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미꽃 하나만으로 수천수만의 장미꽃을 당하고도 남아.
그건 내가 물을 준 꽃이니까.
내가 고갈을 씌워주고
병풍으로 바람을 막아 준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 준 것이 그 꽃이었으니까.
그리고 원망하는 소리나 자랑하는 말이나
혹은 점잖게 있는 것까지도
다 들어 준 것이 그 꽃이었으니까.
그건 내 장미꽃이니까.
- 생 텍쥐페리의《어린 왕자》중에서 -
*꽃밭에 수천수만의 장미꽃이 있은들 무엇합니까.
쏟아지는 나이아가라 폭포수가 목마른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고깔 씌워준 장미 한 송이,
내 손 안의 작은 물병 하나와 바꿀 수 없습니다.
내가 태어난 땅, 내가 만난 사람, 내가 사랑하고
우정을 나눈 사람. 이 우주 안에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나의 장미꽃 한 송이입니다.
꽃을 가꾸는 마음
수도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
날마다 동네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와야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침이면 어깨에 긴 막대기를 메고
그 양쪽에 두 개의 양동이를 달고는 집을 나섰습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우물과 집을 오가며 물을 길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들고 다니던 양동이 중 하나에 조그만 금이 갔습니다.
그 틈새로 물을 길어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조금씩 물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양동이에서 물이 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묵묵히 물을 길러 다닐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그 일꾼이 오가는 길 위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옆집에 살던 아저씨가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
"자네가 들고 다니는 양동이에 금이 가서 물이 새는 것을 알고 있나?
손을 보지 않으면 물을 길어 나르는 것이 헛수고가 될 거야."
그러자 그 사람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양동이에서 물이 조금씩 새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래서 전 제가 다니는 길 한편에 꽃씨들을 뿌려 놓았지요,
혹시 길가에 예쁜 꽃들이 피어있는 것을 보지 못하셨나요?"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는 동안 틈이 갈라진 양동이에서
저절로 물을 뿌려준 셈이 되어 예쁜 꽃들이 자랐답니다.
그 꽃들과 이야기하면서 다니니까 힘든 줄도 모르겠어요."
마음의 꽃을 가꾼 우체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로스알데 힐이라는
작은 마을에 요한이라는 우체부가 있었다.
그는 약 50마일쯤 되는 거리를 매일 오가며 우편물을 배달했다.
어느 날 요한은 마을로 가던 중 모래먼지가
뿌옇게 이는 길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이 길을 오갔는데,
앞으로도 나는 계속 이 황폐한 거리를 오가며 남은 인생을 보내겠구나.
이건 너무 허무하잖아 ….'
황폐하고 따분한 길을 걸으며 요한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그러다 무릎을 탁 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좋은 마음으로 일을 하자.
아름답지 않다면 아름답게 만들면 되지!"
그는 다음날부터 주머니에 꽃씨를 한 움큼씩 넣어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배달 가는 짬짬이 그 꽃씨들을 길가에 뿌렸다.
그 일은 그가 50여 마일의 거리를 오가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점차 요한은 콧노래를 부르며 우편물을 배달하게 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가 다니는 길
양쪽에는 노랑, 빨강, 초록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다투어 피어났고
철따라 꽃들이 쉬지 않고 거리를 꽃내음으로 가득 채웠다.
그 덕분에 마을 사람들도 웃을 일이 많아졌다.
그 꽃들을 보며 요한은 더 이상 자기의 인생이 황막하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사랑의 약속
2차 세계대전 중에 어떤 젊은 비행기 조종사가 한 여성과 펜팔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주는 허무함, 출격 때마다 느기는 불안과 긴장 가운데서도 조종사는
그 여자가 보내는 편지에서 위로를 받고 삶의 용기를 가지곤 했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두 사람은 만날 약속을 했습니다.
그는 기차를 타고 약속한 역에서 내렸습니다.
그녀는 꽃 한 송이를 들고 있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합실에는 한 둥뚱한 여자가 꽃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줌마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렸습니다.
조종사는 크게 실망이 되어 모르는 체 그냥 지나갈까 생각도 했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 순간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 전에 웬 멋장이 아가씨가 내 손에 이 곷을 쥐어주면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면 건너편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달라고 하던데요"
사랑의 약속이라는 단편소설입니다.
보혈의 꽃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은 우리의 삶에 온통 주님의 보혈로 붉은 꽃을 피워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는 놀라운 구원의 사랑입니다.
나는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주님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진달래꽃이 필 때면
나는 주님의 사랑을
더욱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온 산천을 뒤덮었던
붉은 진달래꽃도
봄날 한 계절만
피었다 지지만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골고다 십자가에서
피우신 보혈의 꽃은
계절도 없이
어느 곳
어느 마음에나
언제나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으나
내 마음에
가장 활짝 피어
향기를 발하는
보혈의 꽃은
예수 믿는 사람들만이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는 절망이다.
만약 그가 당신과 나 같은,
단지 인간에 불과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는 죄와 사탄과 사망을 이길 능력이 없을 것이다.
그는 악마와 죽음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약할 것이며 우리를 도울 수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습,
곧 인간으로 보내신 것은 놀라운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사 우리를
"사랑한다"고 외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의 용서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날마다 나를 설레이게 하는 꿈 / 용혜원
장미꽃 의사
1930년에 조 와이즈는 텍사스 주 포트워스 시에 있는
쿡 병원에 근무하던 미혼의 젊은 의사였다.
환자들은 그를 “장미꽃 의사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가 자주 하는 행동 때문이었다.
그는 환자 병상 옆에 놓인 꽃바구니에서
꽃을 한 송이 빼서 자신의 가운 깃에 꽂곤 했다.
그 행동은 환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나 매지라는 환자는 그런 행동으로는
즐거움을 줄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자동차 사고로 인해서 그의 왼쪽 다리가 허벅지 아래로 절단되었던 것이다.
매지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두려움과 절망에 질려 있었다.
조가 병원 응급실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이전에 한 적이 없는 행동을 했다.
자신의 의사 가운을 벗어서 매지 위에 덮은 후
장미꽃을 살며시 올려놓은 것이다.
매지가 수술실로 실려 들어가자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가 그 가운을 치우려 했다.
하지만 매지는 그 장미꽃을 가지고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매지가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장미꽃은 여전히 그녀의 손에 있었다.
당신도 혹시 이와 같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가?
당신에게도 사랑의 옷이 있는가?
사랑의 옷이 필요한 사람을 알고 있는가?
당신이 누군가를 염려하여 사랑의 옷으로 그를 덮어 준다면,
당신은 바울이 다음 구절을 기록했을 당시에
가졌던 생각대로 행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 「아주 특별한 사랑」/ 맥스 루케이도
꽃같은 마음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여행용 가방 외에
또 하나의 가방에 꽃씨를 가득 담아 여행지에서
그 꽃씨를 뿌리고 다녔다.
