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던 아기가 미나미가 온다고 하면 울음을 뚝 그쳤다는 악명 높은 미나미 지로가 관동군을 지휘하다가 조선 총독으로 들어앉았다. 조선과 일본은 한 몸이라고 내선일체라는 사탕발림 같은 소리를 했다. 일본과 중국, 조선은 오래전부터 같은 형제였다. 얼굴 모양도 같고 젓가락질로 밥과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같은 민족이다. 그러므로 세 나라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고 선동했다. 만주를 해방하고 중국을 통일시키기 위해 중일전쟁을 일으켜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일본과 조선이 한 몸으로 힘을 합쳐 자랑스러운 황국신민(皇國臣民)이 되자고 외쳐댔다.
전쟁 준비를 하면서 동네마다 신사를 만들어 참배하게 했고 학교나 직장 어딜 가든 황국신민 충성 3항을 먼저 외우게 했다. 1, 황국신민(皇國臣民)이다. 천황폐하와 나라에 충성한다. 2, 황국신민(皇國臣民)은 서로 믿고 사랑하며 도우며 살아야 한다. 3. 황국신민은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몸을 단련하여 힘을 길러 황도를 선양하며 지킨다. 신문이나 출판물에는 하나같이 일본이나 조선인들은 모두 천황폐하의 황국신민으로 충성을 하자고 주장했다. 아장아장 걷는 명희를 앞장세우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 남죽 선생이 탁자 위에 배달된 조간신문을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내선일체라고 하지만, 물과 기름이 함께 뭉쳐질 수는 없다 아니 가? 매일매일 신문에 도배해져 있는 것은 그놈의 내선일체며 황국신민이며 충성맹세 3항, 이런 잡것을 보기 싫어 신문을 보기 싫은 거라.”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이 이야그 허는 걸 들어 보믄요, 만주를 집어삼키고는 중국을 통째로 다 묵으려다가 맘대로 잘 안 먹히고 일본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더라고 합디다.” “맞아 맞다이, 일본이 서서히 망해가는 징조가 보이는 거라. 내선일체며 황국신민이라며 즈그들한테 충성맹세를 유도해 세뇌하려고 하지만 우리가 잘 따라 주지 않고 있으이 똥줄이 타는 거가 아니 가?” “미나미가 턱도 없는 짓들을 못 하게 그때 죽여 뿔어야 했는디 그것이 아쉽다니까요.” “강서방! 그건 그렇고 명희 에미는 어디 갔노?” “아랫배가 아프다며 아까 막 방에 들어갔고 만이라.”
남죽 선생이 손가락을 짚어 보더니 덕형에게 명희를 맡기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완연한 봄, 영순이 둘째를 해산하려는 조짐이 왔다. 남죽 선생이 부지런히 산실을 드나들고 명희는 덕형을 따라다니면서 일일이 참견이었다.
“명희야, 앗 뜨거워. 뽀짝 오면 안 돼.” “아바아바, 머야?” “마당에 가서 놀자.” 명희가 아장아장 걸으면서 물을 끓이는 아궁이 장작불을 부지깽이로 두드리기도 하고, 펌프에 물 긷는 데에 따라와서는 양동이에 물을 퍼내서 대야에 붇고는 세수를 한다며 물을 얼굴에 찍어 바르기도 했다. 알아듣지도 못한 말을 지껄여 대며 말 배우기에 열심이었다.
방안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우렁차다. 덕형이 혹시 아들인가도 생각해보았다. 남죽 선생이 대야를 들고나오면서 강 서방 하다가 명희 아부지라고 고쳐 부르며 이쁜 공주다. 고 했다.
“명희 아부지야! 이쁜 공주다. 이!” “선생님! 명순이가 벌써 이 세상으로 왔고 만요,” “응, 그래 명희 아부지가 말한 대로 명 순이가 별 공주처럼 이뻐 뿌이, 딸딸이 아부지가 됐는 거라, 어서 들어가 보그라 이.”
남죽 선생이 이런 아기는 처음 받아본다며 명희를 받을 때 했던 말을 이번에도 같은 말을 했다.
“60년을 살았지만 이런 해복 수발은 첨 인기라! 기양 바로 쏙 낳아 뿌이 애기를 낳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엄청 수월한 거라. 애기를 받으려면 어찌 힘이 드는지, 온몸에 땀이 애기 낳는 사람하고 같이 흐르는 것인데 실감이 안 난다. 카이.”
