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에서 적재적소에 프로페셔널한 코멘트를 던지는 전문가들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독일에서 온 외계통신원
안톤 숄츠
tvN <외계통신>은 언뜻 보면 <비정상회담> 축소판 같은데 대화의 주제는 사뭇 진지하고 어렵다. 독일, 캐나다, 영국, 러시아 등 각국의 시사 전문가들이 나와 두세 가지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외계통신>에서 100% 한국어로 토론을 소화하는 사람이 독일 대표 안톤 숄츠다. (인터뷰 역시 100% 한국어로 진행했다.)
한국에는 언제 왔나요?
저는 독일 함부르크 출신이에요. 중학생 때부터 태권도를 했고,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꼭 태권도여야 하는 것은 아니었고, 저에게 중요했던 건 싸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르침을 받는 무술이었어요. 사부님은 싸움의 기술을 배웠다면 힐링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거든요. 이 사람이 내가 찾던 사부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태권도를 배우면서 불교에도 관심이 생겼고 함부르크에 잠깐 들렀던 스님의 권유로 한국에 오게 됐죠. 그때가 1994년 7월이었어요. 딱 1년만 있다가 독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그간 방송에서 러브콜이 많았을 것 같아요.
10년 이상 서울에 살았으니까요. 아주 오래전부터 섭외 연락이 많이 왔었는데 게임 프로그램이나 서툰 한국말을 웃음 포인트로 삼는 프로그램은 안 나갔어요. 제가 만들고 싶은 이미지가 아니니까요. 한국에서 외국인은 점점 많아지고 있고, 외국인은 더 이상 한국 사회 옆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한국 사회 안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세금도 내고, 정치를 할 수도 있죠. TV에 나오는 외국인을 보면서 ‘아, 이 사람이 우리 사회를 이해하고 있고, 그 생각이 나한테 도움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외계통신>은 달랐나요?
제작진과 미팅을 한 뒤에 확신이 생겼어요. <비정상회담>이 처음 방송됐을 때 주변에서 ‘안톤이 나가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했어요. 그때마다 저는 ‘난 젊지도 않고, 잘생긴 편도 아니야’ 하고 말했죠. 하하. <외계통신>의 콘셉트가 참 좋았어요. 모든 외계통신원들이 한국어로 얘기해야 하는 게 아니니 무거운 주제도 다룰 수 있고요. 시청자들이 보기에 쉽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런 프로그램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각 나라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해결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
대본은 없나요?
주제만 미리 받아요.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전문가라고 해도 모든 테마를 다 알지는 못하니 미리 공부를 해야죠. 제작진이 이런 말은 해도 되고, 이런 말은 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진 않아요. 어차피 편집은 제작진의 몫이니까요. 녹화할 때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외계통신원들과의 호흡은 어떤가요?
세상에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열정이 넘치고, 여러 나라의 의견을 모두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아요. 모두 엄청 바쁜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준비를 잘해오는지 신기할 정도예요. 광주광역시에 사는 저는 굳이 서울에 살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씩 외국 친구들과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열정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외계통신>은 에너지가 엄청 들어가지만 리프레시가 돼서 좋아요. 녹화는 10시간 정도 해요. 영어나 독일어로 얘기하면 온전히 집중하지 않아도 잘 들리는데 저는 꼭 한국어로 말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콘텐츠뿐 아니라 한국어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말이 여기서 더 늘 수 있나요?
하하. 물론이죠. 저는 원래 책 펴놓고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한국 와서 한동안 스님과 산 덕에 어려운 말도 빨리 익힐 수 있었죠. 지금도 콜택시 불러서 어디로 와달라고 얘기한 후 도착한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다른 사람이 콜 불렀다고 말해요. 제가 휴대폰을 보여줘야 믿죠. 통화만으로는 제가 외국인인 줄 모르는 사람이 꽤 있는데, 그럴 때 뿌듯하기도 해요.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미디어 전문 회사를 운영해요. 독일 여러 방송국의 프리랜스 기자와 프로듀서로 일하기도 하고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는 올림픽 때문에 평창에 있었어요. 많은 미디어업체가 한국에 오면 전문가가 필요하잖아요. 통역, 차량, 호텔 예약까지 모든 것을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죠. 요즘은 남북 관계를 주시해야 하는 시기라 세계 각지의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요.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한 것도 반향이 컸고요.
