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이면 남양주 친정집을 향합니다.
토요일 오전
엄마가 소개한 한의원에 가기 위해서이죠.
9시 반 개원인데
그 시간에 맞춰 제일 먼저 진료 받고
부랴부랴 람가헌 토요반 수업을 받으러 갑니다.
첫 진료 날에는 아빠 차를 타고 엄마 아빠 저 셋이 함께 갔습니다.
두 번째 주 날 아침
엄마는 바쁘다시며 저를 데려다 줄 수 없다셨지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빠가 데려다 주지 엄마가 데려다 주나?
엄마가 바빠서 같이 못 가도 아빠가 병원까지 차로 데려다 주셨으면 좋겠다 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그렇게 해주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종이 쪽지에 병원까지 가는 버스 번호들을 적어오셔서는
아버지와 제가 식사 중인 식탁에 내밀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느 정류장에서 어느 버스를 타고 어디서 내리면 되는데.....어쩌고저쩌고"
'어 이게 아닌데...... 아빠가 태워다 줄 수도 있는데. 날도 춥잖아. 엄마가 왜 저렇게 과민 반응하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저는 엄마와의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그 정류장말고 다른 정류장에서 타면 더 좋은데......알았어요, 제가 알아서 갈게요.'
그러고 나서 식사를 마치고 다른 방 화장대에 섰는데
엄마가 이번에는 다른 쪽지에 '콜택시' 전화번호를 적어서 제게 내밀더군요.
"안 되면 이거 불러서 타고 가."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식사 전에 엄마 아빠가 사소한 사건으로 서로 언성을 높인 것을 알고 있었고
엄마가 제게 보이는 그런 태도가 어쩐지 아빠에 대한 좌절로 인해
딸에게마저 '추운 날 아빠가 태워주는 차를 타고 갈 기회를 박탈'하고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엄마, 왜 그래? 아빠가 태워 줄 수도 있는데......"
그랬더니 엄마는 버럭 화를 내면서
"그럼 니가 아빠한테 물어보기나 했어?"
"아니 물어볼려고 했는데 엄마가 먼저 그렇게 쪽지를 내미니까......"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결국 엄마가 저를 병원까지 태워다 주라고 아빠에게 말하는 것이 치사하고 아니꼬와서
(바로 전의 다른 사건으로 아빠에게 빈정 상한 후라서)
그런 식으로 행동했음을 알았습니다.
옛날 제 성격대로라면
엄마의 그런 행동에 큰 상처를 받았을 겁니다.
먼 거리도 아니고 눈도 오고 날도 추운데
부모(아빠를 포함)가 나를 데려다 주지 않으려 한다는 생각에서요.
그래서 부모에게 마음을 닫고 저는 뚱하게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혼수 준비 하면서, 그리고 또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엄마의 성격 패턴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아빠와의 관계에서 일이 잘 안 풀릴 때
그래서 스스로가 먼저 좌절하고 감정이 상하면
저에게 돌아올 어떤 물질적인 기회들을 중간에서 박탈할 수 있다는 것을......
사실은 엄마의 의사가 항상 아빠의 의사와 같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직접 아빠와 타진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음을 알았습니다.
저 역시 엄마가 만든 판에서 한 번의 좌절로 대화를 포기했었습니다.
부모님과 저의 관계에서 좀 더 유들유들하게 끈기 있게 중심 잡고 나아갔어야 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빠 엄마 그리고 저 사이의 그러한 성격적 역학관계가 이해되었는데
그런 저의 이해가 이번 사건에서 적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침착하게 화내지 않고 대응했습니다.
엄마에게는 두 분이 싸우게 된 사건에 대해 위로와
엄마가 제대로 이해 못한 아빠의 속뜻을 전달했고
그리고
집을 나서기 전
저는 예전과 달리 아빠에게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뚱하게 신문을 보고 계신 아빠에게
신랑과의 관계에서 나름 훈련된 애교를 부리며
"아빠, 날도 추운데 병원가지 태워주라."
그랬더니 아빠가 버럭 소리칩니다.
"내가 안 그래도 태워다 주려고 했는데.....
두 여자가 내 앞에서 그래가지고....."
제가 아빠 등을 쓰다듬으며 그랬습니다.
"알지. 아빠가 나 태워다주려고 한 거, 내가 다 알아."
그렇게 해서 아빠가 저를 차로 태워다 주셨고
그걸 본 엄마도 아빠에 대한 서운함과 삐진 기분이 풀어졌습니다.
저 역시 제 욕구가 충족되어 행복했고요.....
요즘은 제일 먼저 떠오른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시도해보고 아니면 마는 거지' 하면서요. (포기가 아닌 수용의 의미에서요)
아빠가 차로 데려다 주면 좋겠다가 제일 먼저 떠오른 욕구였습니다.
엄마의 좌절과 저의 뚱한 성격(유들유들하지 못함)으로
실현되지 못할 뻔 했던 제 욕구가
실현되었습니다.
차 타고 간 것 뿐만 아니라
세 사람의 관계에서 제가 문제를 풀어냈고
또한 서로 감정이 상했던 것이 풀어져서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했습니다.
첫댓글 으메...잘했군잘했어..계속 욕구 성취!!!
으흐흐~~~ 잘 하고 있군^^
정말 지혜로운 혜담님..^^
멋지다!!!! 결코 작지않은, 저 보기엔 기적이 일어난 거처럼 느껴지는걸요! 애쓰셨어요, 혜담님~
정말 자~~알 했어요 혜담남 ^*^
오 정말 기분 뿌듯하셨겠어요^^
혜담님의 욕구충족을 위하여~!!화이팅!!!
브라보~~^^
멋있어요~ 늘 그렇게 유들유들 행복하세요~^^
때론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않은 상태로 잠시 상황을 기다려봄이 훨씬 유익할때가 참 많더라고요~
내공이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