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가 보는 북한 명산
조 흥 제
600m의 산이라고 가볍게 보았다. 하지만 기록을 읽는 동안 내 판단이 잘못되어 산에게 깊이 사과한다.
1000m 미만의 산들 중 아름다운 산은 어느 산들일까? 예부터 경기 오악(京畿五嶽)이 유명했다. 서울의 북악(342), 관악(632), 파주-양주에 걸쳐 있는 감악(675), 개성의 송악(488), 가평의 운악산(934)이다.
남한에서 1000m 미만의 아름다운 산은 어디어디일까? 서울의 북한산, 도봉산, 충청도에서는 계룡산(838)일까? 아니다. 대둔산(878)을 꼽고 싶다. 전라도에서는 어디일까? 전남 영암 월출산(810)이다. 경상도에서는 어디일까? 청송의 주왕산(721)이다. 강원도에서는 어디일까? 없다. 산들이 거의가 1000m가 넘어 그 미만은 명함도 못 내일어서이리라. 북한에선 어디일까? 구월산, 장수산 등이 있지만 600m의 칠보산이다.
나에게는 북한의 명산을 기록해 놓은 기록물이 있다. 1992년에 월간 산에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등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산은 함경북도 청진시 근방 해안가에 있는 칠보산이다. 600m 급의 산이 아름다우면 얼마나 아름다울까하는 업신여기는 시선으로 보았다. 헌데 아니다. 구월산? 댈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금강산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보산은 서쪽으로는 매봉산, 박달령을 경계로 명천읍과 경계해 있고, 동쪽은 동해안, 북쪽으로는 경성만으로 흘러드는 어랑천, 남으로는 화대천을 경계로 약 250㎢의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예로부터 7가지 보물이 묻혀 있다고 하여 칠보산으로 불리는 이 산은 600m의 오봉산을 주봉으로 한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나 기묘한 산세와 바위들, 해칠보의 절경은 이름 그대로 보석처럼 빛난다. 칠보산은 내칠보, 외칠보, 해칠보로 나뉜다.
내칠보는 칠보산의 천만가지 경치가 한 눈에 다가와 마음마저 활짝 열린다고 하여 붙여진 계심대를 비롯하여 주봉인 오봉산과 만월대, 무희대, 기와집바위, 천문암, 서재봉, 금강담, 구룡소와 금강굴, 박쥐동굴, 자연동굴들이 산재해 있어 자태를 뽐낸다. 박달령에 오르면 칠보산 전경이 펼쳐지는데 박달령을 돌아 청계동 골짜기를 거쳐 개심대에 오르면 내칠보의 첫 경치인 오봉산이 우람한 자태로 서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칠보산의 주봉인 오봉산은 봉우리가 5개인데 봉우리마다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첫 번째 봉우리는 1만 마리의 사자가 떼지어 앉아 있는 것 같다하여 만사봉, 둘째 봉우리는 1천개의 불상을 모아 놓은 것 같다하여 천불봉, 셋째 봉우리는 종을 열어 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하여 종각봉, 넷째 봉우리는 짐꾼들이 모여 선 것 같다하여 나란봉, 다섯째 봉우리는 노적가리를 쌓은 것 같다하여 노적봉라 일컫는다. 개심대에서 조금 올라가면 승선대에 이르는데 내칠보의 두 번째 경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위 건축물 같은 기암괴석들이 솟아 있는데 산 위에 놓인 배 같은 선부봉, 커다란 정미소 건물 같은 기와집 바위, 농촌 마을을 연상케 하는 집마을 바위들이 서 있다. 또한 서책봉, 우산봉, 만월대, 무희대 등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산재해 있다. 내칠보 뿐 아니라 외칠보까지 보이는 금강봉의 명성은 가장 높다. 금강봉 아래에는 금강굴이 있고, 서남쪽 일대에는 원시 유적들인 자연동둘이 곳곳에 있다. 금강굴 앞에 평평한 지대는 내칠보의 모든 경치들이 한 눈에 안겨 온다고 해서 회상대라고 한다. 내칠보와 함께 연적봉, 인장봉, 피아노봉 등이 보인다. 회상대를 떠나 자하동 골짜기로 내려서면 금강담의 그윽한 풍경과 구룡소의 시원한 경치를 볼 수 있다. 내칠보에는 8선녀 전설이 있다. 금강산에 내려오던 8선녀들이 목동에게 한 선녀를 잃고 7선녀가 이곳 내칠보에 내려 와 무희대에서 춤을 추고 서채봉에서 글공부도 하며 저녁이면 만월대에서 달구경을 한 다음 금강천에서 목욕을 한 후 천문암에서 날씨를 보고 승선대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자하동을 나오면 큰 길이 나오는데 내 칠보가 끝나는 지점이다.
