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거짓말들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들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삶이란 뜻이다. 유달리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보니 문득 이마에 빗방울이 닿았다. 그리고 곧바로 불에도, 콧잔등에도, 일 초 간결으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처마를 길게 뺀 상점들이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처마 밑으로 비를 피했다. 느닷없는 비를 만난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했다. 그때까 지 내가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내게 처마를 빌려 준 가게가 바로 꽃집이었다. 게다가 내 주머니에는 한 시간 전에 사장에게서 받은 약소한 월급이 들어 있었다. 장미꽃쯤이야, 라고 나는 생각했다. 오늘이 그 유명한 4월 1일, 만우절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한 일 은 아니었다. 월급을 받은 날, 장미꽃 한 다발쯤 산다고 해서 세상이 잘못될 일 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꽃을 샀다. 하필이면 그 유명한 4월 1일, 만우절, 오후 일곱 시 십오 분에. 그 다음에도 내 잘못은 없었다. 역촌동 집으로 가는 버스는 언제 올지 알 수 가 없었고, 빗줄기는 점점 기세를 더해 가는데 손님 없는 택시 한 대가 얄궂게 도 내 앞에서 멎더니, 택시 기사가 내려 가게에서 총총 담배 한 갑을 사고 다시 차에 올랐다. 볼일을 마친 택시가 바로 떠나 주었더라도 아무 일이 없었을 것을, 기사는 아주 느린 동작으로 담뱃갑의 오른쪽 은박지를 정사각형으로 찢어 내어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그러거도 라이터를 찾는 데 일 분, 불을 붙이고 창문을 여는데 일 분, 나는 기어이 그 택시의 뒷문을 열고 올라타 버렸다. 내주머니에 는 아직도 약소한 월급이 아주 많이 남아 있었다. "청담동" 그랬다. 나는 '역촌동'이라고 말하지 않고 '청담동'이라고 말했다. 아무도 이유 를 묻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그 까닭을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 었으므로 이렇게 자신에게 해명했다. 강북의 역촌동까지 택시로 가는 일은 낭비 였고 기본 요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청담동을 가는 것은 순리에 맞는 일이었다 고 우중에 빨간 장미 꽃다발을 들고 헤매는 것은 장미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고, 4월 1일 만우절 저녁에 내가 취한 행동은 이제까지 자세히 설명한 것처럼 모 든 일리 다 우연이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우연이 자꾸 나를 그렇게 몰아 갔다. 버스가 그랬고, 비가 그랬고, 장미꽃이 그랬으며, 마지막에는 택시 기사가 그 우연을 완성시켰다. 자로 잰 듯이 빈틈없는 우연. 거짓말이 아니다. 만우절이 긴 했지만. 아니, 만우절이니까 더욱 "아이구, 그런 거짓말이 어딨어요." 오십여 년 전 오늘, 나의 외할아버지가 산부인과 의사에게 던진 그 말씀은, 야 단스럽게 손사래까지 쳐 가면서 거의 외치듯이 던진 그 말씀은 아주 오랫동안 집안 사람들에게 우스갯소이로 전해졌다. 외할아버지는 그것으로도 모자라 거기 다 한 말씀 더 보탰다. "만우절이라고 의사들까지 거짓말하면 됩니까?" 딸 쌍둥이가 나왔다는 의사의 점잖은 전갈을 대뜸 거짓말로 몰아붙인 외할아 버지는 한꺼번에 둘씩이나 생긴 딸자식을 실물로 보고도 한참 동안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이었다. 외할아버지는 하필 그날이 만우절이라는 사실을 못내 석연찮 아했었다. 그럴 만도 했었다. 외하ㅎ머니는 결혼 후 오 년 동안이나 아이를 못 낳고 있 다가 겨우 임신을 했는데, 열 달 내내 아주 빈약한 배를 내밀고 다녀서 외할아 버지로 하여금 진정 임신인가, 하는 의심까지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뱃속에 딸자식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들어앉아 있었다니, 만우절날의 싱거 운 장난도 아니라ㅡ면 그러면 이것은 횡재인가, 횡액인가. 