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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년도 | 졸업년도 | 출신학교 및 전공 | |||
운호중학교 | |||||
청주고등학교 | |||||
1981 | 서울대학교 사회학 학사 | ||||
2001 | 서울대학교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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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기간 | 경력내역 | |||||
2008 | ~ | 한나라당 경기도당 서부지역 총괄본부장 | ||||
2006 | ~ |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사무총장 | ||||
2005 | ~ | 한나라당 부천오정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 ||||
2004 | ~ | 국가발전전략연구회 사무처장 | ||||
2000 | ~ | 한나라당 부천오정 지구당 위원장 | ||||
1996 | ~ |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창립실무 총괄 | ||||
1995 | ~ | 서울특별시 구청장 비설실장협의회 총무, 감사 | ||||
1995 | ~ | 서울특별시 강동구청 구청장 비서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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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뒤바뀐 맞수 후보들의 재대결 예상도는?
기사입력 2008-03-17 20:53
---부천 오정구에서는 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48.3%로 재도전한 한나라당 박종운 후보보다 20%포인트 이상
높은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중략)
박종철 열사의 대학선배 박종운씨 | 기사입력 2007-06-04 14:45 (수원=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6.10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故) 박종철 열사가 경찰의 물고문을 당하면서도 지키려 했던 서울대 선배 박종운(47)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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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鍾富) 형님께
형님, 제가 박종운입니다.
민주주의의 제단에 바치고도 아직까지도 이 땅의 민주주의를 달성 못해 얼굴조차 들기 부끄러운 종운입니다.
지난 해 몇 차례 거듭된 수배조치로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정보 경찰의 독사 같은 눈과 전두환 정권의 사냥개들의 코를 피해 다니면서도 한사코 우리 종철이의 원혼을 달래고 종철이의 유지(遺志)를 이어받아 이 땅에서 저 악랄한 군사독재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달려가서 종철이의 싸늘한 시신을 부둥켜 안고 엉엉 울 자유도 없었고, 뼛가루를 만져볼 수도 없었습니다. 종철이 어머님을 비롯해 온 가족이 모두 나서서 싸우는데도 옆에 다가가 손을 덥석 잡아 함께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악랄한 군사독재 정권의 짜여진 각본에 의해 진행되는 수사·재판도 눈을 번연히 뜨고 감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을 쥐어짜는 듯한 아픔은 오직 또 다른 투쟁으로만 승화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통탄스럽기 그지없고 분노를 가눌 길 없는 이 현실은 끝끝내 뒤집어 엎지 못했습니다. 저는 종철이의 원혼 앞에 여전히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종철이의 따뜻한 마음씨와 불굴의 의지에 대한 추억이 휘몰아쳐 오면 휘몰아쳐 올수록 저에게는 자책감과 함께 끝내는 일어서고야 말리라는 결의가 더욱 굳어집니다. 종철이는 생전에 따뜻하고 온유하고 명랑하면서도 불의에 무릎 꿇지 않는 기개를 가졌습니다. 감옥에 갔다와서 그 어려운 시기에도 친구가 차비가 없으면 차비를 주선해주고 누울 곳조차 없으면 하숙집에라도 데려다가 재웠으며, 이 못난 선배도 따뜻이 맞아주고 처지를 함께 걱정해주었습니다. 누나가 손수 짜주었다는 목도리로, 추워 보인다면서 선뜻 벗어 제 목에 감아주었던 그런 애였습니다. 종철이는 저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종철이는 그 모진 물고문 속에서도, 전기고문 속에서도 동료, 선배를 지켜내는 불굴의 의지를 보였습니다. 종철이는 우리 모두의 기개로 살아 있습니다.
우리의 실책은, 종철이의 죽음과 가증스러운 고문은폐 축소조작에 분노한 온 국민의 투쟁이 전국을 뒤흔들고 마침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우리 앞에 활짝 열어 놓았을 때, 군사독재가 완전히 거꾸러지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가 패배할 지 모른다는 것을 모든 민주 인사들에게 납득시키고 이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백 선생님과 함께 두 야당이 합쳐 민주 연립 정부를 세우자는 주장이 무산되고 사기꾼, 살인마가 온갖 부정선거를 앞세움으로써 악랄한 군사독재가 재집권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철이가 굴복하지 않았듯이,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겁니다. 종철이가 심어준 기개는 오늘도 저를, 우리 온 국민을 채찍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종철이의 1주기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종철이의 1주기를 맞아서도 종철이를 추모할 아무 흔적도 없다는 것을, 아버님의 회한 어린 말씀이 보도된 것을 통해 알고, 저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간악한 무리들은 종철이의 유류품 일체를 소각시켜 우리의 가슴 속에서 종철이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간악한 무리들은 종철이의 유류품 일체를 소각시켜 우리의 가슴 속에서 종철이의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했지만, 종철이의 원혼이 떠도는 한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종철이를 기억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종철이의 가묘(假墓)라도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버님 말씀대로 한강이 없어지지 않는 한 종철이는 살아 있을 것이지만, 종철이의 가묘라도 있어서 모든 이들이 찾아볼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종철이의 가묘를 만들고 그것을 민주주의의 성소(聖所)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금이나마 종철이를 추억할 유류품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때문에 제가 가지고 있는 종철이의 유류품을 보내고자 합니다. 그 유류품은 종철이가 죽기 직전 제게 감아준 털목도리입니다. 제가 영원히 간직하고 싶기도 하지만, 이미 종철이의 유류품은 저 혼자만의 것이 될 수도 없고, 또 제가 언제 어떻게 간악한 적의 무리에게 체포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원히 없어질 흔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보내고자 합니다.
