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 여행후기--2 >
새벽 3시반 기상인데, 잠에서 깨어보니 2시 30분이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크루즈 창밖으로 나일강의 밤풍경을 감상했다.
한국은 오전 10시다. 시차 때문인지 여행 5일째까지 2시에서 -3시 정도면
잠에서 깨었다. 새벽 4시 30분에 아스완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아부심벨로 이동을 했다.
아스완에서 아부심벨까지는 북서쪽으로 280km, 차량으로 4시간 반쯤
걸린다. 전부 사막을 가로질러 가는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막이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사막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사막 지평선 끝에서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붉은 태양.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내 대지 위로
떠올라 사막을 비치고 있었다.
2시간이 지나 사막 중간에 있는 간이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휴게소라고 해봐야 화장실 하나에다가. 기념품 몇 점
전시해 놓고 파는~그런 소박한 휴게소랄까. 그리고 다시 사막을
달리고 달려 아부심벨에 9시쯤 도착을 했다.
사막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평생 나를 따라다닌 내그림자. 내 너에게 사막에 와서
비로소 고마운 마음을 전하게 되는 구나.
사막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한낮 사막에서는 신기루를 볼 수가 있다.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멀리 사막 끝으로 바다가 보이는 신기루~~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이 그 신기루를 보고 그 바다를 쫓아 가지만 눈에 보이는 바다는
그저 신기루 였을뿐이었을 거라는 슬픈 현실~~ㅠ
사막 한 가운데 있는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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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부심벨 신전
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2세와 왕비 네페르타리의 신전이다.
신전은 대신전과 소신전으로 나뉘는데, 대신전은 입구에 람세스 2세의 4개의
좌상이 있고, 소신전은 람세스 2세와 왕비의 좌상 5개로 이루어져 있다.
대신전은 바위산에 암굴을 뚫어 56미터 깊이에 3개의 큰 홀을 만들고
기둥을 세워 역대왕들과 람세스 2세의 업적을 상형문자와 그림을 통해
기록을 해 놓고 있다. 보고 있노라면 그 웅장함과 수려함에 빠져들게 된다.
더욱더 놀라운 점은 가장 안쪽에 있는 성소에 1년 중 하루 햇빛이 들어오도록
설계를 하여 그날 햇빛이 드리운 성소에 제를 지낸다고 한다. 무려 3500여년
전에 이런 과학적인 건축설계를 했다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아부심벨 대신전 모습
아부심벨 대신전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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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전은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신전인데 이집트 역사상
왕비에게 신전을 지어준 것은 람세스 2세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래서 네페르타리는 그녀의 신전과 화려한 묘지로 후세에
길이 길이 이름을 남기고 있다.
아부심벨 신전은 아스완 하이댐으로 수몰위기에 처해있었으나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다고 한다. 신전은
하이댐으로 완공된 나세르 호수를 유유히 바라보고 있다.
아부심벨 소신전--일명 왕비 네페르타리 신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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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크루즈로 콤옴보 이동.
아부심벨 관광을 마치고 다시 아스완으로 이동을 하여 크루즈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크루즈 침실에 누어 에드푸로 이동을 했다.
침실에 누워 배를 타고 가기는 처음이다. 침대에 누워 나일강의 푸른물과
주변 경관을 보며 가노라니 마치 내가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배는 흘러가고 저녁 6시쯤 콤옴보에 도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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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콤옴보 신전
콤옴보 신전은 순전히 세베크인 악어신를 숭배하기 위해 지어진
신전이다. 세베크 신은 물을 관장하는 신이다. 그래서 이집트는
나일강이고 나일강은 곧 물을 뜻하기에 세베크신은 그만큼 중요한
존재였던 것 같다. 신전 옆에는 악어 박물관이 있는데 악어의
조각상은 물론이고 화석과 미라도 많았다.
조명이 밝혀진 콤옴보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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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는 다시 밤새 에드푸로 이동을 한다.
오늘은 아내와 선상에 올라 맥주를 한잔 마시며 이집트의
밤풍경을 즐겼다. 공기도 좋고 기온도 따뜻했다.
크루즈를 타고 잠을 자면서 여행하는 기분도 괜찮았다.
1, 마차를 타고 에드푸 신전으로 이동.--7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마차를 타고 에드푸 신전으로 향했다.
