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 그는 진짜 누구인가? : 여기에 대해서 저는 제 자신의 입 말고,또 이소룡 관련 소설을 적는 수많은 소설가들이 아닌, 진짜 이소룡과 함께 수련했던 최고레벨의 무도가의 입을 빌리겠습니다.
간단한 번역 내용을 위에 올려드리죠. 다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소룡은 동양의 신비를 서양에 전파한위대한 선구자이자 뛰어난 무술인이었지만,결코 신화적인 무술인은 아니었다는 것이며, 오오야마 마쓰다쓰 - 최영의 선생과 비교될 대상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국 최고의 가라데가이자 킥복서의 하나로 손꼽히며, 무엇보다 최고의 트레이너 중 하나로 손꼽히는 북미 가라데계의 전설 죠 루이스의 칼럼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아직까지도 절대적으로 불리는 이소룡의 친구이자 훈련 파트너였으며 그와 함께 수련했던 사람입니다.
현재 그는 가라데/킥복싱/절권도를 모두 혼합하여 무술을 가르치며 이것을 절권도의 하나로 명명하기도 하지요. 그는 총 13권의 저서를 썼으며, 그중 두 권이 절권도를 주제로 쓴 도서입니다. 무술가로서 그의 이력을 보면,
1966년 아마추어 세계가라데 챔피언
1968년 세계헤비급 프로가라데 챔피언
1970년 미국 최초로 풀 컨텍트 킥복싱 시합을 하다. 켈리포니아 헤비급 가라데 챔프이자
국제헤비급 가라데 챔프였던 그렉 베인스를 2 라운드에 KO시킴.
1971년 헤비급 킥복싱 챔피언
1974년 세계 헤비급 플컨텍트 가라데/킥복싱 챔피언.
그러나 그를 더욱 유명하게 하는 것은 트레이너로서의 능력이죠. 그는 이미 수많은 매체로부터 최고의 트레이너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장문의 칼럼입니다.
1. 죠 루이스로부터의 서문
나는 파이터이며, 가쉽거리를 쓰지 않는다. 부디 아무도 나에게 가쉽거리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 혹은 내 일과 관련되지 않은 질문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무술에 너무 많은 종류와 기술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술가는 먼저 강인한 육체와 체력을 손에 넣는데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마추어 강사와 기본적인 몸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학생들이 우글거리는 도장과 교류하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진짜 싸움과 현대 무도가로서 중요한 도전을 맛보고 싶다면 마찬가지로 행동하길 권장한다.
대부분의 무술가들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싸움을 계속해나가려는 의지가 실전에서 시험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다. 우선 당신은 10이나 12 라운드에 걸쳐 강력한 파이터와 대적해 싸워본 적이 있는가? 만일 그런 적이 없다면 나에게 어떻게 싸우거나 수련해야한다고 말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기 바란라.
나는 선생님들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내 아버지는 대학교수였고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나의 특기는 트레이너들로 하여금 세계레벨의 파이터들을 길러내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하나의 유파에 얽매이지 않는 과학자이자 파이터라고 생각한다.
나의 죠 루이스 파이팅 시스템은 하나의 모토가 있다. Vis Spienta Spiritus. 이 말은 힘, 지혜, 그리고 혼이란 뜻이다. 현재 이것은 세계 챔피언 출신의 풀 컨텍트 파이터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수련방법을 교환하는 그룹의 이름이다. 우리는 우리 기술과 훈련방법을 언제나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내 의견에 따르면 현재 세계 탑레벨의 파이터들은 극진가라데가가 아니면 킥복서다. 그것이 WKA이건, WAKO이건, 혹은 K-1 스타일이건 간에, 이들이 모든 무술류파를 지배하고 있다. 다른 어떤 무술도 이들에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과 다른 무술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대는 이유를 묻고 싶을 것이다.
나는 광신적인 무술가들에게 더 이상 숨거나 뭔가가 있는 듯 행동하지 않길 충고한다. 너의 컴퓨터 키보드 뒤에 숨는 짓을 그만둬라. 잡지와 비디오, 혹은 증명되지 않은 위장이란 환상에 숨는 짓을 그만둬라. 체육관으로 달려가서, 보기만하지 말고, 나와서 싸워라.
