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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호에서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곳에서 무슨 일을 겪었기에 당신의 몸에 이렇게까지 심한 상처들이 난건가요?"
강재은은 침상에 누워 있는 한의 손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한의 얼굴은 시체를 연상시킬 정도로 창백했고 광대배가 특 튀어나와 말라 있었다.
오후의 가을 햇살이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한의 파리한 얼굴에 짙은 음영을 만들었다.
그녀는 한의 상처를 믿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적들이 에워싸고 있던 기요미즈테라의 숲 속을 제집처럼 유유히 통과하던 그였다. 어떤 경우에도 쓰러질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강인한 사람이어서 이번 일로 그녀가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창밖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숲이 펼쳐져 있었다. 고지대여서 단풍이 빨리 찾아온 듯했다. 이곳은 강원도 문막, 이름 없는 산 중턱의 숲 속에 지어진 별장으로 국정원의 안가 중 한 곳이었다.
지상 이 층의 안가는 겉보기에 어느 부호의 별장처럼 보였지만 요인대피용으로 지어진 곳이어서 내외부의 시설은 최첨단 경비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만약을 대비해 지하에는 치료용 설비들이 초일류 수준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한은 이곳에서 대수술을 받았다. 그가 입은 상처는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여서 그는 해경호가 부산항에 도착하자마자 부산에서 이곳까지 헬기로 극비리에 이송되었고 준비하고 있던 의료진에 의해 수술을 받았다.
지금 그의 전신은 흰 붕대로 휘감겨 있어서 마치 미라를 연상시킬 정도였는데 오른쪽 귀를 두텁게 두른 붕대가 그가 직면했던 처절한 상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했다. 한의 오른쪽 귀는 중간부터 마치 톱니에 찢긴 듯 찢겨 나가 있었다.
“깨어나세요. 제가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어요. 벌써 오 일째예요. 당신답지않잖아요.”
강재은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이지적이고 밝던 그녀의 얼굴은 며칠 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초췌하게 변해 있었다.
한의 상처를 본 후 마음고생이 심했고 수술이 끝난 후 며칠 동안 그의 곁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으며 간호하느라 눈을 제대로 붙이지 못한 탓이었다.
그녀가 초췌한 얼굴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별장의 담 너머 숲 속에서 무엇인가가 언뜻 눈앞을 스치는 느낌을 받은 그녀의 두 눈이 커졌다. 이곳은 국정원 내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는 극비의 장소다.
심상치 않은 예감에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던 그녀의 몸이 풀썩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머리가 한의 손이 놓여 있는 침상 위에 비스듬히 누운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다.
조심스럽게 강재은의 머리를 부축해 침상 위에 누인 오제문은 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의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보는 그의 안색은 침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눈을 뜨거라.”
오제문은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속일 수가 없군요.”
한은 천천히 눈을 떴다. 흑백이 뚜렷한 눈동자가 잠시 잠들어 있는 강재은을 바라보다가 오제문을 향했다.
강재은이 보았다면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을 모습이지만 지금 그녀는 오제문에 의해 수혈(睡穴, 눌리면 잠을 자게 되는 혈도)이 제압된 채 잠들어 있었다.
한의 음성에 힘은 깃들어 있지 않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해서 그가 정신을 차린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한은 상체를 일으켰다. 몸의 이곳저곳에서 삐걱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처럼 심각한 상처를 입고 쓰러진 지 불과 수일 만에 이 정도로 회복되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뒷짐을 진 채 한이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던 오제문의 입이 열렸다.
“어느 정도까지 회복되었느냐?”
“육성 정도의 무상진기가 회복된 듯합니다. 무상진기의 기운이 쓰러지기 전보다 더욱 정순해졌군요.”
잠시 눈을 감고 천단무상진기를 운기해 본 한은 진기 운용을 멈추고 오제문을 보며 말했다. 그 말 속에 대답을 구하는 질문이 곁들여져 있음을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았다.
오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점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이제는 너도 알 때가 되었지.”
말을 하는 오제문의 눈 밑으로 어두운 그늘이 지고 있었다. 그는 지난 십여 년의 세월 동안 한을 지켜봐 왔다. 오늘 그가 하는 말을 듣고 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가 알고 있는 한은 누구보다도 자부심이 강했고, 타의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움직이는 것을 용납할 사람이 아니었다.
방 한구석에 놓여 있던 의자를 가져와 침상 옆에 앉은 오제문은 한의 두 눈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할까?
“무상진결. 그리고 제 몸 안에서 저의 뜻과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는 힘부터 말해주십시오.”
한의 음성은 평소처럼 톤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은 달랐다.
