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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출신들은 장군 진급뿐만 아니라 주요보직 또한 독점하고 있다. 우리 육군은 19대 참모총장부터 현재 43대 참모총장까지 모두 육사출신이 참모총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최근 11명의 합참의장 중 사관학교 출신은 단 4명에 불과(2012년 기준)하다. 미국은 사관학교 출신들이 주요보직을 독점한다면 그것은 곧 전투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군은 군 고위층이 모두 사관학교 선후배 사이로 사석에서 서로 형님 아우가 되고 서로의 허물과 잘못을 덮어주고 감춰주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 이러한 파벌의식은 타 출신 장교들의 군복무에 대한 염증과 제대 후 군을 불신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대다수 건전한 사고와 진정으로 국가와 군에 헌신하려는 소신을 가진 육사 출신 장교들의 의지마저도 꺾고 있다.
말단의 비육사 출신 장교들은 육사 출신자들이 장군진급 뿐만 아니라 말단에서의 진급과 보직에서의 독식 또한 심각하다고 이야기 한다. 소속부대와 성명을 밝히기를 꺼려한 이 장교들은 하나 같이 육사 출신자들을 ‘아카데미 출신’으로 비하해서 호칭했다. 그들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고 하지만 군대에는 그 씨가 명확하게 존재한다.”고 이야기 했다. 경기도의 모 부대에 복무중인 한 장교는 “10년 넘게 열심히 복무했다. 하지만 이제 지긋지긋 하다. 제대를 결심했다. 장군이 아니라 말단의 보직과 진급에서도 비 육사출신은 차별의 대상이다. 우리 연대장은 1년 후배인 육사출신 장교를 소령으로 진급시키기 위해 지휘관 재량으로 지휘추천을 육사출신에게 밀어줬다. 그 후배는 연대장 지인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육사출신 후배는 진급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휘 추천을 받았고, 연대 내에서 다른 그 누구도 진급을 할 수 없었다. 육사 밀어주기는 이미 말단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에 근무하는 또 다른 비육사 출신 장교는 “출발점이 다른 경쟁체제에서 비육사 출신들의 약진은 당연히 무리가 따른다. 이미 초급장교 시절부터 각종 위탁과 진급에 유리한 보직을 선점해서 군 복무를 시작한다. 그러기에 비육사 출신이 장군까지 간다는 것은 정말로 바늘구멍에 낙타가 들어가는 격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신라의 골품제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나 더 군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육사를 비롯한 비육사 출신의 군사학 이수시간은 동일하다. 계급이 올라가면서 업무의 숙련도와 완성도의 격차는 미미해진다. 하지만 비육사 출신들은 소령진급에서부터 보직과 진급이라는 좁은 문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 군에는 골품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미국의 ROTC 장교들의 모습.정기 육사(웨스트포인트)와 균등한 기회 부여로
미군조직을 건강하게 개혁했다는 평가
대한민국 장교채용의 문제점
10월 27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손인춘 의원(새누리당)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장교의 운용실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소위로 임관한 장교의 누적인원은 4만7870명이다. 하지만 1만971명만이 장기복무자로 선발됐다. 나머지 77%에 해당하는 3만6899명은 2년6개월에서 3년만 근무하고 제대했다. 하지만 이 통계에는 군장학생처럼 5년에서 7년간 근무하는 중기복무 장교들이 빠져있다. 중기복무 장교들의 장기복무 비선발을 감안한다면, 우리 군의 숙련 장교들의 유실은 심각하다.