이 사람은 특히 기차를 탈 때 달리면서
철도 주변에 꽃씨를 뿌렸는데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이
『당신은 이 길로 두 번 다시
오지 않게 될지도 모르는 데 왜 꽃씨를 뿌립니까?』
라고 물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다시 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봄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약수역 꽃가게 이야기
오래된 노래 중에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하고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가사가 다 생각나는 것은 아니지만
꽃집의 아가씨는 예쁘다는 가사를 생각하면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번진다.
나에 대한 노랫말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기보다는
꽃집의 아가씨가(?) 예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생각나서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싱싱하고 아름다운 꽃을 고르는
부지런한 발걸음이 예쁘고, 때론 가시에 찔리더라도
정성껏 매만져 더 멋진 모습으로 다듬어놓는 여린 손이 예쁘다.
행여나 시든 잎이 있으면 내 몸 아픈 것처럼
아파하며 살피는 고운 마음이 예쁘다.
꽃을 사면서 "이 꽃말은 뭐예요?"하고 묻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책 저 책 찾아가며 꽃말을 알아두는 정성스런 수고가 예쁘다.
꽃을 사러 오는 분들은 다 마음이 곱다.
그런 분들을 매일 만나니 예뻐지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도 변함 없이 가게문을 연다.
가게 안을 가득 메우는 꽃향기,
음식 냄새는 여러 가지가 섞이면 불쾌한데 꽃은 여전히 향기롭다.
꽃을 사러 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 다양하다.
사소한 일로 다투고 토라진 아내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과 만나지 백일 째 되는 날을 기억하며,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평생을 자녀 뒷바라지에 온 정성을 다하신
부모님의 생신을 축하하며 꽃들을 찾는다.
다른 목적과 이유로 꽃을 찾지만
그들 모두에겐 한결같이 사랑의 마음이 있다.
오늘은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될까?
그들의 사랑스런 마음에 흠뻑 취해
오늘도 나는 사랑의 마음으로 꽃을 사는 사람들에게
꽃과 함께 사랑을 전한다.
꽃과 여인
북미에는 시라세니라는 향기로운 꽃이 있다.
시라세니는 잎에 꿀샘이 있어 향기를 발한다.
벌레들은 꿀의 향기에 도취해 잎으로 몰려든다.
그러나 벌레가 잎의 꿀을 빨아먹는 순간,
고약한 독약을 내뿜어 벌레를 일시에 삼켜버린다.
보르네오섬에는 네펜세스라는 꽃이 있다.
네펜세스는 화려한 꽃을 피워 곤충들을 유혹한다.
곤충들이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꽃잎 속으로 들어오면
특수한 소화액을 내뿜어 녹여 버린다.
두 꽃은 모두 겉은 아름답고 향기롭다.
그러나 곤충을 잡아먹는 무서운 독소를 갖고 있다.
아름다움과 향기는 단지 무서운 독성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일 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미인으로 손꼽히던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무기로 로비를 벌여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진 추잡한 로비사건의 배후에는
네펜세스나 시라세니같은 여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나비를 부르는 꽃
어느 목사님이 성경공부시간에 성도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나비가 꽃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꽃이 나비를 선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한 성도가 대답했습니다.
“그거야 나비가 꽃을 선택해서 꽃으로 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저도 한 동안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꽃이 나비를 선택한 것이지요. 생각해보세요.
꽃이 어느 담장 밑에서 만발하여 향기를 풍깁니다.
즉 꽃이 향기를 풍김으로써 나비를 유혹하고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비는 그 향기에 취해서 꽃을 찾아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복음의 향기를 진동케 함으로써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불러주셨습니다.
마치 찬송가 가사처럼 말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소강석 목사(분당새에덴교회)
꽃향기를 날리는 인생
인생은 짧습니다. 어제만 해도 태아였는데
오늘은 뻣뻣한 시체가 됩니다.
반면에 인생은 깁니다. 수많은 시련 중에도
삶의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고,
숭고한 이상을 한번쯤은 멋있게 펼칠
충분한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육체의 삶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무덤이 아닙니다.
모든 영혼은 무덤을 지나 영원을 사모합니다.
인생은 한낱 공허한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닙니다.
돌과 강철로 만들어진 높은 마천루가 언젠가는 무너질 날이 오고,
구름 위에 우뚝 선 높은 산이 언젠가는
조각이 될지라도 인생의 잔영들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영원성은 영원한 신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 묻습니다.
“인생이 무엇인가?”
니체는 말했습니다. “인생은 배우다.”
때로는 웃다가, 때로는 울다가 끝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인생을 장난처럼 보았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말했습니다.
“인생이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나는 빨리 죽는 것이 낫다.”
항상 회의 속에 살았던 그는 인생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톨스토이는 ‘부활’에서 써내려갑니다.
“인생은 강과 같다. 물 자체는 같지만 때로는 빠르고 때로는 느리며,
때로는 넓고 때로는 좁으며,
때로는 맑고 때로는 흐리며,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차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인생을 변화무쌍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말합니다.
“사형선고를 받아 사슬에 묶인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 몇 명이 매일 그들 보는 데서 처형되고,
남은 자는 자신의 운명이 그들과 같으리라고 여기고,
슬픔에 잠겨 희망도 없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그는 절대자를 모르는
인생의 비참과 맹목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인생은 정의할수록 불안이란 이름의 불개미 떼들이
의식의 붉은 바위 그늘 밑을 점령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인 하이네는 바닷가에서
“‘바다야! 인생이 무엇이냐!’고 외쳤더니
파도만 철썩철썩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은 정의가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영국 문호 칼라일에게 편지했습니다.
“인생이 무엇인가요?” 칼라일이 대답했습니다.
“젊은 자매여, 광대하고 복잡한 문제로 뛰어들지 말고
간단하고 정결한 삶에서 지족을 배우시고
매일 일과에 충실하세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정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인생길이
아름답게 펼쳐지도록 노력할 필요만 있습니다.
인생이 고통의 황무지라면 우리는 그 황무지에
샤론의 장미꽃을 피우며 살아가면 됩니다.