그리고 이십오 년 뒤의 4월 1일, 딸 쌍둥이를 한날 한시에 혼인시키는 결혼식 장에서 외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한꺼번에 주신 자식이니까 보낼때도 한꺼번에 보내야지요. 거짓말처럼 오늘 깨끗하게 치워 버리기로 했습니다." 이로써 외할아버지는 쌍둥이 딸들 일생의 가장 중요한 두 기념일를 4월 1일 하나의 나로 묶어 버리는 아주 특별한 일을 해치우신 분으로 후손에 영원히 기 억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의 4월 1일. 나는 엉뚱하게도 청담동 이모 집 대문 앞에 서 있다. 주홍빛 외등이 화사하게 대문 앞을 밝혀주고 있는 여기, 나는 잠시 망설인다. 평송에 나는 이런 식으로 아무 이유나 붙여서 이모 집을 스스럼 없이 드나드는 만만한 조카가 아니었다. 나를 좋아하는 이모가 몇 번씩 전화를 하면 마지못한 듯이 달려오기는 했지만 이처럼 엉뚱하게는 결코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 같은 날은 더욱 여기에 올 일이 아니었다. 오늘은 이모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생일과 결혼 기념일이 겹친 날, 이모에게 특별한 날이면 나의 어머니에게도 똑같이 특별한 날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두 사람의 겹친 운명 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집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 차피 여기에 와 있고, 더더욱이 장미꽃을 들고 어머니에게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우리 집에선 그랬다. 그런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 는 일이렀다. 장미꽃을 주고받는 식의, 삶의 화려한 포즈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 이 아니었다.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들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 도 허락하지 않는 삶이란 뜻이었다. 이모는 집에 있었다. 그러나 완벽한 외출 채비가 오 분 뒤 이모가 대문 밖으 로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세상에 너한테 오늘 같은 날 이 처럼 아름다운 꽃다발을 받다니 이 꽃 먼지 가 되어 스러질때까지 나 영원히 간직할 거야. 정말이다. 두고봐라." 이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엇이든 확실하게 표현해서 나처럼 모호한 잡념에 휘말려 있는 인간의 머리조차 불현듯 선명하게 헹구어 주는 이모 이모가 영원 혹은 간직이라는 단어를 스스럼 없이 사용하는 쪽이라면 엄마는 이익 혹은 계산 이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침없이 해대는 쪽이었다. 그렇지만 이익이 많아 계산할 것이 평생 넘치는 쪽은 단영 이모였다. 그런 이모가 꽃다발을 벽난 로 위에 얹어 둔 다음 급히 내 손을 끌었다. "자, 가자. 심심한 이모부랑 심심한 외식을 하기로 했는데 진진이가 왔으니 흥 미진진한 저녁 만찬이 되겠구나. 갈 거지? 그렇지?" 이모 말대로 이모부는 몹시 심심한 사람이었다. 이모도 그런 뜻으로 말했겠지 만 심심하다는 것은 사람이 싱겁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일에 예외가 없어서 언 제라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결혼 기념일이 오면 단 한번도 잊지 않고 외식과 선물을 준비하는 남편 견고하고 성실하게 가족과 집을 지키는 남편 이모 부는 그런 일들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아내에게 생색을낼 필요조차 못 느끼 는 남자였다. 그러므로 내가 결혼 기념일과 아내 생일이 겹친 이날의 특별한 외 식에 끼여든다고 해서 감정을 다칠 이모부도 아니었다. 