나는 케나다의 더그 크링거와의 인터뷰의 내용을 인용하고자 한다. 그의 질문 중 하나는, "당신은 이소룡의 현재 무술 수준과 그의 유산을 어떻게 보십니까?"였다. 첫째로, 요즘 절권도의 수련자들은 과거에 얽매여 있다. 이소룡이 1969년에서 1970년 사이에 가르친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내가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은 좀더 발전된 절권도인 것이다.
클링거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많은 절권도 캠프와 세미나를 찾아 여기저기 세계 방방곳곳을 다녔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몇몇 분야에 얽매여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기에 더 이상 실용성이 떨어지는 오래된 영춘권에 얽매여 있다. 그들의 절권도는 공격시 앞발에 체중이 너무 실리고, 다리 사이가 너무 벌어져 있고, 손이 너무 내려와 있다.
그들은 경직되어 있고, 얼굴만을 노린다. 그들은 돌진할 때 뒷발을 끌게 된다. 그들은 빨리 스텝인, 아웃하지 못한다. 그들은 싸움의 각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좌우 이동에도 뛰어나지 못하다.
이소룡이 그토록 특별했던 이 영역들이 어째서 후인들에게 계승되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요즘 나도는 절권도 세미나나, 캠프나, 비디오 테이프들에서 나는 이소룡이 나에게 가르쳐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진짜 실전적인 기술들 말이다.
만약 거기에 보여진 것들이 진짜 절권도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소룡과 수련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나는 내 눈이 기억하는 것, 이소룡과 얼굴을 맞대고 직접 본 것을 기억한다. 나는 그에 의해 머리를 몇 차례 가격 당했었다. 나는 내가 직접 겪었기에 진짜 절권도가 뭔지 알고 있다고 감히 주장한다.
현재 유명한 절권도의 강사중에 99%는 내가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나는 진짜 파이터들과 수련하길 권장한다. TV나 영화, 극장이나 광고에서 연기자들이 신용을 가진 것처럼, 파이터들이야말로 신용이 있다.
그것은 '전적'이라 불리는 파이터들의 전적이 증명한다. 심지어 유명한 스트리트 파이터들조차 기록을 가지고 있다. 성룡이나 이연걸, 스티븐 시걸이나 이소룡 같은 사람들의 전적은 어떻게 되는가?
마이클 조던이나 베이브 루스와 같이 이소룡은 그 자신의 영역에서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의 성취가 그것을 말해준다. 마치 베이브 루스가 그라운드에서 이뤄낸 것처럼, 이소룡의 성취는 영원히 그의 업적을 대변할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이소룡은 다른 사람에 의해 있지도 않은 사실을 지어내어질 필요가 없다.
특히 그와 만난 적도, 같이 일하거나 연습한 적도 없는 사람들과 연관되어진 소설이 쓰여질 필요가 없다. 나는 나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나와 이소룡과의 관계를 멋대로 써대고, 절권도에 대해 논하는 것에 대해 분개한다. 그들은 나를 만난 적이 없다 (이 사람을 이소룡이 쓰러뜨렸다고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지어내서 열받은 모양).
그들은 이소룡이 훈련하는 광경을 보지 못했고, 내가 훈련하는 광경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가 대련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같이 훈련하는 광경도 보지 못했다. 만약 여기에 대해 쓰고 싶다면 최소한 나를 만나서 인터뷰라도하고, 소설 대신 진실을 써야할 것이다.
2. 당신은 언제 이소룡을 만났습니까? 그가 당신에게 같이 훈련하자고 제의했습니까? 당신과 척 노리스와 스톤이 이소룡과 동시에 수련한 적이 있습니까?
60년대에 나는 TV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소룡을 만나기 전에 그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 나는 그를 워싱톤의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때는 67년 미국 챔피언쉽이 있던 때였고 나는 내 타이틀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I Spy" 쇼의 로버트 컬프와 이소룡이 초대손님이었다. 이소룡이 나에게 다가와서 자신을 소개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몇 달 후에 나는 블랙밸트 메거진의 쿠버씨티 사무소에서 그들이 쓴 기사의 잘못된 점에 대해 항의하고 있었고, 이소룡도 그 사무소에 있었다.
내가 내 자동차로 갈 때 이소룡이 다가와서 "죠, 죠. 나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소"라고 말했고, 15분 정도 나를 자신의 시스템에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당시 나는 그를 무시했다.