샤론의 꽃이 우리 마음에 피어나서
우리의 영혼이 영원의 꽃향기를 날리는 인생이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 이한규(hanqyul@hanmail.net)
성경의 인물
성경에 나오는 왕에서 노예, 예언자, 거짓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약 400명의 인물들을 정렬하고, 관계 성구, 배경해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되새기도록 구성한 인물 백과사전.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고, 투쟁하고, 실패하고 성취하며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부록: 성경에 나오는 전 인물<약2500명> 수록)
한 태 완 목사 著, 좋은 땅 (주문전화:386-8660), 정가 40,000원
좋은땅 인터넷 http://www.g-world.co.kr
좋은땅 이메일 gworld@g-world.co.kr
저자 홈페이지: http://allcome.ce.ro
저자 이메일: allcome@naver.com
징기스칸 어록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 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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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모르는 칭기즈칸조차도
세상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는데 전지전능하시고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세상을 탓하고 절망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참된 섬김
과일가게를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인근 교회의 교인이 자주 찾아와 전도를 하였습니다. 예수 믿을 마음이 전혀 없는 이 분에게는 참 귀찮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와 전도를 하고는 과일을 사 가는데 매번 다른 사람과는 반대로 가장 작은 것, 흠집이 있어 팔기 곤란한 것만 골라 가지고 사가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손님이 와서 그 분이 하던 대로 똑같이 작은 것 흠집 있는 것으로 골라 사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당신도 저 교회 교인이에요?" 하고 묻게 되었답니다.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다음 주일부터 자기 발로 교회를 찾게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섬김의 모습이 아닐까요? 섬김이란, 자원하여 내가 손해보고 내가 바보가 되려고 할 때 진실하게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찬송은...
설교의 대상은 인간입니다. 설교는 사람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찬송은 하나님과 사람을 움직입니다. 성가대란 이렇게 중요합니다. 오늘 주님이 부르시면 설교도 기도도 끝납니다. 그러나 찬송은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천사들이 모두 찬양할 것입니다.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사울 왕의 귀신이 쫓겨 나갔다고 합니다. 다윗은 노래하는 임금으로 법궤를 메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는 너무 기뻐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잔인한 죽음도 노래를 빼앗지는 못합니다. 신앙의 절정은 노래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기적은 찬송이 있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성도여 노래가 있게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황금
영국이 아프리카를 탐험할 때 두 영국인의 행동이 크게 대비됐다. 한 사람은 황금전쟁을 일으켜 아프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엄청난 금과 다이아몬드를 영국에 들여왔다. 그는 영국을 진정 사랑하는 애국자이며 영웅으로 칭송 받았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영국의 침략정책과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강조했다. 그는 영국인들로부터 반역자요 배신자로 비난받았다. 전자는 세실 로드(Cecil Rhodes), 후자는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 로드의 무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영국 국립묘지에 안장돼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이 왜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가? 그것은 믿음의 차이 때문이다. 리빙스턴은 하나님(God)을 믿었고 로드는 황금(Gold)을 믿었다. 그 믿음이 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기쁘게 살자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기쁘게 살려느냐? 이발을 해라. 한 주간을 기쁘게 살려느냐? 자동차를 사라. 한 달을 기쁘게 살려느냐? 결혼을 해라. 일 년을 기쁘게 살려느냐? 새 집을 사라.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는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고달픈 우리의 인생에서 영혼의 안식처를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영원한 기쁨이 아닐는지요.
당신의 격려 한마디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그대가 나에게 해 준 격려의 말 한마디 큰 용기가 되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었음을 그대, 알고 있는지요? 그때 그 말을 해준 당신이 없었다면 그 힘겨운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아침친구
집 앞 논밭을 따라 1km정도 되는 곳에 정자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 그 곳을 지날 때면 할머니 몇 분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나는 매일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할머니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는 사이 할머니들과는 아침마다 늘 만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산책시간이 일정하지 못해 느지막이 산책을 나서면 그 때까지도 이야기꽃을 피우던 할머니들은 나를 ‘지각생’이라고 놀리며 박장대소를 합니다. 나는 그런 할머니들의 놀림이 언짢기보다는 할머니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오히려 흐뭇합니다. 어느새 나에게도 할머니들이 지어주신 이름이 생겼습니다.
‘아침친구’ 나는 오늘도 지각생 아침친구가 되어 정자나무 아래서 웃음꽃을 피우는 할머니들을 만나 사람 사는 향기를 진하게 느껴봅니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오래도록 그 정자나무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건강을 기원해 봅니다.
독일인의 애국심
"도이칠랜드, 도이칠랜드, 세계에서 제일 가는 우리나라..."
독일 애국가의 첫 소절이다. 두 번에 걸쳐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가 패망한 폐허 속에서도 꿋꿋이 일어 나 오늘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부국이 된 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철저한 애국심과 절약정신과 근면성이다. 다섯이 모여야 성냥 한 개비를 켜서 담배를 피우고, 주먹만한 감자 두 개와 100원짜리 스우프 한 공기로 점심을 때운다는 독일 민족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 금언: 태평세월에서의 애국심은 다만 사람 사람이 정원을 소제하고, 집 안 일에 힘쓰며, 세상 일을 배워, 한 나라의 번영을 기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괴테)
어떤 금식기도
젊은 집사 내외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여집사는 하루 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이 식탁을 준비했다고 한다. 무슨 이유로 금식하며 식사를 준비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목사님이 너무 바빠서 두어 차례 식사 약속을 어겼어요. 제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하고 하루 금식하고 식사를 준비했지요. 오늘 목사님이 약속을 지켰으니 기도응답입니다.” 목숨 걸고 떠온 장수들의 베들레헴 우물을 그들의 피라며 하나님께 부어드린 다윗이 생각났다(삼하 23:17). 내가 이 식사를 하면 벌이 될 것 같아 사양했다. 그러자 집사님은 오히려 용서를 빌면서 드시란다. 옥신각신 끝에 식사를 마쳤다.
주님은 대접 받는 사람이 복 받는 것이 아니라 대접한 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셨다(요 13:17). 바쁜 목사는 나쁜 목사라더니 나는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목사인지를 깨달았다. 그까짓 밥 한끼니 후일 먹으면 어떠냐는 가벼운 마음이 순수한 교인을 저토록 아프게 한 것이다.
