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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회사일로 1년 동안 82차례 개성공단을 드나들었고, 올해 5월(2009년) 북측의 일방적인 통행불가 조치로 인한 애로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현재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1년 전과 올해 5월까지 개성공단에서 있었던 일을 적어 본 것입니다.
작년 5월 두근거림 반, 설렘 반을 안고 간단한 출입심사와 15분 정도의 주의사항, 교육을 숙지한 후 북녘 땅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개성공단의 출입절차부터 설명 드려야 갰네요.
우리나라의 여권과 비슷한 개념인 통일부발행 체류증과 북측발행 체류허가증, 남측기업의 적재물 내역서 등이 있습니다. 남측 체류증은 바코드 전자칩 등이 인식되어있어 기계에 대면 전산에 등록되는 동시에 카메라는 번호판을 찍어 조회합니다.
대기서열에 진입하면 군인들과 나이 드신 할아버지뻘(아파트 경비분들 연령) 요원들이 안내를 해줍니다. 후에 들어보니 인근주민과 제대군인들로 선발했다네요. 차량용 방사능 X-Ray 검색기를 지나 대열에 합류합니다.
선두의 군용 레토나 뒤로 줄줄이 일렬로 수십 대의 차량들이 일사분란하게 따라가면 남측장병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늠름히 서있는 철조망을 지나 남측 출입한계선까지 안내합니다.
저 멀리 북에서 온 러시아제 지프가 보이면 우리 측 레토나는 유턴, 다시 선두는 북 군용차량으로 바뀌고 대열을 따라 2킬로쯤 가면 북측 출입사무소와 군인들이 보입니다.
차량 정렬 후 북한 군인들의 감시 속에 세관원들이 한대에 두 명씩 무리지어 검색을 시작합니다. 적재물이 무엇인지와 차량 내 서랍을 모두 열어보고 주머니 검사와 숨길만한 곳 등을 세세히 관찰한 후 쪽지쪼가리 한 장, 그들의 통행증에 도장 한 방, 약간의 농담 후 전 차량과 대기합니다. 이때 춥거나 덥다고 시동 걸면 바로 “선생 시동 끄시오”라며 제재를 합니다.
북에 오기 전 사전교육에 휴대폰, 음악CD, 신문, 잡지, 지도카메라, 노트북, 내비게이션, 아무튼 작업과 관련 없는 모든 것은 소지할 수 없다고 하기에 주머니나 차량엔 아무것도 없지요.
일찍 검색 받고 통과한 저는 주변 풍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검색에 소요된 시간은 20~30분정도이니 맨 앞줄에 받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지요.
먼저 보이는 군인들의 모습부터 말씀드립니다. 키는 160~163cm 정도에 나이는 18~20살, AK-47 소총에 군화라기보다는 약간 구두에 가까운, 뒷굽이 많이 닳아있는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절대 피하지 않습니다. 어린놈이 눈알에 잔뜩 힘주고 기죽이네요. 얼굴은 꼬질 해서 한눈에 ‘아 열악하구나’ 이런 느낌이 옵니다. 밖에는 김정일, 김일성선전문구가 빨간색으로 간판처럼 크게 걸려 있고요, 기차역 같습니다.
당연 남측에서 지어 준 것이 확실해 보이고, 그 뒤론 황량한 논밭과 산들이 보입니다. 근데 멀리 보이는 산이 민둥산이네요. 문뜩 제 軍시절에 시야확보차원에서 일부러 자른 벌초작업이 생각납니다. 멀리까지 아무것도 안보이고 민가들은 온통 회색입니다.
남측 가까이는 북측 아파트 같은 것이 보이는데 이런 젠장, 이거구나, 중학교 시절에 통일전망대로 견학 갔을 적에 선전용으로 보이는 쪽에는 이렇게 지어 놓는다는 걸...
실제 북측 민가는 보기에도 민망한 회색의 낡은 집, 우리나라의 60년대와 같은(전80년생이며, TV에서 보던...장면) 극명한 대조가 되더군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북에서 오신 분들은 아실 테지만 남측에서 이런 집은 40~50대분들만 어렴풋이 기억나실 정도이며 남측에서 이런 집은 보기 힘듭니다.
그들의 태도는 너무나 권위적이고 적대하는 느낌이 확연합니다.
