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BS 불멸의 이순신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드라마는 드라마로만 봐야 한다는 말들을 하는데
그렇다면 애초에 '사극'이란 단어를 왜 붙이는지....
그러고보니 작년 결선 때 두번째 면접 질문이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였죠.
총탄과 불화살이 빗발치는 노량의 바다. 조총의 심지가 한 사람을 향해 불꽃을 피우고,
칼도 없이 갑옷도 벗어던진 조선의 장군은 겨누어진 총구를 피하지 않는다.
기다렸다는 듯 준비 됐다는 듯 총구를 바라본다.
‘탕’.
KBS 100부작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4부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순신의 최후가 위장된 죽음, 적의 총탄을 유도한 자살이라니…
기대했던 나의 바람은 이순신과 함께 쓰러졌다. 가슴이 아파왔다.
‘드라마’라는 잎을 살찌우기 위해 공영방송의 책임과 역사적 진실의 큰 가지를 자를 수
있는가. KBS는 “그렇다” 라고 잘라 말하고는 역사의 중력을 벗어나 공중부양 한다.
그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
# 엄청난 제작비로 구현한 ‘이순신 자살說’
상황적 근거와 정황적 논리를 만들어 갈 수는 있다. 드라마니까. 하지만 세계해전사에
기록된 진실, 그 핵심을 조작하면 안된다. 공영방송의 역사 드라마니까.
‘불멸의 이순신’에서 7년전쟁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을 어떻게 왜곡했는지 보자.
순천 왜성에서 농성중인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포위하고 있던 이순신은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선조가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명예로운 죽음을
계획한다. 사약을 먹고 죽느니 차라리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리라. 스스로 포위망
을 풀고 노량으로 이동한 이순신은 경상도쪽에서 퇴각하는 적의 본진을 유인, 위험한
근접전을 유도한다. 부하 장수들이 자신을 보호하느라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선두에
서서 돌격을 명령하고, 도망가는 적선들 사이로 들어가 칼도 없이 갑옷도 벗은 상태
에서 적의 총탄을 기다린다.
사실일까. 23전 23승의 철두철미한 전략가 이순신이 미리 계획된 전투를 벌이면서 위
험한 근접전을 택했을까. 부하들이 자신을 위해 죽어가는데도 불필요한 돌격을 명령했
을까. 왜군의 재침입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신창이가 된 조국과 백성을 버렸을
까. ‘의도된 죽음’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기로 결심했다는 상황설정을 뺀다면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이순신 전문가들은 노량해전을 어떻게 설명할까.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같은 KBS의 작품, 2003년 6월에 방영된 ‘역사스페셜 특집 2부작 이순신’의 분석
을 살펴보자. 당시 제작진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의 고서와 전문가들을 종합해 상황을
설명했다.
이순신은 경상도쪽 왜의 본진이 먼저 기습해오자 눈물을 머금고 고니시의 포위망을 푼
다. 수적으로 3배가 넘는 적선을 순천만 큰 바다에선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이순신은
좁은 목인 노량으로 신속히 이동한다. (노량은 이순신이 이길 수 있는 장소라고 먼저
고른 장소가 아니다. 다 잡은 적 수장을 눈앞에서 풀어줄 수 밖에 없었던 이순신의 심
정이 어떠했을까- 서강대 사학과 정두희교수) 의도했던 전투가 아닌 비상상황이었기
때문에 왜군과의 근접전이 불가피 했으며 이순신 자신은 물론 부하장수들까지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이다.
비슷한 그래픽과 나래이션으로(역사드라마엔 진실을 강조하기 위해 바리톤급 성우의
해설이 삽입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불멸의 이순신’에도 종종 등장한다) 같은 방송국에
서 서로 다른 노량해전을 설명하다니, 묘한 아이러니다.
#<칼의 노래>가 아닌 <불멸>의 이순신
이순신의 마지막을 둘러싼 서로 다른 해석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뭐 크게 달라질 건
없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순신이 정치적으로 계산된 죽음을 택했다고 한
다면 KBS가 기획의도로 밝힌 ‘인간 이순신’에 대한 조명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
다. KBS는 공동원작으로 김훈의 <칼의 노래>와 김탁환의 <불멸>을 내세우고 있지만 지
금까지 방영된 7부까지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철저하게 <불멸>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칼의 노래>와 <불멸>에서의 인간 이순신을 비교해 보자.
김훈의 <칼의 노래>
또 백성을 버리고 떠날 작정인지, 백성들은 울면서 물었다. 백성들은 수영 앞마당을
이마로 찧으며 통곡했다. 나는 숙사 뒷마루에 걸터앉아 우는 백성들을 바라보았다.
부하가 죽으면 그 상급자의 불찰이다. 송여종, 베어져야 할 자는 너다. 그리고 나다.
