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고철과 엿장수
민병식
어렸을 때 고향마을에는 엿가위를 찰랑 거리며 '엿 사세요!'를 외치며 다니는 아저씨가 있었다.
"자! 엿이왔어요! 못쓰는 냄비, 프라이팬, 고장난 시계나 고무신 받아요!"
'찰캉찰캉!'
엿장수의 가위에서 나는 쇳소리의 장단이 얼마나 구성
지던지 동네 나를 비롯한 꼬마들은 엿장수 아저씨만 나타나면 하루종일 졸졸 쫓아다니기 일쑤였다. 엿 한가락 공짜로 얻어먹지 못했어도 그저 노랗게 잘 익은 호박엿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즐거움이 었는데 특히 동네 아주머니 들에게 인기가 꽤나 좋았던 엿장수 아저씨가 한 명 있었다. 다른 엿장수 아저씨와는 달리 행색도깔끔하고
어떻게 생긴 것이 그리 생긴건지는 모르겠으나 동네 아주머니 들은 그를 볼 때마다 엿파는 사람처럼 안생겼다며 삼삼오오 모여 수근거리곤 했다.
아저씨는 골목에 수레를 세워 두고 철컥거리며 골목을 돌았는데 그 때마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지 아주머니 들이 구멍난 양은 솥이며 산 위에서 주웠다는 대포알 탄피에 쇳덩어리다 싶은 고물은 전부 가져나와 엿으로 바꾸는 것이다. 나는 틈틈이 동네를 다닐 때마다 못이며 나사, 볼트, 철조망 잘라진 것 등 소소한 고철을 깡통으로된 아이 분유통에 모아놓곤 했는데 한 가득 모아 가져다주면 딱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엿 조각을 얻을 수 있었다. 그 한 조각을 위해 거의 한 달을 못쓰는 쇳조각을 주으러 다닐 만큼 엿은 아주 매력적인 맛이었는데 지금 생각
해보면 아저씨가 어린아이의 정성을 생각해서 조금 떠서 준 것이지 사실 엿으로 바꿀만한 고철 쪼가리도 아니었던 듯하다.
또, 언젠가 부터는 엿을 두동강이 내면 그 안에 보이는 구멍이 크거나 많은 사람이 이긴다는 엿치기 붐이 일어서 한동안 엿만 있으면 엿치기 하느라고 난리였다. 결국 돈은 없고 엿치기는 하고 싶고 결국 아버지 몰래 창고에서 자루가 빠진 곡괭이나 쇠스랑 등 농기구 쇳덩이를 가져다 엿을 바꿔먹기도 했는데 올해 구십이 다 되신 아버지께 아직까지도 그 사실은 비밀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탈 행위는 비단 나뿐 만이 아니었는데 엿장수 아저씨가 온 어느 날, 아직 쓸만한 그릇과 냄비를 엿으로 바꿔먹고 결국 엄마에게 발각되어 실컷 두드려 맞고 쫒겨나서 밖에서 벌을 서던 동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장 맛있는 엿은 끌을 대고 가위로 쳐서 잘라주는 일명 판엿이었는데 그 양이 일정치 않고 엿장수 맘대로 맘에 들면 더 주고 맘에 안 들면 조금 주고 기분좋으면 많이 주고 기분이 안좋으면 조금주고 진짜 엿장수 아저씨 맘대로였다. 엿장수 아저씨의 리어카 밑 쪽에는 늘 값나가는 고물 아니 보물이 가득했다. 주석, 구리, 알루미늄, 구멍난 무쇠솥 등을 주며 엿을 사는 아이의 모습을 부러움에 가득 차서 쳐다보면 아이 들은 절대 혼자 먹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나눠줬다. 어린 맘에도 나누먹어야 한다는 더불어 사는 마음이 고철 한 조각에도 가득 배어있던 시절이었다. 그땐 왜 이리 쇠붙이가 귀했는지 지금은 언제든 엿을 사먹을 수도 있고, 엿보다 치킨, 피자가 더 잘 팔리는 시대인데 엿을 파느라 여자로 분장을 하고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면서까지 고군분투 하는 요즘의 엿장수를 보면 안타까움과 함께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 시절의 고물은 엿장수 아저씨에게 생계를 이어주는 보물이었고 어린이 들에게는 세상에서 젤 맛난 군것질 거리였다. 그렇게 귀했던 엿이 지금은 추억의 음식이 되어 홀대받는 것을 보면 아쉽기만 한데 지금의 아이 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아주 꼰대라고 하며 듣기 싫어 한다. 초컬릿과 커피에 요거트에 서양식의 달달한 먹거리가 충분히 넘쳐나고 그것에 입이 맞추어진 시대, 원하는 것을 어디서고 마음껏 사먹고 찾아가서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화나 손가락 클릭 한번이면 바로 문 앞까지 가져다 주는 세상이다. 그러니 요즘세대가 엿 한번 먹어보겠다고 고철과 고물을 모으고 구멍 나서 못쓰게된 냄비를 소중히 감추어 두었다가 엿장수 아저씨 오기만을 기다리던 그 마음을 알까. 지금은 고철을 분리수거함으로 내놓는다. 그만큼 뭐든 물질이 풍요한 사회에 살고 있음에도 우리는 점점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더 많은 것을 갖기 원하며 그러기 위해 마음은 더 강팍해져간다.
어린 시절에 고철을 모은 깡통과 바꾸어 먹었던 엿가락
보다 맛나고 달달한 간식은 지금까지 먹어본적이 없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엿을 먹어 보겠다고 내민 고철은 사실은 엿으로 바꿔줄만큼의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값어치 없는 고철 깡통을 받고 내게 엿을 떼어준 엿장수 아저씨의 따뜻함이 생각나는 것은 때로는 엿 한조각의 연민과 나눔도 볼 수없는 삭막하고 메마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가을 속으로 한참을 들어와 점점 추워지는 날씨, 쪽방촌, 노숙자 등 없는 사람 들에게는 흰 눈의 낭만보다 버티어내야하는 살아남는 생존의 계절, 겨울이 다가올
텐데 우리 모두가 더도 말고 엿장수 아저씨가 베풀었던 엿 한 조각만큼의 마음을 서로 주고 받는다면 더욱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때 그 시절, 고향의 따뜻한 풍경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