나는 어쩐지 이모의 청 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이모가 원하는 대로 하기로 했다. 이모가 운전하는 차를 타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려서는 자주 이모 의 차에 담겨서 이모 집으로 옮겨지곤 했었다. 다급할 때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구조 요청은 이모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이모는 언제라도 불평하지 않고 달려와 나와 어린 동생을 자기 집으로 피신시켰다. 아버지의 술주정이 시 작되면 어머니는 전화부터 했고 우리는 곧장 대문간에 나와 서서 이모가 도착하 기를 기다리곤 했었는데 그때의 일들을 이모는 기억하고 있을까? "그러엄. 사실은 말야 내 운전 실력이 바로 너희들 때문에 부쩍부쩍 늘었단는 것 아니니 속도위반 신호위반하는 것도 다 그때 배웠단다. 너희 집 아니면 내가 무에 그리 급하게 달려갈 일이 있었겠니? 그때는 말야 삐오삐오 하는 구급등 있 잖아? 그걸 하나 살까도 생각했었는데 너희 이모부가 반대해서 못 샀지. 그걸 자동차 지붕 위에 얹어 놓고 달려 보면 되게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말야." 이모는 아직도 구급등을 얹어 놓고 달려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섭섭하다는 표 정이다. 어머니나 나에게는 수치스러운 기억이 이모에게는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는 것, 그러나 그것만이 다였을까 그걸 모를 이모가 아니었다. "진진이 너, 그런 일은 그냥 잊어버려. 아니면 나처럼 재미있었던 모험담 정도 로만 생각하거나 안 그래도 지루한 세상, 그땐 무지 아슬아슬했었는데, 하면서 말야." 이모는 지금 지루한가. 나는 문득 이모의 옆얼굴을 들여다본다. 엄마보다 적어 도 열 살은 젊어 보이는 이모, 그렇게나 똑같아서 부모도 다 자랄때까지 구별하 기 어려웠다는 두 사람은 이젠 따로 설명이 있지 않는 한 쌍둥이인 줄 알기가 어렵다. 그저 많이 닮은 어니거나 동생이라고들 생각한다. 물론 어머니 쪽이 언 니다. 가난한 세월은 이모보다 겨우 십분 먼저 나온 어머니를 이제는 이모보다 족히 십년은 먼저 태어난 언니로 만들어 놓았다. 외식을 하기로 한 장소는 이모네 수준에 맞게 호텔의 정통 프랑스 식당이었 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어서 어디로 갈까 많이 망설이다 정한 곳이라는 이 모의 부연 설명이었다. 우리 집에서의 외식은 물론 그것마저 일 년애 몇 차례에 불과한 일이지만 망설임 한 번 없이 단호하게 돼지 갈비집이었다. 고기 타는 연 기가 식당 바깥까지 자욱하고, 맛 좋기로 소문났다는 어머니의 자랑처럼 방마다 사람들이 가득 찬 그곳에서는 먹는 일도 노동이었다.쉴새없이 고기를 뒤적이고 연기를 피해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고 볼이 미어지게 싸 넣은 상추쌈으로 격렬한 입 운동이 불가피한 남동생과 나와 어머니는 전쟁터 속의 병사들처럼 묵묵히 그 러나 죽을 힘을 다해 돼지고기와 싸우다 거의 지쳐서 식당을 나오곤 했었다. 하지만 여기 이모네 외식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예약석으로 자리를 안내하는 웨이터의 몸에서는 달작지근한 향수 냄새가 풍겼고 어딘가에서 직접 연주하는 듯한 잔잔한 피아노음은 우아한 선남선녀들이 앉은 테이블 사이를 나지막하게 흘러다니고 있었다. 티끌하나 묻지 않은 식탁보랄지 꽃처럼 접혀진 냅킨 같은 세련된 테이블 세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약속시간에 정확히 도착한 이모부가 익숙하게 주문하고 마침맞게 하나씩 나오던 그림 같은 요리에 대해서도 더 이상 말하지 않을 참이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주눅들어 하던 나이 는 이미 지났다. 내 주머니 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약소한 월급으로도 얼마든지 이 식탁을 책임질 수 있으니까.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니까. 대신 이모부에 대해서는 아니 이모와 이모부가 빚어내는 풍경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있었다. 이모부는 약속시간에 맞춰 정확히 나타났다. 