종철이의 가묘는 민주주의의 성지인 망월동에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망월동의 부릅뜬 눈들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똑똑히 지켜볼 것입니다. 종철이가 거기에 눕는다면, 한열이도 있고 해서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종철이의 가묘는 1주기를 맞아 온 국민이 추억하고 애도하는 속에서 썼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의 부정집권에 좌절해 버린 온 국민이 다시 분노로 일어서고, 좌절을 딛고 단결 투쟁하는 온 국민적 분위기 속에서 치러져야 종철이가 약간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저도 온 국민의 추억과 애도 투쟁이 있는 그곳에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묘 만들기와 온 국민의 추억·애도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비록 서로 만나지 못하는 조건이나마 저는 형님의 제2의 동생이 되고, 부모님의 제2의 아들이 되어 싸울 것입니다.
형님, 아버님, 어머님, 종철이 누나에게도 안부 전해 주십시오. 대학로에서 어머님이 "해방춤 출 그 날까지 함께 싸워나가자"고 하신 말씀은 저에게나 우리 온 국민에게나 무한한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온 가족이 종철의 뒤를 이어 싸워나가는 것을 저는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의 투쟁과 하나 될 그 날, 제가 소주 한 병 사들고 찾아뵐 수 있을 것입니다. 찾아뵐 수 있는 그 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1988년 1월 14일
종철이의 못난 선배 박 종 운 올림
(이편지는 박종운씨가 1988년 1월 '1주기 추도사', 목도리와 함께 박종철 열사의 형님인 박종부 씨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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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사람의 '상식'에 관한 보고>
그날 박종철은 경찰의 수배망을 피해 다니던 선배 박종운을
자신의 하숙방에 하룻밤 숨겨 주었으며,
자신의 목걸이와 가진 돈을 전부 털어 주며,
추운 겨울 수배생활에 지친 선배를 위로했다.
그리고 87년 1월 13일 신출귀몰하던 박종운을 잡기 위해
박종철의 하숙방에 들이닥친 경찰은
박종운의 행방을 캐기 위해 박종철을 잡아다가
물고문으로 족치기 시작했으며 끝내 죽음으로 이르게 했다.
2004년 4월. 살아남은 자 박종운은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선거운동을 하고 있으니,
87년 박종철 사망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 수사 2단장으로서
박종철 열사 사망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했던 의혹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 정형근 후보와 정치적 동지로 변신해 있다.
=========[아래 링크 클릭]=========
http://cafe.naver.com/sky7788.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574
피를 먹고 자라는 사람들....(죽음을 불사르며 보호해주고자 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박 종 운 후배가 목숨까지 받쳐가며 보호한 덕분에 당당히 살아남은 박종운.그는 박종철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은... )
http://cafe.naver.com/wslego.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7862
참 많은것을 생각나게 하는 지난날의 이야기 입니다.
민주항쟁의 몫..이란것과 20대 청년들의 시국상황에 대한 무지함...회피....누구 탓할일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 기성세대 모두의 책임입니다.
첫댓글 같은 세대를 산 사람으로써 부끄러운....
저런게 인간일까요? 저런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위할 수 있을까요? 저런놈이 똑똑하기까지 하네요 많이해 쳐먹겠네요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인간말종입니다. 저런놈 입에서 통합이라는 말이라도 나오면 정말 가관이겠네요
역사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대처해 가야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제대로 대처하고 싶은데.... 우리 민초의 힘은 아직... 많이 약한가봅니다....
살아온 발자취와 현재 서있는곳을 항상 살펴봐야합니다.
아무리 옳은길을 걸어왔어도 지금현재 서있는곳이 다른곳이라면~다른곳에 서는순간 그 곳에서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부지런히 그 다른길을 걷는거지요. 김문수, 이재오, 등의 삶에서도 볼수있죠~가슴이 아프네요~
부끄럽네요
난.
지 삶 지대로 찾아가는 넘으로 보입니다.
그 안에 무슨 생각,인간.역사의식?? 같은 의미부여 까지 하면...
그 넘 한테 좋은 일 하는 겁니다.
그 넘 지대로 지 인생 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 책임 입니다. 라고 하면
그냥 안 기성 할렵니다.
부채의식이나 책임 얘기 하면...
여중고생등등이 화장실에서 순산?? 하는 것... 등등에
책임과 이 사회의 부재 의식에는
더더 기성 하지만,,,,,
이 넘 앎에대해 알아야
하지만 키우는 짓도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