그의 마음속에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동안의 그 숱한 의문이 풀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오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 무상진결의 서문에 적혀 있던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것은 무상문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이지. 이미 네가 익히고 있으니 나보다도 더 잘 알 테지만, 가히 그 안의 절기들을 익히면 초인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오제문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무상진결은 내 스승님의 뜻으로 너에게 전해졌다, 나를 통해서. 그분이 너를 직접 가르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그렇게 전해질 수밖에 없었지. 네 안의 힘은. 그것은 스승님의 진원지기다. 그분이 평생을 고련하셨던 힘의 정수야.”
“진원?”
“그렇다. 그분은 급하게 떠나실 수밖에 없었고, 그 길은 그분이 진원을 가지고 갈 이유가 없는 길이었다. 그래서 스승님은 당신의 진원을 너에게 남기신 거지. 너는 그분의 마지막 희망이었으니까.”
오제문의 말을 듣는 한의 눈이 점점 깊어졌다.
“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네 생각처럼 너를 이용하기 위한 조치는 아니었다. 현재 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분의 처음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분은 네가 조용히 무상진결을 수습하고 후인을 키우기를 바라셨다. 지금처럼 네가 직접 대명회를 상대하는 상황을 예상하시지는 못하셨지.”
“아저씨의 스승님이 떠난 길이 어떤 길이기에 진원지기를 내게 전해주고 간 겁니까?”
한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다. 한의 질문을 받은 오제문의 눈에 통한의 빛이
떠올랐다. 그의 눈매는 조금씩 일그러졌다.
“그분은. 죽으러 가셨다.”
“죽으러라니? 죽음을 알면서도 가셨단 말입니까?”
한의 말투는 정중했다. 상황이 어떻게 꼬여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지금 오제문과 다툴 이유도 없었고, 오제문이 아니었다면 그는 현재의 능력을 보유할 수도 없었다.
한은 오제문의 정체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갖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에게 감사한 마음도 갖고 있었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영문을 알고 난 후에라도 늦지 않았다.
오제문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가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것만이 나를 살리고, 그리고 너와 무상진결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방 안이 정적에 잠겼다.
“그분을 죽인 자들이 대명회입니까?”
“역시 짐작하고 있었구나.”
“그들이 무상진결상의 절기들을 알아보고, 알아보는 자들마다 살기를 뿌려대는데 그만한 추측이야 어린아이라도 할 수 있을 겁니다.”
한은 씁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분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알아야 그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겠군요.”
“당연히 알아야 한다. 네게 그분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려주기 위해서 내가 아직까지 못난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것이니까.”
말을 하는 오제문의 음성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듣고 있던 대명회 강원지부장 이상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시선이 살기를 담고 자신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내를 향했다.
죽지 않았다고?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한 건가?
살기에 젖은 그의 목소리가 거실에 낮게 깔렸다.
이상전의 시선을 받은 사내의 얼굴이 사색을 띠며, 그의 이마에 맺혀 있던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려 콧등에 매달렸다.
“그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시선이 있어 즉사시키지는 못했지만 그의 생명은 길어야 한 시간을 갈 수 없도록 제가 손을 썼었는데.”
우진량은 황망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비록 그의 재주가 김명산보다 뛰어나지 못해 지부의 무력을 책임질 수 있는 위치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일반인의 경락을 뒤틀어 놓을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넘치는 그였다. 그리고 그는 김명산이 죽은 지금 강원지부의 무력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기도 했다.
그는 분명히 쓰러진 박송원의 머릿속을 흐르는 경락을 뒤흔들어 놓았고, 척추 뼈를 가루로 만들었다.
이미 교통사고로 초죽음이 되어 있던 박송원에게 연이어 손을 써서 전신을 엉망으로 만든 사람이 그였기 때문에 박송원이 사고가 난지 여섯 시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는 뉴스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상전은 우진량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지금 한국지회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임한을 죽이기 위해 갔던 사람들이 모두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는 사실이 각 지부장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이상전이 혈육보다 더 믿고 있던 강원지부의 무력책임자 김명산도 사망자 명단에 들어 있었다. 김명산이 있었다면 이런 실수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죽은 김명산에 대한 안타까움과 우진량에 대한 분노로 이상전의 머릿속이 난마처럼 헝클어졌다. 어떻게 요즘은 되는 일이 없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는 그의 눈치를 보며 우진량이 입을 열었다.
“지부장님. 가서 확실하게 박송원의 숨을 끊어놓고 오겠습니다.”
단호한 어조였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이상전의 얼굴은 믿음직한 부하를 보는 표정이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분노 탓에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손을 들어 우진량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하며 그는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박송원의 몸에 손끝이라도 댄다면 그 순간이 네 목숨이 없어지는 순간이다. 헛소리하지 말고 근신하고 있도록. 나가 봐!
그의 속을 짐작하지 못하는 우진량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나갔다.
넓은 거실에 혼자 남은 이상전은 음울한 안색으로 벽면에 놓인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초점이 잡혀 있지 않았다.
우진량의 마지막 말은 김명산에 대한 그의 아쉬움을 더욱 키워 놓았다.