끈질긴 엽서
일본에 어떤 전도 잘 하는 사람이 큰 회사 사장을 전도하기로 결심하고 찾아갔더니 처음에는 반가이 맞이해 주더니 그 다음에는 바쁘다고 만나 주질 않더랍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엽서에 성경구절을 쓰고 몇 자 적어서 보내며 전도하였습니다. 그 사장은 엽서를 받자마자 읽지도 않고 빈 서랍에 집어쳐 넣었습니다. 10장, 20장, 50장, 99장까지 끈질기게 보내었는데도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낙심이 돼서 그만 둘까 하다가 엽서 100장이나 채우고 그만두어도 그만 두어야하겠다 생각하고 100번째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 즈음 그 사장의 회사가 큰 위기에 직면하여 있어서 회사가 흔들흔들하기 시작하였을 때입니다. 그래서 큰 고민과 근심이 생겼습니다. 너무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서 서랍을 열다가 그 엽서가 유난히 눈에 뛰었습니다. 한 장을 들어 읽었는데 이런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이 말씀에 눈물이 나오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 다른 엽서를 읽는데 또 은혜가 되고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서랍에 쌓아두었던 엽서를 거의 다 읽었습니다. 이 사장의 마음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를 이렇게 사랑해서 정성껏 편지를 보내준 것이 고마워서 그 집사님을 불러 예배를 드리고 믿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 회사 전 직원을 구원했다고 합니다. 그 후에 큰 예배당까지 지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기한 마술
제가 신기한 마술 하나 가르쳐 드릴께요. '감사 마술' 이라는 것인데요,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어요. 아침에 이 마술을 가족들에게 써먹어 보세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주문만 외우면 됩니다. 마술의 주문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번은 마음 속으로, 한번은 자신에게, 한번은 다른 사람에게 소리를 내어서 말을 하면 됩니다.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들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친구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동료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번 해 보세요.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액순환이 잘 되며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지는 신기한 마술입니다. '감사 마술'과 비슷한 마술은 '고맙습니다.' 마술입니다. 마음이 더욱 따뜻해지지요. 아무에게나 통하지는 않지만 정말 화끈한 '사랑합니다.' 마술도 있지요.
담장 위의 거북이
미국 흑인들의 애환을 그린 ‘뿌리’의 작가 알렉스 해일리(Alex Haley)는 자신의 사무실에 이상한 그림을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거북이가 높은 담장의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그림입니다. 사람들이 질문을 합니다. “왜 이상한 그림을 걸어 놓았소?” 해일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난 내가 쓴 작품을 볼 때 ‘어떻게 이런 위대한 글을 쓸 수 있었는가, 어디서 이런 영감을 얻을 수가 있었는가’ 생각하며 스스로 교만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저 그림을 보고 생각합니다. ‘저 거북이가 제 힘으로 스스로 저 높은 담장에 올라갈 수 있었을까? 누군가의 도움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함으로써 스스로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크게 사용하십니다.
깊은 차원의 행복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장애인 '이희아' 양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기형아로 무릎아래 양다리가 없고 양쪽에 두 개씩 네 개의 손가락이 전부인 1급 장애인입니다. 어느 잡지에서 사람들이 연주가 끝나고 자신의 모습에 대한 질문을 할 때 '희아' 양은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뇌혈과 기형으로 수리 영역이 발달할 수 없지만, 언어나 예술 쪽의 감성......그리고 기억력이 좋아요. 청음이 좋다고들 해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한쪽 부분을 가져가는 대신 이 특별한 부분을 다른 사람보다 더욱 누리게 해 주셨죠.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해요.”그리고 장애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성경에 장애인이 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말이예요.....
그러니 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태어난 것이예요. 그래서 행복해요. 또한 누구나 다 장애가 될 수 있잖아요. 중요한 것은 모두가 그 자체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희아' 양은 자유인입니다. 누구도 못 누리는 깊은 차원의 행복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생각 속에서 자유하고 있습니다. 남이 보지 못하는 현상 너머의 삶의 의미를 보고 있고, 그로 인해 남이 누리지 못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감사의 풍성함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야기 마당(예화집)
1. 얼마전에 심리학자 존 힌튼 박사가 임종직전의 신앙인들에 관해 연구한 저서를 낸 일이 있다. << 죽어가는 사람들>> 이라는 저서에서 그는, 일생동안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많은 삶이 죽음에 대해 공포에 질려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하나님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바치고는 순간적 내면적인 안정감을 얻어내고, 목사와 교사가 그들 신앙의 일부가 된다고 말해준 모든 진리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스타일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 배웠던 정통적 신앙고백을 기계적으로 반복해 왔을 것이다. 그들이 공포에 질리는 이유는 신앙을 자신의 삶과 이 세상과 일치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최종적인, 내세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아니다. 또 하늘의 금고처럼 끌어안고 있으라느 것도 아니다. 그 말씀은 삶을 위해 , 사랑하기 위해 , 바로 지금 여기서 나누어 가지기 위해서 있다. 매일 매일 신앙을 생활화 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정신은 황폐해지고 죽음의 순간에 비겁해질 것이다. 신앙은 그것이 만일 살고 사랑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면 죽는 이유도 될 수가 없다.
/존 포웰
2. 유태인의 교육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벌을 주는 것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돕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 구약 성서>에서 ‘아이를 그 가야할 길을 따라서 가르쳐라. 그리하면 나이가 들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으리라.(잠언 22: 6)’라고 씌어 있다.아이를 그 가야할 길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벌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벌은 반드시 한편으로는 애정의 표현이 따라야 한다. 벌로서 끝나 버리면 부모는 권위에 의해서 아이들을 지배하게 되고, 아이들은 그 개성을 자유롭게 나타낼 수 없게 되어 도리어 위축되어 버릴 것이다. 이래서야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수단이 될 수 가 없다.
‘오른손으로 벌을 주면 왼손으로 안아줘라.“하는 유태의 낡은 속담은 벌에는 애정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말마따나 유태인은 무슨 도구를 써서 아이들을 때리는 잔인한 일을 하지 않고 흔히 손으로 두들긴다.
/르스 시로
3. 가장 강한 것
차디찬 겨울이었다. 유리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 흘러든 햇빛은 방안의 공기를 따스하게 덮혀 주었다. 심술궂은 북풍도 방안으로 뛰어들려고 한없이 떼를 썼으나 유리 창문의 한결같은 저지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어! 햇빛은 들여 보내면서 난 왜 막는 거야?”
“사람들이 햇빛은 좋아하지만 넌 미워하니 들여 보내지 못하겠어!”
유리 창문의 대답은 날카로웠다.
< 악는 언제나 강력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약한 것보다 약하다. >
/진쟝(중국 우화작가)
4. 참나무와 갈대
참나무 한그루가 자신의 강인함을 뽐내면서 옆에 있는 갈대들을 비웃었다. 참나무는 자신의 튼튼한 몸통과 뿌리를 자랑하면서 갈대의 연약함을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개바람이 불어왔다. 참나무는 안간힘을 쓰고 버티다가 급기야는 뿌리째 뽑혀 날라가 버리고 말았다.
갈대들은 참나무가 뿌리째 뽑혀 쓰러졌으나 자신들은 살아남은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있었다. 그런데 동네 아이들이 그 뽑혀진 참나무와 갈대 주변에 와서 놀다가 재미삼아 갈대 뽑기를 하였다. 뽑혀진 갈대들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아래서 말라죽고 말았다.
