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차시/과제/ <무엇이든, 소소해>/ 윤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 점?!. 어렵거나 힘들어도 웬만한 일은 할 수 있겠다 싶어. 몸은 좀 힘들지만 두려움은 많이 없어졌지.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은 뒤로 미룰래. 지금은 그냥 하루하루 사는거야.”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문구가 있다. 사고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지만 십수 년 전 처음 문장을 읽었을 땐 약간 충격적이었다. ‘사는대로 생각한다’는 것이, 어리석거나 게으르고 주체적이지 못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생각대로 사는 것이 더 가치로운 거구나, 나는 과연 어떤 쪽일까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모 아니면 도’ 같은, 이분법적 논리들이 얼마나 빈약하고 때론 폭력적인가. 사람 사는 일이란 생각대로(만) 할 수 없고, 어떤 일들은 생각할 틈도 없이 발등에 먼저 떨어지고 본다.
소소해는 7개월째, 해 질 때 집을 나가 해 뜰 때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하고 있다. 낮과 밤이 바뀐, 남들 잘 때 일하는 생활. ‘oo마트 새벽배송 기사’. 결혼 25년 동안 철저한 전업주부로 살다가 갖게 된, 생애 두 번째 직업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며 사업가 집안의 맏며느리로 결혼생활을 시작한 소소해. 시댁 가까이 살면서 안팎을 챙기며 연년생 아이 둘을 낳고 2년 전 둘째까지 대학에 보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부러울 것도 없는’ 삶을 25년 동안 살았다. 하지만 올해 초, 시아버지가 문을 열었고 남편과 시동생까지 투신했던 회사가 문을 닫았다. 소소해는 15년 살던 서초동에서 서울 근교로 이사했다.
“회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한 건 2~3년 쯤 됐나. 듣긴 들었지만 집에 와서 회사 얘기 자세하게 잘 안 하니까, 그냥 주기적인 고비겠거니 했지. 막상 문 닫았다는 얘길 들으니 우리 애들 어떡하나 그 걱정이 처음 들더라. 뭐라도 해야겠구나 싶어서 구직 싸이트 뒤졌고. 잘 없는 와중에 택배 쪽은 뭐가 많은 거야. 물류 센터에서 물건 분류 알바를 구하더라고. 부랴부랴 이력서 넣고, 내가 뭐 한 게 없으니까 이력서가 심플하대. 연락 와서 면접 보고 그 일부터 시작했어. 집이며 재산 다 날린다고 끝이 아니잖아. 내일이 오는 거야. 먹고 살아야 되는 새날이. 당장 만 원 한 장이 급하니까 내가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생각할 겨를이 없지.”
분류 알바를 하던 소소해는 본격적으로 배송 사업을 하기로 결정한다. 다른 곳에 취업할 수 없는 남편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택배 물량은 넘쳐났고, 탑차를 보유하고 기업의 하청 업체 소속이 되면, 고정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시간만 맞으면 다른 운송 영업도 가능하다고 했다. 화물운송자격증을 따고 새벽배송에 적합한 중고 차를 할부로 구입했다. 2인 1조, 남편은 운전하고 소소해는 택배를 돌린다.
“새벽배송을 선택한 건 일단 차가 안 막히고, 사람을 마주치지 않으니까. 낮 배송 알바를 몇 번 해봤는데 차가 너무 밀려서 시간은 가는데 물건은 안 줄고, 조급해지더라고. 또 한번은 토요일 낮이었는데 카트에 물건 싣고 엘리베이터 기다리는데 어떤 사람이 대놓고 욕을 하는 거야. 택배 때문에 사람이 못 탄다고. 왜 이런 시간에 엘리베이터 잡고 있냐고. 주말엔 대부분 집에 있으니까 엘리베이터도 바쁠거 아냐. 근데 내가 시켰냐고, 택배. 탈 사람도 많고 내리는 사람도 많은데 거기서 욕을 들으니까 완전 마상, 사람이 쪼그라들더라고. 그래서 그날은 5층 이하는 계단으로 날랐어. 차라리 밤 시간이 낫겠다 싶었지.”
하루 평균 3~40건 안팎의 물건을 돌리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새벽 4시에서 6시 사이. 11~12시까지 자고 일어나 청소, 빨래, 식사 준비를 해두고 5시면 저녁을 먹고 6시 전엔 집을 나서야 한다. 7시부터 12시까지 소개로 얻은 분류 알바를 하고 12시부터는 배송 업무를 시작한다. 운이 좋아 투잡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휴무일은 주 1회, 한 달에 네 번 쉰다.
