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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7] I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묵상 I 루카 13,18-21
그때에 18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19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21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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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 믿음의 두 모자(母子) <독서 : 에페 5,21-33 / 복음 : 루카 13,18-21>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말씀은 보잘것없게 보이는 하느님 나라의 시작과 이 작은 시작이 마침내 세상을 뒤덮을 것임을 가르친다.
마태오와 마르코도 겨자씨의 비유말씀을 전해주고 있는데, 마르코는 작은 씨앗에 비해서 그 씨앗이 크게 자란다는 대조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마르 4,30-32) 한편, 루카는 씨앗이 자라는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마태오는 이 둘을 결합시키고 있다.
루카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겨자씨를 직접 가져온다. 그는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어떤 사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밭에 뿌리지(마태 13,31 참조) 않고 어디에 심으면 좋을까 하고 고민한다. 그러고선 그 겨자씨를 심을 곳을 정한다. 그곳은 다름 아닌 자기가 공들여 가꾸고 있는 정원이었다. 그는 그 겨자씨를 정원에 정성껏 심었다. 땅을 갈고, 풀을 뽑고, 거름을 주면서 키웠다. 그랬더니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이게 되었다.
겨자씨를 심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정성껏 시작하신다. 비록 보잘것없는 작은 씨앗이지만 예수님은 하느님의 큰 약속이 부족한 믿음을 통해서도 반드시 이루어짐을 굳게 믿으신다. 작은 씨앗을 정성껏 가꾸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위한 그분의 희생과 봉사와 사랑을 만끽할 수 있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이라는 거름을 아낌없이 겨자씨한테 나누어 주실 것이다.
당신의 믿음을 밀가루 서 말 속에 넣으시는 여인, 성모님을 묵상해 본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믿음은 아무리 작은 양일지라도 없어지지 않고, 온 세상을 뚫고 나아가 온 우주를 뒤덮을 것이다.
루카는 믿음의 두 모자母子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말씀자료 : 이시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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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연중 제30주간 화요일(20-10-7) I 묵상기도방(사이버기도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12.blog.daum.net%2Fimage%2F7%2Fblog%2F2008%2F08%2F08%2F23%2F22%2F489c56693dddb%26filename%3Dda_icon0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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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기도 : -
저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일상의 삶에서 주님과 대화를 나누고,
주님께 먼저 여쭈어 보며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내 삶의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주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며 주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요? 주님, 저의 주인이
저 자신이 아니며 제 삶의 시간의 주인이
저 자신이 아닌 주님이시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은총을 내려주소서. 저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지키며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저를
억압하고, 옹졸하게 만드는지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고 모든 순간 저희와 함께 하고자 기다리시는
주님께 나아가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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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지향 :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세상 풍파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묵묵히 걸어가는 이들의 교회를 이끌어주시고
교회를 통해 세상 모든 이들이 당신의 현존을 느끼고 당신께 돌아올 수 있도록 교회의 품이 더욱 넓어지게 하소서.
오늘의 복음 : [가해]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루카 13,18-21
그때에 18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19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21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13.blog.daum.net%2Fimage%2F22%2Fblog%2F2008%2F08%2F09%2F00%2F52%2F489c6bb40b3d7%26filename%3Dda_icon05.gif)
영적독서 : 놀라운 정신력
가브리엘 천사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순간부터 마리아는 놀라운 정신력으로 삶에 부딪혔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마리아는 모든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안토니오 벨로,「성모님과 함께하는 31일 기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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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연중 제30주간 화요일(2020-10-27) | 말씀 묵상방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12.blog.daum.net%2Fimage%2F7%2Fblog%2F2008%2F08%2F08%2F23%2F22%2F489c56693dddb%26filename%3Dda_icon01.gif) [Lectio Divina & Comtemplation] * 독서 : 에페 5,21-33 / 복음 : 루카 13,1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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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정 생활을 위한 조언을 하면서 그리스도 신자들의 혼인에 관한 교리를 제시한다. 부부의 사랑보다 더 친밀한 사랑의 결합은 없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이 바로 그렇다.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의 상징이다(제1독서).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한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하느님 나라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게 엄청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아주 작은 겨자씨나 반죽 속에 감추어진 누룩처럼 드러나지 않게 자라난다. 이것이 전능하신 분께서 하시는 일의 신비이다(복음). |
<말씀묵상-1> : † 하느님나라 건설을 위한 겨자씨와 누룩
어제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병마에 사로잡혀 굽은 허리 때문에 몸을 펴지 못한 채 18년을 살아온 한 여인을, 그것도 안식일에 회당에서 고쳐주셨다. 이 치유사건은 율법의 멍에를 지고 수백 년을 살아온 불쌍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고자 하는 하느님 구원의지의 암시적인 표현이다. 이는 곧 예수님의 강생으로 말미암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담고 있는 내용이다.
예수께서 계시하시려는 하느님 나라는 신비(神秘) 그 자체이다. 신비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예수께서는 이를 설명하시고자 비유를 학습도구로 삼으신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비유의 소재는 겨자씨와 누룩이다. 이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여기는 것들이다. 어떻게 보면 하찮아 보일 수도 있다.