< 남의 고통을 즐거워 마라. 남의 일이 아니다.>
/R. 짐러, 파라독스 이솝우화
5. 세계이해의 두 방법
사람이 외부적인 세계를 이해하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지극히 거칠고 피할수 없는, 오관에 의하는 인식이 있다. 그 인식의 방법에 의해 우리 내부에 형성되는 것은 우리들의 앎이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여러가지로 다른 감각을 주는 혼돈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에 대한 사랑에 의하여 자신을 알고 자기 이외의 것에 대한 사랑에 의하여 그것을 아는 것, 즉 자기 이외의 삶들, 동물, 식물, 그리고 돌에 이르기까지 조차도 사색을 옮겨 놓는 일이다. 이 인식의 방법에 의하면 온 세계의 내부로부터 아는 것이고, 우리들의 앎에 의하여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파괴된 것의 재건이요, 모든 존재 결합의 부활이다. 자기로부터 나와서 다른 것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만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신과 화합하고 만물과 화합될 수 있는 자이다.
/톨스토이,그대 영혼의 빈자리에
6. 만일 사람이 불행하다면 그가 먼저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남이나 남의 처지를 원망할 것인가? 환경에 대하여 비탄하거나 세상을 비난할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무릇 도덕을 설교하는 자들은 자신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죄를 전가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불행한 자는 우선 자기가 불합리 했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을 깨닭아야 한다. 만일 그가 자연을 신뢰하고, 자연의 법칙을 신뢰한다면, 영구불멸의 법칙을 가진 자연은 그에게 은혜나 충족이나 행복을 줄것이다. 만일 자연 법칙을 쫓지 않는다면 자연은 인내를 잃고, 그로부터 위안을 빼앗아 그를 고독으로 몰아 넣을 것이다.
7. 기독교의 본질
예수가 가르쳐 주었고 사고에 의해 파악되는 기독교의 본질은 우리가 사랑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생생한 인식은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서 사랑의 의지로 체험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랑의 이념이 무한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빛임을 깨닫는 사람은 종교에서 초감각적인 것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구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예수의 정신에 완전히 충만하여 예수의 정신 속에서 내면화하고 사랑의 살아있는 종교로 정신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기독교의 사명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만 기독교는 인류 정신 생활의 누룩이 될수 있다.
/시바이처,나의 생애와 사상에서(맺는말)
8. 성격이 과격한 왕과 꽃병
옛날 어느 왕은 훌륭한 도자기와 유리로 만든 아름다운 꽃병을 수북이 선물로 방았다. 모두 아주 정교한 솜씨로 만들어져서 보기에도 아름다왔다. 왕은 무척 흐믓하게 여겨 이를 보내 온 자에게 충분한 보답을 했다.
그런뒤 왕은 꽃병을 하나하나 손에 들고 산산 조각을 내 버렸다. 그 자리에 있던 한 신하가, “어찌하여 그러십니까?” 하고 물었다. 왕이 대답하였다.
“나는 나 자신이 격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내 자신에게 타일렀다. 언젠가 그대 하인이 이 훌륭한 꽃병을 깨뜨릴 때가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때는 화가 나서 그 하인을 죽여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 결과가 될 바에야, 차차리 지금 이 꽃병을 깨뜨려 버리는 편이 좋다.라고 말이야.”
/ M. 고리온,유태인 지혜에서
9. 진정으로 기도하는 자세
신앙이 깊은 젊은이가 기도하고 있었다. 그 때 뱀이 기어와 발목 언저리에에서 서성거렸다. 그 사나이는 기도를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나중에 제자들이 “뱀이 발목에서 기어다니는 것을 모르셨나요?”하고 물었다.
신앙심이 깊은 사나이는 대답하기를 “ 내가 뭔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화가 나에게 있을 것이다.”하고 말했다.
어느날 왕이 지나가는데 신앙심이 깊은 젊은이가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다. 기도가 끝난뒤 왕이 말하기를 “ 너는 겸허한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 이제 보니 교만하기 그지없구나.” 하고 말하자 신앙심이 두터운 사나이는 이렇게 말했다.
“ 만일 내가 바깥에서 걸을 때 폐하의 모습을 보고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면, 어떠한 벌이들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까지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규율에는‘ 기도를 올리는 자는 왕이 곁에서 묻거나, 뱀이 발꿈치를 뜯어도 기도를 멈춰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왕은 그 말을 매우 흐믓하게 여기며 그곳을 떠났다.
/M. 고리온,유태인 지혜에서
10. 성공적인 삶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나 자신의 노력만 가지고서는 안된다.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어려운 환경과 여건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힘이 아닌 다른 힘이 필요한 것이다.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 출신으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았으나 늘 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한 마음으로 늘 괴로움을 겪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적한 시골길을 가던 중 농부를 만났는데, 그 얼굴에는 유난히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그는 농부에게 가서 평화스런 삶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 때문에 언제나 내 마음은 기쁠 뿐이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 날부터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그는 하나님을 만나 과거의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바로 사는 길이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 “강단과 목회” 예화 중에서
개의 반박
어떤 이가 꿈속에서 골목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옷은 남루하고신은 해져 마치 거지 같았다. 뒤에서 개가 짖었다. 그는 돌아서면서 큰소리로 개를 꾸짖었다. “ 이런 쓸개빠진 놈, 주둥이 닥치지 못해!”
“히히!” 개가 웃었다. “어찌 사람 말을 거역할 수 있겠소? 사람 만도 못한 짐승인 내가.” “뭣이 어째!” 그는 분노하며 부르짖었다. 사람만도 못하다는 표현이 모욕적인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개가 말하길 ” 미안하게 됐소이다. 난 워낙 사람만도 못한지라, 왜 구리와 은이 구분되는지, 왜 비단과 무명이 구분되는지, 왜 관리와 백성이 구분되는지, 왜 주인과 종이 구분되며, 게다가 또...“
그는 부끄러워 도망쳤다. “ 잠깐만 ! 더 이야기 하자구요!” 개가 뒤에서 큰소리로 불렀다. 그는 그곳에서 빠져나와 부지런히 걸었다. 꿈속에서 침대로 향하여 말이다.
< 차별하는 습성이 있다는 면에서 사람은 ‘개만도 못한’ 동물일수 있다.>
/루쉰, 파라독스 중국우화
외눈박이 사슴
사냥꾼의 화살을 맞아서 생긴 상처 때문에 한 눈이 멀게 된 사슴 한마리가 있었다. 이 사슴은 생각했다. “ 바닷가에 가서 풀을 뜯어 먹어야지. 못쓰게 된 눈을 바다쪽에 고정시켜 놓으면 나머지 성한 한 쪽 눈으로 숲을 잘 경계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하여 사슴은 바닷가로 가서 풀을 뜯었다. 물론 수풀 쪽만을 경계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배 위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낚시꾼들이 사슴을 발견하고서 바닷가로 배를 몰아 오는게 아닌가! 그들은 보이지 않는 눈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아무 어려움 없이 사슴을 생포할 수 있었다.