이곳 애드푸는 마차 천국인 것 같다. 수십대의 마차가 도로를
질주한다. 마차를 모는 분도, 마차를 타는 사람도 흥겹긴 마찬가지다.
말도 신이 나서 펄펄 뛰는 것 같다. 근데 이곳 마차꾼들 너무 밝히는
것 같다. 가이드가 팁으로 1달러만 주라고 했는데 고마운 마음에
2달러를 줬는데도 1달러를 더 달라고 하네. 갑자기 고마웠던 마음이
확 사라진다. 그래도 1달러를 더 줬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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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집트 신화.
이집트를 여행하다보면 많은 신전을 관람하게 된다.
그런데 모든 신전에는 신들의 모습이 형상화 되어있다.
그래서 신전을 관람하려면 반드시 신들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신들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신화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집트 신화를 간단히 정리하면 원초에 눈(나일강)이라는 바다가
있었고 눈에서 아톤(태양신 라)이 태어났다. 라에게서는 4명의
자녀가 태어나는데, 1, 게브--대지신, 2, 슈--공기신, 3, 테프누트
--증기신, 4, 누트--하늘신 이다. 이들중 게브와 누트가 결혼을 하여
1, 오시리스--죽은자의 신, 2, 이시스--미의신, 3, 세트--악의신
4, 네프티스--황혼의 신이 태어난다.
그리고 오시리스와 이시스가 결혼하여 호루스--매의 신이 태어난다.
또 세트와 네프티스가 결혼하여 아비누스--저승신이 태어난다.
또 호르스의 부인인 하토르(머리에 암소의 뿔과 태양을 이고 있슴)는
--사랑과 미의신, 여성의 신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태양신인-- 아톤 라신, 죽은자의 신--오시리스, 미의신--이시스,
악의신--세트, 매의신--호루스, 저승신--아비누스, 그리고 사랑과
미의신 하토르는 반드시 알아야할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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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에드푸 신전 .
하늘을 관장하는 매의 신에게 봉헌한 신전이다. 이집트 신왕조(알렉산더
정복으로 인한 왕조)--31왕조 프톨레마이우스대인 기원전 200년경에
세워져 다른 신전에 비해 역사가 많이 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신전이다.
역대왕조와 파로오의 이름을 새겨놓은 상형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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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룩소르로 이동 >
테베는 룩소르의 옛이름이다. 테베는 고대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수도로서 인구가 천만이 넘는 도시였다고 한다. 지금 이집트 최대의
유적은 대부분 테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베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도시가 발달해 있고 서쪽으로는
죽은자들의 도시로 왕가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 하트셉수트의 장제전
등이 있다. 가장 웅장한 카르낙 신전과, 여성스러운 룩소르 신전은
룩소르 시내에 자리하고 있다.
룩소르로 가는길 중간--이집트의 시골 풍경
중간에 휴식을 취한 시골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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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맴논의 거상
고대 이집트의 도시 테베 18왕조의 아멘호텝 3세가 건축했던 장제전의
정문을 지키던 두 개의 석상이 오랜 세월 네크로폴리스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멤논의 두 거상은 높이가 17m이고, 무게는 70톤 달한다.
맴논의 거상-지진으로 많이 훼손되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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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제전
제 18왕 하셉수트 여왕(BC1503-2482)이 8년 동안 건축한 신전이다.
부친인 투트모세스 1세를 기념하기 위한 신전이자, 여왕 자신이 묻힐
장례 사원으로 지었다. 여왕은 남편이 요절하자 계비가 낳은 10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 투트모세스 3세를 섭정하다 자신이 여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죽은후 투트모세스 3세는 복수심에 그녀의 신전과
기념물을 많이 파괴 했다고 한다.
하셉수트 장제전을 보면 3500년 전에 어떻게 저렇게 정교한 건축물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세하고 웅장하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벽면과 기둥에 빈틈없이 상형문자와 그림으로 그들의
업적과 역사적 사건들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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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왕가의 계곡
왕가의 계곡(The Valley of Kings and Queens)
카르낙 신전과 함께 룩소르 최대의 유적지로 나일강 서쪽의
황량한 돌산에 자리잡고 있는 네크로폴리스(죽은자의 도시)다.