나는 여태까지 그가 무얼 말했는지 모른다. 이소룡은 나와 척 노리스, 그리고 스톤을 갈라놓는데 전력을 다했으니까. 그는 다른 사람에게 나에 대한 코멘트를 했고, 그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이소룡은 내가 크고 힘만 쎈 바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톤에 대해서 엄청나게 강하고 빠르지만 성격이 과격하다고 말했고, 척 노리스에 대해서는 발차기는 할줄 알지만 뻣뻣한 펀치를 가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때문에 만약 우리 넷이 한 자리에 모였다면 이소룡은 큰일났을 것이다.
3. 나는 내가 스파링할 때마다 나를 지배하는 아드레날린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나는 몇 차례 실전을 했었는데, 그건 더한 경험이었죠. 나는 스파링할 때 아무 생각없이 주먹과 발길질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긴장을 늦추고 아드레날린을 억제하려는 대신 받아들여라. 불안과 전의를 구분해라. 그 둘은 똑같이 느껴진다. 기본기를 사용하도록 노력하고, 강력하고 간단한 기술을 익혀라. 잽으로 상대방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 같은, 간단한 게임 플렌을 사용해라. 너는 아드레날린을 조종할 수 없다. 너는 아드레날린 속에서 집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뿐이다.
6. 이소룡은 학생을 받을 때 어떤 기준을 사용했습니까?
이소룡은 두 가지 모티브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영화제작을 위함이었다. 그는 이름난 감독, 프로듀서, 작가, 그리고 배우들과 수련했다. 둘째는 나나 마이크 스톤, 그리고 척 노리스와 같은 세계챔피언들과 수련함으로서 쿵푸 교사로서의 이미지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이건 확실히 성공을 거두어서 그는 가장 유명한 동양의 배우가 됐다.
7. 당신과 이소룡은 간격을 좁히는데 대단했습니다. 이소룡이 그 정도 수준의 간격 좁히는 능력을 얻기 위해 얼마나 풋워크를 연습했습니까? 이소룡이 이 방면에서 위대했던 무하마드 알리를 존경했다는 건 유명한 일입니다. 당신이나 이소룡이 풋워크를 익히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나 중요성에 대해 부디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풋워크는 모든 운동에 있어 중요하다. 많은 복싱 코치들은 자기 선수들을 덴스 교실에 보낼 정도다. 오키나와에서의 나의 가라데 수련이나 이소룡과의 수련의 90%는 풋워크 연습에 할애되었다. 너는 효율적으로 풋워크를 밟음으로서 최고속도의 주먹과 발차기를 날리고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빠른 파이터들은 기술의 속도보다는 전체적인 속도와 폭발력, 그리고 풋워크로 만들어진다.
8. 죠, 당신의 적수중 가장 힘들었던 상대는 누구였습니까?
내 스파링 파트너들은 언제나 내 상대보다 강한 사람들이었다. 내 스파링 파트너 중에 9명이 세계 챔피언이 됐었으니까. 힘든 상대는 나의 리치를 무너뜨리고 빠르게 파고드는 상대였다. 한 두 방의 공격보다는 콤비네이션이 두려운 것이다.
9. 당신이 가장 존경하는 파이터는 누구이며 왜 그렇습니까?
슈거 레이 로빈슨이다. 그는 인파이팅과 아웃파이팅을 모두 할 수 있었다. 그는 터프한 인파이팅을 하거나 빠른 테크니션이 될 수도 있었다. 그는 또한 강타자였고 강한 턱을 지녔었다. 그는 또한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놀라운 기본기와 빠른 상황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들은 위대한 파이터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다.
10. 이소룡과의 기본적인 훈련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소룡은 시간을 중요시했다. 우리는 웜업없이 곧바로 훈련에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복근이나 팔뚝 근육을 언제나 뽐내길 좋아했다. 혹은 그가 연습중인 새로운 발차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65년에서 67년 사이에 그의 발차기는 조금 약했다.
그 당시 제작된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유연성은 나빴고 손도 정확한 자세에 있지 않았으며 자주 너무 파고들었다. 우리는 언제나 싸움 전략에 대해 연구했다. 스피드는 우리가 가장 중점적으로 연구한 것이었다. 우리는 주로 전략적인 대련훈련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우리는 싸움 영화를 자주 연구했다. 이소룡이 한 대부분의 기술은 다른 곳에서 카피된 것이었다. 그러나 가끔 그는 자신의 심리적 에너지나 특별한 싸움 철학을 가미하기도 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서 자주 토너먼트에 나가서 절권도의 실험체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절권도 기술들을 복싱선수나 가라데 선수를 상대로 링에서 사용해보고, 돌아와서 그에게 알려주었다. 실용성이 없는 기술들은 제거되었다.