술은 와인 한두잔 정도 담배는 건강에 해로운 것이므로 당연히 피지 않고 아침마다 운동 한 시간 은 중년 남성에게는 필수이니까 어지간에서는 빠뜨리지 않고 실시 매사가 이토 록이나 반듯한 이모부는 역시 이모부답게 결혼 기념일과 생일 선물로 작은 보석 상자 하나를 마련해 왔다. "이런 색깔을 내는 흑진주는 세계적으로 귀하대요. 세트로 하려다가 내년을 위 해서 반지만 샀어요. 마음에 들면 좋겠네." 이모부의 다정다감한 말씀 "고마워요. 물론 마음에 들지요 당신이 고른 건데." 거의 연극 대사처럼 술술 흘러 나오는 이모의 답변. "애들 없이 맞는 결혼 기념일이 버써 몇 년째지?" 아내의 와인잔에 살짝 자기 잔을 부딪치며 묻는 이모부 유학보낸 주리와 주혁 이 이야기다. "거의 십 년이 되어 가지요, 그 대신 오늘은 우리 진진이가 참석했잖아요." 아까부터 이모부다 나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있는 이모가 대화 속에 나를 끌어 넣는다. "그렇군 회사는 잘 다니고 있지?" 간신히 나에게 관심을 돌리는 이모부. "네 덕분에 좋은 직장을 구했다고 엄마가 늘 고마워하세요." 자기 마누라하고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사람이 웬일이냐고, 이모부가 구해 준 내 취직 자리에 대해서 시큰둥해하던 어머니를 왜곡시키고 있는 나. "이 와인 당신을 위해서 아까 예약할 때 특별히 주문해 둔거야. 한 잔 더 하지 그래." 다시 관심을 이모에게로 돌려 버리는 이모부. "진진이가 장미꽃을 들고 왔어요. 얘가 그래도 속이 깊어요.. 자식들 멀리 떨구 어 놓고 지 이모 외롭겠다 생각한 거지요." 화제가 내게서 벗어난 것을 만회해 보려는 이모의 안간힘. "고맙군." 의례적인 인사를 가장 의례적으로 할 줄 아는 이모부의 저 전통적인 매 너. 그때 나는 이모가 와인잔 속에 입술을 숨기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는 것을 발 견했다. 아직도 요리는 전,반부 이모의 말대로 나는 정말 심심해진다. 이모도 심 심하다는 얼굴이다. 심심하지 않은 사람은 심심한 이모뿐이다. 이모부는 꽤 유명한 건축사 사무소를 열고 있는 건축가다. 주로 업무용 빌딩 을 설계하고 있는데 경제적이고 실리적인 공간을 추구하고 형상화 시키는데 탁 월한 솜씨를 발휘해서 설계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일감이 밀린다 해도 이모부가 가족을 등한시하면서까지 일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모 말에 의 하면 이모부는 고객과 상담하고 설계의 윤곽만 잡아주면 나머지는 열 명이나 되 는 직원들이 다 알아서 한다고 했다. 말끔한 양복차림으로 출근해서 오후가 되 면 정확한 시간에 퇴근하는 하얀 얼굴의 이모부를 생각하면 명함에 찍힌 '건축 가'라는 호칭은 아무래도 낯설었다. 이모부한테서 나는 한 번도 번지와 고함과 철근과 콘크리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이모부는 틀림없는 건축가다. 다소 심심한. 나는 지루하게 계속되는 식사 도중 틈틈이 주변의 테이블들을 돌아보았다. 그 많은 테이블마다 어쩌면 그리도 한결같이 평화만이 존재 하는지 의견이 엇갈려 쥐고 있던 술잔을 하다못해 무릎 위의 냅킨이라도 집어던지며 목소리를 높이는 손님은 한 사람도 없다. 나지막한 피아노음 나지막한 대화 나지막한 음성으로 손님을 응대하는 웨이터들 나느 잠시 잘 관리되고 있는 대형 수족관 속에 들어 앉아 있는 기분에 씹고 있는 고기맛을 잃을 정도였다. 돼지갈비집의 그 어수선한 분위기 반드시 한 패의 손님 정도는 술병을 내던지 고 접시를 뒤집어쓰는 싸움판을 연출하던 거기, 고기를 더 시키려면 있는대로 고함을 질러야 함이 너무도 당연하던 거기에서는 비록 전쟁터 같긴 했어도 지루 하지는 않았다. 하긴 포탄이 터지고 총알이 쉭쉭 나는 전쟁터에서는 누구라도 결코 지루할 수 없는 법이다. "여기 아이스크림은 정말 맛있어. 당신도 그렇다고 생각하지요?" 이모부는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정말 맛있게 먹는다. 동네 구멍가게의 아이스크림에 익숙해 있는 내 입맛에는 썩 내키지는 않는 맛이었지만 이모부가 동의를 구한 쪽은 이모였기에 나는 가만히 앉는다. "그래요. 아주 맛있어요." 이모는 언제라도 이모부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대답을 해준다. 그것 도 이모부가 원하는 정답만을. "아이스크림 하나 더 부탁할까요?" 