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저물어 가는 길목에서....
나는 금년 86년을 희고애락(喜苦愛樂)의 삶을 살아온 인생사 를 더듬어 보며 하느님께 그져 감사합니다,할뿐이다 일본 식민지하의 굴욕적인시기와 6,25전쟁의 참옥한 삶과 보리고개를 견디며 살아온 우리나이의 고생담은 글로 기록하기엔 부족하여생략합니다 저는 왜관 베네딕도수도원이6.25동란후 왜관에 정착하여 대구대교구와 감목 대리구 계약을 하여 칠곡군, 성주군,선산군 김천시 ,금릉군,상주군,문경군등 경북서북지역을 사목하기로 계약하면서 당시독일에서 파견되신 신부님들이 본당사목을 하게 되었습니다.저는 당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발령을 기다리는 중에 인동공소에 레지오단장을 하며 비교적 열심한 청년신자로 불려질 만큼 공소일에 참여 하는중 독일에서 파견 되어오신 오도신부님이 인동공소에 매주 주일미사를 봉헌해주셨습니다 신부님과 자주 면담하고 친하게 되어 후일 수도원이 대수도원으로 승격되면서 아빠스를 모시게 되어 초대 아빠스로 오도 신부님께서 초대 아빠스로 선출 되었습니다 아빠스의 부름을 받아 수도원에서 식사하면서 저에게 감목대리구에서 본당 신부님을 도와 전교사(당시 전교회장)로 일을 같이 하자고 하면서 간곡한 부탁을 하였습니다, 저에게 서울로 가서 가톨릭 신학원에 입학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아빠스님의 청원을 거절 못하고 추천서를 받아 입학하였지요.시험에 2등으로합격하여 장학생이 되어 기숙사에 거주하며 등록금 면제되어 수도원에서 매월 보내주신 학자금으로 신부님들의 4년간 수업을 저희는 2년으로 단축하여 졸업을 하게되어 학교에서 모범 학생을 발령하면서 저에게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가톨릭 재단 동성중고등학교에 발령을 내렸습니다.졸업후신학기에 근무하라고 해서 방학중에 귀향하여 왜관 수도원에 가서 아빠스님께 인사드리면서 졸업과 학교발 령에 대한 말씀을드렸더니 크게 노하시면서 발령을 취소 하라고 하며 당시 신학원장님께 전화하여 발령을 취소 시켰습니다,방학중에 본당 신부님 도와 달라고 하면서 가천본당의 정묵득(엑베르또)신부님에게 가라고 하여 수륜면소재지의 수륜공소에 가서 근무 하라고 해서 공소 사택에 거주하면서 공소에근무하게 되었습니다.약 50여명의 신자들의 신앙지도와 공소예절 등 열심히하며 마을을 다니며 예비신자들을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당시 가톨릭구제위원회 친구가 있어서 시골 공소에서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여 40k 밀가루를 좀 지원해달라고 했더니 500포대를 보내왔셔요 당시 면장에게 말하여 각동네 어려운 가정을 추천받아 무상으로 배급하겠다니 그냥주지말고 취로사업 시켜서 주면 해서 동리마다 숙원사업을 하나씩 하여 농로 및 배수로 제방사업등 을 하여 하루에 1인당1포씩주었지요 수륜면 전역에 어려운 가정마다 밀가루가 넉넉하게 배분되어 선교에 큰 도움이 되어 예비신자가 무려 70여명으로 교리반에 나오게 되어 주일이면 공소가 콱차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활력이 넘쳐났습니다 신부님께서 미사드리려 오시어 깜짝 놀라시면서 저에게 많은 칭찬을 햐였습니다 졸업을 마치고 나서 본당 신부님께서 다른곳에 가지말고 같이 있자고 해서 그곳에서3년 금수공소라는 곳에서3년을 근무 하다가 당시2대 아빠스인 이동호(블라치도)님께서 김천 성의 중고등학교에 발령내렸습니다.