영춘권의 치사오도 상당히 연습했다. 우리는 많은 영춘권 캠프나 학교에 가서 기술들을 배워서 더욱 쓸모있게 만들도록 노력했다. 그것은 이소룡의 특기였다. 그는 창의력과 용기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전통에서 자유로웠고, 내가 그를 좋아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비슷했으니까(죠 루이스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풀 컨택트 스파링을 하기 시작한 가라데가죠).
11.당신은 이소룡과의 훈련에 대해 좀더 말해줄 수 있습니까? 그가 얼마나 강했는지, 그리고 그와 자주 대련했습니까?
나는 이소룡과 제한적인 스파링만을 했을 뿐 풀 컨택트 대련을 하지는 않았다. 이소룡은 세계 레벨의 복서가 될 수 있는 펀칭 스피드와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가 12 라운드를 싸울 수 있는 체력이나 펀치를 견뎌낼 수 있는지 어쩐지는 알지 못한다 - 그가 증명한 적이 없으니까. 또한 정신력도 증명되진 않았다. 예를 들어서 갈비뼈가 세 개 부러진 후에도 싸울 수 있는가
- 그래플러의 경우에는 어깨가 빠진 후에도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을 이소룡이 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행히도 증명되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이소룡은 내가 본 인간들 중 가장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단순히 빠를 뿐 아니라 자신의 기술에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소룡은 알리와도 같았다. 나는 두 사람 모두와 만난 적이 있기에 알 수 있다.
13.당신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에어로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은 당신이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합니까?
웨이트 리프팅에 경우 나는 반복적인 리프팅을 권장한다. 파워 리프팅이나 바디빌등은 비추천한다. 체력은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에어로빅 훈련은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너의 근육을 강화하는데 거의 도움이 못되고, 뼈의 강도를 강화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기술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샌드백을 갈기는 것보다 타격의 파워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스피드를 위해서는 pre double end bag을 사용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고 가끔 장거리 달리기를 해주는 것은 필수다. 웨이트 트래이닝보다 빠르고 강하게 근육을 단련해주는 것은 없다. 웨이트 트래이닝을 하고 샌드백을 걷어차고 후려쳐라.
14.이소룡이 실제 시합에서는 얼마나 강했을까요? 그는 당신에게 강적이었을까요?
나에게 이소룡이 여기 저기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묻는 것은 타이슨이 얼마나 뛰어난 연기자가 될 수 있었을까를 묻는 것과 같다. 이소룡의 Enter the Dragon이란 영화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무술 영화로 남는다.
그러나 이소룡을 실체보다 뛰어나게 숭상하지는 마라. 그는 가장 뛰어난 무술가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그것이 그를 파이터로 만들진 않는다. 만약 너가 싸우고 싶다면 최소한 아마추어 대회에서라도 싸워라. 그럼 안젤로 둔디 같은 사람이 너를 자신의 캠프로 초대할 것이다. 무술가가 되는 것이 너를 연기자로 자동적으로 만들지 않듯이, 반대도 마찬가지다.
16. 나는 현대 K-1 전사들과 싸울 수 있는 입식타격가들이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절권도는 어떻습니까?
K-1에서 절권도 수련자들이 싸운다면 그들은 완전히 살해당할 것이다. 그들이 낮은 수준의 K-1, 예를 들어 K-1 elimination 같은 곳에서 싸워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절권도 수련자는 K-1 파이터들의 인사이드, 아웃사이드 로우킥에 의해 완전히 지배당할 것이다.
17. 당신이 이소룡과 같이 훈련하고 대련한 바에 의하면 - 이소룡은 무술가로서, 파이터로서 어땠습니까? 그의 기술은 알려진 것처럼 대단했나요?
많은 사람들이 소설 쓰기 좋아하는 것처럼 그의 기술이 뛰어났는가? 절대로 아니다.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 쓴 글들은 절대로 진실을 내포할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관찰을 읽고 쓰는 것이지 자기 자신의 경험에 의지해 쓰는 것이 아니니까. 많은 사람들은 이소룡을 미화하길 좋아한다.