이집트 중왕국시대(BC 2033~1650, 제7~17왕조)의 피라미드는 눈에
띄기 쉬워 도굴되는 일이 잦자 영혼이 영생하고 훗날 자신의 몸이
미이라를 통해 되살아 난다는 믿음을 가진 왕들에게 인적이 드문
바위틈이나 벼랑에 은신처를 삼았다. 투트모스1세부터 람세스11세에
이르는 18,19,20 왕조의 왕들의 무덤 약 60 여 기가 이곳에 있다.
람세스 4세의 묘지 안내판
이렇게 바위산 계곡에 왕들의 묘지를 비밀리에
안장을 하였다. 도굴을 피하기 위하여.
묘지입구
묘지 내부 모습
묘지 내부 벽화
묘지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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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카르낙 신전
고대 이집트의 신전 가운데 가장 크고 웅장하다. 아몬 대신전으로 유명한
이신전은 다주식홀과 인공호수, 역대 왕들이 만든 10개의 탑문과 40미터
높이의 건축물, 오벨리스크, 그리고 수많은 벽화와 조각이 가득하다.
기원전 2000년부터 시작하여 프톨레마이우스 왕조시대인 기원전
100년까지 거의 2000년에 걸쳐서 증개축이 된 신전이다.
신전 입구에 도열해 있는 스핑크스
카르낙 신전의 대 열주실 모습
지름이 3미터가 되고 높이가 20여미터나 되는 기둥이
134개가 숲을 이루고 있다.
신전 안에는 투트모세스1세와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 2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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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룩소르 신전
룩소르의 아몬신전은 스스로 아몬신이라고 주장했던 아멘호텝 3세와
그 후 투탕카멘과 람세스 2세등에 의해 증개축 되었다. 이신전은 아멘호텝
3세가 주신인 아몬과 그의 아내 무트, 아들 콘수를 위해 지어진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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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마차 투어 >
해질무렵 룩소르 마차투어에 나섰다. 룩소르는 고대 이집트 왕조의
수도로서 테베라고도 불리워지며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룩소르 인구는 60여만명이며 룩소르의 번화가는 물론이고
주택골목과 시장안도 마차를 타고 둘러보는 투어이다. 사실 이번 여행은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여행이지만 현재 이집트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중요하기에 유익한 투어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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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룩소르에서 후르가다로 이동>
룩소르에서 후르가다까지는 250km--대략 4시간이 소요되었다.
후르가다는 이집트 최대의 휴양지로 홍해의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룩소르에서 후르가다로 가는 풍경은 나일강을 따라갈때는 제법 농경지와
야자 나무도 보였지만, 나일강을 벗어나니 온통 사막이다. 이집트의
서쪽으로는 사하라 사막이, 동쪽으로는 아라비아 사막이 펼쳐진다.
동부 사막은 서부 사막과는 대조적으로 대부분 바위산 사막이다. 산은
있으되 나무와 풀은 없다. 오히려 모래만 있는 서부의 사하라 사막보다도
더 황량하고 더 음습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사막은 사막일뿐 낭만적이거나
환상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자체가 사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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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르가다.
후르가다에 도착하니 아침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먼저 반 잠수정 투어에 나섰다. 배의 밑부분을 잠수함 모양으로
만들어서 바다 밑을 보는 투어다. 해변에서 배를 타고 20여분을 나가서
바다 한가운데 머물러 반잠수함으로 내려가니 바다 밑이 보였다.
TV에서 봤던 것처럼 아름다운 산호초 위에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너무 환상적이었다.
잠수부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보는 그런 풍경을 내가 직접 보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배는 계속해서 이동을 하면서
바다속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황홀하고 멋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40여분간 바닷속을 구경하고 갑판으로 올라와 스노클링을
준비했다. 오늘 함께 투어에 나선 팀은 우리팀과, 러시아팀, 그리고
중동팀 이렇게 세팀이 있었다. 인원은 전부해서 50여명 정도 되었다.
그중 스노클링을 한 사람은 모두 여섯명.
우리 팀에서는 나만 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여행오기 전부터
홍해 바다에서 꼭 수영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바닷물로 뛰어 들었다. 수온은 따뜻했으며 바닷물은 너무 맑았다.
잠수하여 바닷속에 들어가니 그렇게 깊지 않아서 자세히 볼수 있었다.