첫날 느낌은 야 ~ 진짜 열악하구나... 제가 온 길은 시원하게 뚫린 자유 로를 지나 인천에서 도라산 출입사무소까지 1시간이 채 안 걸렸는데 뭐가 잘났다고 3킬로도 안 되는 거리를 이놈들은 1시간씩이나 기다리게 만드는가?
또 자유롭게 노닥이는 남측출입사무소에는 곳곳의 대형 TV와 따뜻한 커피자판기, 친절한 동생 같은 군인들, 서비스정신과 근엄과 권위라고는 없는 친절한 세관원들 등이 자유분방함속에서 살아온 나와 한 시간 동안의 북측 출입사무소에서의 지금이 대조를 이룹니다.
나중에 안 사실입니다. 조잡하게 만든 북측출입증을 수수료 명목으로 100달러를 받지 않나 신문 한 장에 벌금 10달러, 1부에 30쪽이 넘으니 인심 베푸는 척하며 ‘300불만 내라우’하고 호의를 베푸는 세관원들, 그들의 주머니엔 회수한 담배, mP3, 메모리카드, 등이 넘쳐나 쓰고 있는 모자 안에 까지 넣더군요.
내가 개성공단에 첫발을 디디면서 느낀 것은, 김정일이 지도자로서의 구실을 못한 제일 큰일이 바로 민족의 구분을 확연하게 지어놓은 것이었다.
내가 본 개성공단 주민들의 신장은 여자들이 대체로 145~155cm, 남자들은 160~170cm 사이다.
손가락, 발가락 등에 그들이 살아온 고단함이 묻어나며, 남자들 팔뚝에 매직으로 써놓은 듯한 '결사옹위', '장군님을 옹호하자' 등 발로 쓴 듯한 못난 문신들을 보았을 때 과연 이들 생각에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남한에서 공동번영을 이루며 섞여 살아갈 수 있을까? 혹여 마음에 상처와 차별에 직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개성공단 식당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의 얼굴은 유난이 보기 좋다. 피부도 좀 더 좋고 통통하기까지 하고, 다른 근로자들은 우리에게 좀 퉁명한 편인데 호의적이고 잘 웃는다.
공단식당은 비교적 저렴한 4불의 가격에 자유배식이다. 매 반찬마다 고기류가 있고, 매 주 반계탕, 곰국, 육개장, 후라이드치킨, 삼겹살 등등의 메뉴를 번갈아 내놓는다. 어떤 곳은 매주 수요일 샐러드 바도 운영한다. 갖가지 과일 등을 마음껏 먹기도 하고 여름엔 팥빙수도 주니까 호응이 좋다,
당연 이곳은 철저히 북한근로자들이 출입을 못한다. 여기서 일하는 15명 정도, 식당이 5~6군데니까 공단 내 근로자 중 100여명만이 출입이 가능하다.
우연히 이들과 밥을 먹은 적이 있다. 배식이 1시에 끝나고 1시30분부터 이들의 식사가 시작되는데 남측인원 4명, 북측근로자 15명은 겸상을 안 한다. 일은 같이해도 밥은 따로 먹는다. 같이 먹자고 해도 정중이 거절한다. 행여 이들에게 누가 될까 더 권하지 못했다.
식판 가득 더 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밥과 반찬을 퍼 담는다. 요즘 우리 중에 그렇게 밥 먹으면 먹성 좋네, 복스럽네라는 말은 절대 못 듣는다. 욕을 먹지...
남측 인원들은 소박하게 담아 그 정도도 못돼 ‘이거밖에 안 드시냐’ 고 하면 ‘요즘 배가 자꾸 나와서요’ 라며 작게 웃는다.
여자들이 그렇게 밥 먹는걸 처음 보았다. 식판 가득 넘칠 정도로... 배부르고 따듯하니 웃으며 대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난다.
