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진 시인은 시에서 섬에 있는 닭의장풀을 보고 바다가 좋아 가출했다 하셨지요. 바다가 좋아 가출한 닭의장풀을 달개비, 닭개비 또는 닭의 밑씻개라고도 부릅니다.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은 닭장 근처에서 많이 자란다 해서 붙여졌다고도 합니다. 닭장 근처에서 자라서 닭의장풀이 되기도 하였겠지만 자세히 보면 그 모습이 마치 수탉이 홰를 치는 듯도 하고 꽃의 모양이 닭의 벼슬을 닮기도 하여서 이래저래 닭과 가까워서 그랬을 겁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불렀던 달개비라는 부름이 더 친숙하지요. '짧은 즐거움'이라는 꽃말을 가진 달개비는 영어로는 Dayflower라고 합니다. 꽃이 피고 한나절을 버티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꽃, 그 짧은 순간에도 즐거움을 아는 꽃, 사랑하면서도 다 살기도 짧은 인생이라는 말도 사랑하기도 바쁜 삶이라는 말도 새삼 닭의장풀을 보면 더욱 심동하게 됩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어김없이 더위를 씻겨주듯 시원한 청보라빛 달개비는 산과 들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잉크를 물에 푼 듯한 느낌을 주는 흔하디 흔한 꽃이지요. 식물 전체를 나물로 먹기도 하며 한방에서는 해열·해독·이뇨·당뇨병 치료에 쓴다는군요. 꽃에서 푸른색 염료를 뽑아 종이를 염색하기도 하구요. 그 느낌 그대로 말이예요. 그런데요. 오랫동안 저는 꽃잎이 두 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3장이더군요. 짙고 큰 2장의 꽃잎 밑에 고요하고 은밀하게 더 작은 잎 하나가 연한 빛을 띄고서 말입니다. 마치 여염집 처자의 조신함을 풍기며 수줍게 그러나 당당하게 받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꽃의 뒷쪽에 또 하얀 잎 3장이 달려있으니 알고보면 꽃조각이 6장인 셈이지요. 달개비 하나만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도 자연의 오묘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2년쯤, 한때 열렬한 학생운동권이었던 대학친구로부터 ‘야생초 편지’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10년 연하의 황대권이라는 대학 후배가 감옥살이 중에 쓴 책이었지요. 학원 간첩단 사건으로 서른의 나이에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그는 마흔 세 살이 될 때까지 13년 2개월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가 연루되었던 간첩단 사건은 국가 기관에 의해 완전히 날조된 조작극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지요. 간첩 누명을 쓴 채 긴 세월 감옥에서 그가 겪었을 분노와 좌절과 고통, 그리고 이런 극한 상황의 삶에서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감옥 마당의 야생초들을 매개로 자연에 대한 따뜻한 감수성을 키워 나간 그의 정신은 존경스럽고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잡초’이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무진장한 보물을 보며 하느님께서 내게 부여하신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신뢰하게 되었다.”는 서문의 글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산과 들에서 흔히 만나는 달개비, 차꽃 시인님 덕택에 그 달개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되었고 더불어 옛날의 아련한 추억도 소환하게 되었으니 이 역시 오늘의 큰 축복이겠거니 생각됩니다.
저에게도 서점에서 만난 야생초편지는 손으로 먼저 오래 만지고 쓰다듬고 안아보게 했던 감미롭고 흙 같았던 따뜻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가 그 모진 고난을 견뎌낼 수 있었던 누이에게 보낸 야생초들의 옥중 편지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결핍과 정성이라는 말도 떠오르고요. 극진한 책이었지요. 생각에서 멀리 가있던 감동들이 선생님 댓글로 뽑기처럼 줄을 이어 고개를 듭니다. 오늘 밤에는 슬그머니 껴안고 잠들겠군요. 저는 글을 쓰면서 이런 교감이, 소통이 그지없이 아름답고 고오맙습니다.
첫댓글 제목을 친근한 <달개비>로 하면 어떨까요?
좋습니다 고오맙습니다
2002년쯤, 한때 열렬한 학생운동권이었던 대학친구로부터 ‘야생초 편지’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10년 연하의 황대권이라는 대학 후배가 감옥살이 중에 쓴 책이었지요. 학원 간첩단 사건으로 서른의 나이에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그는 마흔 세 살이 될 때까지 13년 2개월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가 연루되었던 간첩단 사건은 국가 기관에 의해 완전히 날조된 조작극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지요. 간첩 누명을 쓴 채 긴 세월 감옥에서 그가 겪었을 분노와 좌절과 고통, 그리고 이런 극한 상황의 삶에서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감옥 마당의 야생초들을 매개로 자연에 대한 따뜻한 감수성을 키워 나간 그의 정신은 존경스럽고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잡초’이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무진장한 보물을 보며 하느님께서 내게 부여하신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신뢰하게 되었다.”는 서문의 글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산과 들에서 흔히 만나는 달개비, 차꽃 시인님 덕택에 그 달개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되었고 더불어 옛날의 아련한 추억도 소환하게 되었으니 이 역시 오늘의 큰 축복이겠거니 생각됩니다.
저에게도 서점에서 만난 야생초편지는 손으로 먼저 오래 만지고 쓰다듬고 안아보게 했던 감미롭고 흙 같았던 따뜻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가 그 모진 고난을 견뎌낼 수 있었던 누이에게 보낸 야생초들의 옥중 편지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결핍과 정성이라는 말도 떠오르고요.
극진한 책이었지요.
생각에서 멀리 가있던 감동들이 선생님 댓글로 뽑기처럼 줄을 이어 고개를 듭니다.
오늘 밤에는 슬그머니 껴안고 잠들겠군요.
저는 글을 쓰면서 이런 교감이, 소통이 그지없이 아름답고 고오맙습니다.
황대권 작가의 달개비 그림,
6개믜 수술 중 2개만 꽃가루를 갖고 있는 표현에 놀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