 되면, 윗사람에게 불이익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 없이 순종하는 자로 훈련되려면, 어려서부터 Y- E- S 법칙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은 순종의 대상에게 즉시 "네!"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선 yes를 했으면, 그 다음에 E자는 "earnest"로 진지하고 정직하게 생각해 보고, S는 "suggestion" 곧 창의적인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순종을 가르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 지시가 내 마음에 맞지 않고, 내 생각과 다를 때, 지시한 사람보다 더 좋은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어떻게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갈등을 해결하는 아주 중요한 열쇠인 것입니다. Y-E-S 법칙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일단 순종해야 할 대상이 말을 하면 즉시 "네"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어떤 일이 옳은 일이고, 더 합리적이고 발전적인 일인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중히 제안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제 잘 시간이니 그만 자거라" 어머니가 명령하면 아이는 즉시 "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서 생각하고 난 뒤에 제안합니다. "그런데, 어머니 제가 한 장만 더 읽으면 이 책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장만 더 읽고 잠자리에 들면 안 될까요?"라고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안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는 반항아로 자라게 됩니다.
"싫어, 싫단 말이야"가 입에 배면 부모와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이 빚어진다면 일단 부모님의 권위에 순종하여 "네"라고 말한 후, 생각하고 나서 창의적이고 겸손한 태도로 제안하는 방법을 알려 주어냐 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윗사람이 "자, 이제부터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갑니다. 이 일을 해 봅시다"라고 이야기하면, 우선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생각해 보고서 제안하는 것입니다. "팀장님, 지금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있는데 그것을 먼저 하고 나서 이 일을 하면 어떨까요?"라고 정중히 제안을 하면, 상사가 "아, 내가 그 생각을 못했군!"하면서 좋은 관계가 유지되면서 일이 더 완벽하게 성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직장이나 가정, 학교, 사회에서 Y- E- S 법칙이 적용되지 않아 순종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내 맘속에 있는 다른 좋은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몰라서 서로의 관계가 깨어지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봅니다. 어려서부터 Y- E- S 법칙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사회생활도 원만하게 할 수 있는 좋은 성품을 갖게 될 것입니다.
순종하면, 범사에 유익이 많은 것입니다.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더 큰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순종하도록 가르칠 수 있을까요? 부모가 자녀들의 순종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아빠가 엄마에 대해 권위를 가진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곧 남편에게 순복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존재 가치로 보았을 때는 남편과 아내가 모두 동등하고 귀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역할에서 남편과 아내는 다르게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빠가 “여보, 우리 ~합시다!”라고 제안할 때, 아이들 앞에서 “아니, 당신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하게 되면, 가정에서 아빠는 설 자리가 없어지고 맙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은 결국 엄마도 무시하게 될 것입니다. 권위 앞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아이들도 순종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비극은 부모의 권위가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권위자가 되어서 부모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현대의 비극입니다. 젊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창의성을 키워주고 싶다는 명목으로 부모의 권위를 놓아버리고 아이들의 고집을 받아줌으로 모든 결정이 아이들 위주로 돌아가는 것이 위험한 비극의 시작입니다.
가정에서부터 부모의 권위가 회복돼야 합니다. 단언컨대, 부모 권위가 살아나야 나라가 삽니다. 부모의 권위가 무엇입니까?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가 사라지고 자녀들의 고집으로 가정의 대소사가 결정되는 것이 시대적 풍속이 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선생님께 순종하지 못하여 학교생활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교사의 권위가 사라지고 제자가 선생을 무시하면서 학교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에서의 법과 질서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하려고 합니다. 교통질서가 엉망이 되고 교통순경의 멱살을 잡고 실랑이를 벌이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직장에서도 상관의 지시를 그대로 수행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내 마음에 안들면 그대로 박차고 나와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일을 처리하여 혼란을 초래합니다. 국가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고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합니다. 모두가 동등하다는 생각이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모든 관계를 파괴합니다. 나르는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어지러워집니다.