김명산이라면 우진량처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병원에서 수술 중이라는 박송원의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의 상세가 위태롭긴 해도 죽음의 위험에서는 벗어났다는 뉴스가 나온 다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송원이 만약 덜컥 숨을 거두기라도 한다면 그의 죽음에 의혹을 갖는 사람들이 나을 터였다.
게다가 박송원이 현장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도 의심스러웠다. 우진량이 김명산에 미치지 못한다 하여도 평범한 일반인의 목숨을 거둘 능력은 남아도는 자였다.
누군가 개입했을 여지가 있었다.
이상전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휴대폰을 켰다. 윤찬경도 이미 뉴스를 보았을 것이다.
어떤 질책을 받을 것인지는 불을 보듯 훤했지만 보고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현대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양의 역사에 대해 생각할 때 백 년 이상만 거슬러 올라가도 마치 미개한 야만인들이 우글우글 거리며 살았다는 식으로 생각하곤 한다. 발전된 현대 문명의 이기들을 사용하는 그들이 볼 때 화장실에서 사용할 휴지가 없어서 똥 작대기를 사용하며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옛사람들의 생활이 상상이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현대적인 물질문명의 이기들을 알지도 못했고 당연히 사용하지도 못했지만 고대인들이 이룩했던 정신문명의 수준은 현대인들이 따라오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두터운 것이다.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잇던 오제문의 시선이 잠시 창밖의 숲 속을 향했다. 그 눈에 아련한 그리움이 어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한을 향했다.
한아, 너는 천외천부라는 말을 들어 보았느냐?
“대명회의 고수들 중에 제가 시전하는 무예를 보고 천외천부를 언급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과의 전쟁이 이미 천삼백 년을 넘기고 있으니.”
“천삼백 년?”
오제문의 말을 들은 한의 두 눈이 커졌다. 그 눈에 믿기 어렵다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에게 전해진 무예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옆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놀라지 않을 그였지만 오제문이 말한 시간은 너무 길었다.
“믿기 어렵느냐?"
오제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네가 믿고 안 믿고는 상관이 없다. 사실이니까”
싱긋 웃으며 오제문은 말을 이었다.
“대명회, 아니 네가 알고 있는 대명회의 정식 명칭은 대한호국회(大漢護國會)다. 그들과 천외천부가 맺은 악연의 시작은 고구려 멸망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제문의 입에서 나오는 내용은 이어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는 한의 눈은 순간순간 계속되는 충격으로 부릅떠지고 있었다.
고대 동양에는 정신수련을 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의 수련 양식은 기공, 무예, 주술 등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했지만 목표는 동일했다.
깨달음을 얻는 것, 온전한 자신과 생사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도, 우주, 신성이라 부르는 무엇과의 합일이었다.
그들은 서쪽으로는 인도에서부터 동쪽으로는 왜에 이르기까지, 남으로는 현재의 필리핀과 북으로 시베리아 오지까지 동양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그들 수련자 중 현재 중국의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 티베트 지역에서 수련을 하던 승려, 신승(神僧) 브라흐마나는 일정한 수준에 오른 후 더 이상 진척이 없는 자신의 경지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햇빛에 반사되는 만년설을 바라보며 산중을 산책하던 그는 갑작스레 떠오른 구상으로 손뼉을 쳤다.
그것은 정신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취를 허심탄회하게 서로에게
공개하고 더 높은 경지를 위해 비전(秘傳)을 공유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마음이 밝은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하고자 하는 어떤 일이 생기면 그것에 매진하는,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변에서 수련을 하던 사람들을 하나둘씩 모았고, 그 노력은 브라흐마나로부터 오대(五代)를 지나며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그의 후예들은 자신만의 수련에 매진하던 동양의 초월자들을 하나의 모임으로 묶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브라흐마나의 뜻을 이어 초월자들을 하나의 모임으로 구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던 브라흐마나의 다섯 번째 후계자 파라슈라마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판단되자 모임의 명칭을 만들었다.
그것이 세상 속의 또 다른 세상, 초월자들의 세계 은자림(隱者林)의 시작이었다.
신승 브라흐마나의 뜻에 공감하고 은자림에 모인 초월자들은 말 그대로 세속의 모든 것으로부터 초월한 사람들이었다. 인종, 민족, 국가 그 어떤 것도 그들을 잡아 두지 못했다.
그들은 우주와 하나 됨을 꿈꾸는 사람들이었고,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세속의 분별은 티끌만 한 가치도 없었다.
비전을 공유한 그들이 이룩한 성취는 경이적인 것이었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자 은자림에 속한 구성원들 개개인의 능력은 탈인간(脫人間), 가히 초인의 경지에 올라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성취는 그들을 더욱 더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들의 능력으로 세상의 권세를 얻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그처럼 쉬운 일에 그들이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문제가 생긴 것은 은자림의 이름이 정식으로 만들어진 지 삼백 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