우연한 기회에 북측근로자 식당에 가보았고 그들의 식사도 볼 수 있었다. 밥과 반찬은 따로 준비해오고 국만 식당에서 끓여준다. ‘여기와 같이 들어요’ 라며 말하지만 뭘 먹으라는 건지, 난 밥도 없는데 나눠준다는 건가? 예의상 말하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식사 후 남측이며 북측이며 모든 근로자들은 자유시간이다. 밥을 빨리 먹으면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빈다. 우린 숙소로 향해 문을 닫고 스카이라이프 TV를 보거나 낮잠을 자기도 하지만 북측 사람들은 무조건 배구와 탁구, 최근에는 농구도 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여름 땡볕에 서 있기도 힘든데 그들이 배구하고 탁구 치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같은 인간인데 저건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무더위 속에 함께 차를 타고 움직이는 북한근로자 두 명과 있었던 일탈이 생각난다.
너무 더워 지치고, 에어컨도 시원하지 않은 느낌과 동행한 분들의 땀 냄새 등에 갑갑하고 미치려는 순간 저 멀리 편의점이 보였다.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어 먹겠냐고 물어보지도 않고(물어봐야 거절할게 뻔하다) 차에서 내려 월드콘 세 개를 봉지에 담아 차에 탔다. 오픈된 공간에 있으면 그들에게 누가될까 차를 외진 곳으로 이동하고 에어컨 풀가동까지 시킨 다음 하나씩 나눠 줬다.
‘제가 미칠 것 같아 사왔어요. 시원하게 먹고 합시다’ 그들에게 월드콘 까는 법을 가르쳐준 후 한입 먹고 있는데 두 분은 궁시렁궁시렁거리며 ‘뭘 이런걸 사오느냐’ 고 서로 간에 눈치 보며 마지못해 받는다.
먹는 모습은 한 입 크게 물고 아이스크림을 다리 사이로 내려 감추고 창문을 두리번두리번, 또 한 번 베어 먹고 두리번두리번, 난 반도 안 먹고 있는데 벌써 다 먹고 깨끗이 치워 버린다.
난 반도 안 먹었는데... 결국엔 창문 밖으로 버렸다.
‘아니 왜버려?’ ‘운전하잖아요?’ ‘교통선생들이 벌금300불 물리면 내주실겁니까?’
사실 이가 시려 아이스크림은 천천히 먹는다.
‘이걸 남에서는 뭐라 그러나?’ ‘아이스크림이요!’ ‘얼마야?’ ‘1.5달러요’ ‘이게??’ ‘예!!’ ‘비싼 거 아니에요’ ‘더 비싼 것도 많아요’ ‘근데 이런 거 북에서도 먹어요?’하고 물으니 ‘당연이 먹지’ 비슷한 게 있단다.
그렇지만 이분들의 말은 10%도 안 믿는다. 내 생각에는 이런 콘은 처음 먹을 거다.
참고로 나와 같이 1년 동안 일했던 이분들은 중간에 교체 없이 함께 있었다. 다른 근로자들은 특히 여자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웃으면서 농담하면 그 중 몇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학교 갔단다. 나이 스물여섯에 무슨 여자가 학교 가느냐고 물으면 ‘우린 보내준다’고 한다. 할 말 없게. 또 다른 여성이 안보이면 또 학교 갔단다. 나를 웃으며 인사해주던 여성 세 명은 끝내 보이지도 뒷말을 들을 수도 없었다.
어느 화창한 6월, 살짝 덥기도 하고 바람도 살랑거리고 밖에서 일하는 우리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입니다. 처음 얼마간은 시야확보 차원에서 나무들을 베어버린 줄 알았던 벌거벗은 산들도 풀들이 무성해지고 (북한이 홍수에 왜 취약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 적응도 될 즈음입니다.
금요일!! 그들이 말하는 문화의 날이랍니다.
퇴근길에 봉동관 옆 근로자들의 출입소 쪽을 우연히 지나가다 본 광경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퇴근하는 모습인데...
여자들은 휜 저고리에 검정치마, 휜 양말과 검은 구두, 남자들은 곤색 나일론 옷에 검정구두, 옆에는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시내서나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들을 들고 약간 짙은 선글라스 같이 생긴 안경을 끼고 있는 모습인데 1천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인원들이 같은 옷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야, 역시 사회주의가 무섭구나. 사람의 개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구나’
그 모습을 함께 본 북한근로자는 멋있다고 합니다.
‘역시 조선여성들의 옷맵시는 최고야’ 하며...
그분이랑 저랑 차이가 많은 나이도 아닌 30대 후반인데 저걸 멋있다고 생각하다니 말이 안 나옵니다.