조금전 잠수정에서 봤던 것과 비슷했으나 실제로 보니 더 환상적
이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수영을 하고 나왔다. 배 위로 올라오니
함께 여행왔던 우리팀 분들이 대단하다며 격려를 해준다. 수영을
이렇게 잘 한 줄 몰랐다 면서~~내가 한국 대표라고 하면서~~
갑자기 칭찬을 받으니 어떨떨했다. 아내도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하면서 나를 챙겨 주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반 잠수정 투어를 마치고 리조트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조금 휴식을 취하다가 아내와 해변 산책을 겸한 수영을
하기로 했다. 나야 반잠수정 투어를 하면서 수영을 했기에 수영을 하고픈
마음이 없었으나 아내는 홍해 바다에서 수영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리조트 수영장을 지나 해변으로 가니 정말 수영하기 좋겠금 해변을
만들어 놓았다. 바다이지만 풀장처럼 해놓은 바닷가. 이런곳에서는
수영을 잘 못하는 여성들이나, 어린아이들도 마음껏 수영을 하면서
놀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수영을 못하는데 즐겁게
물놀이를 즐겼다. 나는 해변에 앉아 아내의 물놀이 장면을
바라보며 해변에서의 여유를 즐겼다.
리조트 앞 수영장
우리가 투숙했던 롱비치 리조트
리조트 로비
홍해의 해변 바닷가 모습
수영이 끝나고 쇼핑센타로 가서 쇼핑을 했다. 정말 후르가다는 유럽의
어느 해변 도시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리조트나, 호텔, 쇼핑시설이
잘 정비 되어 있었다. 뭐랄까. 홍해의 맑은 바닷물 만큼이나 시설이
좋다고나 할까. 이런 곳에서 며칠 숙박하면서 즐기는 것도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아내와 단둘이 맥주 파티를 했다. 맥주를 마시면서
지난날의 멋진 추억들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 이번 여행에서
즐거웠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렇게 후르가다의 밤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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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한국에서 함께온 여행객은 우리를 포함해서 딱 15명이었다.
부부가 5팀 10명이고, 여성 2명이 온 팀이 2팀이고 한분은 혼자서 왔다.
인솔자가 따라온 여행이기에 최소한 20명은 되어야 하는데, 15명이
오게 돼서 조금 미안한 마음도 없이 않았다. 그런데 인솔자분이 너무
좋았다.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데 인격과 품성이 너무 훌륭했다.
일단 온화한 미소가 부드러워서 친숙한 느낌이 들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품격이 느껴졌다. 정말 이런 분이 가이드를 하고 인솔자를
해야 되는거 아닌가 할 정도로 멋져보였다. 나도 함께 온 여행객들보다
여행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이번이 해외여행 16번째니까 꽤 다닌셈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만났던 인솔자와 가이드를 통틀어 최고의 인솔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자리를 빌어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번에 우리와 함께간 여행객들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그동안 여행을 적잖게 다녔지만 이렇게 많이 여행을 다닌분들은 이번이
처음이다. 송파에서 오신 부부는 정말 여행에 달인중에 달인이라고
해도 될것 같다. 남미, 아프리카를 포함해 세계 여행을 거의 다 다녔고
지금도 여행은 게속된다고 한다. 벌써 6월말에 로키산맥 트레킹을
가려고 예약을 마쳤다고 한다.
서울 성북에서 오신 두팀의 부부도 몇 년전 사업을 정리하고 세계일주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분들도 남미와 아프리카 일주를 했다고 하는데 더 갈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강남에서 오신 60대여성분은 혼자 여행
하시는게 취미라고 한다. 나도 혼자 여행을 몇 번 가봤는데, 혼자가는 여행도
그 나름대로 충분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분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분 시간만 나면 지도를 보는 습관이 있는데 지금까지 지도가 낡아서
버리고 다시 지도를 산게 여러번 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시간이나
돈이 있어서 가는게 아니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여행을 자주 하게
된다는 말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노원에서 오신 선후배
사이라는 여성분들과 대전에서 오신 부부팀은 나이가 7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이분들의 체력이 전혀 뒤쳐지지가 않았다.