외칠보는 내칠보에서 해칠보로 가는 약 16㎞ 구간의 길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외칠보는 내칠보의 수려하고 의젓한 자태와는 달리 침엽수, 활엽수 등 수림이 무성하고 수정같은 맑은 물이 흘러 폭포와 담소들이 연하여 있고 좌우로 높고 기묘한 봉우리들이 둘러쳐져 있어 신비감을 더해 준다. 장군바위와 장수산, 처녀바위, 학무대, 봉서바위, 맹수봉, 기직봉, 가포대, 만물상과 같은 기암들과 옥류폭포, 능인폭포, 황진온천 등이 있다. 내원동에 이르면 상치봉, 장군바위, 악어바위, 처녀바위들이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그 중에서도 비 내리는 날 비옷을 입고 바위에 기대 서있는 듯한 처녀바위는 너무도 천연스럽고 절묘해 마치 석공이 다듬어 놓은 조각물 같다. 가천동에 이르면 학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듯한 학무대, 수많은 새들이 계속 날아드는 모양의 봉서바위, 세상 만물을 한곳에 모아 놓은 듯한 외칠보 만물상은 대표적인 절경이다. 무성한 수림 위로는 가람봉, 맹수봉, 가포대, 기직봉 들이 솟아 있어 대자연의 조화를 이룬 듯하다. 노적봉으로 내려가면 부사봉을 비롯한 기묘한 봉우리들이 있으나 외칠보의 아름다움은 주로 내원동의 가전동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자동차 길 양옆으로 외칠보의 절경들이 병풍처럼 전개되어 산이라기보다는 도시의 고층건물 아래를 다니면서 진열장을 구경하는 느낌이다. 가전봉에서 갈라진 새길령을 넘으면 외칠보의 황진온천이 나온다. 유황과 라듐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신경통, 위장병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수온은 52~73도이다.
해칠보는 황진리 앞 북수단으로부터 남쪽으로 보촌, 포화, 고진항을 거쳐 무수진까지 20㎞ 해안선에 펼쳐져 있다. 해칠보에는 소나무, 깎아 세운 듯한기암절벽과 바다 위에 우뚝 솟은 돌기둥에 푸른 파도가 밀려 와 절벽에 부딪쳐 거대한 물보라를 날리는 풍경은 자연의 아름다움의 극치다. 배를 타고 보는 해상유람은 황진항 앞 복수단으로부터 시작된다. 촉석굽이를 스쳐 지나가면 직석암 위에 마치 배낭을 짊어진 사람 뒤에 아이를 업은 여인이 따르고, 뒤에 강아지가 따라가는 형상의 최금석이 나타난다. 최금석을 지나면 바다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신부바위, 촉석암, 몽문암과 아치형의 강선문, 솔섬이 연하여 있어 눈을 떼지 못한다. 직석암으로부터 마호앞까지 2㎞ 남짓한 이 구간은 100m 이상의 깎아지른 절벽으로 되어 있는데 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면서 절벽을 보노라면 마치 대형 박물관과 미술관에 전시해 놓은 조각품을 감상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마호 앞 바닷가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깃든 기와집 바위, 봉소진들이 구경거리이고 보촌과 중평 사이에는 무지개 바위가 유명하다.
눈을 감고 글에 나오는 절경들을 떠올려 본다. 기암괴석과 동굴, 소와담, 해칠보에서 배타고 보는 거대한 석벽들......, 금강산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어서 남북관계가 좋아져 금강산 외금강을 개방했던 것과 같이 칠보산도 배로 가서 구경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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