같이 다니시는 분들은 언제나 둘이 짝을 지어 다니는데 제 기억엔 한 번도 그들과 1:1로 말해본적이 없습니다. 한 명이 뭘 가지러 간다고 나가면 몇 분 안 되어 어디서 누군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처음엔 이들에게 내가 사는 남한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 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분들이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계몽해 민주주의의 우월함을 알려주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그건 뭘 모르고 하는 말이다.
북한에 일하러 가는 나는, 회사에 속해있는 사람이다. 나도 북한 근로자와 같은 봉급을 받는 근로자다. 내 잘못 하나가 수십억, 수백억을 투자한 회사에 누가 될 수 있고 남에 남겨진 내 가족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으며 나와 같이 일하는 내 동료들이 남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책임감에 묻고 싶고 하고 싶은 말도 못한다.
그나마도 말이 통하면 다행이다.
하루는 겨울철 난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남한에서는 무엇으로 난방을 하느냐’는 그들의 물음에 한참을 설명했다.
‘가스요’ ‘방 안에서 가스를 어떻게 태우나?’ ‘아니요. 방 안이 아니라 보일러에서 가스를 태우고 물을 데워 방 여기저기 바닥을 통해 보내주면 따듯해져요’ ‘보일러가 뭐야?’
여기서 말문이 막힌다. 보일러를 뭐라고 설명하지?? 순간 말이 끊어지면 ‘아, 아, 알았어요. 거기까지 합시다’
나는 순간 남에서 보낸 선전원이 된 듯하다. 보일러를 아직도 설명 못해준 내가 지금도 아쉽다. 이들은 우리가 어떤 문명의 혜택을 받는지 모른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우리가 당연스럽게 쓰고 있는 신용카드, 교통카드, 인터넷 등등을 누구에게 설명해본 적이 있는가? 당연이 없을 것이다.
왜냐, 너무도 자연스레 어려서부터 당연하게 써왔던 것들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하지 못한다.
하루는 내게 북한사람이 묻는다.
‘남쪽에서 백화점이 무너져서 사람들이 많이 상하고 많이 죽었다지?’ ‘네? 백화점이 무너졌다고요? 언제요?’
순간!! 내 뇌리를 스치는 삼풍백화점!!!!
그게 언제적 일인가? 십년도 더 지난 일이 이들의 사상교육에는 마치도 지난주에 있었던 일처럼 교육이 된다. 이들과 30분?, 아니 1시간을 친하게 이야기한다고 과연 진심이 전해질까?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내가 만나본 손이 곱고 살이진 사람들은 우리가 월등히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본 고운손에 살찐 분들은 얼핏 섞여 있으면 남한사람 같습니다. 북한 사람, 남한 사람 동족을 구분한다
는게 썩 내키지는 않지만, 글의 이해를 돕고자 쓰니,양해바랍니다. 평양에서 왔다는 25살의 중국유학파 출신
은 합작기업의 북측 사무직이였고, 다른 한분은 40대 중반의 기술공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분들은 놀랍게도 초면에 제게 차 많이 밀리지요? 남쪽은? 이라고 묻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에서 도라산까지 50분 걸립니다.
도라산 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까지 5분걸리니까,통일이 되면 개성정도는 출퇴근 거리입니다. 당연 서울에
서는 더 가깝지요. "생각보다 가까워서인지 말한 저도듣는 그분들도 놀랍니다." 진짜 가깝고도 멀구나.....
좀더 친해지니 담배(평양)을 권합니다. 북한은 계급별로 담배도 배급을 다르게 주는지, 일반 근로자들은 크라벤,첨성대,호랑이 등인데 애연가인 저도 한대 피면 속이 울렁거길 정도 라서 사실 줘도 싫었습니다. 담배 겉면에 니코틴, 타르 표기등은 없고 필터도 솜이 튀어나온게 그냥 피면 입안으로 흡입되니까 불로 지지고 핍니다.
근데 이분들이 권한 평양은 박스포장에 담배개비마다 필터에 빨간 심이 들어가 있습니다. 맛도 좋구여..
그러면서 은근이 평양 자랑을 합니다. "김선생 평양가봤어요?" 이곳이랑은 비교도 안되지.. 개성이랑은 비교도안된다고 은근이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또 자신들과 공단에서 일하는 일반 근로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자신들의 우월함을 강조합니다.