18.이소룡은 절권도를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너무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70년대에 그는 절권도는 학생들이 쉽게 알아듣기 어렵다고 했었죠. 이소룡은 현대 절권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습니까?
이소룡은 그 자신부터가 먼저 절권도에 대한 정의를 자주 바꾸곤 했었다. 나는 주로 토너먼트에 나가서 관중들 앞에서 우승하는 것밖에 몰랐고, 이소룡은 절권도에 대한 연설을 썼다. 나는 그가 쓴 글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간단한 기억은 그가 어느 날 "아, 당신은 절권도가 무슨 뜻인지 알고 싶습니까? 그건 기술을 끊는다는 말입니다. 당신이 듣기엔 어때요?"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슨 선(禪)에 관려뇓ㄴ 것이리라 생각한다.
이소룡의 절권도는 사실 그가 가르친 것과 상당히 상반되는 점이 많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이 배운 걸 남에게 가르치지 않도록 교육됐다 - 특히 백인들에게는. 그러나 그는 가르쳤다. 그는 자주 자신이 보여준 것을 남들에게 가르치지 않도록 부탁했고 내가 자신이 보여준 것을 연습하길 바랬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이소룡이 나의 스승이라고 선전했었어야 했으나 그는 한 번도 내 이름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적이 없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세계챔피언이었고, 그는 이것을 교사로서의 자신의 신용성을 부가하기 위해 사용했다.
내 말은 절권도에는 많은 이중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소룡은 예를 들어서 복서처럼 조깅을 하고, 샌드백을 쳤으며, 가라데의 발차기들을 샌드백에 연습했다. 그는 굉장히 허술한 double end bag을 사용했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타이트해야한다. 그는 절권도가 다른 무술들과 비교되어 뛰어나게 비교되기를 바랬지만 사실 많은 다른 무술들이 사용하는 기술들을 사용하는 것 뿐이었다.
19.당신은 이소룡과 훈련함으로서 더욱 도움을 받았습니까? 어떤 종류의 무술가들이 절권도를 배움으로서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내가 이소룡과 연습한 것은 주로 실전 상황이었고, 당연히 검은띠 이상의 레벨이다. 나는 세계 최고의 파이터가 되길 원했고 당연히 초보들과 연습하지 않았다.
21. 당신은 이소룡의 옆차기를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 위력은 어땠습니까?
옆차기를 맞아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의 펀치에 맞아본 적은 있다. 그는 그의 체구에 비해선 굉장히 강한 펀치를 소유했다.
25. 죠, 이소룡의 육체적인 능력 가운데 무엇이 가장 놀라운 것이었습니까? 예를 들어서 두 손가락 팔굽혀펴기라던가?
두 손가락 팔굽혀펴기는 나를 전혀 놀라게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보통 138 파운드(62.73 kg) 정도밖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랍 사람들을 경호하는 일을 했었는데, 한 이라크 보디가드는 200 파운드(91kg) 정도 나가는 체중으로 한 손가락 푸쉬업을 했었다.
내가 그에게서 가장 놀랐던 것은 그가 75 파운드(34 킬로그램)짜리 아령을 가슴까지 들어올린 후에, 천천히 팔을 펴서 몸앞으로 직선으로 내민 상태에서 15 초 이상을 버텼던 점이다. 만약 이걸 시도해보면 너는 이게 왜 놀라운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26. 당신은 K1 파이터나 극진 가라데가를 최강의 파이터들로 묘사했는데, K-1 시합에서야 그렇겠지만 이종격투기에선 어떻겠습니까? 브라질 유술, 삼보, 레슬링과 복싱은요? 현대 최고의 이종격투가들은 브라질 유술, 레슬링, 복싱, 그리고 무에타이를 수련합니다. 가라데는 전혀 수련하지 않고요. 당신은 발레투도 용의 그래플링 기술들을 수련한 적이 있습니까?
내가 시작한 최초의 무술은 레슬링이었다. 나는 레슬링/웨이트 리프팅을 하다가 무술에 입문하게 됐었다. 내 어린시절 꿈은 프로레슬러가 되는 것이었고, 이것이 나의 베이스다. 나는 언제나 킥복서나 가라데가로서의 나보다는 그래플러로서의 실력이 더 뛰어났다. 나는 빠르고, 강하고, 뺀치 같은 손을 소유했다.