갑자기 셀럽이 되었네요.
셀럽이라뇨. 하하. 방송 출연이 재밌기도 하면서 너무 갑작스럽게 시작해서 당황스럽기도 해요. 한 달 전에는 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지금은 식당에 가면 옆 테이블에서 말을 걸기도 해요. 개인적인 시간도 중요한 사람이라 불편하죠. TV에 나오면서 사람들이 절 못 알아봤으면 하는 심리가 웃기죠? 안 그래도 키가 크고 외국인이라 무조건 쳐다보게 되는데 추가로 관심이 생기는 게 부담스러워요. 그렇기는 해도 TV에 출연하면서 독일인, 그리고 외국인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서 좋아요.
다니엘 린데만 씨 덕분에 독일인은 젠틀하지만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생겼어요.
다니엘 재미있는데요. 하하. 정말 착한 사람이에요. 태권도로 인해 한국에 왔다는 것도 저와 비슷하고요. 서로 바빠서 자주 못 보지만 다니엘 덕분에 한국 사람들이 독일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됐으니 고마워요. 생각보다 유머도 있어요. 독일 사람들의 유머는 철학적인 면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잘 이해 못해요. 꼭 ‘ㅋㅋㅋㅋ’ 넣어주세요. 안 그러면 사람들이 오해하니까요. 특히 미디어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장난도 엄청 많이 치고 웃겨요. 슬랩스틱 유머가 아니라 직관적으로 웃기진 않지만 우리한테는 꽤 재밌어요. 하하.
한국에 오래 살았지만 가장 적응 안 되는 시스템이 있다면요?
교육이죠. 저는 삶에서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한국 교육은 양이 너무 많고 질이 부족한 것 같아요. 초등학생들도 밤늦게까지 공부하는데 왜 모두 천재가 아닐까요? 공부를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재밌게 하도록 도와줘야죠. ABCD 가운데서 선택하라고 하지 말고 너의 생각이 뭔지 묻는 게 중요해요. 한국은 더 이상 근로자의 나라가 아니잖아요. 첨단 기술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인데, 교육제도 때문에 창의성이 막힌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남북 관계 이슈가 생기면서 꽤 많은 사람이 통일이 필요 없다고 말해요. 북한 사람들이 오면 우리가 더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고요. 먹을 게 없어서 몇 만 명이 죽어가지만 내가 불편하니까 그 사람들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이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려는 마음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나의 세상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세상이요.
on air
<외계통신>
박경림, 장강명, 박재민 세 명의 MC가 각국의 전문가들과 심층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 우리만의 문제를 외국인의 관점에서 풀어보고 밖에서 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들어보는 프로그램. 지금까지 다뤘던 주제로는 근로시간 단축, 미세먼지, 미투운동 등이 있다.
MC를 꿈꾸는 완판남
이민웅
슈퍼주니어의 정규 8집 앨범 타이틀곡이 ‘블랙 슈트’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슈퍼주니어가 홈쇼핑에서 블랙 패딩을 판매한 소식은 꽤 많이 알려졌다. 음악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이미 베테랑인 슈퍼주니어지만 100%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홈쇼핑에서는 초보나 다름없었다. 자칫 아무 말 대잔치가
될 뻔한 방송을 살린 이가 쇼호스트 이민웅. 이민웅은 슈퍼주니어의 ‘슈퍼마켓’에 앞서 제주도에서 유기농 귤 농사를 짓고 있는 루시드폴의 ‘귤이 빛나는 밤에’를
9분 만에 완판시키기도 했다.