이분들은 좀 물정을 압니다. 다른 개성근로자들은 사상교육탓인지 남한 사람들을 경계하는데
이분들은 짙은 농담도 곧잘 합니다. 평일에는 개성에 나와있고, 주말에는 평양 집으로 가고 월요일 새벽에 나옵답니다.
물론 정치적인 대화나 민감한 사안에 대해 말못하고,이분들도 사이좋게? 짝지어 다니시지만, 눈치는 덜보는
듯합니다. 중국 휴학파 이친구는 남쪽 사정에 훤하다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단 둘이 대화해봤음 했는데 아시다시피 짝지어 다니는 지라.......
다른 나라에 있으면 애국자가 된다라고,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북에 있으면서 가장 기분 나빳던 것은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름을 함부로 막부른다는 것이였습니다.
이명박 패당, 이명박 역적, 미제 앞잡이 등등..
또 미국놈들, 일본놈들 까지.. 반면 전 윗분, 위원장님 등의 존칭을 써줍니다.
그 상황에서 어느 누가 김정일 개정일 독재자 하겠습니까? 미국산 소고기 이야기 때였습니다. 북한정권은 자신들의 치부와 잘못은 전달을 안하고 남 정권의 이슈와 지들에게 불리한 국정 운영등만을 이야기 합니다. 그것도 tv나 신문등이 아니고 매일 새벽7쯤 직장별로 돌아다니며, 전문 선전원이 고압적으로 모아놓고 진행한답니다.
이곳에서 성수대교 붕괴나, 삼풍백화점 등등의 예전일부터 광화문 화재등의 요즘 일까지 지난주에 일어난것 처럼 선전교육을 하는겁니다.
소고기에 대한 제 소신을 이야기 해보랍니다. " 전 한달에 소고기 한번 먹을까 말까인데요, 먹어보니 싸고 맛있던데요. 일반 돼지고기 값이랑별반 차이도 없고 맛도 더 있어서 전 먹을겁니다"
했더니 김선생 사상이 썩었구만, 아무리 그래도 미국놈들 고기를 먹어? 김선생이 잘못생각하는거야?? 이렇게
제게 말하는데,
전 "이선생님 미국인구가 몇명인지 아세요? 3억6천명입니다. 일본은 1억4천이구여. 남한이 오천만, 북한이 2700만 이에요. 그 많은 사람들을 나쁜놈들이라고 일방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럼 그많은 인원이 선생님께 해끼친게 뭐있습니까? 우리랑 인종은 달라도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일텐데 왜?? 어떤 이유에서미국놈 일본놈들은 다 죽여야 된다라고 하십니다까?
실제로 보신적도 없고 해코지 입으신것도 아닌데....
라고 말하니 할말을 잃지요.. 틀린말은 아니니까요..
이분들은 위에서 말하고 교육받는데로 전하는 앵무새들입니다. 나이가 그렇게 먹었어도 쪽지에 뭘 적어다니며 매일 외웁니다. 뭔지 뭘라도 나중엔 뻔하구나! 사상 관련이겠지..란 생각에 궁금하지도 않구여. 개인의 감성까지도 적색화 흑백화 시키는 통치방식이 또 한번 욱하게 만드
네요..
개성 공단을 출입했던 남한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했던 일이 있습니다.
바로 북측 세관원들의 횡포입니다. 그들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남한
사람들 에게 부당한 요구를 합니다.
“오! 오랜만이야? 김선생 오늘 일 잘 했나?”
(줄서기 나름이라 랜덤으로 세관들과 만남)
예. 안녕하세요...
“저기 말이지 다음에 올때 USB좀 가져다 줄 수 있나? 8기가로!!”부탁좀 할께..
예? 8기가요? (이제는 놀랍지도 않습니다.깍아야지요)
(처음엔 왜이게 이사람들에게 필요할까? 집에 컴퓨터도 없는데..)
8기가는 좀 비싸요. 선생님.. 근데 지난번에도 담배 두갑 드렸는데, 오늘 또
말씀 하시네요.. 제가 요즘 좀 형편이 안좋아요..
