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일부) *
<부산일보>
사유의 독법
김원화
티끌도 숨죽인
그 고요에 들었다
미동조차 소음이라
배낭 깊이 질러 넣고
내밀한 그 미소*당겨
새기듯 필사해 본다
당겼다 밀었다 말걸다 침묵하다 그 시선 머문 곳 내 눈길 얹어 보니
생각에 잠기는 시간, 순간 속에 가득하다
기쁜 우리 젊은 날 바람 속 거친 숨결
손끝에서 발끝까지 너 하나로 벅찼던 거
그게 다
내 안에 있는데
괜찮다,꽃이 못 돼도
*국립중앙박물관‘사유의 방’에 전시된 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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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도배를 하면서
권영하
악착같이 붙어 있는 낡은 벽을 뜯어내고
벽지를 살살 풀어 재단해 붙여보면
꽃들은 뿌리내리며
벽에서 피어난다
때 묻고 해진 곳에 꽃밭을 만들려고
온몸에 풀을 발라 애면글면 오른다
흉터를 몰래 감싸고
생채기를 보듬으며
직벽도 척추 없이 단번에 기어올라
천장에 땀 흘리며 거꾸로 매달려도
서로를 응원하면서
깍지 끼고 버틴다
보일러를 높이거나 햇빛살 들이거나
실바람 끌어다가 방 안에 풀지 않아도
팽팽히 힘줄을 당겨
꽃동산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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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백련의 기억
유진수
봄날 햇살 아래 눈물처럼 쏟은 말들,
천천히 번져가다 물비늘처럼 글썽인다.
희미한 표정만 남긴 채 수척해진 문장들.
수런대던 그때로 하염없이 돌아가서
두어 대 솟은 꽃순 차랑차랑 만난다면,
밝고도 환한 눈길로 글을 다시 쓰리라.
흰 빛깔 떨군 꽃이 하늘로 돌아간 후,
뜨락에 젖어 있던 별빛 같은 글자들이
눈부신 백련의 말씀으로 살아나던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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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네트
김현장
실 하나 당겨보면 등 돌리는 사람 있다
마스크로 가려봐도 휑한 눈빛 흔들리고
비대면 차가운 거리 회전문은 돌아간다
백동백 무릎 꿇고 저 홀로 피어나
꽁꽁 언 유리창 너머 하얗게 뜬 얼음 얼굴
툰드라 이끼 파먹는 순록처럼 불안하다
관절마다 매달린 끈 조여오는 겨울 아침
숨죽인 채 늪 속으로 도시는 빠져들고
사람이 사라진 길에 빈 줄만 흔들린다
첫댓글 여전히 비유의 경지와 참신한 시어에 거리감을 느낍니다.
저도 그래요
시조는 시어부터 달라서 너무 어렵더라구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