홈쇼핑계의 엑소님, 반갑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하하.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원빈 씨, 장동건 씨 같은 얼굴을 보고 잘생겼다고 했었는데 요즘은 개성 있는 얼굴도 잘생겼다고 하는 것 같아요. 시대가 변하면서 덩달아 잘생겼다고 해주시니 감사하죠. 저는 아직도 눈이 더 크고 코가 더 오뚝했으면 해요. 잘생겼다기보다 매력 있게 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쇼호스트는 어떻게 되었나요?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패션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어요. VJ 활동도 하다가 쇼호스트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준비했죠. 그때 제 나이가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그때부터 아나운서를 준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쇼호스트는 당시 덜 각광받는 직업이었지만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주식으로 따지면 우량주가 됐지만 저 나름대로는 미래를 봤던 거죠. 홈쇼핑 시장은 더 커질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난 더 능숙해질 테니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TV <썰전>, <문제적 남자>에도 출연하고, 라디오 <최화정의 파워타임>에도 오래 고정 출연을 했어요.
제안이 꽤 들어오긴 하는데 쇼호스트로서의 모습이 강조되는 프로그램은 더 이상 안 하려고요. 최근에도 <태어나서 처음으로>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녹화 시간이 너무 길고, 홈쇼핑 방송 스케줄과 조절하기가 쉽지 않아서 더 이상 안 나가게 됐어요. <문제적 남자>는 비록 문제는 못 맞혔지만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MC들은 문제에 특화된 뇌가 발달한 사람들 같아요. 문제를 보고 숫자, 알파벳, 디지털 숫자 등 다양하게 생각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죠. 제가 방송을 하면서 다져온 순발력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어요.
순발력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잖아요?
문득 생각나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특화된 일이잖아요. 피아노 연주와 같아요.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처음 접한 악보를 보고도 바로 연주하잖아요. 쇼호스트도 대본이 없기 때문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생각을 바로 입으로 내보내야 해요. 그 연습은 엄청 잘돼 있죠.
대본이 아예 없다고요?
네. 아예 없어요. 사전에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자는 구성 정도만 있죠. 판매할 물건의 기본 스펙이나 정보는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고요. 장점을 어떤 식으로 어필하고 순서는 어떻게 짜느냐 하는 것까지 쇼호스트의 몫이에요. 기본 틀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보만 바꿔 끼는 정도죠. 말은 되게 쉬워 보이죠?
첫 방송의 추억은 어떤가요?
진짜 못했죠. 세탁기를 판매했는데 생방송이라는 중압감 때문에 실수도 많이 했어요. 아무리 노래를 잘하는 가수도 무대에서 떨면 끝이잖아요. 중간에 염소 목소리도 나오고, 긴장을 너무 많이 했죠. 이 필드에서 익숙해지기까지 2년은 걸리는 것 같아요. 한번은 냄비 닦는 세제를 판매하는데 안 닦여 당황하기도 했고, 메모리폼 베개를 시연하는 도중 깨지면 안 되는 달걀이 깨진 적도 있고요. 마이크 꺼진 줄 알고 배고프다고 얘기하고 ‘제품이 너무 안 나가는데 어쩌냐’고 얘기한 게 방송에 나간 적도 있어요.
쇼호스트도 직업병이 있나요?
방송 중에 계속 인이어를 끼고 있어서 인이어를 낀 쪽의 귀가 좀 더 예민해요. 또 어떻게 하면 사족 없이 효과적으로 말을 할지 늘 고민하고요. 교회에 가서도 목사님 설교 중에 ‘이 부분만 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예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진행병이 발동하죠. 한 친구가 말이 너무 많으면 다른 친구한테도 기회를 줘야 할 것 같아서 커트하기도 하고요. 하하. 골고루 분량을 나눠주고 싶어서요.
여전히 생방송에선 긴장하나요?