학교 교사보담 전교회장이 더좋아 아빠스님께 학교에 가지않겠다 하니 다른 사람을 추천하라고 해서 당시 인동공소에 정창열(아오스딩)회장님에게 추천했더니 학사출신이라 자격있다고 하여 발령하였습니다.인동 공소가 공석이라서 저가 오겠다고 하니 아빠스님께서 허락하여 발령 내렸습니다 본당신부님께 인동으로 발령내렸다고 하니 못가게 하여 한동안 애를 태우며 전교회장 한사람을 추천하여 주고 겨우 인동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인동공소 신자는 126명으로 주일마다 수도원에서 원장 신부님이신 진문도(토마스,모어)신부님께서 주일미사를 봉헌 해주셨습니다.인동공소 구역이 방대하고 선교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수도원 당가 신부님이신 현 발도로메오신부님 에게 부탁하여 독일에서 보내온 오트바이를 기증받아 온동리를 다니며 전교 활동과 가정방문을 할수있었지요 당시구역은,인동,인의1,2,3동 진펑1.2.3.동 구평동,신동;황상동.시미동.임수동,금전동,옥계동.거의1.2동,양호동,구포동. 석적면 중동1.2.3동.성곡동, 남율1.2동등 방대한지역을 맡아 가정방문,병자방문 예비신자 모우기.어려운가정 도우기.마을마다 교리반 지도 냉담자 방문등 매일 동리마다 전교에 매진하였음감목대리구에 품하여 양돈자금을 청하여 당시3백만원 지원받아 양돈조합을 설립하여 20여가정에 돼지를 키워 가정의 어려운 생활을 도와주었음 또다시 가톨릭 구제회에 밀가루 지원을 부탁하여 40k밀가루 300포를 지원받아 동리마다 도로 개설 금성골 저수지 확장 보수공사등 을지원하여 인동지역 사회사업을 병행하여 천주교의 좋은 이미지를 남겼음 1978년에는 유치원설립을하여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유아교육을 시작하여 저는 5년동안 원장으로 근무하다가 현 성모유치원으로 개명하여 인동 본당에 위임하였음 약10년 동안 예비신자 모집을 통해 전입 교우 모두 합하여 678명으로 본당승격을 감목대리구 이동호(블라치도)아빠스님께 품하여 1979년1월1일부로 인동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음 초대본당 신부님은 허창수(헤베르도)신부님이 되셨고 성체회 수녀님이 전교수녀로 부임하여 저는 퇴임하였음 본당 승격과 함께 본당 주보 성인을 정함에 이동호 아빠스님께서 본당 승격까지 공로가 많은 저의 본명을 따라 하면 좋겠다고 하여 (성F,하비에르)로 정하여 주시어 감사했습니다. 본당으로 승격되어 협소한 공소 건물이라 새로운 성전을 위해 공소뒤 옛 포도청 자리였던 땅을 황상동 박원용씨가 소유하고있었음 땅부자였던 그에게 그때당시 200만원으로1975년에 감목대리구에 품하여 1443평을 구입하여 두었음 본당신축시 14억4천3백만원으로 판매하여 본당 건물 신축을 하게되었음 인동본당 건축추진위원장을 맡아 갖가지 어려움 가운데 성전을 완성되어 고생의 보람을 느끼며 인동본당에서 중리본당,옥계본당,구평본당으로 분리되어 복음전파에 발전상을 보면서 그보람을 조용히느낌니다 2023년1월29일 글쓴이:마 일 락(F,하비에르)
원생들과 기념찰영
초대허창수(헤르베트)신부님과함께
진문도(토마스 모어)신부님,세례식후기념찰영
인동지역 성직자 수도자 현황 수도자 옥계동:장에노파수녀:대구 샬트르 바오로수녀회 금전동:방중자:부산 베네딕도수녀회 인의동 마일순:마리수산나:부천 노틀담 수녀회 성직자 인의동:오창수:바오로신부: 1991.6.28서품:대구대교구 금전동:성우경:요셉 신부:1995.6.23서품대구교구에서서품 :성아오스딩 수도원(오스트랄리아거주) 인의동:장운철:마르첼리노:2005.6.29서품:대구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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