< 도망치는 자는 언젠가는 붙잡힌다. >
/로버트 짐러, 파라독스 이솝우화
병사와 군마
속력과 힘이 월등해서 주인을 전쟁터에 수없이 태워다 주면서도 상처하나 입지 않게 지켜주던 명마가 있었다. 그 주인은 당연히 자기 말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말을 보살폈다. 어느 정도 였느냐하면, 말한테 포식을 할 정도의 보리와 물을 먼저 갖다 주지 않으면 그 때까지 자기도 전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매일 같이 털을 잘 손질해 주었고, 상처라도 나면 잊지 않고 정성껏 고약을 발라 주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주인은 말을 밭에다 내몰아 일을시켰다. 말은 쟁기도 끌고, 무거운 바윗덩이들도 나르고, 힘들게 마차도 끌어야 했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데도 먹이는 왕겨와 밀짚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전쟁이 다시 터졌다. 그 주인은 무장을 다 갖춘 후에 자기 말에 올라탔다. 그런데 평소에 잘 먹지 못하고 일만 죽어라 하다 탈진한 말은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다. 한 발 한 발 옮길 때 마다 여기서도 절뚝거리고 저기서도 절뚝거리고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병사가 말을 꾸짖자 말이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전쟁터의 명마로 힘차게 달리길 바랐다면, 왜 나를 농장의 당나귀처럼 취급하셨나요?”
/로버트 짐러, 파라독스 이솝우화
복과 축복
복은 유일신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복을 주는 자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자요, 시행하는 자요, 베푸시는 자이시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 께 축복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 축복이란 말은 복을 빈다는 뜻으로 복을 비는 것은 인간 뿐이다. 즉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시고 인간은 복을 비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흔히들 하나님이 복을 비는 자로 격하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복을 빌수 있는 곧 축복을 할 수 있는 존재이고 하나님은 복을 내리시는 절대자이시다. 사람은 그리하여 서로 축복하는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 강단과 목회 예화
< 전진과 중단 >
아무래도 어떤 결단을 내리기는 해야 겠는데, 그게 도무지 기분에 거슬리는 일이 때로는 있다. 이런 경우에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 끝장이다! 만사 휴의다! 인젠 아무 해결책도 없다.!” 하는 경우가 그 하나다. 이것은 마치 외국으로 이주한 사람이 고국의 옛 환경으로 되돌아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태도이다.
혹은 용기를 잃지 않고 베르그송과 더불어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 “방법은 오직 하나, 갈 수 있는 데 까지 가 보자. 내가 할 일은 모름지기 출발이며 전진이다.”
-- 쟈끄 뢰브, 묻혀 있는 보물.
바람직한 자녀의 性교육
어느 날 아이가 “아기는 어디에서 와요?”하고 물을 때 그는 그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들을 권리를 가진다는 것에 우리는 모두 동의 한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에게 한 부모의 대답을 그의 눈에 비친 부모의 생활과 비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정자가 어떻게 해서 난자에 도달하는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사이 좋게 지내고 서로 사랑하며 상대방에게 애정을 표시하고, 그리고 얼마나 감싸주는가를 보는 것이다.
만일 아버지와 어머니가 행복한 혼인생활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에게 성교육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만일 부모가 신중하고 다정하며 아주 바쁠 때 일지라도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아이는 부모가 서로 사랑해서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말을 들을 때 바로 이해한다. 그리고 몸에 대한 설명에도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에 대하여 정중함을 잃지 않는 아버지의 태도를 보고 자라는 소년은 말할 필요도 없이, 여자란 단지 성의 유희 대상으로 여겨졌다가 내던져지는 존재가 아님을 배운다. 소녀 역시 올바른 상대를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과 무분별한 행동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고 공허한가를 쉽게알게 될 것이다.
/ H. 요르드 진크, 어떻게 대답할까요? 중에서
< 진정한 주인 의식 >
“대한 사람은 모두가 대한의 주인인데 주인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면 이상할 것 이외다. 그러나 오늘 대한 사회에 주인다운 주인이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잘되고 못되는 것이 모두 나에게 달렸다는 강한 책임감을 가진 자가 진정한 주인이요, 무책임하게 방관하는 자는 손님이외다. 주변을 둘러보아 진정한 주인이 적다 싶으면 빨리 나부터 참주인이 되도록 합시다.”
/도산(島山) 안창호 (1878- 1938)
< 양도둑과 성자 >
남의 양을 훔친 죄로 이마에 “S.T.” 곧 “양 도둑”(Sheep Thief)이라는 두 글자의 낙인을 받은 두 형제가 있었다. 형제중 하나는 이 모욕을 참을 수 없어 외국 땅에 가서 자신을 감추어 가며 살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삶들 마다 이마의 두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냐고 자꾸 물어보는 바람에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 마침내 비참히 죽고 말았다. 다른 형제는 스스로 “내가 양을 훔친 사실은 딴 곳으로 달아난다 해도 잊혀지지 않을 것, 여기 남아서 내 이웃과 나 자신에게 다신 존경을 되 찾는 길을 걷겠다” 하고 다짐했다. 해가 바뀌는 동안 그는 정직하다는 평을 받기 시작했다. 수십년후 이곳을 지나치던 낯선 사람이 양도둑이었던 자의 이마에 씌어있는 글의 의미가 무엇이야고 물어 보았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 일이 뭐였는지 생각이 아나지만 그 글씨는 아마 ‘성자(Saint)’의 약자일 것입니다.”
/강단과 목회,1988 예화
< 진정한 관심 >
어느 젊은이가 법정에 서게 되었는데 그는 ‘문서위조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 재판을 담당한 판사는 유명한 포터(Dr. Potter) 박사 였는데 그는 이 피의자의 아버지를 잘 아는 처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법조계의 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포터 판사 자신도 그의 부친이 쓴 <<신용법>>(The Law of Trusts)이라는 책을 읽고 배운바 있기 때문이었다. 포터 판사는 이 젊은이에게서 옛 스승을 생각하며 질문하였다. 그는 그 판사를 알지 못했으나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판사는 “네 아버지는 법조게의 뛰어난 인물이셨는데 너는 이런 파렴치한 일을 하다니......” 하며 꾸짖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저도 기억합니다만, 그 책을 쓰실 때에 제가 아빠의 도움이나 충고, 사랑을 받을려고 응석을 부리면 ‘얘야 ! 저리좀 가라, 나는 바쁘다. 이 책의원고를 끝내야 돼’ 하시면서 귀찮아 하신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요.”
이 청년의 아버지는 위대한 법률가였지만 아버지로써의 자격은 결여된 사람이었다. 우리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한다.
/29마르크,설교 예화와 그 자료들에서
< 프랭클린의 감사 >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새로운 헌법을 만들기 위해 여러 대표들이 모였을 때 독립의 공로자인 프랭클린은 대표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다.