하나님의 권위도 무시합니다. 각자 마음에 좋은 대로 이끌리어 살려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점점 안정을 잃어 가며, 불안함과 두려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평안을 모르고 살게 합니다. 가정이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가정에서 부모 권위가 회복되어야 나라의 질서와 법이 세워집니다. 부모의 권위가 살아야 사회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으며, 학교 선생님들의 권위가 삽니다.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이 법도 지키고, 교회 인도자에게 순복도 하고, 하나님의 권위 앞에서도 순종하게 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부모의 권위가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순종이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모의 권위가 무너지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부모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를 보호하고 가르치며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비극이 부모가 자꾸 다른 사람에게 자녀를 위탁하려고 합니다. 양육을 위탁하고 교육을 위탁하고 그 대신 부모는 돈을 벌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미안한 마음 대문에 자녀에게 장난감, 돈 음식 등의 물질로 대신 보상하려고 하면서 자녀가 자기 고집을 행사하는 작은 폭군이 되어 가도록 방치하고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주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시대의 변화로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면서 올바른 부모와 자녀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워킹 맘의 증가로 자녀와 부모가 함께하는 시간이 짧아져 안정적인 신뢰와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못하여 일정하지 않은 양육자로 인해 일관성 있는 훈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부가 화목하지 못하여 가정 내에서 폭언과 폭력이 난무하고 이혼 등 가정불화의 증가로 자녀들이 올바른 부모상을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들의 잘못된 양육태도도 문제입니다. “내가 어른인데--- ” 혹은 “내가 부모인데---”라는 고정된 생각으로 자녀들의 감정과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명령과 지시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일류 학교에 대한 집착과 경제적인 풍요에만 가치를 두는 성공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부모 자식 간의 친밀함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순종의 반대말은 “자기고집”입니다. 자기고집대로 하면서 권위 앞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현 시대의 문제점은 자기 위의 권위가 누구인지도 분간하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큰 가치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고 불순종하는 아들들은 이렇게 행동합니다. 말대꾸를 하거나 갑작스럽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냅니다. 부모의 심부름이나 지시에 투덜거립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하거나 못 들은 척 무시합니다. 어른들께 무례하고 버릇이 없습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무단횡단 등의 공공의 약속과 질서를 지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기고집대로 행동합니다. 자기가 해야 할 책임을 다 하지 않습니다. 폭언이나 폭행 등 무례한 언행을 거침없이 아무에게나 기분대로 행합니다.
그렇다면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자녀와의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와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권위가 자꾸 멀어지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빠가 바쁘다는 핑계로 친밀하게 지내지 못하고 그 미안함을 불질로 보상하려다가 권위가 사라지고 물질만능주의가 아이를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물질로 아이를 만족시키려 하지 마십시오. 시간을 내 주십시오.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 때, 자녀들은 부모가 자기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지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같이 노시기 바랍니다. 아이는 자신을 즐거워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그 사람의 말을 따르려고 합니다. 그것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와 감정 공감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의 부모님께 순종하는 모델링을 보여주십시오. 자녀들이 순종하는 권위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자신의 부모님 곧 할아버지 할머니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열 마디 말보다 직접 눈으로 보고 듣는 경험이 가장 좋은 교육이 됩니다.
셋째, 부부간의 화목함이 우선입니다. 부부끼리 서로 싸우고 헐뜯는 가정에서는 순종하는 자녀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배우자의 허물을 자녀에게 말하면 부모의 권위가 떨어집니다. 무조건 “엄마에게 말해 봐”가 아니고, “아빠가 엄마랑 의논해서 알려 줄게” “엄아 생각은 이런데 아빠 생각은 어떤지 여쭈어 보자”하면서 서로가 존경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녀들은 순종을 더 잘 배울 수 있습니다.
