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티비 공영방송이나 상업방송 이던간에 수신기능이 옛날 처럼 좋지않아서가 아니라 여타 다른 프로도 보기위하여 거의 케이블 티비를 시청한다 . 그것도 모자라 어진간한 집에서는 커다란 해바라기 모양의 위성안테나를 달고 위성 방송도 시청한다. 거기에 인터넷 까지 합세하니 오늘날의 우리는 가히 정보의 홍수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 하면 지나친 말일까.
60년대 초 그러니까 5.16직후 시골에서 가구 수가 백여 호가 되는 큰 마을에는 정부에서 보조금을 대주고 일부는 자비 부담으로 유선 방송을 설치하였다. 보통 이장 집에 방송설비(앰프. 전원. 턴테이블. ..)을 갖추고 각 가정에는 스피커 1개씩을 기둥에 매달아 놓는 아주 간편한(?) 시설이었다. 원래 앰프에서 스피커 까지 연결하는 전선은 + 와 - 극이 분리되어야 하고 굵기가 굵어야 하는것이 기본 상식 인데도, 그때는 아무도 그런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직류 와 교류 도 몰랐던 시절 이었으니........전쟁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였을까, 가장 손쉽게 구할수 있는 전선이 군용 삐삐선( WD-1/TT)이었으므로 이 전선( 군용 야전 전화선)을 사용하여 각 가정에 매달린 스피커 선재로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용한 일이었다. 그런 허접한 설비였음에도 기둥에 매달린 스피커를 통해 뉴스도 듣고 가요도 들었으니 말이다. 보통 저녁밥을 먹을 시간 부터 0시 까지는 각 가정에 매달린 스피커를 통해 방송. 노래(LP판). 공지사항 등을 중계방송 하였고 , 아침 이나 한 낮에는 이장 집의 높은 감나무위에 부착해 놓은 큰 스피커 를 통해 방송을 하곤 했었다. 아마도 야간에 큰 스피커로 방송하면 취침 방해가 될수있으므로 그랬을 것이다.
그런대 문제는 이장님이 방송하다가 깜박 잠이 들거나 혹은 술 한잔 걸치고 헤롱 거리다가 KBS중앙 방송국 의 다이얼을 수시로 교정해 주지 못하고 제멋대로 돌아가게 해두면 온 동네가 난리가 나곤 했다. 어떤 때는 [ 흥남에 계신 김선생님이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이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 입니다] 하는 멘트가 나오고 그다음 부터 난수표 번호가 나오기도 했다. 다이얼이 제멋대로 돌아가서 그만 이북 방송 주파수에 맞추어진 결과 였으리라.
그러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적어도 몇사람의 남자들은 쏜살 같이 달려가 이장님을 깨우곤 했다. 우리는 그때 반공이 철저하게 몸에 베어있던 시절이니까.
도시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다가 방학을 맞이해서 집에 온 아이들은 어디서 입수하였는지는 모르나
미군용 레시버(헤드폰)을 스피커 선에 연결하여 자기 방에서 듣던 애들도 있었다.
여름철이면 으례 벼락(유도뢰)에 맞아 앰프가 고장도 잘 났었고.
이글을 읽는 분들은 아마도 호랑이 가 담배 한보루( 열갑) 피우는 이야기를 한다고 할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지난 역사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케이블 방송에서만은 도시 보다 시골이 한발 앞서 였다는 역설적인 사실이다 . 믿거나 말거나.................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케이블방송의 시초와 그 시절의 에피소드를 알 수 있네요.. 더불어 지금 이 시간도 훗날에 좋은 역사로 기록되겠지요..ㅎㅎ
무척 재미 있습니다. 계속 부탁드립니다..
님의 글을 읽으니 옛생각이 납니다. 스피커상자 속에는 U자 형의 자석이 달린 마그테틱스피거였습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라구요? 맞는 말씀입니다. 디지털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은 도저이 이해하지 못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