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단상/산길 이야기 鞍山백원기
일손을 놓게 되면 어떻게 하나? 이 말은 나의 사전에는 없는 말이었다. 젊은 날에 20년이란 귀중한 세월이 깊이 뿌리박히지 못하고 스스로 뽑아 자주 옮겨 심는 삶이였기 때문이다. 33년간 부동산 중개업 뿌리의 질김은 이변이며 기적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일을 위해 버팀목 역할을 해준 요소가 여럿 있지만. 어쨌든 잘 견뎌낸 것이 다행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나이가 꼬부랑 고개를 넘게 되자 생업 대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래도 망막하지는 않았다. 사십대 후반부터 주기적으로 실시해온 산길 걷기와 미래와 현재와 과거를 아우를 수 있는 언어예술의 詩作생활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이중에서 산길 걷기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자연과 벗함이 좋다는 말은 누구나 하고 있지만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다.
나는 꼬부랑 고개를 넘는 나이 전까지도 되도록 1000m 가 넘지 않고 가능한 5-600m급 육(흙)산길을 걸었는데 항상 3시간 이내로 끝을 내려 노력하였지만 욕심이 나서 긴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4-5시간씩 걸릴 때도 많이 있었다. 주로 대중교통과 택시를 이용하여 안내 표지도 없는 개척 산행을 많이 한 편인데 25년간 작성한 산행기록부에는 지금까지 183곳의 산이 기록되어있다. 햇수에 비해 숫자가 적은 이유는 북한산에만 10년을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출발 전에 개념도를 살펴보고 현지에 도착하면 사시는 분에게 물어보며 다녔는데 특히 지방택시 운전사께 물어보면 친절히 알려주었다. 어느 지점에서 오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이끌려가는 것보다 스스로 고생스럽게 찾아가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지금은 웬만한 곳에도 이정표가 있지만 고도계와 나침판의 도움을 얻어 다닐 때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산길을 가는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길을 다녔기에 내 자신을 위해 방어의 무기로 톱이 달린 스틱과 등산용 접이식 칼은 필수품 이였다. 길이 끊어지거나 암벽이 가로막으면 가차 없이 뒤돌아서거나 우회로를 찾았다. 여럿이 함께 다니는 산행은 마치 눈감고 걷는 것과 같이 쉽고 편안하다 하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에 고산준령을 타던 연로한 분들이 무릎과 허리 어깨 등 불편한데가 많아 고생 하시는 것을 보면 젊은 날의 무리한 등산이 오히려 해가 됨을 느끼고 지금은 주로 300m급 낮은 산맥을 주1회 정도 체력의 70%한도 내에서 2시간 보행에 1시간 휴식의 산행을 고집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그 지역을 눈과 귀와 발로 미니 여행을 시도한다. 그곳의 음식도 먹어 보고 그곳의 토산품도 구입해볼 뿐만 아니라 그 지방 역사를 드려다 보면 일거양득의 나들이가 재미로워진다. 태양과 바람과 구름과 바위와 흙과 그리고 나무와 꽃과 인심과 역사를 만나러 떠나는 등산 겸 여행의 즐거움을 오늘도 내일도 누려보련다.
첫댓글 반갑고,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精誠이 깃든 作品 拜覽하고 갑니다.
恒常 즐거운 生活 속에 健康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친구님, 오늘도 반갑게 오시니 고맙습니다
편안하고 행복한 토요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