넷째, 나쁜 행동은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무례하고 버릇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그 순간이 바로 아이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설명하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분명한 몸짓과 말로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건 올바른 행동이 아니다. 그러니까 다시 바르게 해 보렴”하고 말하셔야 합니다. 부모의 권위에 일부러 불순종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즉시 그 태도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다섯째, 욕구를 언어로 표현하게 하셔야 합니다. 사랑은 표현한 만큼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먼저 자녀에게 사랑을 말로 표현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자신들의 생각을 말로 표현할 것을 요구하십시오. 아이가 어릴수록 욕구를 언어로 표현하게 하고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으면, 떼를 쓴다거나 엄마를 때린다든가 발로 찬다거나 물건을 던지는 증의 행동으로 욕구를 표현합니다. 아이가 그렇게 행동할 때는 즉시 나쁜 행동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때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너란다. 그런데 네가 말하지 많으면 네 마음을 잘 몰라. 너의 마음은 어떤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말로 이야기해 준다면 엄마 아빠는 네가 원하는 것을 더 잘 알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떼쓰며 말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야, 네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자, 다시 말해 줄래?”하면서 분명하게 말로 욕구를 표현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여섯째,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은 것은 배울 수 없습니다. 좋은 성품은 가르침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부모님 말씀이나 선생님 말씀, 우리를 책임지고 있는 현명한 사람들의 지시가 자녀를 위험에서 보호해 주고 안전하게 하는 것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는 말씀을 가르치십시오.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귀한 자녀를 세상 속에 위탁하고 부모로서의 직무를 유기했던 것을 회개합시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자녀들을 끌어안고, 말씀대로 어렸을 때부터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가르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부모의 역할이 가르치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는 성품을 갖도록 부모들이 모든 지혜를 총동원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의 전인격 곧, “지정의”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 역사하시도록 성령님께 위탁하며, 우리에게 주신 귀한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는 귀한 아이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순종을 가르치는 것은 자녀를 더 큰 리더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교육입니다. 순종의 핵심은 <지시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자기 고집을 꺾고 자기 권위자에게 즉시 기쁜 마음으로 완벽하게 수행하려는 태도는 그 사람을 더 크게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순종을 통해서 권위자가 갖고 있는 모든 현명한 지혜와 삶을 살아가는 능력을 잘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자녀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일찍부터 “순종‘이라는 아름다운 세계로 안내하는 현명한 부모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부모가 순종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 주십시오. 순종을 가르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부모 자신이 권위 앞에 순종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본보기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드리는 순종과 존중을 눈여겨보면서 자신의 삶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을 대하는 태도, 직장에서 업무를 임하는 태도를 보면서 자녀들의 신앙생활과 직장생활을 미리 익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갈 때, 어른들이 솔선해서 공공질서와 예절을 지키는 모습에서 아이들은 사회를 향한 순종의 모습을 배우고 익히는 것입니다.
둘째, 순종의 성품을 칭찬하십시오. 칭찬을 통하여 순종의 성품을 더욱 성취감 있게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른 적절한 칭찬이 동기 유발이 되어 순종의 성품을 더욱 연마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학교에서 “네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잘 순종해 주어서 그 과제의 성적이 훌륭하구나!” “네가 좋은 태도로 학습 준비물을 챙겨 오는 순종의 모습을 보니 정말 고맙다.”고 칭찬을 해 주시면 됩니다. 기정에서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제자리에 정리하라는 엄마의 말에 순종해 주어서 정말 고맙다. 지속적으로 순종하는 네 모습이 정말 믿음직스럽구나.” “내가 너를 불렀을 때 순종하는 모습으로 빨리 와 주어서 참 고맙구나.”라고 칭찬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당신이 하던 일을 멈추고 새로운 과제에 즉시 착수하는 순종의 모습을 보여 주어서 참 감사합니다.” 사회에서도 “쓰레기를 가정으로 갖고 가라는 공원 관리자의 지시를 잘 수행해 주는 당신의 모습이 참 자랑스러워요”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아빠의 모습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이렇게 상황에 맞게 순종의 자세를 칭찬해 주시면 됩니다.
셋째, 예의 바르게 “창조적인 제안”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권위자의 지시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 어떻게 할까요?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먼저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불평하며 불만을 터뜨리는 모습은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더 큰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리더가 되지 못합니다. 리더십의 영향력은 감염이 되기 때문에 부정적인 사람은 사회나 조직이 큰 임무를 맡기지 않습니다. 협력자의 모습으로 자신의 권위자와 직접 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가정에서 엄마가 “민수야, 이제 책 그만 보고 자야 할 시간이다” 이 때, 민수가 “네, 엄마 그런데요 한 가지 말씀드릴게 있는데요.” 엄마가 “응 그게 뭔데?” “네, 두 페이지만 더 읽으면 이 책이 끝나거든요, 이것만 다 읽고 잠자리에 들면 안 될까요?” 엄마가 “그렇구나, 그럼 그것만 다 읽고 자도록 하거라.” “예, 엄마 감사합니다.”
직장에서도 상관이 “자 오늘부터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합니다. 어떻게 일을 시작할 것인지 각 팀 마다 보고서를 작성해 오세요.” 팀장은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 지시하신 것 중 다 끝나지 못한 것이 잇는데 그것을 먼저 처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면 어떨까요?” 상관이 “아, 그렇군 내가 그것을 미차 생각 못 했네. 그럼 그 일부터 완성해 놓고 다시 합시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창조적인 제안이란 권위자가 미처 알지 못한 정보를 조심스럽게 알려서 현명한 지시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입니다. 뒤에서 비난이나 불평하는 태도는 서로에게 좋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창조적인 제안>을 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면 모든 관계에서 성공하는 지혜자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