“쉬는 날은 주로 친구들을 만나(려고 해). 유일한 숨통이랄까. 눈이 감겨도 잠만 자기는 아까워. 니네랑 또 한 그룹, 모임 두 갠데, 너랑 유써이 말고 그 친구들은 내가 이 일 하는 거 몰라. 그냥 남편 회사 문 닫고 돈 번다고만 했지. 친구들 만나서 아무 생각 없이 그 순간을 재밌게 보내는 게 너무 좋아. 니네니까 내가 눈물 짜고 울고 욕하고 하지, 다른 친구들은 그냥 비슷하게 웃고 떠드는데,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더라고. 그 순간에만 몰입할 수 있잖아. 내가 웃고 있더라고.”
그렇다. 소소해와 나 윤팔, 그리고 유써이는 열 몇 살에 만나 지금까지 우정을 다지고 있는 친구다. 소소해는 스스로 지은 필명이다. 셋이 만든 카페에 매달 각자 한 편의 글을 써서 올린다. 모임 이름은 <월간 어이구>. 윤종신을 카피했고 '언제까지 이러구 살아'를 줄인 네이밍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각자의 일상에서 나와, 함께 모일 수 있는 어떤 공간을 꾸려보자고, 일단 온라인에서 사는 이야기부터 이어가자고 의기투합했다. 테니스와 골프 귀신일 만큼 글과는 거리가 먼 소소해지만 마감은 셋 중 가장 빠르다.
“글 쓰는 건 진짜 어렵고, 내 일은 아니야. 내가 너라서 작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글공부 같은 건 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니네랑 하기로 한 거니까, 내가 할 일이 또 하나 늘었다는 것이 좋다고 할까. 친구들이 기다려주고 읽어주고, 한 달에 한 편, 지켜야 될 게 있으니까 맞춰서 끄적이는 재미지.” 소소해가 쓰는 이야기는, 길에서 만나 데려온 강아지 봄이, 배송 일을 하면서 굵어진 손가락 마디마디, 학교 때 즐겨듣던 가수와 노래들, 염색 텀이 자꾸 짧아지는 흰머리 이야기... 작지만 뚜렷한 소소해만의 것들이다.
계획하고 꿈꾸기보다, 삶이 밀어붙이는 방향으로 발걸음부터 두고 보는 소소해는 과연, 다가올 내일을 어떻게 기다리고 있을까.
“(이 일에)사명감 같은 건 없어. 배달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거나 빠른 배송을 위해 축지법을 쓰겠다거나 그런 즐거운 상상은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지. 근데 그런 건 있어. 하는 동안 만큼은 내가 가진 능력 100은 다 쓰겠다는 것. 왜? 나한테 주어진 일이니까. 애들 때문에 이 일이라도 시작했는데 애들 때문에라도 오래 할 건 아닌 것 같아. 우리 애들이 결혼할 때, 부모 직업으로 당당히 밝힐 수 있을까 생각하면 대답 못 하겠어, 솔직히. 그런 시각, 그런 세상이 잘못된 거라 해도, 내가 세상이랑 맞짱 뜰 것도 아니고, 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아. 일은 계속 해야되니까, 그때가면 또 그 상황에 맞는 뭔가를 찾지 않겠어?”
털끝 만큼이라도 남았을 수 있던 ‘생각대로vs 사는대로’ 개념 따위, 머릿속에서 싹 거둔다. 개념이나 의식이 중요한 만큼 몸으로 부딪쳐 만들어가는 것도 소중하다. 둘은 구분될 수 없고 삶에는 정답이란 없기에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삶은 저마다 고유한 가치를 지닐뿐이다.
끝>
첫댓글 닥치면 다 해!가 입버릇인 1인입니다. 그간 만난 윤팔님 글 중에서 저는 이 글이 가장 좋아요. 내용이 제 마음에 쏙 들어서 그런가봐요.
친구분이 이쪽 모임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솔직한데 저쪽 모임에서는 굳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부분도
엘레베이터 장면에서 읽는 사람마저 얼굴이 확 달아오르지 않을 정도로 표현한 것도 다 좋았어요. 윤팔님이 친구분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달까요.
무엇보다 마음에 든 건, 제목이었습니다. '무엇이든'이 되게 천하무적 같은 단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