나는 움켜쥐고, 박치기를 하고 물기를 좋아한다. 만일 현대 이종격투를 그레이시들이 이걸 처음 시작한 91년도와 비교한다면, 당시 그들은 상대를 골랐다. 96년 정도까지만 해도 그래플링은 잘 통용되었다.
러시안, 브라질리안, 그리고 일본인들이 잘라내는 듯한 발차기를 다리와 목에 구사하고, 그래플링의 피니쉬 홀드보다 훨씬 빠른 스트레이트를 구사하기 시작하자 그들은 이들 기술들을 혼합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싸우는 파이터들은 최소한의 타격을 구사할 줄 아는 자들이다. 펀치가 주로 사용되는 기술이 되었다.
나는 모두가 이종격투술을 익힐 가능성을 추구해야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방면에만 매달린다. 유도나 태권도나 가라데 같은. 오키나와에서는 모든 가라데 검은띠들은 유도 검은띠들이기도 했었다. 나는 90년도 들어 이종격투기가 활발해진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게으른 교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일이 될 태니까.
30. 죠... 이소룡과 수년간 연습한 당신이 보기에, 강한 쪽 사이드를 앞으로 한 스탠스를 어떻게 보십니까 (절권도에서는 오른손잡이가 오른발, 손을 앞으로 한 자세를 잡죠)? 나는 여전히 그렇게 싸웁니다만... .
나는 그 아이디어를 믿지 않는다. 나는 양쪽 손과 발 모두를 사용해서 상대를 KO 시킬 수 있다. 강한 쪽을 앞으로 내는 건 한쪽이 약하다는 소리다. 앞으로 내놓은 사이드는 스피드로 너의 적을 현혹시키기 위함이다. 또한 타겟을 인식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뒤쪽 손발은 파워를 위함이다.
31.이소룡의 육체적 재능과 약점에 대해 말해줄 수 있습니까?
이소룡은 스피드를 타고났다. 그는 매우 낮은 체지방율을 타고났으며, 두꺼운 어깨와 빠른 손과 가늘면서도 강한 다리를 타고났다. 그리고 모든 운동선수에게 있어 폭발력의 기본이 되는 뛰어난 흉체를 가졌다. 그는 아주 좋은 풋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약점이라면 우선 목이 얇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많은 펀치나 쵸크를 버텨내지 못한다. 그의 간장쪽 갈비뼈는 매우 편평해서 간장치기나 심장치기에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뼈들은 매우 얇았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상대를 2-3 가지 펀치 컴비네이션으로 쓰러뜨리려고 한다. 이소룡은 또한 매우 작은 발목과 무릎관절을 가졌다.
33. 당신 생각에, 왜 이소룡의 팬들은 빌어먹을 정도로 (이소룡에 대해서) 초 민감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개인이 한 우상을 숭배할 때, 그것이 직접적인 감정의 동질화이거나 강렬한 집단화에 의거한 숭배일 때, 누군가가 그 우상에 대해 비판을 가할 때 그들은 그것을 개인적인 - 자신에게 가해진 비판으로 받아들인다. 이들 중 대부분은 스스로의 존재가치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자들이거나 강한 자의식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무도 스스로가 가지지 못한 것에 의해 죄책감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만약 네가 누군가에게 그가 아닌 점을 지적한다면 이것은 그를 개인적으로 모독하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그들은 스스로의 약함을 분노로 변화시키고, 이 경우 - 이소룡의 숭배자들의 경우 -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약함을 깨우쳐준 상대에 대한 적의감으로 불태우는 것이다.
첫댓글 좋은 글이네요. 어쨌든 뛰어난 사람인건 분명하죠 이소룡이란 동양인은. 지금시점이 아니라 사망전의 이소룡은 분명 당시 사람들의 사고보다 앞선 생각을 하던 사람이었을거 같습니다.
사실 순수 동양인도 아니고 혼혈이죠....
25% 백인인데 걍 동양인이라고 봐도 될듯
정답이네 이글.
오랜만에 읽네.마스에서 처음 읽은거 같은데.좋은 글
오~ 추억의 격투장 마스~~
예전의 어느 까페에서 이소룡을 우상시 하는 분들과 토론하면서 말하던 말입니다..이글이 정답인거 같네요..
흠... 이게 정답같네요. 같이 운동해본 사람만큼 정확한 글이 또 있을까요?