“우리가 영국과의 독립전쟁 중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고자 날마다 이 방에서 간구 하였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셔서 우리는 감격스러운 독립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여기 모여 이 나라의 미래의 기초를 세우려 할 때 어찌 그 하나님의 은혜에 먼저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없이 어떻게 한 나라가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도우심을 얻기 위하여 아침마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예배를 드릴 것을 제안합니다.”
미국의 헌법에는 바로 이러한 감사의 신앙이 배어 있는 것이다.
/강단과 목회, 예화
< 신앙의 4 시대 >
이용도 목사는 신앙에 네 시대가 있고 각 시대에는 대표가 있다고 합니다. 제 1 기는 교회가 그 주체라 교회가 교회를 의지 하는 때로 베드로가 그 대표가 됩니다. 교회의 의식과 제도와 교리에 복종하는 때입니다. 제 2 기는 자기가 주체라 자기 노력을 의지하는 때로 야곱이 대표가 됨니다. 억지로라도 죄를 버리고, 육을 멸하여, 금욕하여 도를 이루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식을 지키고 교리대로 행하여도 여전히 자기 마음과 행실은 죄의 상태를 면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 3 기는 자기 노력도 부인하고 다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때로 바울이 대표됩니다. 아무리 금욕하고 죄를 멸해도 여전히 죄인됨을 면치 못하는 지라, ‘자기가 성결하여 구원을 얻는다면 낙망할 수 밖에 없으리라. 다만 믿음으로구원(의롭다하심)을 얻는다’고 확신하는 때입니다. 제 4 기는 사랑의 화신이 되어 자기는 사랑의 신에 삼킨바 되기를 원하는 때로 요한이 그 대표자입니다. 신앙을 가지고도 오히려 불만족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사랑이 없음을 자각함이러라. 신앙으로 용기와 담력을 얻어 죄와 싸울 수는 있고, 죄인을 책망할 수는 있으되 죄인을 긍휼히 여길수는 없음을 어찌하랴! 이에 사랑과 긍휼을 간구하며 빌게 되는지라. 이에 사랑이 들어가노니 이곳이 절정이라, 여기에서 부터 영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 이용도 목사 일기에서 (1931.1.28.) < 가장 중요한 것 > 옛날 어느 왕이 한 사람에게 사자(使者)를 보내어 오라고 명했는데 그에게는 세 명의 친구가 있었다. 첫 친구는 가장 친한 친구이고, 둘째 친구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친구였으며, 세째 친구는 친구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는 왕이 틀림없이 자신에게 벌을 주려고 자신을 오라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혼자 가기가 무서워서 친구들에게 동행해 다라고 부탁했다. 첫 친구는 쌀쌀하게 거절하는 것이었다. 둘째 친구에게 가니 “왕궁 문 앞까지는 같이 가 주겠어.” 하고 조건을 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셋째 친구는 “가고 말고, 자네에게 무슨 죄가 있나. 함께 가서 왕을 만나기로 하세.”하고 말하였다. <<탈무드>>의 죽음에 대한 비유로 첫 친구는 ‘재산’이며, 둘째 친구는 ‘친척’이다. 기껏 해야 죽음을 애도해 줄 뿐이다.그러나 그의 생전에 한 세째 친구인 ‘선행’은 죽은 뒤에도 남는 것이다. ----르스 시로, 유태인 천재 교육 < 신 앞에서의 나 > 복음서의 글 가운데서 특별히 생의 향락을 금지한 구절이 있다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 단지 긴요한 것은 하나님을 흐림이 없는 맑은 눈으로 바라본다는 일이다. 나의 경험에서 비춰 본다면, 이 지상에 잇는 물건은 내가 그것을 내것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 단지 내가 이것을 소유하고자 바랬다는 것만의 사실로 그것이 흐려져와서 전 세계가 그와 동시에 그 투명성을 잃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눈이 그 밝음을 잃는것인지 어찌되었든 나의 영혼에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게 된다. 그리고 나의 영혼은 피조물을 위해서 조물주를 돌아보지 않음으로 인하여 영원속에 살기와, 하나님의 나라에 살기에 두가지를 잃게 되는 것이다. ----앙드레 지이드,그대 영혼의 빈자리에 < 매스 미디어의 문제 > 신문,잡지,T V,라디오를 “미디어”라 하는데 그것들이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진리를 전파하기 위한 것입니까? 신문이 왜 그렇게 싼지 아십니까? 신문 한부를 만드는데 천 원 이상이 듭니다. 그런데 왜 200원만 주면 살 수 있을까요? 광고가 많기 때문에 싸게 팔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광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욕심을 일으키기 위한 것입니다. 필요로 하든 안하든 구매욕을 충동시키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라도 광고를 냅니다. 성경 말씀은 탐심이 곧 우상 숭배라고 하는데 미디어는 탐심을 일으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상이 걸린 십자가나 성모 마리아상을 거부하고 제사드리는 것을 우상 숭배라고 주장하면서도 하루에 4 - 5시간씩 TV를 보면서 아무러지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계 역사상 우상 숭배치고 재미 없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재미가 없다면 누가 유혹에 빠지겠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진리를 알고 싶다면 함께 모여 성경을 연구하고 실제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각 문제에 대한 성경의 법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실행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입니다. ---- 대천덕 , 우리와 하나님, p.345-6 < 시간에 대하여 >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가 인생은 잛고 불안정하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다음과 같은 시간들도 한번 계산해 봄 직하다. : 자는 시간 , 쓸데없이 보낸시간, 밥먹는 시간, TV를 시청한 시간, 예배드린 시간, 봉사한 시간 등. 내 인생은 어느 시간에 치우쳐 있는가? 어느 시간을 줄여서 효율적인 시간으로 사용할 것인가? 시간에 대하여 언제나 기억해 두어야 할 일이 있다. 1.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 마지막이 왔을 때 그 이상의 시간을 손에 넣을 자는 아무도 없다. 2. 인생의 길이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주어진 생명에 대해 오늘, 현재, 지금 최선을 다하라. 3. 배워야 할 일이 있으면 지금 배워야 한다. 시간은 우리를 언제까지 배움의 자리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4. 해야할 일은 선중히 선택하라.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시간은 없으므로 정말로 중요한 일과 꼭 해야만 할 일을 해야할 것이다. 5. 