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롤러는 멤피스에서 선수 겸 프로모터로 맹활약하며 '남부의 제왕'이라 불립니다.
자기가 경영하던 USWA가 WWE와 업무 제휴를 맺으며 본인도 WWE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WWE에서도 왕관을 쓰고 나와 스스로 남부의 제왕을 자칭하며 선역 선수들을 깎아내립니다.
브렛 하트가 킹 오브 더 링에서 우승했을 때도 WWE의 제왕은 자기뿐이라며 난동을 부립니다.
브렛 하트에게 먼저 공격을 가한 제리 롤러가 부모님 안부까지 물으며 둘의 대립이 시작됩니다.
제리 롤러와 브렛 하트는 다가오는 서머슬램 1993에서 일대일로 맞붙을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제리 롤러는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자기 궁정 광대인 도잉크 더 클라운을 대타로 보냅니다.
목발까지 짚고 나와 제대로 걸을 수 없다던 제리 롤러는 경기 도중 난입해서 멀쩡한 모습으로 브렛 하트를 공격합니다.
결국 경기는 중단되고 서로 몸싸움을 벌이려는 가운데 회장 잭 터니의 명령으로 브렛 하트와 제리 롤러의 일대일 경기가 열립니다.
감정이 격해진 제리 롤러는 심판이 말리는 대도 제리 롤러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둘의 대립은 서바이버 시리즈까지 이어집니다.
브렛 하트가 형제들을 데려오자 제리 롤러는 자신을 따르는 기사들을 데려와 팀 대 팀으로 맞붙게 됩니다.
하지만 서바이버 시리즈를 앞두고 제리 롤러가 성추행 혐의로 결장하게 되자 숀 마이클스가 대신 나섭니다.
서바이버 시리즈 1993당일 가면을 쓴 기사들이 숀 마이클스를 따라 나와 함께 하트 형제에게 맞섭니다.
하지만 기사들이 전멸하자 숀 마이클스가 경기를 포기하고 달아나며 하트 형제의 승리로 끝납니다.
이때 기사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제리 롤러와 함께 멤피스에서 활동하던 프로레슬러들이었습니다.
붉은 기사 역할을 맡은 선수는 당시 데뷔 14년 차에 접어들던 배리 호로비츠였습니다.
자버로서 여러 차례 WWE에 출연했으며 이후로도 자버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립니다.
쭉 자버로 살던 배리 호로비츠였지만 바디도나 스킵을 롤업으로 꺾으며 기회를 얻습니다.
바디도나 스킵이 패배를 인정 못하고 날뛰며 대립이 시작됐고 서머슬램 1995당일 일대일로 맞붙습니다.
비록 경기 도중 하쿠시가 방해했지만 다시 한번 승리한 배리 호로비츠를 향해 뜨거운 환호가 쏟아집니다.
배리 호로비츠는 자기를 도와준 하쿠시와 함께 태그 팀으로 다니며 각본에 투입됩니다.
그전보다 인기도 위상도 치솟았지만 잠시뿐이었고 다시 자버 생활이 시작됩니다.
목 부상을 안고 살던 배리 호로비츠는 이제 자기 자리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WWE를 떠납니다.
배리 호로비츠의 인기는 잠시였지만 언더독이나 유대인 스타라고 하면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습니다.
콜트 카바나는 어린 시절 배리 호로비츠를 보며 유대인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명받았다고 합니다.
붉은 기사 역할을 맡은 선수는 당시 데뷔 23년 차에 접어들던 그레그 밸런타인이었습니다.
이미 WWE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고 인터콘티넨털 챔피언에도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WWE를 떠난 뒤 WCW를 비롯한 여러 단체를 돌면서 간간이 WWE에 얼굴을 내비칩니다.
서바이버 시리즈 1993은 물론 로열 럼블 1994 도중에도 깜짝 출연해서 경기를 뜁니다.
하우스 쇼에서도 경기를 뛰며 WWE 복귀를 노리지만 정식 복귀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비록 선수로서는 복귀하지 못했지만 레전드 신분으로 WWE에 몇 번 초빙됩니다.
레슬매니아 20을 앞두고 열린 전야제 행사에서 WWE 명예의 전당에 입성합니다.
옛 동료들과 함께 홈커밍 특집 RAW에 출연했다가 랍 콘웨이와 시비가 붙습니다.
결국 랍 콘웨이와 일대일로 맞붙으면서 모처럼 WWE에서 경기를 치릅니다.
젊은 랍 콘웨이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 유진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늙어서도 선수로 활동하던 그레그 밸런타인은 68살의 나이로 은퇴합니다.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는 53년 동안 여러 명장면과 명경기를 연출해냅니다.
특히 로디 파이퍼와 대립할 때는 서로 개 목줄을 채우고 치열하게 싸웁니다.
훗날 CM 펑크가 AEW에서 MJF와 대립할 때 그레그 밸런타인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같이 밸런타인데이를 보내자며 MJF에게 개 목줄 경기로 맞붙자고 결투를 신청합니다.
검은 기사 역할을 맡은 선수는 당시 데뷔 8년 차에 접어들던 제프 게일로드였습니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고 체격도 좋아서 전 NWA 회장 밥 가이걸 등이 큰 기대를 보입니다.
하지만 평판이 좋지 않았고 결국 별 활약 없이 은퇴한 뒤 은행을 털다가 체포되어 징역을 살다 나옵니다.
출소 후 제프 게일로드는 교회에 다니고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새 삶을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64살의 나이에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객사한 상태로 발견됩니다.