아니요. 긴장보다는 매출이 곧 나의 가치를 입증하는 표본이 되거든요. 매출이나 판매량에 따라서 계약할 때 연봉이 결정되고요. 좋은 포트폴리오가 많아야 높은 연봉을 받는 거죠.
쇼호스트를 꿈꾸는 사람도 엄청 많아요.
인스타그램으로 질문이 엄청 많이 와요. 저도 막막한 순간을 경험했으니 가능하면 잘 알려드리고 싶어요. 최근엔 베스트 질문을 뽑아서 공개 답변을 했어요. 학원을 꼭 다녀야 하는지,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등이죠. 제가 쇼호스트를 시작했을 때는 시장이 작았고, 하려는 사람이 적은 편이라 지금보다는 수월했어요. 지금은 이미 이 필드에 유능한 사람이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명 중 1명은 두각을 나타내요. 버텨내야죠.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쇼호스트지만 쇼호스트로 초대되는 프로그램보다는 MC로서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요. 전현무 씨와 몇 번 방송을 했는데 정말 좋은 MC라고 생각해요. 마초적이지도 않고 센스 있으면서도 똑똑한데 상대방을 깔아뭉개지도 않아요. MC는 케미가 정말 중요하잖아요. 같이 방송하고 싶은 선배죠.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집 공개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major work
<문제적 남자>
이민웅이 <문제적 남자>의 공식 혀섹남(혀가 섹시한 남자) 전현무를 능가하는 순발력과 말솜씨를 보여준 방송. 화이트보드 지우개를 판매해달라는 갑작스러운 미션도 완벽하게 성공했다.
행동분석가의 전지적 참견
이상은
사람의 몸동작에서 느낄 수 있는 속마음, 바로 그 미러링 효과를 잡아낸 사람이 행동분석가 이상은이다. 이슈가 된 만큼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핫한 프로그램이지만.
먼저 여쭤볼게요. 유병재 씨랑 김수용 씨는 정말 친한가요?
네. 제가 보기에는요. 하하. 우리가 생각하는 편한 사이의 전형은 함께 까르르 웃는 모습이지만, 사실 진짜 친한 친구는 아무 말 안 하고 있어도 편하잖아요. 침묵이 편하다는 건 그 사이가 편하다는 뜻이죠. 모르는 사람과 마주 보고 있으면 침묵이 어색해서 그 공백을 채우려고 말을 하게 되잖아요.
촬영장 분위기는 어떤가요?
여덟 시간 이상 녹화를 하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오전 녹화가 끝나고 쉴 때면 너무 웃어서 광대가 아플 정도로요. 게스트가 와서 꼭 하는 말이 ‘여기는 정말 일하는 것 같지 않아요’일 정도예요. 이영자 씨는 정말 긍정 에너지가 넘쳐요. 항상 말도 예쁘게 하려고 노력하고요. 전현무 씨는 굉장히 신사적이에요. 양세형 씨도 정말 좋은 분이고요.
이영자 씨가 완판녀가 됐어요.
저는 정말 소식하는 편인데 녹화 끝나면 바로 이영자 씨가 방송에서 말한 곳으로 달려가요. 김치만두도 일곱 팩 사와서 주변에 나눠줬어요. 지금은 한 사람당 두 팩씩만 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소떡소떡도 굳이 안성휴게소까지 달려가서 먹어봤어요.
행동분석가라는 직업이 생소해요.