일을 중단 상태로 남겨 두거나 내일로 미루지 말라. 영원히 끝마치지 못하거나 하지 못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6. 남과 싸웠다든가, 사이가 틀린 채로 하루를 마치지 말라. 영원히 화해하지 못한 채로 이 세상을 떠나야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수입 농산물을 먹지 맙시다. > 수입 농산물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옛부터 신토불이(身土不二)라고 하였습니다. 즉 그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 땅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최근에 농약으로 문제된 것들을 알아봅시다. ? 고사리 고추등 걵채류 22개와 곶감 대추등 건과류 -- 수입되는 농산물은 선적하면서 병충해 방제용 농약 메틸 브로마이드 (MD)로 소독된 뒤 유통 : 소화 장애등 인체유해(동아 92.9.27) ? 농약 밀가루 유통 -- 농약 성분인 치오파테이트 메틸이 함유된 밀가루를 제과업체에 불법 유통 시켜 빵과 과자 등의 원료로 사용 ( 동아 92. 10.20.) ? 농약 콩나물 대량시판 -- 해로운 농약을 사용해 콩나물을 속성 재배해서 시중에 판매 : 검출된 농약 톱신엠은 콩나물의 부패를 막고, 성장을 촉진시켜 색깔을 좋게 하지만 인체에 대량 흡수될 경우 동공(눈동자) 축소, 의식 혼탁, 전신 경련등의 증세 초래 (한국 92.1.10.) ? 김양식장에 염산 살포 -- 갯병 예방과 품질 향상을 위해 많은 양의 염산 사용 : 해양 오염 및 생태계 파괴, 잔류땐 인체에 유해 (한겨레 92.1.21.) < 무화과는 왜 수박보다 작은가? > 옛날 학식이 높고 제자를 많이 둔 선생이 한 사람있 었다. 어느 날 과수원을 산보하다가 무화과 나무 밑에 앉아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자신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밭에서 자라고 있는 수박을 발견했다. 한아름이나 되는 수박은 저렇게 가늘고 연약한 덩굴에 달리는데 억세고 질긴 무화과 나무에는 저런 조그만 열매 밖에 열리지 않다니... 수박과 무화과를 번갈아 보던 선생의 머리 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 생각에는 조물주가 마땅히 수박을 무화과 나눔에 열리게 했어야 하는 건데... 그래야 조화가 되는 건데.” 몸을 일으킨 그는 손으로 무화과 나무를 몇번 흔들어 보았다. “ 네 가지가 얼마나 튼튼하냐. 너에겐 수박만한 열매가 달려야 잘 어울릴것 같은데, 조물주가 꺼꾸로 배치해 놓았군. 만물 중에는 걸맞지 않는 것이 많기도 하지!” 말을 마친 선생은 무화과 나무 아래로 되돌아가 앉았다. 그 때 몸을 바로 잡기가 무섭게 무화과 한개가 선생의 코 끝을 내리쳤다. 선생의 코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 선생이 입을 열었다. “알만하구나. 천하의 만물은 다 제각기 쓸모가 있고, 그 도리가 있는 법이야. 절대 꺼꾸로 되거나 뒤범벅이 될 수 없는 법이지. 내 말대로 이 큰 수박이 무화과 나무에 달렸다면 내 얼굴은 엉망이 됐을거야. 어쩌면 목숨까지 잃었을 지도 몰라. 다행히 열매가 작아서 상처가 심하지 않군. 이제 알만해. 조물주가 제 자리에 맞추어 놓은 세상 만물을 우리가 함부로 뜯어 고칠수는 없는거야.” < 자연의 이치중에 인간이 얕잡아 볼 것은 하나도 없다. > --- 마오둔, 파라독스 이솝우화 < 웨슬레가 강조한 것 > 우리는 단지 힘이 닿는 한 또한 하나님께선 그를 기쁘시게 하는 자들을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자들을 깨닫게 하고 나아가서 그들에게 그 말씀을 붙들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저희가 주로 강조한 것은 네가지 였습니다. 첫째, 정통(orthodoxy) 또는 합법적인 견해라는 것이 아무리 좋아도 종교의 가장 약한 부분이라는 것 그것도 종교의 한 부분으로 인정을 받을 경우에만 그렇다는 소극적인 것, 무엇이든 해가 없는 것으로만 종교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그렇다고 단순히 외적인 것, 선행, 자선, 구제, 자비를 베푸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런 것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마음과 다를 뿐 아니라 그 마음에도 미치지도 못하며, 하나님의 형상은 새겨져 있다는 것;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와 성령 안에서 얻는 기쁨으로 이루는 내적인 의(義)등 이었고 둘째로, 하늘 아래서 이와 같은 종교가 될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 혹은 (사도들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것이며 세째로, 이러한 신앙으로 죄인을 의롭게 만드시는 그 분만 믿으면 누구든 애쓰지 않아도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구원을 통해 완전히 그의 은혜로 자유롭게 되며 마지막으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하늘나라를 그리워하게 되며, 거룩하고 행복한 생활 속에서 죄와 공포는 사라지게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의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빈센트 페로넷 주교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그는 웨슬레의 친구이자 조언가였다.) --- 존 웨슬리, 존 웨슬리총서 10권 서간집, 1748년 < 하나님의 지혜 > 어느날 카프만 부인이 테이블위에 놓여있는 몇개의 고치 속에서 나비들이 되어 나오는 것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고치의 구멍은 좁고 나비의 덩치는 커서 나비가 나오는 데 여간 힘이 들지 않습니다. 저 구멍이 조금만 넓으면 쉽게 나올텐데 하고 부인은 가위를 가져와서 나머지 고치 구멍을 보다 널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나비는 쉽게 구멍을 빠져나왔습니다. 부인은 깊은 명상을 하였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좀더 넓게 만드시지 못하셨을까? 내가 창조했다면, 더 쉽게 만들었을텐데 신의 지혜가 나보다 못하단 말인가?’ 나비들은 고치에서 나온 후에 차츰 몸을 움직이더니 얼마후 날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그 때부터 일어났습니다. 좁은 구멍에서 고생고생하며 나온 나비는 벌써 푸드덕푸드덕 날고 있는 데 비하여 자신이 넓혀준 구멍에서 나온 나비들은 돕무지 날지를 못합니다. 안타갑게도 몇번 날개를 파르르 떨다가 포기를 하고 맙니다. 이상히 여긴 부인은 그날 부터 열심히 그 문제에 대해서 연구를 하였습니다. 즉 고치 안에 잇을 때 나비의 모든 영양분은 어께에 쌓여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어께에 있던 영양분은 좁은 구멍으로 나올 때 어깨의 에너지가 점점 몸으로 특히 날개쪽으로 골고루 퍼져서 드디어 날개에 힘이 생기는데 자기가 넓혀서 나온 나비의 영양분은 어깨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깡패 모양으로 어깨만 힘이 있어 으쓱거렸지만 정작 날아야 할 날개쪽에는 전혀 힘이 가질 않아서 날 지 못하였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카프만 부인은 “아, 역시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그 분 만이 가장 지혜로우시다.”라고 감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