군 장교를 많이 임관 시키지만, 짧은 군복무기간에만 활용하고 제대를 시킨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예산과 전투력의 낭비를 가져온다. 특정 출신으로 빈 공간을 메우겠다는 사고에 입각한 장교채용 정책은 군이 병들어가는 지름길이다. 일찍이 이러한 폐해는 구 일본군의 장교 채용의 문제점에서 볼 수 있다. 구 일본군은 철저하게 페쇄적이고 파벌주의에 의한 장교진급 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각 지역별 현인회(현은 일본의 행정단위 이다)가 존재하고 생도 시절부터 현인회 활동을 한다. 야전의 선배들과 일본육사 생도들은 일요하숙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기지역 출신들만의 배타적 영역을 구축했다. 또한 같은 육사 생도들도 유년학교 출신인지 비유년 학교출신인지에 따라 차등 대우했다. 유년학교와 육사를 거친 소수의 장교들만이 육대를 거쳐 고급장교로 진출 할 수 있었고 그 뒷 배경에는 현인회라는 사조직의 입김 또한 강했다. 소수의 이들의 빛나는 자리를 제외한 다른 빈 자리들을 메우기 위해 일본군은 갑종과 을종 장교제도를 채택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높게 진급해도 대위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구 일본군에서는 ‘천년중위’, ‘만년대위’라는 말이 나돌았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를 치닫자 일본군은 부족한 초급장교를 충원하기 위해 학도지원병을 도입했고 이들의 대부분은 가미카제를 비롯한 ‘특공작전’에 투입되었다. 장교에 대한 기본소양 교육도 전투 전기에 대한 교육도 부실했고, 전투원의 대량희생과 지휘부와 말단 제대의 괴리감은 깊어갔다. 결국 일본의 패망에는 전력의 열세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겠지만,그 이면에는 건강한 군대를 만들지 못한 파벌주의가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해군의 경우 함상과 항공등 전투병과가 아닌 비전투병과에 대해서는 특무사관이라는 명칭으로 계급의 호칭과 대우도 차별 했다. 겉으로만 충성으로 일관하는 장교들이 복무하는 군대가 정녕 전투해서 승리 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 군의 장교채용 또한 일본군과 다르지 않다. 단기간 쓰고 버리는 장교들 특정 출신의 뒷바라지용 액서사리로만 생각하는 장교채용 정책은 우리 군을 병들게 하고 있다.
육해공군의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독일 사관학교. 학교시설도 전국에 분산돼 있다.
건강한 장교 문화를 만들자
현역 장교들 그리고 예비역 장교들이 하는 얘기들은 한결 같다. “우리 군의 장교단이 흔들리고 있다. 점점 사명감은 사라져가고 녹봉을 받는 장교는 없고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만 존재한다. 군인으로써 20년, 30년 국가와 군에 헌신하고 싶어도 한정된 보직과 좋은 보직을 거치지 못하면 계급정년에 걸려 군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처럼 보직과 진급에 얽매이는 장교단의 책임 회피 보신주의 문화가 임 병장과 윤 일병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힘든 취업난도 문제라고 이야기 하는 장교들도 있다. “언론은 군대 그리고 간부가 평생을 보장하는 철 밥그릇인 것처럼 보도한다. 하지만 뛰어난 우수자원들은 방산기업의 연구원이나 짧아진 군 복무기간 탓에 병사의 길을 선택한다. 생각을 해보라 자신의 역량을 자유롭게 펼치지도 못하고 짧은 계급정년에 의해 언제 군복을 벗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면 누가 지원을 할 것인가?” 실제로 외국의 경우 우수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진급의 기회를 확대하고 직업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조처를 취하고 있다. 장교로 시작되는 인원을 최대한 줄여서 그들이 장기간 군에서 역량을 발휘하도록 직업적 안정성을 부여한다. 말단의 병사 부사관을 거쳐 장군까지 진급할 신분이동의 기회를 넓혀두어 하부로부터 형성된 강력한 초급장교층 두텁게 확보하고 있다. 안정된 정년으로 진급과 보직보다 소신으로 근무하는 복무여건 그리고 특정 출신에 한정되지 않는 균등한 기회야 말로 건강한 장교단 문화를 형성하는 힘이 되며 그것은 군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글 문형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