아무래도 그렇죠. 미국에서 일식당을 운영할 때 장을 보러 가서 직원에게 소금이 어디 있냐고 영어로 물었어요. 키가 정말 큰 직원이었는데,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보면서 ‘What?’ 하고 되묻더라고요. 전 아직도 그 표정을 못 잊어요.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다가 미국으로 갔기 때문에 언어 장벽에 부딪힐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했거든요. 어려운 문장을 말한 것도 아니고 고작 ‘Where is salt?’를 상대가 못 알아들을 만큼 내 실력이 별로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식당에서도 식사 중간에 음식은 입에 맞았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야 하는데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 분위기를 살피기 시작했어요. 카운터 뒤에서 손님들 표정을 살피고 눈치를 보다 보니 2번 테이블은 방해하지 않아야 하는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고, 5번 테이블은 지금 음식이 안 나가면 나가버릴 것 같다는 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적절한 타이밍에 직원들을 투입한 덕분에 그 지역에서 꽤 인기 있는 식당이 됐어요. 단골손님에게 전할 크리스마스 카드를 1년에 200장씩 쓸 정도였죠. 그렇게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제 나름의 데이터가 쌓였을 때 우연히 행동심리학을 정리해놓은 책을 읽었어요. 지금까지 눈치로 맞혔던 것들이 학문으로 정리돼 있는 것을 보고 이걸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지금도 그때의 감정이 강력하게 남아 있을 만큼 제 인생의 모먼트였어요.
뒤도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순간이 있다는 게 부러워요.
운명 같은 순간이었어요. 다양한 행동분석 관련 센터에서 공부하면서 혼자 글을 썼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미국 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왔어요. 나는 어릴 때부터 밝고 웃음도 많은,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한 번도 화를 안 내고 넘어간 날이 없더라고요. 돈은 많이 벌지는 몰라도 정말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죠.
당장 한국에서의 삶도 막막했을 텐데요.
주변에서는 ‘대체 쟤 뭐 하나?’ 싶었겠죠. 당장은 수입이 없으니 전화로 영어 가르치는 일도 병행했거든요. 주변에서 걱정 섞인 조언을 할 때마다 저는 ‘나중에 손녀가 우리 할머니는 비언어커뮤니케이션이란 분야를 한국에 알리는 데 큰일을 한 분이다’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친구들이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작용, 반작용의 힘을 떠올리면서 내가 원하는 곳에 더 가까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웃었어요. 그러다 보니 강연 의뢰도 들어오고 개인 컨설팅도 하게 됐고, 이렇게 방송에까지 출연하게 됐어요.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요.
정말 재밌고 감사한 마음이 커요. 꿈을 안고 미국에 갔어도 외롭고 말이 잘 안 통하는 데다 미래가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서 많이 힘들었거든요. 마트 직원의 그 표정이 저를 행동분석가로 만든 시발점이에요. 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말을 조심하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때 저는 조심해야 할 건 말뿐이 아니라는 걸 크게 배웠죠. 이 일을 하는 매일매일이 감사하고 행복해요. 제 모토가 ‘나의 행복이 다른 이의 행복에 도움이 되고, 나의 배움으로 다른 이의 배움을 도우며 살자’거든요. 지구 반대편에서 저를 몰아세워웠던 그 일이 지금 제 일을 할 수 있게 해줬고 방송에까지 나온다는 게 꿈같아요.
원치 않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의 의도가 보이면 피곤할 것 같아요.
분석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해요. 한 번 결정을 내리고 나면 저도 모르게 제 행동도 달라지거든요. 제가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신념이 마크 트웨인의 ‘나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는 말이거든요. 저를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이 읽힐까 봐 어려워하는데, 저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행동을 읽는 것보다 어떤 행동을 해야 좋을지를 더 알고 싶어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는 행동을 읽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해요. 읽는 것은 상대방이 발신한 메시지를 수신하는 것이잖아요. 두 사람이 제대로 대화를 하려면 최소한 두 개의 노력이 필요해요. 발신자는 정확히 발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수신자는 발신자가 어떤 메시지를 발신하려고 했는지 최선을 다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죠. 친하게 지내고 싶다면서 사용하는 제스처는 굉장히 권위적이거나,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남 탓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의 메시지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행동을 보내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 아닐까요?
on air
<전지적 참견 시점>
이영자, 송은이, 전현무, 양세형, 유병재 등이 당신의 인생에 참견하기 위해 모인 프로그램. 매니저들의 제보로 스타들의 리얼한 일상을 공개한다. 휴게소 완판녀 이영자의 ‘영자미식회’가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