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학교 등교길이랍니다. 오르막이 꽤 가파르지요. 벚꽃이 질 즈음이면 이곳 청소당번들 고난이 심하고요. 아직은......
그야말로 꽃구름이네요.
꽃보다는 하늘이........
이 앙징하고 예쁜 꽃 이름은 참꽃마리랍니다. 이름도 예쁘지요?
토종 민들레 같기도 하고.......
벌써 철쭉이 간질간질 필라고 그러네요.
아, 요것은 수선화랍니다.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저의 십팔번이지요.
보랏빛 제비꽃이 나무 둥치에서 더부살이하고 있네요.
도란도란 같이 피어 있는 것이 역시 좋아보이지요?
해찰 좀하고 돌아와보니 아이들이 분리수거 잘 하고 있네요.... 장난 치고 노는 녀석들도 있고.
목장갑..............
올해 청소업무를 맡다보니 학교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손에 목장갑을 끼는 일이다. 손바닥 부분이 빨갛게 코팅된 목장갑 감촉이 나쁘지 않다. 손재주가 좋은 과묵한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평소의 내 모습은 아니다. 난 손재주도 없고 과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아이들도 그런 내 모습이 어색한지 만나는 아이들마다 눈길이 목장갑에 가 있다. 하루는 목장갑을 낀 채 집게로 쓰레기통에서 캔을 꺼내고 있는 나를 한참 바라보던 아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 왜 이런 일을 하세요?”
“응, 나 영어 선생 때려치우고 학교 청소부로 취직했어.”
농으로 한 말에 녀석의 표정이 심각하다 못해 험악해졌다. 그러더니 녀석 왈,
“선생님이 초라해 보여요.”
아이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또한, 그것이 사회로부터 학습된 것이라면 아이를 탓할 일만도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이 씁쓸했다. 아이를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어서 이렇게 넌지시 제안을 했다.
“너 나랑 이것 좀 같이 할래?” “예? 저 지금…”
“바빠? 그래도 잠깐만 선생님 좀 도와주면 안 되겠어?”
“예. 도와드릴게요. 같이 해요.”
잠시 어둡던 아이의 표정이 밝아지자 나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아이는 내가 쓰레기통에서 꺼내어 놓은 캔을 다른 통에 담는 일을 했다. 오 분쯤 지났을까? 내가 아이에게 물었다.
“재활용이 영어로 뭔지 아니?” “아, 뭐더라? 배웠는데…”
“리사이클이야. 리가 다시라는 뜻인 건 알지? 사이클은 주기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한 생애를 살고도 한 번 더 산다는 말이지. 이 캔이 말이야. 네 도움을 받아서. 뿌듯하지 않니?”
“뿌듯해요.”
그날 나는 아이와 헤어지면서 이렇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지금도 선생님이 초라해 보여?”
“아니요. 멋져 보여요.”
“너도 멋져 보여.” “헤…”
정말 기분이 좋은지 입이 귀에 걸린 아이를 먼저 보내놓고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한 후배교사가 말을 건네 왔다. 보아하니 아침 조회를 하러 교실로 가는 길인 듯했다.
“고생 많으시네요.”
“고생은 무슨. 이 쓰레기들은 말이 없어요. 조퇴해달라는 말도 안 해요. 담임선생님들이 고생이지 내가 무슨.”
“허허허. 말이 되네요.”
학급에 청소용구를 나누어 주다보면 이것도 하나의 권력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 학교 예산으로 산 물건이지만 마치 내 것을 나누어주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학기 초 바쁜 업무 탓에 청소용구 신청을 깜빡 잊은 반은 내가 직접 갖다 주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어찌나 고마워하던지 권력을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 싶기도 했다. 그럼, 이런 권력의 사용은 어떨까? 지난주에 담임교사들에게 보내드린 업무 메일 내용이다.
‘오늘 청소상태를 점검할 계획이었는데 오후 행사가 겹쳐서 다음 주 월요일 1교시에 하게 될 것 같네요. 알려드리면 더 스트레스 받으실지 몰라 그냥 두려다가 그래도 알려드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요. 그러니 절대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가족들과 주말 즐겁게 보내시며 청소 일랑은 까마득히 잊고 계셨다가 월요일에 교실을 한 번 둘러보시면 되겠네요. 아셨지요?’ 여기에 온 짧은 답장. “흐흐흐 너무 감사!”
학교에서 나는 목장갑을 낌으로써 행복하고, 또 행복해서 목장갑을 낀다. 목장갑을 낌으로써 권력자가 되고, 동시에 종이 된다. 권력자와 종 사이, 목장갑은 그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간극에 다리를 놓고, 나는 그 다리를 신명나게 오간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출근하자마자 어김없이 목장갑을 끼고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것이다. 아이들의 눈길이 내 목장갑에 와 닿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이 교과서만이 아닌, 학교 교정의 어느 한 구석을 지나치다가도 삶의 소중한 교훈을 터득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시사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