이모의 제안에 이모부 역시도 얼른 정답을 말한다. "됐어요. 하나 이상은 건강에 좋지 않아." 이모부의 대답에 이모의 표정이 잠깐 흔들린다. 이모는 이런식의 정답을 좋아 하지 않는다. 나느 그 것을 알고 있다. 아이스크림이 담긴 접시에 스푼을 내려 놓으며 이모는 또 한숨을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문득 초등하교 5학년 때의 일이 생각났다. 문제아로 취급받기 시작한 것은 중 학생이 되고부터였지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그럭저럭 모범 생 흉내는 낼 정도였 다. 5학년이던 그 해 5월의 스승의 날을 앞두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선생님께서 스승의 날 행사 중의 하나인 학부모 일일교사 수업을 나의 어머니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가정환경 조사서에서 어머니의 직업을 사업이라고 쓴 것이 화근이었 다. 사업이라니, 당시 어머니는 시장 바닥에서 싸구려 양말을 팔고 있었다. 일일교사를 맡을 학부모는 한 학급에 두 명씩이었다. 내 어머니말고 또 한 사 람의 일일교사를 맡을 친구의 아버지는 일류대학의 유명한 교수였다. 이건 아무 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교무실에 쫓아가 몇 가지 궁색한 이유를 대 보았지만 선생님은 마땅한 학부모가 없다고 자신이 직접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보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선생님이 전화를? 어린나는 화들짝 놀라 며 급히 외쳤다. "아녜요. 걱정 마세요. 꼭 오시라고 할게요! 꼭요!" 그 해 5월의 스승의 날 5학년 3반 학부모 특별수업을 맡은 일일교사 중의 한 사람은 나, 안진진의 어머니였다. 날렵한 비둘기색 투피스 세련된 화장과 머리 스타일 환한 웃움을 머금고 교실에 나타난 어머니를 보고 아이들은 일제히 소리 질렀다. "와" 그 고함은 어여쁜 처녀 교생 선 생님이나 나타나야 발생하는 일종의 탄성이었 다. 그만큼 나 안진진의 어머니는 히트였다. 아직도 그 애들은 모르는 일이지만 고백하자면 그 해 5월 히트한 엄마는 어머 니가 아니고 이모였다. 어린 나는 머리를 쥐어짜다 쌍둥이 이모를 떠올렸고 이 모는 하룻동안 안진진의 어마 노릇을 하는 일에 대해 무지무지하게 재밋어했다. 그날, 이모가 학교에서 안진진의 어머니로 일일교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어머 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장에서 양말을 팔고 있었다. 전날 저녁 스승의 날 선 물이라면서 나와 동생의 담임 선생님 몫으로 양말 두 켤래씩을 포장해서 내놓은 것이 학부모로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백하자 면 나는 그 양말조차 선생님에게 가져다 주지 않았었다. 그 대신 이모가 멋진 크리스털 화병을 선생님에게 드렸다. 그때 이모가 했던 말을 나는 기억하고 있 다. "보라색 라일락을 한 무더기 꽂으면 예쁠 것 같아서 사 봤어요. 받아 주세요." 어쩌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어머니라면 비싼 크리스털 화병을 사지도 않 겠지만 샀다 하 더라도 저런 말을 할 줄은 모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해 5월 이모는 멋들 어지게 안진진의 체면을 세워주고 돌아갔다. 다음날부터 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을 것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었다. 이모가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 후 우리는 그 일에 관해서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어 본적이 없었다. 나는 이모가 그 해의 일을 하 루 속히 잊어버릴 수 잇도록 그 뒤 가급적 이모와의 만남을 피하곤 했었다. 그 것에 대해 어머니가 알게 될까 봐 나는 두려웠다. 어머니가 받을 상처를 염려했 다기보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변명할 수 있는 말을 찾아내지 못해서였다. 