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를 섬기는 일
로마서 15장 20절『또(후토스)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오노마스데) 곳(호푸)에는 복음(유앙겔리제스다이)을 전하지 않기(우크)를 힘썼노니(필로티무메논)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후토스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라는 것이다. 필로티무메논은 필로스(사랑)와 티메(명예)의 합성어이다. 오노마스데는 현재완료 수동태로서 이름이 불려지다 라는 것이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필로티무메논 유앙겔리제스다이 우크 호푸 오노마스데 크리스토스』인데,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려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한 것을 명예롭게 여긴다 라는 말이다.
15장 21-22절『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옾손타이)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쉬네수신) 함과 같으니라』기록된 성경은 이사야서이다. 옾손타이와 쉬네수신이 서로 연결을 이룬다. 본다는 말과 깨닫는다는 말이 같은 의미가 된다.
15장 22-23절『그러므로(디오)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클리마시 투토이스)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에피포디안』』디오는 ~때문에 라는 의미다. 그 이유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에 가지 못한 것이다. 클리마시 투토이스는 복수, 여격으로서 여러 지방이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일루리곤까지 동부 지방의 여러 도시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 로마의 서쪽 서바나로 향하는 것이다. 서바나로 가기 위해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이 부분은 헬라어 성경에는 24절에 있지만 개역개정은 23절에 포함시켰다. 에피포디안은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로마를 방문하는 이유는 서바나(스페인)를 가기 위한 기지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로마교회에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려는 것도 있었다. 이는 로마서 1장 11절에 잘 나타나 있다.『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5장 24절『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휘포 휘몬) 얼마간 기쁨을 가진(엠플레스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휘포(~에 의해서) 휘몬(너희)은 너희와 사귐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사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 말은 엠플레스도(과거 수동태)와 연결된다. 충만하게 되는, 채워지는 이라는 의미다. 너희가 충만하게 된다면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서바나로)보내 주라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교회를 먼저 충만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서버나로 가는 것이다.
15장 25-26절『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디아코논)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코이노니안)하였음이라』디아코논(디아코니아)은 섬기는 청지기이다. 그리고 디아코니아는 하나님과 화목을 위한 직분이다. 사도행전 11장 29절에서『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διακονίαν)를 보내기로 작정하고』여기에는 디아코니아를 부조라고 번역했다. 섬기는 것이 연보와 연결된다. 코이노니안은 교제라는 의미이지만 여기는 연보로 번역되었다. 교제는 영적인 교제(말씀을 나누고 화목하는 것)와 물질 교제(헌금)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제는 이와 같이 이 둘이 연결된다.
바울은 로마교회를 가려고 했지만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 마게노냐,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한 돈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을 많이 받았으므로 가난한 교회였던 것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목적은 겉으로는 헌금 전달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화목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15장 27절『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오페일레타이)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사르키코이스)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오페일레타이는 빚진 것인데, 영적으로 빚진 것을 의미한다. 이방인은 유대인들에게 영적으로 빚진 자라는 것이다. 사르키코이스는 육적인 것이다. 육적으로 섬기는 것이 바로 물질에 대한 것이다.
15장 28절『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스프라기사메노스)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연보를 전달한 후에 서바나로 간다는 것이다. 유대인은 영적인 것을 주고, 이방인은 물질적인 것(연보)을 보답했다. 이방인이 돌아오는 것(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하는 연보)이 열매라는 것이다. 스프라기사메노스는 도장을 찍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연보가 도장찍는 일로 설명한다. 그 이방인의 열매를 예루살렘 교회로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상징적으로 구약의 예언의 성취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사야 60장 3절에서『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나라들은 이방인을 상징한다.
15장 29절『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율로기아스)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율로기아스는 유(좋은)와 로기아(말씀)의 합성어로서 복이라는 말이 된다. 이 율로기아가 여기에서는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의 말씀이다. 이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9장 5절에서 율로기아가 연보라는 말로 번역되었다.『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율로기안)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율로기안)답고 억지가 아니니라』영어의 kjv는 선물로 번역했다. 그러나 율로기안은 은혜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율로기안(복)은 어떤 때(로마교회)는 은혜의 말씀, 어떤 때(예루살렘 교회)는 구제(후원)를 위한 연보라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은혜의 말씀이 현실적으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구제(후원)가 되는 것이다.
15장 30절『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프로슈카이스)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쉬나고니사스다이)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디아는 통하여 라는 말이다. 쉬나고니사스다이는 운동 경기에서 한 팀이 되어 달리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기도를 이런 방식으로 부탁하는 것이다. 기도는 프로슈케의 기도이다. 모두 지성소로 들어가는 기도를 함께 하자는 것이다.
15장 31절『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인들로부터 테러를 당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기도를 해 달아는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에 연보를 가지고 가는데, 그 교회에서 기쁘게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받도록 기도하자는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들이 이방인 교회에서 보내는 구제금에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15장 32절『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예루살렘 교회에 가는 것이 심적으로 부담이 엄청난 것을 알 수 있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 로마와 서바나로 가고 싶다는 말이다.
15장 33절『평강(에이레네스)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15장 11절에서 아멘이라는 말을 했다. 에이레네스는 평화의 하나님 이라는 의미다. 마음의 평강을 바라는 바울의 심정을 나타낸다. 즉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과 이방인이 화목하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심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