내가 전에 말했던가? (약간 뻘쭘해하며)
“거 얼마나 한다고 그러나? 치사하구만...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아들에게 mp3가 필요하다, 심지어는 디카까지 달라고 했다는 우리측 사람들
말에 기가 찹니다.
한놈만 걸려라 식으로 조금만 안면이 트인 남쪽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요구합니다. 처음부터 안줬음 좋았겠지만 수천명의 남쪽 인원들이 들락거리다 보니, 동정심과 측은함에 정이 약해 주게 되고. 나중에는 이 정도가 지나처져 당연이
달라고 하게 되었구요. 물론 자발적으로 바치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보통 남측에서 원자재등을 포장할때 보호 포장재로 신문등을 많이 씁니다.
초창기때 뭣도 모르고 이런 잡지나, 신문등을 이용했다가 된통 고생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차 구석 어디선가 전혀 몰랐던 물건
이 나올 수도 있구요, 또 적재물 신고 할때 수량이 조금 안맞다고 다시 돌려
보내면 이런 낭패도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안면을 트려 인심을 쓰기도
하지요..
그후에, 그들 내부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세관원들이 자주
바뀌었지만 그래봐야 우리들에겐 처음부터 사귀어야 되는 반복적인
악순환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씀 드릴게 있습니다. 공단에서는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함부로 이야기 하거나, 작은 잘못에도 그들 뜻대로 해줘야 합니다.
얼마전에 억류된 근로자분 기억나시지요? 누구나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
만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가 없습니다. 만약 공단에서 퇴출된다면 당장 밥벌
이가 막막하고, 회사에서 절 얼마나 원망하겠습니까? 너때문에 북한에 거래처
다 끊겼다 라고 책임 추궁해도 할말이 없지요.
제가 실제 겪은 이야기 하나 해봅니다.
북측에서 멋대로 30분이고 1시간이고 출입을 지연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핑계로는 통신선이 고장났다..등의 이유였습니다.
이건 좀 더 정치적인 일로 들어가는데 노무현 정권때 그들에게 군부대등과
출입사무소쪽에 노후된 통신선을 광케이블로 바꿔주기로 한 약속을 한적이
있습니다. 인터넷등을 찾아보면 나옵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그 약속의 이행이 불투명하자 애꿎은 남측근로자들과 기업들 에게 통행시간을 들쭉 날쭉하게 통보해 애먹인 일이 한참동안 있었
습니다. 보통 30분에서 한시간을 대기시키는데 나오는 시간은 똑같이
적용 시킵니다.
보통 30분 늦으면 30분 늦게 나와야 이치에 맞지 않습니까?
한정된 시간에 빡빡한 일을 해야 하는데 점심시간에 밥 안먹고 일하고 싶어도 그들이 따라주지(국 배식을 놓치면 끼니를 거를까봐) 않는데 혼자 나갈 수도 없고, 바쁘게 일하다, 어쩔 수 없다 싶어 전후사정을 이야기 하면 되겠다 싶은 순진한 마음에 늦은 만큼 30분 더 있다 출경했습니다.
출입국 사무소에 다다르자 제 차를 따로 호츨하고 사무소로 들어 오랍니다.
십수명의 제복입은 인민군들과 세관원들 앞에 혼자 서보셨습니까?
키는 저보다 다들 작고 여자도 있었지만 기가 죽어 말이 안나옵니다.
저절로 숙이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너무 어이없게 잘라버립니다.
전후사정을 이야기해봐야 그건 당신 사정이니 당장300달러
내놓으라고 난리입니다. “누가 지갑에 300불씩 가지고 다닙니까?” 하면
나가서 너네 남한 사람들에게 꿔오랍니다. 이건 뭐 깡패나 다름 없습니다.
법도 기준도 이들 앞에서는 허울 뿐입니다.
무조건 내놓지 않으면 안보내줄것 같습니다. 결국 저와 동시간대에 나갔던
차들은 모두 떠나고 저혼자 30분간 이들과 공포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결국 통행증을 담보로 A4용지 반으로 자른 허접한 벌금 통지서에 제 인적사항을 적어 놓고서야 다음시간에 풀려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들에겐 남쪽사람들의 모든게 돈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북한 근로자들은 순박합니다. 담배를 권해도 맛이 없고 연하다고
안피웁니다. 담배 배급이 떨어지고 제가 갑으로 준데도 제 담배는 안피웁니다.