잘못했 다고 내가 정말 나빴다고 흑흑 흐느껴 울면서 엄마가 내 어마인 것이 부끄러웠 다고 비수 같은 진실을 토로하는 어리석음은 결코 범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 해 5월으 일을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이모부는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 크림을 장난처럼 먹고 있었다. 누가 그랬다. 결혼은 디저트보다 수프 쪽이 더 맛 씽ㅆ는 정찬이라고 나는 이십칠 년 전의 결혼을 기면하는 부부 옆에서 실없이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나는 입구의 계산대 옆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선남선녀들만 모였다고 생각했는데 헐렁한 스웨터 차림에 흐트러진 긴 머리에 모양이야 세련 되었어도 구김살만은 숨길 수 없는 면바지를 입은 남자도 이런 곳에서 밥을 먹 었어까지 머릿속 사념이 흘러가다 나는 그만 앗 소리를 내뱉을 만큼 깜작 놀라 고 말았다.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무심코 이쪽으로 돌린 그 얼굴 세상에 틀림없는 김장우 였다. 그리고 나와 동시에 그도 내가 바로 안진진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모양이 었다. 눈을 한 번 크게 뜨더니 활짝 웃으며 언제나의 버릇처럼 오른손을 번쩍 치켜드는 김장우 내가 갈까 아니면 네가 잠시 올래 하는 신호로 치켜든 오른손 을 가슴팍에 대었다 떼는 김장우 시간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성큼성큼 그가 이 자리로 올 수도 있었다. "잠깐만요." 나는 냅킨이 바닥에 떨어진 줄도 모르고 급히 그에게로 갔다. "웬일이에요?" "웬일이야?" 우리는 거의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물었다. 왜 그랬을까 왜 화려한 호텔의 프랑스 식당에서 만난 것을 두고 그리도 절박하게 "웬일이에요?" 라고 물어야 했을까. "그러게 말야. 긴급 투입된 임시 가이드라고나 할까 장호 형 호출받고 나 이제 막 왔어 자기 대신 용산 어디에 저 손님 좀 데려다 주라고 엊그제 파리에서 이 십 년 만에 귀국했대." 김장우는 저만큼 앞에서 기다리고 서 있는 중년의 신사를 눈짓으로 가리켜 보 였다. 회색 바바리 코트가 이방인다웠다. 조그만 여행사를 꾸려 가고 있는 형을 위해 김장우는 이런 식으로 가끔씩 급한 일손을 거들어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나를 설명해야 할 차례였다. 그가 물었다. "저기 저분 어머니 맞지? 나는 안진진 엄마예요 하고 아주 써 있는걸 뭐." 아니 이모예요라고 말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맹세코 내 입술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소리가 되어 나온 내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도 전혀 거침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어머니하고 이모부 이모부에게 식사 대접할 일이 있어서요 참 얼른 가 봐요. 손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 인사는 나중에 정식으로 하기로 하고 전화할게 안녕." 그는 멀리 있는 이모를 의미 심장한 눈길로 한 번 더 바라보다 회색 바바리에 게로 떠났다. 영문을 모르는 이모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우리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모가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던 스웨터 차림의 남자는 그는 내가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두 명의 남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와 똑같은 거짓말을 어쩌면 결혼할지도 모를 남자에게 느닷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던 져 버리고 말았다. 그 유명한 4월 1일 만우벌 밤 아홉 시 이십분에 이 거짓말...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