네가 백성을 온전히 지켰더라면, 어찌 백성이 너에게 총을 쏘았겠느냐? (적에게 붙잡
힌 백성들 중에 아군을 향해 총을 쏜 자를 잡았다며 부하장수 송여종이 목베려 하자)
적이 전쟁을 끝내기를 원한다면 군대를 거두어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온 국토
를 갈아엎고 돌아가는 적을 온전히 살려서 보낼 것인지, 종자를 박멸해서 시체로 바다
를 덮을 것인지는 적이 아니라 나와 내 함대가 결정할 일이었다. (강화협상 소문을 듣고)
<칼의 노래>는 종묘와 사직을 슬퍼하고, 백성의 통곡소리에 잠 못 이루는 이순신에 초
점을 맞추었다. 이순신은 탈정치적이었으며 오로지 바다와 전장의 사실에만 몰두한다.
책의 부제에서 밝힌 대로 ‘이순신,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김탁환의 <불멸>
이순신, 너는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지나치게 정치적이구나 (부하의 죽음 앞에 곡을 하
고 우는 이순신을 보고 경흥부사 이경록이)
언제나 타인의 눈을 의식하고, 타인에게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타인에게 뒤져있
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 얼기설기 뒤엉키고 꼬여 제대로 밝은 빛을 보지 못하
는 마음. 이순신이란 인간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르고… (최측근인 전라좌수
사 권준이 이순신을 생각하며)
나는 한갖 인간일 따름이다. 하루라도 스스로를 합리화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는
인간, 자신의 그림자를 잊고자 폭음하는 인간, 조금이라도 으스대고자 활시위를 당기
는 인간, 조정에서 벌어지는 당파놀음에 귀기울이는 인간, 입신양명을 꿈꾸는 인간,
눈물 많고 겁많은 인간. (원균의 죽음 앞에서)
<불멸>은 기존에 알려진 이순신이 아닌 ‘이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파격으로 쓰여
진 소설이다. 원균이 뛰어난 장수로 묘사되는 반면 이순신은 나약하고 겁많고 정치적
인 인간으로 나온다. 개인적으론 재밌게 읽은 소설 중의 하나지만 역사공부를 조금이
라도 한 사람이라면 끝까지 읽어내기 힘들 정도의 황당한 설정이 많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인 시점에서 부하장수들과 술취해 골아떨어진 이순신을 원균이
타이르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명량해전의 지략과 거북선의 제조를 이순신이 아닌 그
부하장수의 아이디어로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신화와 영웅의 이미지를 소인배로
끌어 내리고선 “인간이니까” 해버린 건데, 독자 입장에선 “소설이니까” 해버리면
그만이다. 괜찮다.
문제는 KBS가 만드는 ‘불멸의 이순신’이다. 이건 안사보면 그만인 소설이 아니라 역사
드라마다. 초등학교 조카부터 옆집 순이, 동네 목욕탕 때밀이 아저씨까지 다 본다는
얘기다. 명나라 장군 앞에서든 임금이 보낸 선전관 앞에서든 다혈질적으로 칼을 빼드
는 이순신, 작전에 실패하고도 승전의 장계를 올리는 이순신, 유성룡 형님 원균 형님
과 함께 어린시절을 보내는 이순신을 보면서 “아하, 그랬구나” 한다는 말이다.
공영방송의 책임을 모르지 않을 제작진이 왜 <불멸>의 넌센스를 여과없이 따르는 걸까.
제작비가 350억 밖에 안돼 스토리 작가를 고용할 여유가 없는 걸까.
아님 김탁환씨가 드라마 작가로 나선 걸까.
#<불멸>과 개정판 <불멸의 이순신>
1998년에 출간된 ‘불멸의 이순신’의 공동원작 <불멸:총4권>은 현재 시중 서점에서 구할
수 없다. 원본은 절판되었고, 대신 드라마와 동명의 <불멸의 이순신> 이란 개정판이 5
권까지 나와 있다. 8권까지 낼 예정이란다. 교보문고 점원에 물어보니 “이 소설이 개
정판이라구요?” 오히려 되묻는다. 사실 소설 어디에도 6년 전에 낸 <불멸>에 대한 언
급은 없다. 왜 그럴까? 왕성한 호기심이 날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불멸의 이순신>은 <불멸>의 기본 줄거리와 구성은 유지하고 있으나 이순신과 관련한
몇몇 표현들이 삭제 되었고(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내용) 이순신의 성장과정이 추가 되
었으며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등 다양한 인물들의 얘기가 더해졌다. 아직
완간 되지 않은 소설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건 실례일 테니 자세한 비교는 접고,
대신 출판의도를 어림할 수 있는 책 속의 ‘작가의 말’을 요약 비교해 보자.
<1998년판 불멸>
나는 이 소설이 자유롭게 읽히기를 원한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윤리적 판단도 배제
하고 말이다. <불멸>은 위인전기나 우화가 아니라 소설이다. 나는 <불멸>을 소설로 썼
기 때문에, 제한된 삶을 사는 유기체인 ‘인간 그 자체’에만 관심을 쏟았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철저하게 소설화된, 내 속에서 창조된 인물이다.(중략) 현명한 독자라면,
역사의 위인과 소설의 등장인물을 혼동하는 잘못을 범하지는 않으리라.