딱봐도 배우 그 이상 이하도 아님...영화의 화려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지만 그런 모습은 실제 리얼파이트에서는 헛점 투성이 그 자체...
글 좀 읽어보세요~
글은 보신거 같은데...같은글을 봐도 받아들이는 관점은 많이 다르네요...워커님
그런데 이글만 보며 안되죠. 당시 같이 했던 다른 무술인들은 이소룡을 높이 평가하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10명에 8먕은 이소룡을 높게 평가하는데, 한두명의 빈대적 의견의 글만 퍼와서 다른 시각은 애써 눈감고 이것만이 지배적 의견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도 의도가 좋지 않죠.
예를 들어서 조용필에 대해서 국내 음악전문가들 10명 8명은 현존 최고의 가수라고 평가하지만 박모씨를 비롯한 몇명 소수의 음악평론가는 최고까지는 아니다는 식으로 평가절하를 하죠. 그런 한두명의글을 퍼와서 조용필은 과대평가된 가수다라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죠. 물론 소수의견으로 참고할 가치는 있으되 그것이 진실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설득력이 약하죠. 동시대를 같이 했던 이소룡의 지인들 뿐만이 아니고 무술인들은 이소룡에 절대적 존경심을 가진 분들이 더 많고 찬사와 코멘트가 더 많습니다.
또 누구에 대한 어떤 사람의 평가는 그사람의 호오와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죠. 한때 조용필에 위대한 탄생의 멤버였다가 퇴출당한 연주자가 또는 안좋은 기억이 있는 사람은 조용필에 대해서 안좋은 말을 하고 다닐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저 위의 글을 읽어보면 객관적인듯 하지만 행간에 감정적인 단면들이 많이 엿보입니다. 이사람은 일 단 감정적으로 이소룡을 좋게 보고 있지 않는다는 느낌이 몇줄 읽어봐도 강하게 드네요. 물론 이소룡을 우상시하는 사람들도 동시대에이소룡과 친하게 지냈던, 좋은기억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겠지만, 어쨌거나 그 쪽이 더 많다는 것이죠.
사람은 참 모순된게 자기가 싫으면 이유없이 실은 겁니다. 싫은데 이유가 없는거죠. 그때부터 그런 사람눈에는 반대의 시각이나 자료는 그 사람 눈에는 잘 안띕니다. 감정에 끄달려서 자기한테 유리한 자료만 눈에 띄고 그것만 가지고 침소봉대를 하게 되죠. 그많은 이소룡에 대한 우호적인 자료들은 다 덮어두고(그런 글은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습니다.) 자기생각과 비슷한 이런 글은 옳구나.. 하면서 퍼오는 거죠.
물론 이소룡에 대한 호오는 연령대에 따라사 엇갈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의 격투가나 문화를겪은 사람은 이소룡이 자신의 세대의 우상들보다 더 평가받는 것이 일단 생리적으로 반감을 가집니다. 이 카페에서 대체로 이소룡만 나오면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거개가 20-30데 초번의 분들이라고 봐요. 그러나 이소룡문화를 직접 겪은 40대 이상은 저처럼 이소룡에 대한 동경이나 우상을 갖고 그의 문화적 세례를 받고 자란 세대이기때문에 일종에 그에게 고마움이 있습니다. 그가 있었기 때문에 나의 유년,소년시절이 좀더 즐거웠고 문화적으로 궁핍했던 그시절에 그나마 더 풍요로웠고 추억할게 더 많았다는 것은 그에 대한 헌사로 이
질수 밖에 없겠쬬.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평가는 완전히 객관적일수는 없습니다. 정답은 어디에도 없죠. 단, 이소룡은 무술가, 영화배우 로 어떻고 저떻고 말하기 이전에 한명의 위대했던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논란이 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그에게서 가장 놀랐던 것은 그가 75 파운드(34 킬로그램)짜리 아령을 가슴까지 들어올린 후에, 천천히 팔을 펴서 몸앞으로 직선으로 내민 상태에서 15 초 이상을 버텼던 점이다. 만약 이걸 시도해보면 너는 이게 왜 놀라운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글 보신 이종님들 많이 시도 해 보실듯..
ㅇㅇ 그럴듯하네요 근데 62kg인 몸으로 34kg아령이라...놀랍긴하네요
블랙/위 글보면 34 아령으로 그거 한 사람은 이소룡이 아니라 이라크보디가드 래자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