하지만 세관원들에겐 이게 돈이 되나 봅니다.
개성공단은 면세지역이라 술과 담배가 공항에서 파는것처럼 저렴합니다.
갈때마다 저도 남쪽의 친구들 심부름에 1보루씩 사다주니까요.
언제부턴가 이들이 제 담배에 눈독을 들입니다. fnk등에 장마당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돈이 되었구나..
그들이 요구하는 메모리카드,mp3,양담배,등이 모두 장마당에서는 돈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혈안이 되어 요구하지요.
컴퓨터와 영어를 잘한다고 자랑하고, 실제 대화하다 보면 오~진짜네..
라고 느낀 25살 정선생이 있습니다. 이친구는 공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해서
나중엔 제가 집에서 보던 c언어등의 컴퓨터 관련 서적을 가져다 주기도
했습니다. 책자에는 정치적인 내용이나 민감한 문장이 들어가지 않았고,
안걸리게 숨겨 가야지..라는 생각에 줬습니다.
대화중 컴퓨터 운영체제는 뭘 쓰는지 궁금했습니다. 놀랍게도 윈도우로 배웠
답니다. 달력의 연도와 스포츠 용어, 나라 이름까지 다 멋데로 만들고,
이런걸 주체적이라고 표현하기에,너네는 안만들어 쓰냐 했더니
있긴 있지만 안씁니다. 라고 합니다.
북에서 쓰는 윈도우 다 우리가 보내준 겁니다. 이친구도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c언어로 프로그램정도는 짤줄 알것 같습니다.
보고 있는 책이 너덜거릴 정도로(새책이 없지만) 열심이 들여다 보는데
문득 디도스 공격이 북에서 한 소행라면... 그럴 능력이 충분이 있겠구나..
장비가 여의치 않아서 그렇지 지식의 정도는 우리 못지 않습니다.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실습은 북측 근로자 식당에 마련해준 컴퓨터를
쓴답니다. 이건 직장장, 참사등이 주로 카드놀이, 지뢰찾기 등에 전세놓고
쓴답니다. 이분들 안할때 눈치보며 써보는게 다랍니다.
목마르지요? 미니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주네요. 이런거 공단 오기전에
먹어봤나? 했더니 자기네도 비슷한게 있답니다.. 주체적이니까 만들어서
먹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심한 발냄새를 풍기며 안으로 들어오시는
저와 동행하는 북측 근로자 두분이 제가 먹는 콜라를 보며 묻습니다.
김선생 뭐먹어? "아 이거 한잔씩 드세요" 제가 나중에 냉장고에 채워넣을테니
정선생한테 돌리라고 합니다. 아직 탄산이 식지 않은 칼칼한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킵니다. "캬~~ 이거 뭐네~~ 뭐 이런걸 먹어??(그러면서 마지막 한방울
도 공중에 컵을 띄워 다 먹습니다) 아 이거 코카콜라요.. 첨 드셔요?
전세계 수십억 인구가 다먹는 음료수에요.. 맜이죠?(전 재미있어 합니다.)
"이거 미젠가? 예 미제는 맞는데 아마 남쪽에서 만들어 올꺼에요"
근데 선생님들은 양말 왜 안신으세요.? 안전화에 양말 안신으면 발에 땀차
는데...(우회적으로 발좀 어떻게 해달라고..) 내 이야기에 처녀 정선생이 맞
장구 쳐줍니다.. "그래요 집에서 뭐라 안해요?" 그러면서 바닥을 연신 닦습
니다.. 전 이냄새 맡느니 담배를 하나 물어 공중에 연기를 뿜고 있구여...
그모습에 실내에서 담배피는 걸 싫어하는 다른 여선생들이 더 피우라고 웃습
니다.. "그말에 북측 두 선생은 남자는 바깥일 하면 이렇게 냄새가 나야
잘하는 거라고 우기고 있네요.. 사실 우리가 흔히 신는 면양말이 아니고
이분들의 양말은 나일론 재질의 버선 같은걸 신으십니다. 이게 여름엔
양말로서의 구실을 못하니 안신고 마는 겁니다.
