탬파에서 나고자란 마이크 알폰소는 더스티 로즈나 잭 브리스코의 경기를 눈앞에서 보곤 했습니다.
학창 시절 야구선수로 활동했으며 졸업 후에는 건설업계에서 종사하다가 전문대학교에 진학합니다.
마이크 알폰소의 이종사촌인 마이클 볼레아는 작은아버지 헐크 호건의 활약을 지켜보며 프로레슬러를 꿈꿉니다.
마이클 볼레아의 설득으로 프로레슬러가 되기로 한 마이크 알폰소는 대학교를 그만두고 스티브 컨의 도장을 찾아갑니다.
25명의 지원자가 도장에 모였지만 전부 도망치는 바람에 마이크 알폰소, 데니스 나이트, 앨 그린만 수료 후 프로레슬러로 데뷔합니다.
'마이크 어섬'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마이크 알폰소는 테네시주의 USWA에도 출전했지만 돈을 받지 못합니다.
길이 보이지 않으니 대학교로 돌아갈까 생각했던 찰나 '레슬링 카우보이'라고 불리던 빌리 맥으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사정이 생겨 불참하게 생긴 앨 그린 대신 일본 원정을 뛰어줄 마음이 있느냐는 질문에 마이크 어섬은 바로 승낙합니다.
당시 선수들이 일본 원정 도중 한국에서도 경기를 뛰었기에 마이크 어섬 역시 그들을 따라 한국에서 경기를 뜁니다.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일본 원정을 시작한 마이크 어섬은 오니타 아츠시의 부름으로 FMW에 출전합니다.
당시 FMW는 하드코어 노선을 지향했기에 마이크 어섬도 하드코어 매치를 소화해냅니다.
이때 몸집에 걸맞지 않은 민첩함과 운동신경을 뽐내며 '140kg짜리 루차도르'라고 불립니다.
9년 동안 일본에서 활동하며 팬들에게 사랑받았는데 마이크 어섬 역시 일본이 좋다고 밝힙니다.
또한 자신을 알아주고 일본에 머무를 수 있게 해준 오니타 아츠시에게 영원토록 감사해한다고 덧붙입니다.
마이크 어섬은 일본에서 지내며 일본어에 능통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식당에서 원하는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이크 어섬은 FMW에서 근무하며 WWE에도 연줄이 있던 빅터 키뇨네스의 권유로 WWE에 출연해서 트라이아웃 경기를 치릅니다.
당시 마이크 어섬은 미국 활동에 관심이 없었기에 일본에 남았지만 오니타 아츠시가 떠나고 FMW도 노선을 바꾸자 마음이 바뀝니다.
때마침 사부가 ECW에 오라고 권유하자 마이크 어섬은 아픈 몸을 쉬고 싶다며 거절했지만 계속되는 설득에 ECW에 출전합니다.
일단 한 경기만 뛰기로 했지만 팬들의 환호가 만족스러웠고 또한 폴 헤이먼의 첫인상도 좋았기에 ECW를 선택합니다.
마이크 어섬은 자기가 가본 단체 중 ECW가 가장 분위기가 좋았으며 모두가 정치질이나 뒷담 없이 편안하게 지냈다고 회고합니다.
편안한 분위기와는 달리 ECW에서 임금이 계속 밀리자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마이크 어섬은 슬슬 마음이 떠나기 시작합니다.
당시 '호러스 호건'이란 이름으로 활동 중이던 마이클 볼레아를 통해 헐크 호건에게 연락해서 WCW에 갈 의향을 내비칩니다.
당시 ECW 세계 챔피언이었지만 딱히 계약에 묶여 있지 않던 마이크 어섬은 타이틀을 든 채 WCW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렇지 않아도 ECW에 타이틀을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한 마이크 어섬은 폴 헤이먼에게서 팩스가 오자 뉴욕주 버펄로로 향합니다.
마이크 어섬은 배신자라는 비아냥이 쏟아지는 가운데 태즈에게 패배하며 타이틀을 넘겼고 다시는 ECW에 출연하지 않습니다.
마이크 어섬이 본격적으로 WCW에 합류했을 당시 헐크 호건은 빈스 루소와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
마찰 끝에 헐크 호건이 생방송 도중 링을 떠나자 마이크 어섬은 제발 각본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각본이 아닌 현실이었고 마이크 어섬은 헐크 호건과 사돈 관계라는 이유로 빈스 루소에게 찍히고 맙니다.
한때 인간병기나 이 시대의 검투사라고 불리던 마이크 어섬이지만 WCW에서는 뚱녀 사랑꾼이나 70년대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빈스 루소가 퇴출당한 뒤 존 라우리나이티스가 '커리어 킬러'라는 기믹을 주며 마이크 어섬을 밀어주려고 했지만 끝내 WCW는 패망합니다.
다시 일본에서 활동하려던 마이크 어섬은 짐 로스와 폴 헤이먼의 권유로 WWE에 합류합니다.
라이노를 습격하며 하드코어 챔피언에 오른 마이크 어섬은 연합군의 멤버로 합류합니다.
타이틀을 걸고 제프 하디와 맞붙지만 경기 도중 에지와 크리스천이 방해하며 타이틀을 뺏깁니다.
에지와 대립하던 마이크 어섬은 하우스 쇼에서 빅 쇼와 경기하던 도중 무릎을 다치며 반년 넘게 결장합니다.
복귀한 뒤에는 하위 리그인 벨로시티에만 출연했는데 타지리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것을 시작으로 연패 행진을 달립니다.
결국 복귀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마이크 어섬은 WWE에서 방출됩니다.
평소 자기가 원하는 프로레슬링을 할 수 없어 WWE에서의 삶이 즐겁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선수들 사이에서 정치질이 빈번하며 실세를 찾아 아부하는 생활에 환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옛 ECW 수장인 폴 헤이먼이 WWE에서 근무 중이었지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덧붙입니다.
이때 언더테이커가 마이크 어섬을 매장했다는 의혹이 있어 옛 ECW 출신 매니저인 프랜신도 이에 대해 질문받은 적이 있습니다.
WWE에서 ECW 원 나이트 스탠드를 개최하자 마이크 어섬도 섭외되어 옛 라이벌이던 타나카 마사토와 맞붙습니다.
마이크 어섬이 나타나자 이때 중계석에 앉아 있던 조이 스타일스는 배신자가 왔다며 관중들의 야유를 유도합니다.
경기 내내 야유에 시달리던 마이크 어섬이었지만 타나카 마사토와의 혈투 끝에 승리하자 환호가 쏟아집니다.
이후 일본 원정에 나설 예정이던 마이크 어섬이었지만 몸에 한계가 왔다는 걸 느끼고 결국 은퇴를 결심합니다.
1년 동안 공부한 끝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마이크 어섬은 고향 탬파의 부동산 신탁사에서 근무합니다.
평소 마음에 상처가 있었다던 마이크 어섬은 아내로부터 이혼하자는 말을 듣자 충격에 빠집니다.
이 과정에서 가정폭력 혐의로 체포됐다가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떠났고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마이크 어섬은 이제 자기가 있을 곳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스스로 목을 맵니다.
마이크 어섬의 부고 소식이 알려지자 그를 알던 동료들이 좋은 사람이었는데 슬프다며 추모의 글을 올립니다.
특히 저스틴 크레더블은 생전 마이크 어섬이 돈은 돈대로 받지 못하고 평판은 평판대로 떨어지니 참 안타깝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