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선사鏡虛禪師 1849-1912
홀연히 콧구멍 없단 말을 듣고
비로서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다
선사의 법명은 성우惺牛 법호는 경허鏡虛 속성은 송씨宋氏 초명은 동욱東旭이다
헌종16년(1849) 전라북도 전주시 자동리에서 부친 두옥斗玉과 모친 밀양박씨朴氏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사는 세상에 나온지 3일 만에야 비로소
울음을 터뜨렸다고한다 9세때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모친을 따라 경기도 광주에
있는 청계사淸溪寺로 들어가 계허선사桂虛禪師에게 나아가 삭발염의하였다
청계사 에서 시작된 선사의행자 생활은 가혹하기 그지 없었다
비로서 14 세 때 절에 있던 박처사라는 분에게서처음으로 글을 배우게 되었으며
마침내 재동으로 칭송이 자자하게 되었다
선사의 스승이신 계허선사가 환속하면서 선사를 동학사에 계신 만화강백萬化講伯
에게 천거하였다 선사는 만화강백 문화에서 일대시교一大詩敎와 유전儒典,노장까지
두루 섭렵하여 약관의 나이로 천하에 그 이름을 떨쳤다.
23 세 때 동학사 강원의 강사로 추대되어 제방 학인을 지도하매,학인들이 1천 명까지 이르렀다 선사를 능가하는 강백은 당대에는 없었다
31세 때 여름, 선사는 스승도 뵙고 싶고 또한 어떤 일로 상경하던도중 천안 인근에서 모진 폭풍우를 만나 민가에 머물러 비를 피하려고 급히 어느집 처마 밑으로
뛰어들어갔으나 그 집 주인이 내 쫓았다 수십집의 민가를 찿아 갔지만
모두 내 쫓으며 말 하기를, 지금 이곳은 악성 호열자(콜레라)가 만연되어
앉아서도 죽고 서 있어도 죽으니 빨리 이곳을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니 시신이 널려 있었다
이런 참혹한 현장에서 선사는 생사의 절박함을 깨달았다 호열자가 창궐하는
마을에서 비로서 크게 대발심大發心을 한 선사는 발길을 돌려 동학사로 되돌아와
학인들을 해산시키고 강원을 철폐하고서 선당禪堂 삼조연하에 홀로앉아
당나라때 영운 지근靈雲志勤선사의 참할參轄인 여사미거 마사도래驪事未去馬事到萊
(나귀의 일이 다 끝나지도 않아서 말의 일이 닥쳐왔구나)라는 화두를 움켜잡고
곡기와 방문 출입을 끊은채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3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당시 동은東慇이라는 선사의 시자승이 있었는데
이 시자승의 부친 이처사는 여러해 동안 수참하여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었다, 하루는 시자승의 은사인 학명 도일學明道一이 마을에 내려갔다가
이처사를 만나 잠시 다담茶談을 나눴는데 이처사의말이 `중이 중노릇 잘 못하면
죽어서 마침내 소가 됩니다` 라고 하였다. 학명 도일이 이 말을 듣고
`중 이되어 마음을 밝게하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죽어서 반드시
소 가되어 그 시주의은혜를 갚게 됩니다` 라고 대답하자 이처사가 꾸짖으며 말했다
"어찌 사문의 대답이 그렇게 꽉 막혀 도리에 맞지 않을수가 있읍니까?"
그러자 학명 도일이 물었다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 그러하니, 그럼 어덯게 대답하여야 옳습니까?"
이 처사가 대답했다
"어찌 소가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습니까?"
이에 학명 도일은 묵묵히 더이상 대답을 못하고 동학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선사를 찿아가 예를 갖추고 앉아서 이 처사의 말을 전하였다
이때`소가 콧구멍이 없다`라는 말에 이르러 선사는 활연대오 하였다
고종17년(1879)겨울인 11월15일.선사의 나이 31 세 때였다
無鼻孔心무비공심
忽聞人語無鼻孔홀문인어무비공
頓覺三千是我家돈각삼천시아가
六月燕巖山下路유월연암산하로
野人無事太平歌야인무사태평가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서
나,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노라
事夢覺사몽각
可惜百年事가석백년사
爾我同一丘이아동일구
誰是熟非夢中之事수시숙비몽중지사
北邙山下誰爾誰我북망산하수이수아
山自靑水自綠산자청수자록
淸風拂百雲歸청풍불백운귀
盡日遊盤石上진일유반석상
我捨世更何希아사세갱하희
가석하도다 인생 백년의 일이여
너와 내가 한 무덤이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모두 꿈 속의 일이로다
북망산 아래 누가 너이고 누가 나인가
산도 절도 푸르고 물도 절로 푸른데
맑은 바람 불어오고 흰구름 돌아가네
하루 종일 반석 위에서 노닐다
내가 세상을 버렸거니 다시 무엇을 바라리요
선사의 오송이 말해주듯 선사의 생애는 결코 화려하지도 요란 하지도 아니했다
쓸쓸하고 초라하기만 한 생애였다 선사께서는 마을에 살았으되
집 을 가진바 없었으며 절에서도 그 흔한 주지살이 한번 해본적이 없는
그야말로 철저하게 집도 절도 없는 무소유 그대로였다
그러다가 세수64세 법랍55세에 갑산 웅이방 도화촌에서
홀연히 연하하셨다
-무산스님(선사들의 오도송)중에서
첫댓글 만공스님과의 일화도 멋지지요. 아낙네 다루는.. ㅎ ㅎ
설은 잘 쇠셨나요?
법사님,항상 건강하시구요
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