한여름에 두꺼운 포츠 양말과 두꺼운 갑피재질의 에어가 잔뜩 부풀어오른
나이키 힌 운동화 신으면... 제게 안덥나? 라고 종종 묻습니다.
전 농담조로 이거 미제라 안더워요 합니다...
안신어 봤으니 모르시죠. 이분들과 신발
벗고 들어가 앉으면 나갈때 웃깁니다. 신발들이 모두 똑같아서요..
배급제라 같은 걸 동시에 주니 죄다 똑같습니다. 남자들은 우리 초등학교때
신던 실내화 같은 디자인에 곤색 힌깔창 단화이고 여자들은 그들의 작은키를
의식해서인지 10센치짜리 통굽 운동화를 줍니다. 아무튼 모두 다 똑같아서
각자 표시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항상 튀는 제 신발 덕에
또 뭐라고 주절대나 해서 항상 다른 사람들이 감시하러 들어오곤 했습니다.
주로 호기심이 많은 나이에 힌참 멋부리는 20대 여선생들은 제가 오면 좋
아라 합니다. 이것저것 물어보면 정치적인 언행은 안하고 교묘하게 남측
실정에 대해 이야기 해주니까 좋아하지요. 왜냐?서로를 감시하지만 내용은
민감하지 않아서요.... 또 자기들의 공동 관심사니까요..
이들은 정치 군사같은 문제보다 미용, 멋부리기, 헤어스타일 등 남한의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주관심사입니다.
"김선생님 남쪽 여자들은 키가 큰가요?"
-그럼 크지요. 평균키가 165는 되지, 170넘는 애들도 얼마나 많은데..
"화장들도 하고 그럽니까? 남쪽 여자들은 피부가 좋다던데"
-화장품도 다들 비싼거 써서 수백에서 수천달러씩 쓰지.. 또 피부 마사지도
한번에 100달러씩 하는데 그거 못받아서들 난리야..... 가방이며 옷이며
금부치들도 암튼 남쪽에서 여자 만나서 선물 사줄라면 수백달러는 들어-
-아 그나저나 올여름엔 피서 어디로 가나? 참 선생네도 여기 휴가있지?
"휴가? 피서요? 그게 뭡니까? 아니 더우면 회사에서 쉬다오라고 안해?
바닷가도 가고 계곡도 가고 뭐 그런거 있잖아? 우린 해외도 나가는데~~
"아니 외국에도 나갑니까? 통행증 받고 나가지요? 아무나 막 가고 아니지요?
-아니 개나소나 다 나가는데 무슨 통행증이여? 내가 가고 싶음 가는거지~
돈이 문제지 돈만 있음 어딜 못가?
"선생님도 외국 나가 봤습니까?"
-그럼 미국(사실 사이판),필리핀,태국,호주,일본 가봤지..-
(여기서 놀란건 미국과 일본은 알지만 필리핀,태국,호주는 모른단다)
"그럼 선생님 다음에 오실때 사진보여주십시요. 사진 있지요?"
-어?요즘 디카로 찍으니까 인터넷에나 올라있지 사진은 없는데-.....
(약간 못믿어워 한다. 난 어디까지나 진실에 근거해 이야기 하는데)
-좋아, 그럼 내가 가져다 보여줄께- 작년에 싸이판 간 사진 보여줄께..
아마 놀랄걸 바다색이 (마침 뒤에 워셔액이 있다) 저거랑 똑같해. 진짜 멋있어
"그럼 선생님 잊지 말고 다음에 오실때 꼭 보여주십시요"
4명의 북측 여선생들은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꼭 갖고 와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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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르던 내용 잘 봤습니다...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나 난 이북사람 접할 기회도 없지만 간접적으로 실상을 들으면 4~50년전쯤 몰락한 우리네 양반을 연상합니다...그때까지만도 시골엔 엄연히 양반이 존재? 했으니까요...때꺼리도 없으면서 목에 힘주고 체면 차리고....언제나 북한주민의 실상을 간접적으로 접하면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장문의 글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굴욕적 으로 드나들것이면 뭣하러 개성 공단을 만들었는가.하여간 때중이 놈현이 놈들 때문에...모르던 사항을 잘알았습니다.
더 많이 올려 주십시요.
잘 읽었습니다.항상 진실한 글은 감동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