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꿈
'청춘의 꿈' 이 곡은 원래 김용대(金龍大1926~1960년대)의 작사 작곡 노래이나
아쉽게도 음반은 제작치 못했다합니다.
1960년대 들어 개사(반야월)하여 김용만(1933~ )에 의해 LP음반으로 취입하였고,
김용대의 원 가사로 추정이되는 원방현(1928~2001)의 노래가 전해져 오고있습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노래.
이 노래에서 말하는 청춘은 지금의 1~20대가 아니라 이 노래를 기억하고 따라 불렀던
청춘 시절의 우리가 아닐런지요.
오는 봄을 맞으며 그리운 청춘의 추억을 함께 꺼내어보면 어떨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라 할 수 있는 김용대 선생님이 1947년 무대에서
처음 불렀다고 알려지고 있는 '청춘의 꿈'은 이후 입소문을 타고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사실 1947년이라고 하는 것도 음반으로 기록되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1942년 경 발표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본인의 노래가 이렇게 큰 인기를 얻게 될 줄 모르셨던 걸까요.
김용대 선생님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가정을 꾸리셨습니다.
이후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활동을 하셨다고 하는데 선생님과 관련된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더 큰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청춘의 꿈
김용대 사 김용대곡
청춘은 꿈이요 봄은 꿈나라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르자
진달래가 생긋웃는 봄
청춘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
가슴은 두근두근 청춘의 봄
진달래도 개나리도 생긋웃는 봄
시냇가의 버들피리 빕 비리 비리 비리비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라라랄 라라라
라라라 라라랄라 랄라라
봄봄 청춘은 꿈이요 봄은 꿈나라
젊은피가 춤추는 꿈나라에도
언제나 명랑한 웃음과 노래를
시냇가엔 물소리도 졸졸
밝고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 둥실
노래를 부릅시다 젊은이여
산들산들 봄바람에 춤을추는 봄
시냇가엔 피리소리 빕 비리 비리 비리비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라라랄 라라라
라라라 라라랄라 랄라라
봄봄 청춘은 꿈이요 봄은 꿈나라.
반야월 개사(改詞)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진달래가 생긋웃는 봄 봄
청춘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 봄~
가슴은 두근두근 청춘의 꿈
산들 산들 봄바람이 춤을 추는 봄 봄
시냇가의 버들피리는 빕 비리 비리 비리비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라라랄
라랄라 라라랄 라라랄라 릴리리 봄봄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청춘은 향기요 봄은 새나라
언제나 명랑한 노래를 부릅시다
개나리가 방긋웃는 봄 봄
청춘은 소근소근 속삭이는 봄 봄~
가슴은 두근두근 청춘의 꿈
산들 산들 봄바람이 춤을 추는 봄 봄
시냇가의 버들피리는 빕 비리 비리 비리비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라라랄
라랄라 라라랄 라라랄라 릴리리 봄봄
청춘은 봄이요 봄은 새나라.
1926년 12월 경남 울산 출생으로 알려진 김용대 선생님은 울산농업학교를 중퇴하고
10대의 나이에 극단 황금좌에 입단했습니다.
황금좌는 1933년 결성되어 광복 때까지 수도권과 지방을 순회하면서 신파극, 악극 등을
공연한 극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0년대 후반 이 극단에서 '처녀 뱃사공', '오동동 타령'의 주인공 황정자 선생님과
호흡을 맞추며 막간가수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두 분 모두 10대의 어린 나이에 소년소녀 가수로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두 분의 인연은 40년대에 이르러 신태양악극단으로 함께 거처를 옮기며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1948년 김용대 선생님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첫사랑(?)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지만 두 분 모두 60년대에 타계하시면서 정확한 이야기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1960년이 되어서야 김용만 선생님의 목소리로
'청춘의 꿈'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고 있던 노래가 한참 후에 음반으로 제작되다니,
뭔가 순서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50년대 이전까지는 흔히 '돌판'이라고 부르는 SP 음반이 대세였는데
60년대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LP판이 대중화되기 시작합니다.
분당 33회전을 하는 LP에 반해 78회전을 하는 SP판은 실제로 생산과정에서
돌가루가 들어가기 때문에 '돌판'이라는 속칭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음반의 형태가 바뀌는 과도기에서 이 '청춘의 꿈' 음반은 SP와 LP의 두 가지 형태로
모두 생산되는데, SP음반에서는 그 제목이 '청춘은 꿈'이라고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기록에는 '청춘은 봄이요'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있는데,
LP의 제목과 다른 기록들을 살펴보면 '청춘의 꿈'으로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김용대 선생님의 작품이라고는 하나, 그 원곡을 들을 길이 없어
우리에겐 김용만 선생님의 곡으로 인식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사실 김용만 선생님의 만요 가수로서의 전성기와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노래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원곡의 느낌이 살아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