겨자씨는 씨들 중에 가장 작은 씨이지만, 밭에 뿌려져 성장하면 그 어떤 나물종류의 푸성귀보다 크게 자란다. 최고 3m까지 자란다고 한다. 루가는 여기서 ‘큰 나무’가 된다고 했으나 이는 좀 과장된 표현이다. 그러나 하늘의 새들이 와서 둥지를 틀려면 푸성귀가 나무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종국(終局)에 세상의 모든 백성이 하느님 나라에 쇄도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표현일 수 있다.
누룩도 마찬가지이다. 누룩은 술을 만드는 효소를 가진 곰팡이를 곡류에 번식시킨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누룩이지만 밀가루 속에 들어가면 밀가루 반죽 전체를 부풀리게 만든다. 이렇게 겨자씨와 누룩은 너무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 하찮은 것들 같지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능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 능력은 필히 자신의 목적을 달성해 낸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예수께서는 당신이 선포하시는 하느님의 나라를 작디작은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셨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건설된다면 참으로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져야 할 것이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장엄하게 하늘나라를 선포하셨고, 하느님 임재(臨齋)의 표징으로 마귀를 쫓아내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예수님의 이 모든 말씀과 행적들은 참으로 위대한 것이고 또 놀라운 일들이었다. 그분은 제자들을 부르시어 사도로 삼아 교회를 세우심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느님 나라의 성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예수님 당대에도 그랬지만 사도들의 복음선포가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제자단의 배반은 물론 선인과 죄인이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교회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스스로 성장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마치 겨자씨와 누룩과도 같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뿌려진 씨 가운데는 열매를 가져오기도 하고, 때가 되면 추수의 기쁨도 있다.
이렇게 하느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으나 이미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말씀과 업적들 안에는 하느님의 숨은 힘이 현존한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새긴 것을 행동으로 증언한다면 그는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위한 일꾼이다. 그는 곧 큰 푸성귀(나무)가 되기 위해 밭에 뿌려진 겨자씨요, 빵이 되기 위해 반죽 속에서 열심히 일하는 누룩이다.
그러나 여기에 가장 중요한 사항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아무리 작은 겨자씨와 누룩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땅에 뿌려져야 하고,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겨자씨와 누룩이 저절로, 또는 자기 힘으로 땅과 반죽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이 일만큼은 사람이 하여야 하는 것이다.
겨자씨를 땅에 심고 누룩을 반죽 속에 넣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하느님 나라 건설의 협력자들이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고, 교회이며, 바로 우리들이요 나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겨자씨와 누룩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하느님께 기도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고, 자기중심적 이기주의를 박애주의로,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위타(僞他)적 봉사정신으로, 교만을 겸손으로, 표면적이고 향락적인 관능을 내면적이고 영원한 순결로, 시기와 질투와 분노를 사랑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겨자씨로 땅에 묻혀 푸성귀가 되고, 누룩으로 세상의 반죽에 들어가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발효시키는 것이다..........◆
[말씀자료 : 박상대 신부 / 편집 : 까따꿈바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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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2> : † 겨자씨와 누룩의 역할
『이탈리아의 한 시골에 열세 살 먹은 소년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슈바이처 박사의 의료 선교에 대한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나머지, 그의 사업을 돕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나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소년은 공군 사령관에게 아스피린 한 병을 보내면서, 부대의 비행기가 슈바이처 박사의 정글 병원을 지나게 되면 낙하산으로 그것을 보낼 수 있는지를 물었다. 사령관인 린제이 중장은 이 편지를 보고 크게 감동하여 이탈리아의 한 방송국으로 호소문을 보냈고, 그 소식을 들은 국민들은 무려 40만 달러 어치의 의료용품을 모아 그 소년과 함께 슈바이처 박사에게 보냈다. 슈바이처 박사는 그 소년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 어린이가 이렇게 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 소년의 아스피린 한 병은, 그 옛날 한 소년이 예수님께 내놓았던 오병이어(五餠二魚)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신다. 겨자씨는 씨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싹이 트고 자라면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은 양의 누룩은 자기보다 몇 배나 많은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여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게 한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누룩처럼 아주 미소하게 시작하지만 장차 세상을 변화시키게 될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각기 다른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비유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시는 내용은, 어떤 위대한 것도 처음에는 역시 작은 출발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도 우리들의 작은 행위와 마음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누룩의 역할에서 그것이 뚜렷이 드러난다.
어떤 공동체 속에서 어느 한 사람이 말썽을 일으킬 때 전체의 분위기를 망치게 되는 반면, 누가 봉사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아갈 때 그 공동체는 더욱 화목하고 강한 결속력을 갖게 되어 다른 공동체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이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내 안에 받아들여서 하느님의 모습으로 나를 변화시키고, 그러한 나를 통해 다른 사람, 또 우리가 속한 공동체,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복음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하느님 말씀에 대해 공부하고, 기도와 묵상을 통해 자신을 바꾸어 나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고통과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면서 반드시 그것을 이루어내야 하며, 그 때에 비로소 우리는 자기가 속한 그곳에서 겨자씨와 누룩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말씀자료 : 김성태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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