<2004년판 불멸의 이순신>
(조선 내부의 쟁공과 반목을 강조하고 왜군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일) 이것은 춘
원 이광수의 소설 <이순신>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순신만 선하고 이순신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악하다는 이 구도에서는 조선과 왜국의 대립을 조선인 내부의 대립으로
치환시키려는 ‘민족개조론’의 발상이 깔려있다.(중략) ‘인간’과 ‘영웅’을 대립시키는 낡
은 관점을 벗고자 하였다. 영웅성을 강조하여 인간적 면모를 탈색시키는 것 만큼이나
인간적 행적에만 주목하여 영웅적 업적을 지우는 것도 문제다.(중략) 이순신은 끝내
쿠데타의 유혹을 뿌리치고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지만, 평생 이순신과 나폴레옹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던 박정희는 쿠데타를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장수의 길을
버린 이 정치군인은 왕실과 조정이 자신을 핍박하고 목숨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철
두철미 본분을 다한 이순신의 최후 앞에 어떻게 자신을 합리화했을까.
작가의 말만으로 보면 <불멸>과 <불멸의 이순신>이 전혀 다른 소설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정말 그런가 <불멸>을 한번 더 읽어봤을 정도다. ‘민족 개조론’이라니.
그럼 박은식과 신채호의 <이순신전>도 그런 의도로 쓰여진 건가.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인 내부의 쟁공과 반목을 부각하고, 이순신의 영웅적 업적을
지우고 있는 소설이 다름아닌 <불멸>이란 점이다. 6년새 뭐가 달라진 건지. <불멸의
이순신>을 5권까지 읽어본 바로는 앞에서 언급한 것 이외의 차이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앞으로 세권이 더 남았으니 지켜보기로 하자.
#소설 <불멸의 이순신>과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개정판 <불멸의 이순신>을 읽다보면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7부까지
방영된 드라마의 내용 중 원작으로 내세운 <불멸>에는 없는 부분이(그래서 제작진의
창작이겠거니 했는데) <불멸의 이순신>에 있다는 점이다. 소년 유성룡이 이순신에게
뿔피리를 주는 장면, 소년 원균과 이순신이 산에서 우정을 다지는 모습, 이순신 집안
과 조광조와의 인연 등이 그렇다. <불멸의 이순신 1권>이 출판된 날짜가 6월 30일,
드라마가 한창 제작되고 있을 무렵이니 궁금증이 더한다.
유성룡, 이순신, 원균(왼쪽부터)은 어린시절을 같이 보내는데, 유성룡은 공부 대장,
원균은 골목대장인 반면 이순신은 소심한 성격때문에 따돌림을 당한다
출판되지도 않은 책의 내용을 드라마 제작진이 입수한 걸까. 아니면 드라마의 대본에
서 김탁환씨가 힌트를 얻은 걸까. 김탁환씨가 드라마의 작가로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는 사실을 나만 모르는 건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이 <불멸>인지 <불멸의 이
순신>인지 아리송하다.
#KBS는 ‘인간’ 이순신과 ‘영웅’ 이순신을 더불어 감당할 수 있는가.
백성을 외면한 정치적 자살이 ‘불멸’을 택하는 행위였다는, 소설 <불멸>과 드라마 ‘불
멸의 이순신’에서 보여준 이순신의 죽음을 소설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는 인정할 수가 없다.
저자 김탁환씨는 최근 역사왜곡이라는 항의에 대해 선조실록에 나오는 상소문을 근거로 들었다.
나라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한 승장에게 죽음을 내리려 했던 사람들, 칠천량 해전
에서 조선수군을 전멸로 이끈 원균(당시 왜군은 이순신의 전략을 벤치마킹해 원균의
군대를 갖고 놀았다)을 일등공신으로 치켜세운 사람들, 전함도 없고 군사도 없는 상황
에서 ‘해군 사령관’ 임명장만 달랑 보낸 사람들, 남도를 훑어가며 군사를 모으고 겨우
13척의 배를 마련한 해군사령관에게 ‘해군 해체령’을 내린 사람들, 그 사람들의 편에서
바라보면 ‘영웅’이 아닌 ‘인간 이순신’을 볼 수 있는 건가.
소설로 봐달라 해서 <불멸>은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정치적 역사소설 <불멸의 이순신>은 호기심의 힘으로 5권까지 꾸역꾸역 넘길 수 있었다.
소설 <불멸의 이순신>도 계속되고 역사드라마 ‘불멸의 이순신’도 계속된다.
소설 그 이상의 의미를 의도하는 소설을 8권까지 읽어 줄 인내심이 내게는 없다.
소설 그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역사드라마를 100부까지 멍하니 보기도 힘들 것 같다.
조카가, 옆집 순이가, 때밀이 아저씨가 드라마를 물어오면 뭐라 설명해야 하나.
첫댓글 사극, 말그대로 역사에 관한 '극'입니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실이 아니듯, 사실이 될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순신장군의 확실한 자료가 없는 이상,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뀌고 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까지 제대로 된 게 나오기나
했나요 뭐.....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 방송 현실 때문에 그렇게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규명이 아닌, 오로지 흥미와 시청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드라마를 만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