사실 여행하는 사람들 중에서 70이 넘으면 비행기를 10시간 이상 타는
장거리 여행은 힘들어서 되도록 나이 먹기 전해 여행을 해야 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분들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분들 참으로 곱게 나이를 드신 것 같다. 얼굴에서 품격이 느껴지고
지금도 소녀같은, 청년같은 그런 모습이 언뜻 언뜻 보이는걸 보면서
사람은 이렇게 늙어가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됐다.
사실 이번 여행은 이집트라는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배워가는 뜻깊은 여행
이기도 했지만 여행을 하면서 사람을 배우는, 그리고 나보더 앞서 걸어가는
선배들의 올바른 모습을 배웠다는 것도 의미있는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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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리아 >
알렉산드리아 바다 풍경
알렉산드리아 해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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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집트를 너무도 사랑한 클레오 파트라.
역사가 진실되지 못하다는 것은 승리한 자들에 의해서 쓰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클레오파트라 이야기다. 클레오파트라는 요부이고
미녀이고, 그래서 미를 이용하여 권력을 쟁취한 그런 여성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랬다. 로마인들이 쓴 글들만 읽었으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선정적인 것을 좋아하기에 더 자극적인 이야기들로 꾸며대길 좋아 했으니까.
이집트의 고대 왕조는 기원전 3100년부터 마케도니아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하기까지(기원전 332년)까지 총 30왕조가 이어졌다. 물론 21왕조
부터는 외부의 침입으로 인해 순수 이집트왕조라고 할수 없지만, 그래도 명맥은
이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점령을 당한후 카이로에서 183km 떨어진
북서쪽 나일강 델타 지역에 대왕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 도시가 세워지고
이집트의 수도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알렉산더대왕은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
도중 죽게 되고 그의 군사참모인 프톨레마이우스에 의해 새로운 왕조가 세워졌다.
그왕조가 31왕조인 프톨레마이우스 왕조다.
이 31왕조의 13세가 클레오 파트라의 동생이다. 당시 프톨레마이우스
왕조는 왕권 계승을 딸과 아들이 동시에 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 동생과
클레오파트라가 동시에 파라오가 되었다. 그러나 동생은 그리스인들의
지지를 받았고 클레오는 이집트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동생을 지지하는 그리스 세력들에 의해 클레오가 요르단으로
추방이 되었다. 이때 로마에서 시민파인 카이사르와 원로파인 폼페이
우스가 서로 대립하여 결국에 내전이 벌어졌는데, 결국 폼페이우스가
패하여 이집트로 도망을 가서 이집트의 지원을 받고자 했으나 이집트
군사들에게 살해가 된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왕실 별장
뒤쫓아온 카이사르는 안타까워 하며 이집트에 머물고 있는데,
클레오가 카이사르의 힘에 의탁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다시 왕위를 되찿는다. 그후 클레오와 카이사르는 연인관계로
발전하고 아들 카이사리온이 태어난다.
얼마후 카이사르가 로마로 돌아가고 로마의 황제로 즉위하기 전
불루투스에게 살해당한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여긴
클레오는 카이사르의 오른팔 안토니우스에게 카이사르와 클레오
사이에 태어난 아들 카이사리온이 황제의 자리를 계승하도록 힘을
써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고 로마 황제자리는 옥타비우스
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다시 이집트로 돌아와 왕권을 강화하고
군사를 재정비하여 안토니우스에게 힘을 실어주려 하였으나 결국
안토니오스도 옥타비우스와의 내전에서 패하게 되어 죽게되자 자신도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죽게 된다. 이렇듯 클레오는 이집트를
구하기 위해 카이사르와 안토니오의 힘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클레오는 분명 그리스계였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우스 왕조 중에서 이집트
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파라오는 클레오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집트를 사랑한게 아닐까. 그리고 그의 참모들도 모두 이집트 인들로
구성을 하였고 누구보다 이집트의 번영과 발전에 총력을 다했다고 한다.
결국 이집트는 클레오의 죽음으로 프톨레마이우스 왕조도 막을 내리고
로마의 속국이 된다. 그후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비잔틴 제국이
아랍군에게 패한 뒤 이슬람화 된다. 이후 오스만 세력의 통치, 영국의
식민지를 거쳐 2000년이 지난 1958년에 독립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언어
학자 샹폴레옹이 상형문자를 해독하기 까지 자신들의 조상이 신전과
파피루스에 세겨논 역사와 문화조차 해석을 할수가 없었으니
이 얼마나 안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