영순이 출산을 했던 산모처럼 보이질 않는다. 다만 이마 부분이 땀방울이 송송 맺혀 있을 뿐이었다. 명희를 안고 덕형이 들어 왔다.
“명희 어무니가 욕 바 뿌럿당게.” “명희 아부지! 말대로 명순이가 와 뿌럿네.” 이번에도 딸이 태어났다고 미안해하는 영순의 말투였다. “우리 명순이를 얼매나 기다렸다고 어디 좀 보자.” 명희가 아버지 덕형의 품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명순이를 만져 보고 싶은가 보다.” 남죽 선생이 말했다. “명희야 아가야가 아야 한다.”
영순이 흐뭇해하고 새로 태어난 아기 모습이 덕형이 감회가 새롭다. 벌써 두 번째 아이까지 아무 걱정 난관 없이 출산했다. 만약 선생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이 미치니 남죽 선생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우리 명희랑 명순이를 잘 받아 줘서 고맙고 만이라.” “허허! 나사 아무것도 안 했다. 아니 가? 내가 뭘 했다고 단지 태만 짜른 것, 뿐이 없다 아니 가?” “그래도 선생님이 애기를 많이 받아 봤기 땀세. 우리 명희 어무니가 쉽게 아기들을 난 거지요.” 남죽 선생이 한사코 자기가 한 일은 없다고 되풀이 말했다. “아니다, 내사 헝거가 별로 없다. 하이.” “아니라니까요, 선생님께서 애기 받는 기술이 좋아 뿡게, 명희 어무이가 쉽게 낳았다니까요.” “애기 낳는 기술자는 내가 아니고 명희 어무니가 기술자 레이.”
제자들의 출산을 돕는 과정에서 난산으로 인해, 산모와 신생아가 같이 죽는 것도 남죽 선생은 몇 번씩이나 경험했었다. 제자들에게 항일정신을 일깨워 주며 굶어 죽을지언정 일본 놈들에게는 술도 따르면 안 된다고, 산홍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가르쳐 왔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 고 강조했지만, 원치 않은 임신을 피하지 못한 제자들을 많이 보면서 울었었다. 낱낱이 보면 기녀들의 출산은 하나같이 난산이었다. 산모나 출산을 돕는 사람이나 같이 힘들며 고생 끝에 반갑지 않은 몸을 풀어야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일본사람들을 상대하지 않고는 생계를 이어 갈 수 있는 여건이 되지를 않았으니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비봉산자락에서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 향이 쉼 없이 코를 자극하더니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다. 신문에서는 연일 일본군에 자원하는 조선 젊은이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자랑스러운 징용에 나서 영광스러운 황국신민이 되자고 선동하는 기사가 연일 실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손님이 계속해서 이어지던 식당 영업은 해가 갈수록 손님이 줄어들고 있었다. 농촌에서는 난데없는 강제 쌀 공출이 강화되고 도시에서는 영세사업자들에게까지 이름도 모를 각종 세금 명목의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신문을 읽고 있던 남죽 선생이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는 동안 장작을 패고 있던 덕형이 목이 말랐는지 가게 안에 냉장고 안에 냉수를 꺼내 마시다 말고, 남죽 선생에게 오늘 신문에 난 내용을 묻는다.
“선생님요, 오늘은 신문에 뭐라고 나왔습니까?” “인자는 일본이 참말로 망할 때가 됐는가 보다.” “뭐라고 나 왔습니까?”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일본군대에 5만 명도 넘게 자원을 했다고 헌데이. 글고 징용지원자도 날마다 늘고 있다고 안 하나.” “즈그들 나라에는 사람이 없답니까? 왜, 우리나라 사람들을 뽑아 간답니까?” “일본 놈들이 꾀를 내도 죽을 꽤 만 내놓고 있는 거다 이, 조그만 헌 섬나라에서 대국인 중국을 집어 묵으려고 안 하나? 중국이 인구만 해도 얼만데? 일본 즈그들 나라 안에 있는 젊은이들은 모조리 전쟁터에 집어넣어 놓고, 공장 돌릴 사람이 있나 탄광에 석탄 캘 사람이 있나?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을 데려다가 일도 시키고, 전쟁터에도 보내고 허는 것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